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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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633> {{{#white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br] اسلامی جمہوریہ پاكستان [br] Islamic Republic of Pakistan}}} || |||| width=300 || ||||<#ffffff> 국기 || |||| width=250 || ||||<#ffffff> 국장 || ||<#ffffff> 면적 ||796,096㎢ || ||<#ffffff> 인구 ||211,819,886명 (2017년)[* 파키스탄 통계청.] || ||<#ffffff> 수도 ||이슬라마바드(اسلام آباد) || ||<#ffffff> 최대 도시 ||카라치 || ||<#ffffff> 정치체제 ||연방제, 공화제, 의원 내각제 || ||<#ffffff> 대통령 ||아리프 알비 || ||<#ffffff> 총리[* 파키스탄 총리직의 공식 명칭은 옛 이슬람 왕조 시기에 쓰였던 총리직인 '대재상'이다.] ||임란 칸[* 2018년 총선에서 PTI당의 임란 칸이 당선되었다.] || ||<#ffffff> 공용어 ||우르두어, 영어 || ||<#ffffff> 국어 ||우르두어 || ||<#ffffff> 국교 ||이슬람(수니파) || ||<#ffffff> 종교 분포 ||이슬람 96.4%, 기타 3.6% || ||<#ffffff> 인종 구성 ||펀자브족 44.68%, 파슈툰족 15.42%, 신디족 14.1%,[br] 사라이키족 8.38%, 무하지르족 7.57%, 발루치족 3.57%, 기타 6.28% || ||<#ffffff> GDP ||명목 2,709억 6,100만$(2016년) || ||<#ffffff> 1인당 GDP ||명목 1,427$(2016년) || ||<#ffffff> 화폐단위 ||파키스탄 루피 (PRs) || ||<#ffffff> 대한수교현황 ||남북한 동시수교 (남한 1983, 북한 1972) || ||<#ffffff> 건국 ||1947년8월 15일 (자치령 수립)[br]1956년3월 23일 (이슬람 공화국 수립) || ||<#ffffff> 표어 ||ایمان، اتحاد، نظم‎ [br] Īmān, Ittiḥād, Naẓm [br] 신앙, 일치, 규율 || [목차]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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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인도의 서쪽에 위치한 국가. 1947년 8월 14일에 독립하였다. 수도는 '이슬람의 도시'라는 의미의 이슬라마바드. 하지만 상업, 문화의 중심지이자 최대 도시는 항구도시인 카라치다. 그 밖에 라호르, 라왈핀디 등이 주요 도시다. 인구는 약 1억 6천만~1억 9천만 명이었다가 2017년 인구조사에서 2억 770만명을 돌파했다.[[1]] 인구 97% 이상이 무슬림으로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무슬림이 많은 나라다. 아울러 전 세계에서 6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공용어는 우르두어영어이며 우르두어는 특별히 국어로도 지정되어 있다. 다만 우르두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의 비율(8%)은 아주 낮으며 펀자브어가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45%)을 차지한다.

본래 영국 식민지 시절 오랜 기간 옆나라 인도와 함께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로 있었으나, 인도와는 언어와 민족, 문화, 정서도 다른 소속감이 희박한 지역이었으며[* 인도아대륙 자체가 대륙에 비견될 정도로 여러 민족들이 존재하는 문명권이다. 비정상회담 103화에서 인도인과 파키스탄인의 서로에 대한 인식을 찾아볼 수 있다. 사용하는 문자도 다르다. 다만 우르두어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소통 자체는 가능하고, 인도의 공용어인 힌디어와 파키스탄의 공용어인 우르두어가 사실상 같은 언어라 여기는 사람도 있다.],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종교가 달라서 결국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 후 서로 별개의 독립국가로 분리독립되어 갈라졌다.

썩 좋지 않은 상황에 있는 나라다. 미국 단체인 평화기금(Fund for Peace)에서 발표하는 실패국가지수로는 세계 14위에 랭크되어 위험국가에 포함되었다. 이 정도 순위면 부룬디, 예멘, 이라크, 시리아, 차드, 짐바브웨막장 상태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대량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보니 지역 강국에 속한다.

국호

다른 ~스탄 돌림자 나라들은 모두 민족명에서 딴 것인데 반해 파키스탄이란 이름은 한국의 TK PK 비슷한 두문자 합성어이다. 파키스탄의 독립운동가 초우드리 라흐마트 알리[* چودھری رحمت علی خان‬‎ (Choudhry Rahmat Ali), 1895 ~ 1951]가 옥스퍼드 대학 재학 중 고안한 낱말인데, 인도 서쪽에 무슬림이 다수 거주하는 인더스 강 유역 5개 지역 펀자브(Punjab), 아프간(Afghan),[* 지금의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 및 연방 직할 부족 지역] 카슈미르(Kashmir), 신드(Sindh), 발루치스탄(BaluchisTAN)에서 글자를 따와 PAKSTAN을 만들고, 발음의 용이성을 위해 중간에 i를 추가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pak(پاک)은 우르두어[* 정확히 말하면 페르시아어로 같은 뜻인 pāk(پاک)에서 온 차용어이다. 뒤의 stan과 함께 그냥 통째로 페르시아어로 해석되는 셈. 근대 이전의 페르시아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 쓰이는 언어에는 유럽의 라틴어나 동아시아의 한문마냥 페르시아어에서 차용한 단어가 많다.]로 "신성한, 청정한"이란 뜻을 가지며 stan(ستان)은 페르시아어로 땅을 뜻하는 접미사이다. 따라서 Pakistan(پاکستان)은 "정결한 땅" 이라는 뜻도 된다.

국기

이슬람교 국가답게 흰색과 초록색 단 2가지색으로 되어 있으며, 초록 바탕에 하얀 초승달과 별이 그려져있다. 깃대 왼쪽으로 하얀 수직띠가 있고, 그 옆으로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록색 바탕이 그려졌으며, 초록색 바탕에 커다란 초승달과 별이 그려져 있다. 1947년에 인도와는 별도의 자치령으로 지정되어 사실상 인도와는 다른 나라로 독립할 때 때 화가인 아메루딘 키드와이가 디자인하여 국기로 제정하였다.

하양은 평화, 초록은 번영, 초승달은 발전, 별은 지식을 뜻하며 공통적으로는 이슬람의 상징을 뜻한다.

역사

[include(틀:인도의 역사)] [include(틀:자치령)] 근대 이전의 역사는 북인도/아프간의 역사와 상당수 겹친다. 인도/역사 참조.

인도 제국으로서 영국의 통치를 받다가 1947년에 인도와는 별개의 자치령으로 지정되어 사실상 독립했다.

1953년 아직 영국 군주를 모시고 있을 때 독립국인 자국의 군주로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을 지켜보기도 했다. [28:16대목에서 파키스탄의 이름이 언급된다.]

1956년 개헌하여 영국 국왕을 더 이상 섬기지 않는 공화국인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되었다.

인도는 1970년대 중반을 제외하면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반면 파키스탄은 상당 기간 군사독재를 받았다. 현대 파키스탄의 혼란상과 낙후성은, 군사독재정권기의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것과 연관이 있다.

정치적으로는 PML과 PPP로 대표되는 민정 정부와 쿠데타로 인한 군사 정부가 약 10년 단위로 돌아가면서 정권을 차지하였다. 건국 직후에는 모하마드 진나가 주도한 파키스칸 무슬림 동맹 (PML; Pakistan Muslim League)가 정국을 이끌었으나 1958년 아유브 칸의 쿠데타로 인하여 1969년까지 파키스탄 군부가 정권을 차지했었다. 이후, 민주주의적으로 치루어진 1970년 총선거에서 줄피카르 알리 부토파키스탄 인민당 (PPP; Pakistan People's Party)가 과반수를 차지하였지만 또다시 1977년 무함마드 지아울하크가 주도한 쿠데타로 인하여 실각하고 부토는 사형당하게 되었다. 1988년 군부는 실각하게 되었으며 그 해에 이루어진 총선에서는 파키스탄 인민당이 승리하였고, 1993년에는 펀자브의 사업가 출신인 나와즈 샤리프(Nawaz Sharif) 가 이끄는 PML의 분파인 PML-N이 승리하여 이제는 드디어 평화적으로 민정 정부가 설립...되는 것으로 보였으나, 1999년 또다시 쿠데타가 발발하여 페르베즈 무샤라프2001년부터 2008년까지 군사 독재 정치를 펼치게 되었다. 이후 2008년 야당의 압력으로 총선을 치뤄서 파키스탄 인민당이 정권을 차지했고 2013년에는 이전에 물러난 PML-N의 나와즈 샤리프가 다시 총리에 취임하게 되었다.

건국 초기에는 이슬람 민주주의를 내세웠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1958년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60년대까지 군사독재기를 맞게 되었다. 1970년대에 민주화가 이루어졌기는 했지만, 민주화 과정에서 서파키스탄 엘리트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총선 결과를 무효화하는 소탐대실적인 일을 벌였다. 결국에는 전쟁이 일어나면서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분리돼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인도핵무기를 개발하자 따라서 핵무기를 개발했다. 당시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이 떨어져나가서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걸 생각한다면 삽질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으나, 파키스탄의 주적인 인도가 핵을 개발했으니 파키스탄이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핵을 개발하는것도 큰 무리는 아니었다.[* 이미 유서깊은 핵보유국인 중국, 그리고 한창 핵개발중인 북한에 대항해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핵우산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이조차도 '미국이 과연 유사시 지구 반대편 나라들을 위해 자국이 핵공격받을 위험까지 감수하며 대신 핵을 쏴줄것인가?'란 의문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한국이든 일본이든 자국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조심스러운 전망들이 잊을만하면 가쉽거리가 되어 튀어나오고 있다. 반면에 파키스탄은 핵우산을 대신 씌워줄 동맹도 없었으며, 전쟁을 치룬지 반세기가 넘어가는 동아시아와는 달리 불과 70년대에 주적인 인도와 진짜로 치고받으며 싸웠다. 이런 마당에 인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경고도 씹어먹고 핵개발을 강행했으니 파키스탄 입장에서는 인도가 언제 자국을 향해 돌발적인 핵공격을 시도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당시 지도자 부토(줄피카르 알리 부토)는 풀을 뜯어먹어도 좋으니 핵을 개발한다.--아니 뭐요?--라는 발상으로 핵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파키스탄의 핵개발은 부토보다는 군부시대에 주도되어 1998년 첫 지하 핵실험이 이루어졌고, 그 이유로 2000년대 초반 경제적으로 봉쇄되었다.

부토 가문은 부녀(父女) 정치가로도 유명하다. 아버지 알리 부토는 197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가 1973년 내각책임제로 헌법이 바뀌자 총리로 취임하였으나, 1977년 군부의 쿠데타 때문에 실각하고, 이후 1979년 부패와 살인죄 혐의로 사형당하고 만다. 그의 딸인 베나지르 부토는 망명 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PPP(파키스탄 인민당)의 당수가 되었고, 아버지를 죽인 무함마드 지아울하크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 뒤에 치러진 1988년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20개월만에 다시 쿠데타로 도각, 1993년 재선되었고, 다시 3년 후에 여러 비리와 부패혐의로 인해 파르크 레가리 대통령에 의해 또 한번 해임되었다. 물론 그 부패 혐의에는 어느 정도는 논란이 있다.

이후 계속 쿠데타와 민정 이양이 반복되었다. 이슬람주의자인 나와즈 샤리프총리을 반대해 일으킨 1999년의 쿠데타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집권한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군사독재 정치를 펼쳤으나 야당의 압력으로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상당수의 NGO 단체들이 무샤라프가 독재자이기는 하지만 일은 잘했다고 평가한다. 일단 공무원 비리와 복지부동을 상당수 혁파했고 난민과 빈민들을 위한 정책을 폈다. 그리고 경찰까지 썩어서 비리 적발이 힘들자 헌병을 동원해서 비리 색출을 했다고. 그리고 여성을 위한 정책도 실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력한 주자로 부각되던 부토가 2007년 12월 27일, 2008년 1월에 있을 총선을 2주 앞두고 폭탄 테러암살되었다. 부토의 파키스탄 인민당은 이 비극을 도리어 버프 삼아 압승을 거두며 정권을 되찾았고, 반대로 군부의 후신 정당은 역관광... 무샤라프는 더욱 이미지가 나빠져 야당의 탄핵소추 끝에 사임과 함께 즉각 망명을 택해야했다. (돌아오면 코렁탕이다.) 이후 그럭저럭 견제와 균형으로 민주주의가 굴러가고 있다 카더라.

부토의 남편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왔다고 해도 대통령 자르다리가 미스터 ~~텐프로~~ 10%라고[* 사업을 진행하는 예산의 10% 기본으로 떼먹고 시작해서라고 한다. 단,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아니라고 한다. 10%는 커녕 20%, 30%라고 (...)]를 불릴 만큼 국가 전반적인 부정부패가 심각한데다 군부와 원리주의자 세력들의 권력이 너무 강력하여, 나라 자체가 막장이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세한 형국] 이슬람과 펀자브 지방을 중심으로 한 야당(PML-N)이 군부와 적당히 손을 잡은 자르다리를 군부를 구실로 까는 분위기다. --아 막장이 더욱 반복되나요-- 결국 2010년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의원내각제 개헌을 통과시켰다. 자르다리는 임기 중반에 자신의 권력을 뺏기는 수모를 당한 셈이다. 다만 자신의 정당 PPP의 당수직은 유지하여, 총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2013년, 자르다리는 차기 대선 및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PML-N으로 2013년 정권이 넘어가게 된다. 건국 66년만의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라고 한다. 현 2013년 9월에 선출된 대통령은 Mamnoon Hussein(맘눈 후세인)이지만, 위에 언급했다시피 2010년 이후 대통령 권한이 대폭 축소된지라 실권자는 현재 총리인 나와즈 샤리프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0년 안에 파키스탄이 미국, 러시아다음으로 세계 3대 핵 보유국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고 밝혔다.[[2]] 2016년 1월 19일에 핵탄두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순항미사일 실험이 성공을 하면서 핵개발이 가속 중이다.[[3]] 하지만 샤리프 총리가 대법원에 의해 파나마 페이퍼 혐의로 해임되면서 파키스탄의 정세에 영향을 끼칠 우려를 낳고 있다.[[4]]

2017년 8월에 새 총리로 현 집권 여당인 파키스탄 무슬림리그 소속인 샤히드 하칸 압바시가 새로운 총리로 선출되었다.[[5]] 하지만 임시 총리이기에 2018년 총선때 다시 총리가 결정된다. 해임된 샤리프 총리도 2018년 선거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6]] 그러나 파키스탄 법원은 샤리프 총리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7]] 그리고 나와즈 샤리프 총리와 장녀 미리암 샤리프는 영국에서 파키스탄으로 귀국하자마자 체포되었고 파나마 페이퍼스 명단으로 탈세혐의가 확인되면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8]] 그리고 2018년 총선에서는 나와즈 샤리프의 동생인 펀자브 주지사인 셰바즈 샤리프가 PML-N을 이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와즈 샤리프의 딸인 미리암 샤리프가 법원에 제출한 문서가 화제가 되었다. 나와즈 샤리프의 유력한 후계자로 주목받던 미리암 샤리프는 파나마 페이퍼와 연관되어서 자신은 이미 자신의 재산 운용에 대한 권리를 모두 사업가로 일하던 동생에게 2006년에 양도했다며 자신이 사인한 권리 양도 문서를 대법원에 제출하였다. 문제는 이 문서에 쓰인 Calibri 폰트는 2007년에 되어서야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 이로 인하여 이 사건은 파키스탄에서는 fontgate라고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2018년 7월 25일에 이루어진 총선거에서 임란 칸이 이끄는 PTI가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 기존 여론 조사 및 언론사 예측으로는 60-90석 정도를 차지함으로써 근소한 차이로 PML-N을 지치고 제1당이 될 것으로 예측했으나 선거 결과는 110석을 넘는 압도적인 표를 차지하였다. 2018년 기준 파키스탄의 총 의석 수는 342석이며 이 중 272석을 선거를 통하여 뽑는다. 나머지 의석 중 60석과 10석은 각각 여성과 취약계층을 위한 예비 의석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비례대표와 유사.] 을 거둠으로써 여당이 됨과 동시에, 건국 이후 수십 년 동안 파키스탄 인민당, 파키스탄 무슬림 동맹, 그리고 파키스탄 군부가 돌아가면서 차지하던 파키스탄 정치의 순환 고리를 마침내 깨고 임란 칸이 새로운 총리로 취임하였다.

국방

* 파키스탄군 참조.

경제

* 파키스탄/경제 참고.

사회

민족

*주민에 대해선 파키스탄인 참고

정치 및 분리주의

상술했듯이 파키스탄은 크고 아름다운 땅으로 인한 지리조건, 이슬람 제국들과 인도 제국으로 인해서 여러 민족, 언어들이 혼잡되어 권력 하나로 묶여있는 역사적 요인으로 분리주의 운동이 매우 심한 편에 속한다. 알고보면 주류인 펀자브인에게 차별받다보니 소수민족들의 불만이 크며 이에 대항하여 극심한 지역감정이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소수민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은 심하게는 스스로를 '파키스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조차 있다. 이미 파키스탄부터가 독립 후 인도와 갈라졌고, 이후 파키스탄에게서 방글라데시가 떨어져 나갔으며 현재도 발루치스탄, 파슈투니스탄 등의 파키스탄의 일부 지역들에서 분리 독립이나 자치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반 파키스탄 분리 독립운동 단체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파키스탄의 각 지역은 공통된 역사를 공유한 적이 드물다.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는 아프가니스탄의 일부였으나 그레이트 게임의 결과로 듀랜드 라인의 형성으로 인하여 파키스탄의 영토가 되었으며, 펀자브 지역은 무굴 제국 막바지에는 란지트 싱이 이끄는 시크 왕국이 들어서는 등 독립적인 역사를 지닌 지역이다. 게다가 인도파키스탄이 분리되었을 때는 이슬람은 파키스탄 측 펀자브로, 시크교를 믿는 사람들은 인도 측 펀자브 지역으로 대이동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발루치스탄 지역은 역사적으로는 페르시아의 영향력이 더 크던 곳이다. 이 때문에 각 지역에서 분리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분리주의 무장단체들의 테러는 파키스탄 내에서 골치아픈 문제로 손꼽힌다. 이는 인도의 위협과 더불어서 파키스탄 군부가 아직까지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도 지역색이 높은 편인데 전통적으로 펀자브 주는 PML-N을 비롯한 PML (Pakistan Muslim League) 계열이, 베나지르 부토의 정치적 고향인 신드 주는 PPP (Pakistan People's Party)가, 그리고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는 파키스탄의 크리켓 영웅인 임란 칸이 이끄는 PTI (Pakistan Tehreek-e-Insaf)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 한국경남호남정치 판세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단, 발루치스탄 지역은 대체로 특별한 지배 정당이 없이 지역 군소 정당 및 무소속 후보들이 우세를 보이는데 이는 이 지역이 아직 부족 지배 성향이 강한 곳이라 각 부족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의석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카라치는 지리적으로는 신드에 속해있지만 신드와는 달리 많은 주거민들이 타 지방에서 이주한 데에 기인하여[* 특히 파키스탄 건국 당시 인도구자라트 지역에서 온 우르드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이들을 무자히르(Muhajir)라고 부른다. 후술하는 정당인 MQM의 원래 명칭은 Muhajir Qaumi Movement였다.] 자유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MQM (Muttahida Qaumi Movement-Pakistan) 이 강세를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의 경우 JI (Jamaat-e-Islami)나 MMA (Muttahida Majlis-e-Amal)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들이 강세를 보이는 편이다.

언어

공용어는 1947년부터 우르두어이며 영어도 공용어이다. 아울러 우르두어는 국어로도 지정되어 있다.

우르두어는 힌디어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상호 의사 소통도 가능하다. 그러나 파키스탄인 대부분은 우르두어를 할 줄은 알아도, 우르두어가 모어는 아니다. 오히려 파키스탄에서 모어로 가장 많이 쓰는 언어는 펀자브어로 파키스탄 인구의 45% 가까이가 펀자브어를 모어로 쓰며 우르두어가 모어인 파키스탄인은 2억 파키스탄 인구 가운데 겨우 1,600만 명 수준이다. 이는 파키스탄 내에서도 화자 수가 5위에 그칠 만큼 적은 것이고, 오히려 인도에서 우르두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이 5,100만 명(...)[* 이마저도 2001년 통계이니 현재는 더 크게 늘었을 확률이 크다.]으로 훨씬 많다. 그럼에도 파키스탄이 굳이 우르두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것은 무굴 제국에서 이어지는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그리고 한 집단의 모어를 공용어로 지정해 생기는 차별을 막기 위해서이다. 아무튼 국어이자 공용어인 만큼 기초교육에서 우르두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75%의 파키스탄인들이 우르두어를 이해할 줄 알고, 서로 모어가 다른 파키스탄인들은 의사소통할 때 우르두어나 영어를 쓴다.

영국의 지배와 영향으로 영어는 파키스탄에서 우르두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9]] 그리고 영어의 경우에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상류층에서는 자주 쓰이는 경향이 있고 억양도 인도와 유사하다.

신디어, 카슈미르어, 펀자브어, 발티어, 발루치어, 브라후이어 등의 다른 언어들도 쓰이고 있다. 아프간과 접한 지역에서는 파슈토어가 쓰이고 있다.

파키스탄은 중국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중국어는 주요하게 중시되고 있고 많이 가르치고 있다. 종교적인 면에서는 아랍어를 가르치는 경우가 흔하며 거기에다 역사적으로는 이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편이다.[* 파키스탄내에는 파슈툰족, 발루치족 등 페르시아와 가까운 민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종교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 내에서도 하나피 법학파에 속한 수니파이며(80~95%) 시아파도 일부 존재한다(5~20%). 수피즘도 널리 퍼져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것과 별도로 남존여비적인 악습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볼 때 후진성이 매우 강하다. 이는 인도 아대륙 전체에 흔한 풍속이다.

문제는 인도스리랑카 등은 점차 나아지는 시늉이라도 내는 반면[* 인도와 스리랑카는 종교 극단주의자들이 중앙 정부의 관리가 소홀한 지방에서만 행패를 부리지 중앙 정부가 확고하게 통제하는 수도와 수도권에서는 함부로 폭력을 쓰지 못한다.], 파키스탄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굴레로 인해 시대가 가면 이를 척결하기는 커녕 갈수록 답이 없어진다는 점. 국제사회에서도 파키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브루나이, 아프가니스탄에 지지않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지경이며, 종교적으로 단단히 미친 나라라는 공통된 평가를 받고 있다. 거기에 심심치 않게 터지는 수니파 vs 시아파의 종파싸움은 덤.

이는 체제적으로 아직 비효율적인데에 기인하는 점도 있다. 중앙집권이나 지방자치제도 모두 미약하고 토지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현대에 이르렀기 때문에 지방 지주들의 힘이 아직까지도 강한 편이다. 체계 또한 비효율적인데다가 부패 문제도 있어서 간단한 재판 조차 몇 년씩 걸리는 경우가 파다하다. 때문에 주민들은 멀리 있는 보다는 가까이 있는 샤리아 율법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일이 훨씬 편리하기 때문에 이를 뿌리뽑기가 힘들다. 파키스탄 내에서도 이슬람 광신의 문제가 심각한 곳이 대개 시골지역이나 북부지역이라는것을 생각하면 그럴 듯하다.

파일:external/pbs.twimg.com/CUDdqH_UkAApemA.png 파키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이 얼마나 극심한지 알 수 있는 2015년 말 조사. "다에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 대해 '모르겠다'가 62%를 차지한다(!) 최소한의 상식이 있는 무슬림이라면 당연히 다에시를 반대해야 마땅하다는 점을 볼 때[* 이놈들이 얼마나 미친놈들이냐면 그 알카에다가 비판할 정도다. 절대 잘못쓴거 아니다. 9.11테러를 일으킨 그 알카에다 맞다.] 파키스탄 무슬림들의 대중적 생각이 어떤 지경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여담이지만, 레바논하고 요르단은 총합이 101%다.[* 영어로 적혀있듯이, 반올림 때문에 이런 오차가 발생한 것이다.]--

파키스탄의 사법부는 종교적으로 편향적이고 불공정한 판결을 내리기로 악명높다. 무엇보다 파키스탄은 신성모독법을 여전히 유지하며 이슬람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 자체를 금지하고 처벌하고 있다.[* 사실 이슬람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문제는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이슬권람 국가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다. 세속적인 이슬람 국가 요르단과 쿠웨이트, 이집트조차 이슬람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며 처벌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1년에는 '동생이 지은 죄를 대신 갚는다'는 명목으로 14명에게 강간을 당한 여성이 법원에 고소했지만 끝내 무죄 판결이 나는 끔찍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10]] 참고로 이 무크타르 마이란 여성이 쓴 <무크타르 마이의 고백>이란 책은 한국에도 번역되어 나왔었다. 이 지방 관습에 따르면 성폭행 피해자는 자살하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하여, 이 여성의 행동은 굉장히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끝내 범인들이 처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여성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SNS에 신성모독을 했다는 이유로 한 남성에게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다.[[11]]

그러나 2014년에 사소한 이유로 신성모독죄가 선고된 적이 있었는데 파키스탄의 여배우 비나 말릭이 모의 결혼식에 무함마드의 부인인 아이샤 빈트 아부 바크르의 결혼식 음악이 사용되었다는 이유였다. 그 이후로 그녀는 두바이로 도망쳐 지금까지도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주한 파키스탄인들 일부는 [탈레반과 긴밀히 협력하며 마약 밀매]로 돈을 벌고, [군수부품을 유출시키려고 시도하는 등] 조직범죄와 테러로 발전하는 양상을 띠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서는 파키스탄계 갱단에 의해 영국 소도시 로더럼에서 16년간 집계된 것만 최소 1,400명의 15세 미만 백인 소녀들이 납치, 인신매매, 강간, 윤간 당하여 임신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는데, 이토록 대응이 제대로 되지 못했던 이유는 현지 경찰이 인종차별로 마녀사냥 당하는데 대한 부담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있다. 그러다가 로더럼 집단 성폭행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 6명은 파키스탄으로 도주했다가 전부 체포되었다. 이후 체포된 범인들은 영국으로 송환되어 영국 법원에서 징역 10년 ~ 20년을 선고받았다.[[12]]

그런가 하면, 펀잡 주에서는 아리파 비비라는 젊은 여성이 돌에 맞아 죽는 투석형을 당했다. 이유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더 기가 막힌 것은, 샤리아 법원 명령에 따라 그녀의 가족들이 사형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는 중세나 고대 사회가 아니라 2013년에 벌어진 일이다. 게다가 2016년 5월 28일에 파키스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슬람이념평의회에서는 아내를 가볍게 때리는 것을 허용하는 제안서를 제출되고 입법화되고 추진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13]][[14]] 2016년에 파키스탄에서는 가족이 반대했다는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여성이 화형당하는 사건이 발생되었다.[[15]] 그리고 2016년에는 212명이 명예살인을 당했다.[[16]] 명예살인으로 심지어 파키스탄의 SNS 스타로 불렸던 여성이 살해당하자 파키스탄 정부도 더는 묵과할수 없어 명예살인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정책을 추진중이다.[[17]][[18]] 그리고 2016년 10월 6일에 파키스탄 의회는 명예살인 처벌강화법안을 통과시켰다.[[19]] 그러나 명예살인은 여전히 자행되고 있어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20]]

사실 같은 이슬람권의 진보적 무슬림들에게 파키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는 매우 좋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정작 웃긴 건 하나피 학파는 이슬람 수니파 가운데서 가장 관대하고 개방적인 종파로, 종파로만 본다면 세속성이 강해야 되지만, 정작 샤파이 파를 따르고 있는 국가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발리 학파를 따르고 있는 국가들보다도 여성차별적인 성향이 강하다. 큰 형님 국가어떤 미친놈들 집단은 빼고(...) 사실 파키스탄이나 옆나라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종파가 관대하고 개방적이란 게 현지의 악습에 관대(...)하다는 의미도 될 수 있긴 하다. 율법이 개방적이라는 것은 문헌을 제외한 공동체의 합의(이즈마)를 중요시해준다는 의미인데 이런 동네의 '이즈마' 가 어떤 내용이겠는가. 오히려 동남아 쪽에 퍼져 있다는 지정학적 특성, 이즈마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에 선을 그어 둔 샤피이 학파 쪽이 현실적으로는 가장 온건하다.] 어느 한국인 여행자가 터키 이스탄불 대학에서 이슬람과 여성 폭력을 이야기하다가 "터키라면 보수적인 동쪽에 그런 경향이 있다"는 말을 하던 도중, 터키 대학생들이 "그래도 파키스탄같이 이상한 나라보다는, 차라리 동쪽의 보수적이고 꽉 막힌 지역이 낫죠. 파키스탄은 정말 이상하다니까요. 쿠란도 멋대로 왜곡한 것들도 그 쪽에서 나온 걸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그것들 때문에 이슬람 나라들이 얼마나 비난받고 왜곡당합니까?" 이런 말을 했을 정도다.

터키는 이슬람권에서 가장 개방적이라 그렇다고 여길지 모르나, 와하브파 형님국가로 여성 차별이 이슬람권에서 제일이고, 이슬람 극단주의의 총본산 취급받는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심심하면 파키스탄을 "이슬람의 기형아"라고 대놓고 언론에서 보도하고 파키스탄에서 벌어지는 여성 강간 및 무죄선고에 대하여 깔 정도이며[* 하지만 사우디도 이런 범죄가 흔하게 발생한다.], 사우디인들도 파키스탄인들을 외노자로 취급[*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아랍에미리트 같은 산유국들에서 외국인 막노동자 대다수가 파키스탄인이 거의 절반이며, 나머지도 인도인, 방글라데시인이 과반수이다 보니, 아랍권에서 파키스탄인들을 우습게 보는 시각이 많다.]하다 보니, 종교적으로 얘들은 미쳤고 별별 범죄를 저질러 이슬람 개망신시킨다고 신나게 깐다.~~하지만 사우디도 이슬람 극단주의가 심각해서 그런말을 할 처지가 못된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거주하는 교포가 사우디인 친구들이랑 식사하면서 나누던 이야기로도 자주 언급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이슬람권에서 일어나는 엽기적이고 미개에 가까운 해외토픽의 거의 절반 정도가 파키스탄에서 나온다. 근데 이런 나라임에도 대도시 지역에서 남자를 상대로 영업하는 남창은 많은 편이다. 근데 그렇다고 파키스탄이 동성애에 관대한 건 아니라서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이다 못해 꼴통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고, 원칙적으로 동성애는 불법 행위로 지정되어 있다. 헌데 남창을 상대로 성욕을 푸는 걸 당사자들이 "동성애"라고 여기지 않는 데다가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이다 보니 경찰에게 일정 액수의 돈만 상납한다면 멀쩡하게 영업할 수 있다고...(이는 이웃 아프가니스탄도 마찬가지)[* 다만 동성을 취하는 남성의 상당수는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점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진짜 동성애자 중에 이런 식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긴 하지만. 보수적 이슬람 국가 출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프간, 파키스탄과 같은 보수적 이슬람 국가일수록 오히려 개방적 이슬람 국가들보다 남창이 많으며, 그 이유는 너무 어린 시절부터 이성과 완전히 격리되기 때문에 동성끼리 있어야만 마음의 평온을 느끼는 남성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Google 검색에서 '동성애'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검색하는 나라다. 이 나라에서 동성애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진짜 동성애자 간의 관계이든, 그저 성욕 해소의 대상으로 남성을 찾는 경우든 파키스탄에서는 대부분의 동성 간 관계가 나이 많은 남자가 어린 남자를 취하는 형태의 이른바 남색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파키스탄의 LGBT 운동가들도 이 점에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리고 여성 총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파키스탄은 성차별이 심각하며, 여성 인권은 그야말로 시궁창 자체다. 물론 인디라 간디가 집권했었던 인도에서도 여전히 다우리 같은 여성차별적인 풍속이 잘 남아 있다. 그러나 인도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사회 주류계층이 아니며, 서구식 세속 자유민주주의를 70년이나 시행하고 있고 파키스탄보다는 전반적인 인권의식이나 자유보장에 있어서 엄청나게 낫다.

파키스탄의 GII(Gender Inequality Index)는 2014년 기준으로 121위다.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온다면 한국이 23위이고 일본이 26위 정도이다. 인도 130위. 그러나 이 수치는 파키스탄이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높고[* 거의 20%이지만 실상은 가문, 남편의 후광으로 정계 입문이 이뤄지는 경우가 잦으며 이게 한국보다 더 높다.] 조혼이 적어서 그렇지, 체감 차별도는 조금 다르다. 가정 폭력의 경우 인도는 국가 가족 건강 조사기구(National Family and Health Survey)에 따르면 15-49세 여성의 남성 가족 구성원에 의한 폭력 경험률은 33.5%이며 파키스탄은 Human Rights Watch 조사 결과 최대 90%까지도 집계 가능하다. 인도 내 가정폭력도 파키스탄 인근 지역인 무슬림 가정의 비율이 가장 높다.[* 불교, 자이나교, 기독교 같은 종교의 발생률과는 비교불가고, 힌두교보다도 훨씬 높다. 물론 그렇다고 힌두교의 가정폭력도 나은 편이 아니며 심각하다.] 인도나 파키스탄이나 여전히 여성인권 면에서 시궁창이지만, 파키스탄은 남아시아 국가의 고질적 관습에 이슬람 극단주의까지 더해진 상황.

사실 여성 총리가 나오고 민주화 시기에도 사민주의 성향의 인민당이 집권할정도로 세속주의적인 정당이 나름대로 세는 있고,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브루나이처럼 아예 완전히 정치적으로 꽉 막힌 나라는 아니다. 여성운동이나 LGBT 관련 운동이 미약하게나마 펼쳐지고 있기는 하며, 남부쪽이나 대도시 지역[* 2013년 총선에서도 남부 신드 지방과 파키스탄 제1의 도시인 카라치는 아예 세속주의 정파가 승리했다.[[21]]]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북부지역이나 시골은 각 부족별로 자치권을 가지고 있어서 통제하기가 까다로운데다가 문맹률이 상당한 덕택에 탈레반이 설치고 있는 실정. 파키스탄 내에서도 탈레반에 대한 여론이 영 좋지는 않기는 하지만 정작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노벨상 수상을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때문이나 서방의 음모로 받은거 아니냐는 여론때문에 은근히 푸대접 하거나 평가절하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

사실 파키스탄이 이렇게 종교적으로 미친 나라가 된 데는 독재정권의 책임이 매우 컸다. 특히 지아-올하크 정권이 크나큰 역할을 했다. 본인 스스로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 엄연히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한 세속주의 부토 정권을 뒤엎고 난 후 자신의 정권에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으니까 집권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세력을 입막음하기 위해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짓을 하는 바람에 이런 꼴이 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과거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에서 민주화 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고문하고 죽였던 것에서 "빨갱이"라는 단어만 "세속주의자"로 바꾼 거라고 보면 된다(...)

파키스탄 독재정권들은 와하비즘 성향을 지닌 극우 이슬람 신학자들과 극단주의 이슬람 율법학자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이들 세력들이 마드라사(미션스쿨)를 대량으로 만들면서 세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게 되었다. 이는 파키스탄의 인구 증가율 문제, 교육 문제와 겹쳐졌다. 파키스탄의 출산율은 2010년대 들어서야 3명대 초반으로 진입했지만 그 동안의 인구 증가세가 엄청났다. 하지만 높은 인구 증가율에도 불구하고 학교 수 부족 문제가 심각하고 특히 아프간과 인접한 지역은 탈레반의 준동으로 인해 학교가 파괴되는 경우가 많아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그러한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은 결국 마드라사로 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마드리사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옹호하면서 여성운동과 비이슬람, 무신론, 세속주의에 대한 적대와 공격을 조장시키는 교육을 시키다보니 극단주의가 심각한 상황이다. 어쨌거나 대다수의 마드라사가 큰 돈을 들일 일 없이도 다닐 수 있는데다가, 심지어 숙식도 무료인 마드라사도 많다.

파키스탄 자체가 빈부격차가 심각해 빈곤층이 굉장히 많은 나라다보니, 공부를 하려면 마드라사라도 다닐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기 때문에, 이들 빈민층들에게 매력적인 학교일 수밖에 없던 것.]과 정부의 통제 미흡, 정치혼란에 따른 극단주의 세력 청산 실패로 인해 이때의 잔재청산에 실패해버렸고, 결과적으로 20세기 후반부를 거치면서 나라 전체가 이슬람 극단주의 이념에 잠식당해 국민적 보편정서가 되어버릴 정도가 되었다. 거기에다가 소련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사우디의 와히비즘 확산지원에 이어서 이들 이슬람 극우파들이 더더욱 세를 얻는 바람에, 그 잔재가 지금까지도 남아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사실 파키스탄의 국부인 모하마드 진나(1876~1948)는 이슬람 국가로서의 파키스탄을 만든 인물이지만 동시에 상당히 세속주의적인 성향[* 영어나 외국어에도 능통하여 파키스탄 독립 당시 여러 종교를 배려하는 면도 많았다.]이라 그 영향이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기 때문에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파키스탄은 어느 정도 대대로 살아오던 힌두교기독교 등 소수 종교인들을 배려하던 나라였다.[* 아직도 대도시 지역에서는 그러한 영향이 남아있기 때문에, 잘 사는 집에서는 딸도 석사에 박사까지 공부시키고 정치 입문도 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또 뉴스에 나오는 여성 앵커들이 히잡도 안 쓰고 화장도 진하게 하고 나온다. 그렇게 꼴통이고 아프가니스탄을 이웃에 둔 것 치고는 복장도 화려하고, 히잡도 쓴둥 만둥 하거나 스카프 걸치듯 쓴 여자들도 많다.] 그러나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욕을 먹을 정도의 꼴통국가가 되었고, 그 탓에 탈레반의 종교적, 이념적 토양이 된 나라로도 유명하다.

그나마 2016년 들어 샤리프 총리가 정권을 잡으면서 서방과 중국 자본 유치를 통한 경제발전을 위해 [개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를 척결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샤리프 총리는 파키스탄에서 그동안 해왔던 유튜브 접근 차단을 해제하여 유튜브 시청을 허용했고 여성 학대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통과시켰다. ~~하지만 1년 뒤에 실각했다~~ 물론 이슬람 집단의 반발이 워낙 거세어 개혁이 쉽지가 않은터라 전망은 불투명하다.

파키스탄에서는 친절한 현지인 가정에 초대받았다고 해도 여자들은 소개되지도 않고 많은 경우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으며, 여성 가족을 소개받았다고 하더라도 여성과 악수를 청했다는 이유만으로 손님이 집에서 내쳐질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이슬람 근본주의가 판을 치는 북부지역에서는 여자 식구의 안부를 묻는 것 만으로도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인 해당 집의 남성 가장과 대판 싸움이 일어난다고 한다(!) 또 남성이라도 반바지를 입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호텔 출입이 거절당하기가 일쑤라고.[* 한-파 친선협회 2017년 출판, 《파키스탄 가는 길》12p.]

이 외에도 힌두교(1.59%), 기독교(1.85%) 같은 소수 종파 또한 존재한다. 힌두교도는 인도 독립 이후로 거의 대부분이 인도로 옮겨가고도 남은 사람들로, 신드 지방에 많으며, 기독교도는 영국 통치기에 개종한 사람들의 후손들로, 펀자브 지방에 많다. 인구의 1~2%대밖에 되지 않아서 비율로만 따지자면 극소수가 맞지만, 파키스탄의 인구가 2억이 넘는지라 이들도 각각 300-400만 정도에 달한다.

2017년 3월 20일 파키스탄 정부는 70년만에 자국의 힌두교도의 혼인신고를 법으로 허용했다.[[22]]

기독교와는 전혀 거리가 먼 동네이지만 의외로 12월 25일이 국가 공휴일이다. 파키스탄의 국부모하마드 진나의 탄생일이 이 날이기 때문.

이곳은 발렌타인데이가 이슬람의 가르침에 반대된다고 법원에서 금지명령을 내렸다.[[23]] 그리고 파키스탄전역에서는 발렌타인데이 금지명령이 내려졌다.[[24]] ~~정말 너무 나쁘다.~~

그리고 2017년에 있었던 인구조사에서 2억명을 돌파하던 인구중에 트렌스젠더도 1만여명이 포함되었다.[[25]]

2017년 11월 18일에 파키스탄 정부는 자국내 소수종파들을 배려하기 위해 선거법을 바꿀려고 했지만 강경 이슬람주의자들이 반발하면서 무산되었다.[[26]] 게다가 이슬람주의자들은 법무장관의 사임을 요구하며 계속 시위를 벌였고 정부에선 경찰로 감당이 되지않아 군대로 진압하려 했지만 군부가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법무장관은 사임했다.[[27]] ~~정말 너무 나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군부(!)가 극단주의자들을 지원하며 시위에 관련있음을 주장하는 영상이 유포돼 논란을 빚고 있다.[[28]]

문화

인도발리우드가 있는것 처럼 파키스탄 영화는 롤리우드(Lollywood)라고 부른다.[* 파키스탄 영화 제작의 중심 도시인 라호르할리우드의 합성어.] 한때 인도 영화에 버금갈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이슬람 세력의 득세와 독재 강화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2000년대 이후 파키스탄 군과 정부에서 [지원]에 나서 영화 제작이 반등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인도 영화인도 드라마 등 인도에서 제작한 문화 콘텐츠들이 파키스탄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 여기에다 2010년대 이후에는 중동에서 유행하는 터키 드라마까지 들어와 파키스탄 방송 시장에서 인기를 누리면서 파키스탄의 자존심에 상처가 난 상황이다.

적국인 인도 문화 콘텐츠가 크게 유행하자 파키스탄 정부가 인도 영화인도 드라마를 정부 차원에서 규제하고 있다.

영국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이 곳도 인도방글라데시처럼 밀크티나 마살라 짜이를 많이 마시는데 카슈미르 같은 곳은 특이하게 눈 짜이라고 해서 소금을 넣어 마신다고 한다.

극단주의 이슬람이 주류이고 국가의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추정되는 딸을 아버지나 형제가 죽이는 명예살인이라던가, 강간범의 누나나 여동생을 마을 장로들이 처벌한다는 명목으로 집단성폭행을 가하는 등, 야만적인 풍습이 많이 남아 있다.

국민의 97%가 이슬람 신자이고 여성에게 매우 보수적인 파키스탄에서도 미투 운동이 퍼지고 있다.[[29]]

기타

이슬람이 강하게 지배하는 탓에 자체가 불법이다. 단, 무슬림이 술을 마시는 것은 불법이지만 파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술은 지정된 곳에서만 팔 수 있으며 비무슬림에게만 술을 판매한다. Muree 지방에는 옛 대영제국 시절에서부터 내려오는 유명한 양조장도 있다. 물론 여기서도 안 걸리면 장땡이라고 밀주를 많이 마신다. 위에 나온대로 훈자 지역에서 살구를 발효시켜 만든 술을 외국관광객에게 대놓고 파는 경우도 많이 봤다고 하니까.[* 훈자 워터라고 부른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 사실 이건 이슬람에서 정의하는 술의 기준이 다 다르기 때문도 한몫 한다. 포도주나 맥주 같은것만 먹지 않게하고 대추야자술 같은 과실주는 먹어도 된다고 보는 학파도 있고 아니면 술은 마시되 취하지만 않게 마시면 된다 보는 부류도 있으니.] 사실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밀주를 만들어 몰래 마시고 호메이니 시절 이란에서도 테헤란 한복판에서 몰래 술 만들어 마시던 사람도 의외로 많았고 지금도 몰래 마시는 게 많다.

아무리 술 자체가 불법이라지만 선거날에는 개표상황을 보면서 술판을 벌린다.의외로 선거날에 술 마시는 건 안 잡는 모양이다. 선거날에 마시는 술은 “민주주의의 성수”라서 술이 아니란다.

술을 금지하고 있지만, 지도에 나온 카라치[* 파키스탄에서 가장 세속주의가 강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 성향도 타 지역과는 매우 다르다.]나 한때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알아줬으나 외부인들과 현대문명이 들어오면서 나날이 장수촌이란 명성이 사라져가는 훈자 지역같은 곳은 펀자브, 파슈툰 족과 종족과 언어, 문화도 달랐기에 술을 즐겨마신다. 영국 식민지 당시에는 아예 개별적인 왕국으로 따로 존재했지만 파키스탄의 강압책으로 국왕이 퇴위당하고 이슬람을 강요한다고 불만도 크다고 한다. 게다가 카라치인들 같은 경우엔 유럽계에 가까운 외모를 하고 있으며 이들이 과거 고대 그리스군의 후예들이라는 전설이 내려지고 있다. 이들은 외부인에 대해서도 불만이 큰데 선교사들까지 이들의 개종을 권유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너지 문제가 매우 심각하여 파키스탄의 많은 도시와 마을들이 전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카라치라호르 같은 대도시의 경우는 최근 에너지 확보 노력의 결과로 정전은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타 지역의 경우는 최소한 하루 6시간은 정전은 예사이며, 특히 지역별로 정전 시간이 대부분 정해져 있으므로 이 시간 대를 위하여 집집 마다 UPS나 소형 발전기는 구비해 놓고 있는 형편이다. 국가 송전 시설이 매우 낙후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송전망을 만들어놔도 중간에 불법으로 전기를 훔쳐가는 일도 매우 흔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도 언제 정전이 될지도 모르는 송전망을 믿기 보다는 자체적으로 발전소를 세워서 전력을 공급하기 때문에 사설 발전소가 매우 흔하다.

물부족이 심각한데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물부족이 심각한 10대 국가중 하나로 지정된 상황이다. 파키스탄의 강수량은 연간 500~1,000㎜이지만, 이것은 히말라야 남부산맥과 그 주변 지역이고 실제론 90% 이상의 지역이 연간 510㎜ 이하에 불과할 정도로 적다. 게다가 강수량의 75% 가량이 7월에만 집중돼어 있다보니 물이 매우 부족하다. 또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가뭄과 기근은 가뜩이나 좋지않은 파키스탄의 물사정을 악화시킨다. 인구 증가 역시 수자원에 대한 수요를 폭증시켜 수자원 고갈이 심각하게 하는 원인이다.[* 사실 이 문제는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인도와 방글라데시도 겪고 있다. 문제는 파키스탄은 이 국가들보다 수자원 사정이 더욱 좋지않다. 파키스탄이 인도보다 열세임에도 카슈미르에 대한 집착이 큰 것도 이 지역의 풍부한 수자원을 차지하려는것 때문이다.] 그래서 파키스탄에서는 지하수를 퍼내어서 사용하지만 문제는 과도하게 퍼내다보니 지하수의 수위가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파키스탄은 지하수의 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이다.[[30]] 최근엔 기후변화로 인해 히말라야 빙하가 줄어들면서 파키스탄의 히말라야 남부산맥들조차 강수량이 줄고 있어 수자원 사정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에 주요 수자원인 인더스 강, 젤룸 강, 체나브 강이 있는 카슈미르 지역의 수자원을 둘러싸고 인도와의 갈등이 매우 심하다. 무엇보다 인도가 카슈미르의 수자원을 가장 많이 차지하며 강들에 대한 댐 건설을 하고 있어 파키스탄은 반발하고 있다.[* 1960년에 세계은행의 중재로 인더스 조약을 맺어 카슈미르의 수자원을 공평하게 분배하기로 합의했지만 실제론 이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파키스탄은 치안이 불안한 곳이다보니 경찰들의 경우에도 뇌물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10월 22일에 경찰의 뇌물요구에 반발한 인력거기사가 항의하는 뜻으로 분신시도를 하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되었다.[[31]]

행정구역

[include(틀:파키스탄의 행정구역)]

외교 관계

미국과의 관계

미국과 가까이 지낸다고 하지만 미국에게 통수를 여럿 까서 미국에서도 단단히 찍힌 불량국가이기도 하다.

본래 인도와의 핵개발 경쟁에서 "온 국민이 풀을 뜯어먹는 한이 있어도 핵무기를 가지겠다!"며 핵개발에 매달리다가 이에 반발한 인도와 미국,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먹고 거지꼴이 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정치권이 썩긴 했어도 통제가 무지막지한 곳은 아니었으니. 무샤라프 시절에도 통제가 세부적인 곳까지 미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지역들을 통제하지 못해 나라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상황이 9.11 테러가 터지면서 완전히 바뀌었는데, 복수심에 불타 눈에 보이는 게 없던 지구최강 미국"영공 열어줄래? 아니면 석기시대로 돌아갈래?"라며 파키스탄에 물으니 영공을 열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이것이 관계 정상화의 기로가 된 이유는 핵 개발로 말미암은 경제제재도 풀어주고, 추가적 경제원조도 약속한 일종의 거래였기 때문. 당연히 파키스탄은 "아이고 우린 이제 살았어" 하고 제안을 덥석 물었다. 그야말로 9.11 테러가 파키스탄을 살린 셈. 계약해놓고 인도되지 않던 F-16 등도 근 20년만에 도입이 재개되고, 여러 경제제재도 실제로 해제되면서 파키스탄은 숨통이 트이게 된다.

인근 국가인 인도 및 중국이 인근에서의 군사작전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을 가능성이 존재했으나 사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껄끄러운 관계는 둘째치더라도 어쨌든 상황이 상황이었으므로 대놓고 반대할 수 없었던 점, 그리고 이러한 군사작전이 급성장하는 중국을 견제할 수 있기에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었던 점 때문에 작전은 속행되었다. 물론 애시당초 인근 국가들이 모두 반중이었던 점도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네오콘은 파키스탄을 재수없이 여기는 이들도 적지않다. 미국에게 붙은 척하면서도 정작 자국 내와 외국의 이슬람 강경파들에 대하여 우호적이라는 지적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눈치 때문인지 좀 과격파를 소탕하는 분위기를 내긴 하지만, 인구의 98%가 이슬람 나라답게 자국 내 기독교도들 및 소수 종교인들은 엄청난 차별과 폭력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어 매년 파키스탄 내의 많은 소수종교 신도들이 이를 못견디고 해외로 이주하거나 난민으로 탈출하는 곳이다.

[정보부(ISI)와 빈 라덴의 관계]가 드러났다고 한다. 파키스탄 정부와 군부는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있지만 가뜩이나 초강대국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 많으니 앞날이 영 어둡다. 막상 빈 라덴의 마지막 은신처도 파키스탄이었는데 파키스탄측은 몰랐다고 발뺌하지만 아무리 나라가 그지꼴이어도 파키스탄 정보국이 그정도 정보조차 없었다는건 말이 안된다.

2011년 5월 2일 미국9.11 테러 이후 끈질기게 쫓던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약 50km 떨어진 아보타바드 근처 안전가옥에서 숨어 지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파키스탄은 서방 세계로부터 겉으로는 테러와의 전쟁의 일원인 척 하면서 뒤로는 테러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이 안전가옥은 군 기지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었고 만일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도 철저히 되어있었던 점과 북파키스탄 일대가 탈레반의 세력권에 들어와 있다는 정황증거가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작전 개시 직전에야 파키스탄 정부에게 공격 사실을 알렸을 정도로 불신을 사고 있다. 파키스탄은 파키스탄대로 자국영토내에서 외국군이 설쳐댔으니 격노할대로 격노했다. 때문에 파키스탄은 빈 라덴 사살 작전 종료 후 미국이 작전 중 헬기 고장으로 어쩔 수 없이 남겨야 했던 헬기 잔해 같은 현장 증거들과 두고 간 빈 라덴 가족들과 지지자들을 확보해 이들을 이용한 언론 플레이를 벌이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거기다가 스텔스 헬기의 잔해를 미국의 반환 요청과 비밀 엄수 요청에도 불구하고 중국에게 헬기 사진을 찍게 해주는 등 여러가지로 미국이 싫어할만한 일을 하고 있다.

게다가 NATO군이 작전중에 오폭으로 파키스탄 국민들을 20명 넘게 죽이는 바람에 반미, 반서방감정이 악화될대로 악화됐다. 덕분에 중국이 반사이익을 얻는 중.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에 거액을 들이대며 해군기지를 만들려는 중국이 인도 견제를 위하여 추가로 파키스탄 내에 중국군 기지를 만들 예정이라 인도와 미국이 같이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게다가 파키스탄쪽이 먼저 중국에게 '우리 쪽에 해군기지 하나 건설해서 쓰라'라고 제안했다! 덕분에 미국 네오콘이나 보수파에서도 차라리 인도를 더 가까이 끌어들이자고 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016년 11월 30일에 도날드 트럼프는 샤리프 총리와 전화통화한 내용을 공개하면서 샤리프는 대단한 남자라는 발언을 했다.[[32]] 그리고 미국-인도와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33]] 하지만 트럼프가 새로운 아프간 정책을 발표하고 파키스탄을 비난하자 파키스탄측은 반발했다.[[34]]

2017년 8월 31일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에 그동안 해왔던 군사원조를 보류했다.[[35]] 그리고 파키스탄을 동맹국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36]] 이에 파키스탄은 동맹국을 취소할 경우 미국 전투기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37]]

2017년 10월 24일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파키스탄을 방문하여 회담을 가지면서 파키스탄이 테러소탕에 적극적으로 나서줄것을 촉구했다.[[38]]

2017년 11월 파키스탄이 인도 뭄바이 테러를 주도한 이슬람 무장단체 지도자를 석방하자 미국은 이에 반발하며 양국관계에 악영향을 끼칠수 있다며 경고했다.[[39]]

2017년 12월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파키스탄을 방문하여 파키스탄 수뇌부와 회담을 가지면서 파키스탄 정부가 테러근절에 대한 노력을 배가해달라고 했다.[[40]]

2018년 1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은 파키스탄이 미국을 기만하고 있다며 비판했다.[[41]] 거기에다 트럼프가 원조중단을 한다는 압박을 가하자 파키스탄은 반발했다.[[42]] 그리고 트럼프의 파키스탄 비판트윗으로 파키스탄에서는 반미감정이 커지고 있다.[[43]] 결국 미국측은 파키스탄에 안보지원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44]] 그리고 파키스탄이 원조를 받을려면 탈레반 및 연계조직을 파키스탄에서 추방시켜야한다고 밝혔다.[[45]] 하지만 파키스탄측은 미국의 원조중단으로 인해 미국측과는 대테러정보공유를 중단하는 등 군사원조중단에 보복했다.[[46]] 그러자 미국 상무부에서 2018년 3월 26일에 파키스탄의 7개 기업을 제재했다.[[47]]

2018년 8월 23일에 마이클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파키스탄의 임란 칸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파키스탄에서 활동중인 테러리스트에 대한 단호한 결단을 촉구했다.[[48]] 하지만 결국 미국은 파키스탄에 300억달러의 군사원조를 중단시켰다.[[49]]

중국과의 관계

인도 견제의 일환으로 중국굉장히 친밀하다. 실제로 많은 중국 사람들이 대도시 (라호르, 카라치, 이슬라마바드 등) 에 거주하고 있다. 파키스탄이 독립 이후 인도에 대한 지속적인 견제 때문에 인도의 가상적국이었던 중국과 손을 잡았고, 이후로 여러 면에서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쪽에서는 국민들이나 정부나 아예 형제국 정도로 좋아하고 살갑게 대해주고 있다. 공산당 정부가 국민당에게 밀렸을 때도 지원해주고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을 정식정부로 처음 인정해준 곳이 바로 이 파키스탄이기 때문이다.

지리학 적으로는 어쩌면 피치 못할 선택이기도 한데 동쪽은 절천지 원수인 인도가 있고, 서쪽에 있는 건 경제 제제를 받고 있는 이란이다. 북쪽을 보아하니 아프가니스탄. 반대로 중국 입장에서도 북동쪽은 고삐 풀린 미친 개와 그에 대립하는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한국, 동쪽은 센카쿠 열도, 남동쪽은 남중국해 분쟁이 한창이고 남쪽은 미래의 라이벌이 될 지도 모르는 국가가 있다. 미얀마는 군부 정권 종식 이후로 중국과는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인도를 견제하고 인도양 부근의 지배력을 높히기 위해서는 파키스탄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반대로 상기 테러와의 전쟁 당시 미국의 경우와 그레이트 게임 때에도 드러났듯이 지리적으로 해로를 통해서 중앙아시아로 진입할 수 있는 가장 편한 통로이자 아랍권으로도 교통이 매우 편리한 교통의 요지인지라 향후 이란의 경제제제 및 아프가니스탄의 정세가 안정될 경우 큰 수혜가 예상되는 곳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때가 언제 오냐는 것이지만.

더불어 중국제 무기 최대 단골 수입국이 파키스탄이다. 무기 공동개발에도 열심이라 파키스탄의 주력전차 알 칼리드는 중국의 90식 전차를 바탕으로 개발된 전차이다. 인도가 친러시아 정책을 취하지만, 그렇다고 반미정책도 아닌지라 미국으로서도 핵강대국인 인도를 견제할 게 없기에[* 빌 클린턴이 인도에 파키스탄과 무력 중재를 하러갔다가 당시 인도 총리 바지파이에게 박대받고 나온 일까지 있다보니.], 미국이 파키스탄이랑 아주 친한 건 아니다. 친러시아 국가인 인도와는 반대로 중국과 혈맹 사이이다보니 중국과의 군사적 밀착도 급속화되고 있다.[[50]] 게다가 중국과는 아프간, 타지키스탄과 함께 반테러협력체제까지 맺었다.[[51]] 그리고 과다르항에 무역항을 확보함으로써 인도양에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52]] 결국 친중 국가로 노선을 변경하여 중국제 무기를 계속 들여오고 있다.

심지어 항간에 따르면 중국에서 제조된 빈라덴 미화 불근신 LCD 게임(이라지만 실체는 상관이 전혀 없는 짝퉁 잠수함 게임)이 파키스탄 완구시장에서 절찬리에 진열되기도 하였다(...) [[53]]

퓨치서치센터의 조사에서 중국을 좋아한다는 응답이 제일 높은 나라가 [[54]]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파키스탄이 무조건적인 친중은 아닌지 카슈미르 일부를 장악하고 있는 중국에 대하여 국경분쟁을 벌인 적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의 일대일로정책이 중국에게만 유리하고 게다가 중국의 관세와 억압적인 보안조치에 파키스탄 기업인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55]] 그리고 파키스탄의 댐건설을 둘러싸고 중국측이 혹독한 조건을 내걸자 댐건설계획이 무산되었다.[[56]] 그러다가 중국과 파키스탄은 경제회랑건설에 합의함으로써 갈등이 봉합되었다.[[57]] 그리고 파키스탄인들중에는 중국의 위구르족들과 결혼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중국측이 파키스탄인과 결혼한 위구르족들을 생이별시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거기에다 파키스탄과 접경한 지역에 장벽을 설치하는 계획을 세우는 등 파키스탄과 신장지역을 분리시키는 정책도 가속화되고 있다.[[58]] 거기에다 중국의 일대일로정책으로 파키스탄이 빚더미에 오르면서 IMF의 구제금융신청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59]] 2018년 8월 13일에 파키스탄에서 총기를 소지한 중국인 8명이 체포되었다.[[60]]

파키스탄이 미국과 외교갈등을 빚고 있자 중국은 경제협력, 안보협력으로 파키스탄과 가까워지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61]] 동시에 파키스탄측도 미국과 외교갈등, 원조중단사태를 맞이하면서 친중정책을 강화시키고 있고,[[62]] 중국과 전방위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63]] 그리고 중국측은 지부티에 이어서 파키스탄에도 중국의 두번째 해외군사기지건설(!)을 추진중이다.[[64]] 거기에다 중국은 파키스탄에 군사용 드론을 비밀리에 판매했고,[[65]] 파키스탄에 미사일 핵심 기술을 판매했다.[[66]] 거기에다 중국측은 파키스탄에 중국인 전용 도시(!)까지 건설했다.[[67]]

파키스탄측은 중국과의 일대일로에 대해서는 경제협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68]] 그리고 중국의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전날 이슬라마바드에서 아리프 알비 파키스탄 대통령과 임란 칸 총리를 잇달아 예방했다.[[69]] 하지만 경제적으로 점점 어려워지면서 파키스탄도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했다.[[70]]

CPEC

중국이 파키스탄과 긴밀한 경제 협력을 유지한 이유는 인도 견제 뿐만 아니라 걸프만의 석유 자원과 수에즈 운하로 통하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말라카 해협이 봉쇄되더라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파키스탄 한 나라만 거치면 인도양과 중동으로 바로 빠져나올 수 있다. 또한 스리랑카에서 진행하고 있는 콜롬보 메가포트 사업과 연관하여 인도 견제 뿐만 아니라 차고스 제도에 있는 미군 견제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루머도 있다. 이에 대한 일환으로 2015년 중국은 파키스탄에 향후 3년간 460억불 투자하기로 한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CPEC; China Pakistan Economic Corridor) 프로젝트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2017년에는 620억불 (약 70조원)로 투자 금액을 더 늘리기도 했다.[* 참고로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조성한 실크로드 기금(Silk Road Fund)이 400억불]이다. 이를 봤을 때 파키스탄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파키스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투자 유치 금액이며, 이로 인하여 파키스탄 내의 친중 분위기는 안그래도 좋았지만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발루치스탄 지역에 있는 과다르 (Gwadar) 항구[* 참고로 과다르 항구는 세계에서 수심이 제일 깊은 항구라서 잠수함 운용에 적격이다. 이미 중국은 자국 잠수함의 일부를 파키스탄에서 건조하고 있는 중이다.]의 개발과 과다르 항구에의 접근성을 높히기 위한 고속도로, 철도, 공항 등의 건설에 투자된다. 또한 100억불 정도는 파키스탄 전역의 건설될 발전소에 투자될 예정이다.

그러나 실상 CPEC의 파키스탄 내 인프라 건설은 중국의 전략적 거점 확보의 목적이 강하다는 의혹이 짙고,[* 실제로 전술한 과다르 항구의 경우 수익성이 거의 없다시피한데 중국이 이 곳에 수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한다. 중국이 비슷하게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를 스리랑카에 지어주고, 스리랑카가 공사대금을 갚지 못하자 함반토타 항구를 99년간 운영할 권리를 가져간 것처럼 이런 투자가 경제적 목적이 이유가 아닌 전략적 거점 확보가 목적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해지는 이유.] 중국의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는 실상 빚을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채무 상환 여력도 없는 파키스탄의 재정 파탄을 불러왔고 결국 파키스탄은 5년만에 IMF 구제금융을 받을 판이 되었다.[* 파키스탄은 이미 2007년, 2012년에 5년 만기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적이 있으며 모두 만기상환하였다. 그러나 CPEC으로 인한 수입 증가 및 통화 가치 하락으로 인하여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자 IMF로 부터 단기 자금 조달을 계획하고 있다. 매 총선 직후마다 IMF 구제금융을 받았기 때문에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투자가 문제가 아니였냐는 지적도 있다.] 중국이 벌이고 있는 일대일로의 성패가 가장 많은 투자를 받는 파키스탄에게 사실상 달렸는데 파키스탄의 재정파탄으로 좌초될 위기에 처한 것.[[71]] [2]

인도와의 관계

본래 파키스탄 지역은 인도 문화권 일부로 인도 제국의 일부로 영국의 식민지배를 같이 받았었다. 하지만 영국의 식민지배가 끝났을 때 인도와 함께 독립했다. 문화적인 면과 혈통, 언어에서는 파키스탄과 인도는 관련이 있는 편[* 예컨대, 힌디어우르두어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받았고 어휘도 비슷한 어휘가 많은 편인데다가 산스크리트어에서 갈라져 나왔다. 그리고 북부 인도와 파키스탄은 혈통면에서도 가까운 편이다.]이지만, 힌두교가 주 종교인 인도와는 달리 파키스탄은 이슬람이 주 종교이다. 이 때문에 옛날부터 사이가 나빴고,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의 독립 이전부터 파키스탄은 인도로부터 분리독립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었다. 결국 유혈충돌이 발생되었고 양측의 대립 끝에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인구가 많았던 인도 북서부 지역과 동벵골 지역 두 곳이 파키스탄으로 독립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리독립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때 무굴 제국당시에 쓰여졌던 아랍어, 페르시아어 자료들이 파키스탄으로 가고 반대로 무굴 제국당시에 지어졌던 건축물들은 인도에 남게 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크나큰 손실을 얻게 되었다.[[72]]

이렇듯 파키스탄은 건국의 역사적 경위와 세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인하여 인도와의 관계가 굉장히 나쁘며 매우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인도가 파키스탄을 압박하고 파키스탄은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형국이다.] 비교적 최근인 1999년에도 파키스탄은 인도와 약소하게나마(?) 전쟁을 한차례 치르기도 했다. 카길 전쟁 참고.~~물론 모두 졌다~~ 현재도 카슈미르에서 인도와 틈만나면 무력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2008년에는 파키스탄 정부부의 훈련을 받은 파키스탄의 테러단체가 뭄바이 연쇄 테러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2017년 1월 9일에 핵무기탑재가 가능한 미사일발사에 성공하면서 인도도 잠수함 탄도미사일 발사를 예고하고 있어서 핵경쟁을 시작하고 있다.[[73]]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파키스탄은 인구수, 영토 크기,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인도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처음 독립했을 때부터 파키스탄은 독자적으로 지폐를 찍어낼 기술력조차 없어서 적대국인 인도 조폐국의 도움을 받아서 지폐를 발간해야 했을 정도였다. 인도는 지역강국에 속하고 나아가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 친선관계에 있으며, 나아가 일본, 한국, 유럽 등과 기술적인 교류를 하고 있고 파키스탄을 제외하면 스리랑카, 네팔, 방글라데시, 부탄 등 다른 나머지 남아시아 주변국가들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지만, 파키스탄은 주변국인 인도나 아프가니스탄과도 외교적으로도 견원지간이고 중국이나 몇몇 이슬람권 국가들 정도를 제외하면 핵보유국이라는 점 빼고는 정치적, 외교적으로 존재감조차도 없는 외로운 나라이다.[* 그나마 인도는 파키스탄을 제외하면 다른 이슬람권 나라들과는 사이가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다. 파키스탄 견제를 위해서는 이슬람 국가들과도 친밀하게 지내야 할 필요가 있다보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

더불어 인도는 냉전 종식 이후 중국, 러시아, 브라질과 함께 이른바 브릭스(BRICs)라고 해서 미래를 이끌어갈 신흥강국으로 평가받는 반면, 파키스탄은 다에쉬와 탈레반을 이용하여 여러 테러 단체들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탈레반은 파키스탄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무장테러 단체 중 하나인데, 이들은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의 국경지역들을 빼았았다. 특히 탈레반에게 파키스탄의 육군 사령부가 점령당하고 초계기가 파괴되는 추태를 보여주었다. 이와 더불어 파키스탄은 매우 유명한 테러조직 수장을 숨겨주었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테러조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결과적으로 테러조직들의 배신에 큰 상처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테러조직들을 도와준 사실들이 발각되어 미국과 러시아 양측의 강대국들에게 밉보인 셈이다. 게다가 군부 독재와 불안한 치안, 부정부패로 인하여 경제난이 심각해져 국내 경제수준은 나날이 저조해지고 있다.

산업이 발달했을 뿐만 아니라 13억 4천만에 달하는 엄청난 인구로 시장성에서 해외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각종 투자[* 국경분쟁으로 원수같은 중국 기업조차도 인도 시장을 군침흘릴 지경이다. 실제로 2017년 국경 분쟁 전만 해도 인도에서 중국제 스마트폰은 엄청나게 팔렸을 정도.]가 쏟아져 들어오는 인도와는 달리 파키스탄은 여러모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무기를 수입할 여건이 되지 못하기에 중국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관련 의존도가 높지만, 2009년 이후로 친러시아파가 집권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파키스탄에 대한 무기 수출에 대한 값을 마구 올렸고, 게다가 파키스탄의 경제력이 나빠지자 우크라이나의 무기업체들은 경제력이 압도적인 인도의 반발을 살까봐 파키스탄은 거래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 2010년대 들어 우크라이나 내전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된 상태이다.

지난해(2016년) 9월에 있었던 파키스탄에서 잠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장괴한에 의해 군인 18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인도는 외교적으로 파키스탄을 봉쇄하는 정책을 펼치다가 6개월만에 처음으로 파키스탄과 수자원 관련 대화에 나서기 시작했다.[[74]] 하지만 파키스탄이 발루치스탄에서 잡힌 인도 전 해군장교에게 스파이혐의로 사형을 선고했다.[[75]] 결국 인도와 파키스탄은 인도인 간첩 사형을 놓고 국제법정에서 공방을 하게 되었다.[[76]] 그리고 유엔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로 테러국이라고 각각 비난했다.[[77]]

2017년 7월 16일에 카슈미르에서 인도군의 공격으로 파키스탄군 4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되었다.[[78]] 그리고 2018년 2월 28일에 잠무카슈미르의 국경지역에서 인도군의 발포로 파키스탄군 3명이 사망했다.[[79]] 그러다가 2018년 5월 29일에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에서 포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80]]

2018년 7월 30일 모디 인도 총리는 새로 선출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며 당선을 축하해주었다.[[81]] 2018년 9월 20일에 파키스탄의 임란 칸 총리는 인도의 모디 총리에게 평화회담을 제의하면서 2년여만에 다시 대화가 재개되었다.[[82]] 하지만 카슈미르에서 테러가 발생되자 인도와 파키스탄간 외무장관 회담이 취소되었다.[[83]]

방글라데시와의 관계

독립할 당시 방글라데시는 본래 동파키스탄이라 하여 파키스탄에 포함되는 나라였으나, 인도에 가로막힌 지리적 특성상 같은 정부체제하에서 통치가 매우 어려웠다. 식민지 같은 처지와 차별 등 탓에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이 일어나(이 때 인도는 당연히(...) 방글라데시 편을 들었다)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독립하여 자주적인 국가로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당연히 사이는 매우 나쁘다. 방글라데시랑 인도 역시 갈등이 많지만, 파키스탄 때문에 서로 전략적 동반자로 여기고 있을 정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사우디아라비아와는 종교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이다. 그리고 파키스탄인들이 사우디에서 일을 하기도 하며 성지순례를 하러 가기도 한다. 게다가 사우디도 아프간과 마찬가지로 파키스탄에 종교적인 영향력이 있다. 심지어 사우디는 파키스탄에도 영향력을 끼치면서 사우디 자본 등이 파키스탄에 퍼지고 파키스탄 군부와 정보부도 사우디와 연합하면서 사우디의 와하비즘이 파키스탄에도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종교적인 것과는 별개로 사우디에서 파키스탄인들이 차별받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것은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아프간도 마찬가지이다. 값싼 노동력의 서남아시아인들이 아랍 지역의 건설 현장이나 저임금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랍인들이 서남아시아 출신들을 차별하는 경우가 매우 많고 그 무시의 강도도 장난이 아니다.] 심지어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관련된 악습에 의한 피해가 파키스탄에 널리 퍼진 것때문에 사우디측도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작 사우디도 이슬람 극단주의로 인해 비난받는 경우가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많다. 더군다나 파키스탄은 일단 모하마드 진나 시절의 세속화, 온건화의 영향이 남아 있어 탈레반이 아닌 파키스탄 정부 점령 지역이라면 여성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사우디보다 훨씬 낫다. 수십 년 전부터 운전이나 투표도 할 수 있었고 직업을 가진 여성도 상당수이며 대도시 여성들은 히잡을 안 쓰는 경우도 있다. 반면 사우디는 아예 이러한 부분들을 불법으로 명문화하거나 극히 최근까지 금지하였다. 파키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가 지역 악습과 결부되어 왜곡된 형태라면, 사우디는 율법에 있는 그대로의 극단적인 엄숙주의인 셈.] 게다가 사우디출신의 악명높은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라덴이 아프간에 잠시 거주하다가 이후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의 집에 숨어 살다가 이후 미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파키스탄이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을 재검토하면서 사우디와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84]] 그리고 임란 칸 총리는 사우디를 방문하면서 사우디의 도움을 요청했다.[[85]][[86]]

아랍에미리트와의 관계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아랍에미리트와는 종교적으로 가까운 관계이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와의 항공편이 연결되어 있고 일부 파키스탄인들이 아랍에미리트에서 거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랍 에미리트에서의 대우는 노예 수준으로 매우 좋지 못하고 파키스탄인의 이미지는 '이슬람 망신 다 시키는 미개한 나라에서 온 외노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심지어는 차별받는 경우가 많다.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

인도와 마찬가지로 파키스탄도 역사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에도 북부지역에 파슈툰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제작된 드라마, 영화, 음악 등이 아프간에서도 인기를 끌기도 한다. 하지만 파키스탄이 아프간에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고 게다가 파슈툰족의 절반 영토가 파키스탄땅이라 아프간에서 고토회복을 요구하며 갈등이 있는 경우도 있고 2016년 6월 13일에 국경분쟁이 있었다.[[87]] 사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적으로도 사이가 좋지 못해서 예전에 아프간에 속한 발루치스탄이 파키스탄쪽에 속해서 결과적으로 아프간은 내륙국이 되었고 이에 대해서 아프간은 파키스탄과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그리고 파슈툰족 거주지가 영국이 그어놓은 듀랜드 라인에 의해 양분된 점도 갈등이 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2017년 2월 16일에 수피즘 사원에서 다에쉬에 의해 일어난 테러로 인해 88명이 사망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파키스탄 탈레반과 다에쉬 등 테러조직원 100여명을 소탕했다고 밝혔고 이 과정에서 아프간 국경에서 2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자 아프간 정부가 항의한 사건이 발생되었다.[[88]] 게다가 2017년 3월 6일에 파키스탄군의 포격으로 아프간인 4명이 사망하자 양국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89]] 그러다가 2016년 3월 6일에 파키스탄 외무부는 아프간 국경통행을 다시 재개한다고 밝혔다.[[90]] 그리고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간과의 화해표시로 국경통행을 전격 재개했다.[[91]] 하지만 파키스탄이 아프간과 접한 국경지역에 철조망을 세우기로 결정하면서 아프간 정부가 반발했다.[[92]] 그리고 파키스탄과 아프간사이에는 2006년부터 [장벽]이 있어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파키스탄에는 소련-아프간 전쟁과 아프간 내전당시에 파키스탄으로 이주한 난민들도 있어서 140만명의 난민들과 100만명의 비등록난민들이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에서는 난민단속을 펼치고 있고 파키스탄측에서는 일정 기한을 주고 파키스탄을 떠날것을 통보했다.[[93]][[94]] 그러다가 2017년 7월 21일에 파키스탄 정부는 파키스탄내 100만명이상의 아프간 난민들에게 체류증을 발급하겠다고 밝혔다.[[95]]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가 아프가니스탄과의 (거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때 괜히 파키스탄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다. 물론 반협박이었지만.] 현지 기업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많이 수출을 하고 있다. 주로 시멘트가전제품 등.

2018년 4월 7일에 아프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파키스탄의 아바시 총리는 카불에서 아프간-파키스탄 평화와 연대를 위한 행동 계획을 체결하기 위한 7가지 원칙에 합의했다.[[96]] 그리고 임란 칸 총리는 파키스탄내 아프간 난민들에게 시민권을 주겠다고 밝혔다.[[97]]

탈레반

파일:attachment/PakistanMap-InternalRegions.jpg

북쪽에 아프가니스탄이 있다. 같은 이슬람 국가인데다 원리주의 성격이 강한 파키스탄 북부로 들어온 탈레반이 아예 북부 지역의 행정을 장악해버려 위기다. 더욱 황당한 것은 사령부가 분대 규모의 적에게 불과 두어 시간만에 유린당했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군의 소탕작전에는 무려 20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바로 옆이 아예 정부의 통제보다 탈레반의 통제가 더 잘 먹히는 파슈툰족 지역이니 답이 없다.

이런 판이라 세계, 특히 서구와 인도에서는 걱정이 많다. 무엇보다도 알 카에다와 친한 탈레반이 파키스탄을 장악할 경우 핵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파키스탄처럼 다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에서의 지역분쟁은 곧 민족분쟁의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세계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단일민족국가인 한국과 똑같은 기준에서 이 문제를 평가하면 파키스탄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약간 억울한 감이 있다. 오늘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은 1893년에 영국이 멋대로 설정한 듀랜드 라인(Durand Line)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인데, 골 때리는 건 이 경계선이라는 게 애초부터 아프간의 주류민족인 파슈툰(Pashtun)을 분할시켜 그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데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간의 3분의 1 가량의 영토랑 절반 이상의 파슈툰족 인구가 파키스탄에 편입되어버렸다. 즉 탈레반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북부지방의 주민들인 파슈툰인들은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파슈툰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대뜸 외세에 의해 파키스탄 사람이 되버렸으니 펀자브인들로 이루어진 파키스탄 중앙정부를 좋아할리도 없고 그들의 압제를 받아들일 리가 없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의 파슈툰족이 주류인 테러단체다.

현재 파키스탄의 탈레반은 서방과 협력하는 파키스탄 정부를 불신자로 간주하여 파키스탄탈레반운동(TTP)를 구성해 반정부 무력 투쟁에 나섰다. 이떄문에 파키스탄 정부는 2014년부터 탈레반에 대해 대대적인 소탕전에 들어갔다.

구 소련권과의 관계

러시아우크라이나와도 친했지만 친러 정권이 세워지고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 큰 인도와 원수질 이유가 없기에 구 소련권에서는 좀 거리를 두는 편이다. 하지만 인도와 함께 상하이 협력 기구에 가입했다. 아제르바이잔과는 외교관계를 맺었지만, 아르메니아와는 나고르노카라바흐분쟁때문에 외교관계가 없다.

이란과의 관계

이란과는 발루치스탄을 통해 국경을 접하고 있다. 고대부터 이란은 인도와 마찬가지로 파키스탄에도 문화적인 영향을 주었고 이란이 아랍에 의해 정복되었을 때에 아랍 세력은 파키스탄을 통해 인도에도 침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파키스탄에서 쓰이는 우르두어는 아랍어의 영향외에도 페르시아어에도 영향을 받았고 페르시아어에서 쓰이는 아랍 문자의 변종인 나스탈리크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은 이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98]]

하지만 평화가스관이라고 불리던 천연가스관을 파키스탄 국경까지 연결하던 이란측은 파키스탄이 천연가스관건설을 중단시키자 2018년 2월 4일에 파키스탄에 대해 법적절차에 착수하기 시작했다.[[99]]

한국과의 관계

남한보다 북한과 먼저 대사급 외교 관계를 체결했으며, 특히 미사일 분야에서 북한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의외로 한국과의 관계는 제법 좋다. 2016년에 들어서는 대북제재에 동참을 했고 2017년에도 대북제재에 동참을 했다.[[100]] 고려항공 취항금지조치를 내렸다.

한국은 1968년 영사관계를 시작으로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1983년 대사급으로 승격되어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주파키스탄 한국대사관이 신설되었다. 1999년에는 분쟁지역인 카라치에 영사관을 신설했으나 폐쇄 후 현재 주 카라치 분관이 운영중이다.

한국과의 관계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한국산 '솔' 담배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문제는 이게 정식 무역이 아니라 밀수+불법유통 콤보. 파키스탄 세무서가 따로 '솔 담배 유통 관련 처벌' 에 대해 언급할 정도다.. 솔담배가 국내 판매는 중단되었지만, 중동에서 인기가 있어서 수출은 하고 있다.

또한 한국으로 돈을 벌려고[* 물론 비단 한국에만 많이 오는건 아니다. 파키스탄 자체가 인구는 많은데 비해서 국가 경제력은 허약하다 보니 실업자들이 많은데다가, 취직을 해도 돈을 적게 받는 경우가 많은지라,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외국으로 막노동가는 사람들이 많다. 위에 서술하듯이 아랍의 석유 및 가스 부국들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 절반이 파키스탄인이라고 할 정도이다. 그래서 기러기 아빠들이 많다.] 오는 파키스탄인들이 꽤 있다 보니 한국이라는 나라가 제법 알려진 편. 한국어 능력시험에 합격해야 비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제법 있는 편이다. 국내 외노자 국적 중 가장 높은 강력범죄율을 보이고 있다. 내국인 대비 5.97배. 아무래도 자체가 여성 차별이 극심한 나라다보니 강력 범죄의 대부분을 강간이나 강제추행 등 성범죄가 차지하고 있다. 내국인의 5~7배 수준. 강도나 살인은 상위권에 들고 있지는 않다. 특기할 점은 방화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이 다른 국적에 비해서 대단히 높다. 내국인의 17배 가량으로, 파키스탄이 몽골과 같은 쟁쟁한 국가들(?)을 제치고 1위를 한 데는 이 압도적인 방화 발생률의 영향이 지배적이라고 볼 수 있다.

2018년 9월 12일에 코트라는 카라치에서 한국-파키스탄 오토파츠 콜라보 2018을 개최했다.[[101]]

일본과의 관계

일본도 파키스탄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파키스탄에도 불교유적이 있는 편이라서 일본에서도 관광객들이 파키스탄에 방문하기도 한다. 2018년 1월 4일에 고노 다로가 파키스탄을 방문하면서 9년만에 외무장관이 방문하게 되었고, 대북제재공조를 촉구했다.[[102]]

북한과의 관계

북한의 경우 파키스탄과 비교적 친한 편이다. 파키스탄제 무기를 북한으로 수출하려고 지원받는 경우도 있고 북한에서 생산되는 석탄, 기타 자원을 파키스탄에 수출한 경우도 있어, 이는 아마도 중국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국제 비밀 핵개발 네트워크가 유명하다. 참고로 북한 주민이라면 파키스탄을 무비자로 방문 가능하다 (...)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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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훈자 계곡.jpg 파키스탄 북부 산지의 훈자(ہنزہ‎) 계곡.

5천년 이전에 발생한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로서 모헨조다로와 하랍파에서 많은 유적이 발굴되고 있지만 관광지로서는 별로 개발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아무래도 좋지않은 나라 안 상황 때문인듯 하다. 해외에서는 장수마을 훈자 등과 관련하여 다큐멘터리 촬영이 좀 있는 편이고, 초창기 불교 유적 덕분에 불교 성지 순례 또는 북부 산악지대 트래킹[* 파키스탄도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카라코람 산맥이 있어 네팔못지않게 산악 트래킹지역으로 유명하다.] 관련하여 관광객 수요도 어느정도 있다.

관광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나라다.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파키스탄 전역을 두번째로 위험한 등급인 "철수권고"로 지정하고 있다. 호주 외무부에서도 파키스탄을 위험등급 3등급인 "여행을 재고하십시오"로 분류했고, 특히 일부 지역은 가장 위험한 등급인 4등급 "여행하지 마십시오'로 분류했다. [[103]] 번화가도 위험해서, 예를 들어 옛 수도이자 파키스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카라치조차 위험한 곳이다. 현재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나 공업 중심지인 라호르의 경우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특히나 여성들끼리만 혹은 여성 혼자 밤에 외부를 통행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현지에서는 불신자 여성들은 문란하고 퇴폐적인 여성들로 볼뿐만 아니라 여성을 노린 범죄들도 흔하게 일어난다.

카라치에선 권총강도로 인해 휴대폰 지갑을 뺏기는 일이 많다는점... [[104]] 폭탄 테러의 위협 때문에 일반 쇼핑몰에 입장할 때에도 공항 입국 심사에 준하는 보안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관광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수준.

심지어 정부 공공기관이라는 작자들도 정상이 아닌 개막장들인데, ISI 만 문제가 아니라 국경수비대도 문제가 심각하다. 2011년에는 [사건(Kharotabad Incident)] 이라고 국경수비대가 (임산부와 가족들이 포함된) 무고한 러시아타지키스탄 여행객들에게 성상납과 뇌물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테러리스트로 허위보고해서 사살당하게 만든 정신나간 사건도 터졌다. 심지어 더 막장인건 무고한 시민을 쏴 죽여 놓고도 국경수비대 경찰--쓰레기--들은 피해자들을 테러리스트로 위증하라고 협박한(!!!) 거로도 모자라, 사건의 증인이던 검시의가 괴한에게 살해됐고, 심지어 파키스탄 정부는 이 사건 보고서를 기밀(...)로 취급해서 덮었다.

그리고 테러 위협으로 인하여 많은 지역들이 외국인 접근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곳을 여행하려면 여행허가서 (NOC; No Objection Certificate)를 발급받고 다녀야 하는데, 발급도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다른 나라와 같은 자유여행은 사실상 힘들다고 보면 된다. NOC가 있다고 하더라도 외국인 보호 차원에서 여행 중 경찰을 대동시키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게 형식적으로는 외국인 보호를 위한 에스코트이지만 자는 곳까지 따라와서 지켜주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도 중국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인도가 훨씬 낫다. 인도는 분쟁지역인 잠무 카슈미르나 스리나가르 같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여행유의, 몇몇 주의 경우 여행 자제 정도이고, 성범죄를 제외하고는 '개발도상국 치고는' 살인이나 강도와 같은 강력 범죄가 많은 나라는 결코 아니다. 파키스탄은 대부분의 지역이 철수 권고[* 이슬라마바드페이살라바드는 여행 자제구역이다. 발루치스탄은 여행금지구역]이다. 위의 하로타바드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듯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와 행정부라는 놈들도 자국민도 아닌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납 안했다고 테러리스트로 몰아 쏴죽이고 사건의 진상까지 덮어서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는 상상 이상의 부패한 쓰레기들 이라 도저히 믿을 수가 없고, 성 의식에 있어서도 인도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을 게 하나도 없다.

스포츠

크리켓 인기가 엄청나다 보니 크리켓 선수가 1~2천만명이 넘는다는 추정까지 있다. 그래서인지 세계적인 크리켓 강국 중 하나로 꼽히곤 한다. 그 밖에 인도에 가려졌지만 필드 하키에서도 상당한 강세를 보이는지라, 아시안 게임에서는 한국, 인도와 함께 남자 하키 종목의 유력한 메달 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강호이기는 한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예전보다 못하다는 평이 많다. 특히 이웃 나라이자 앙숙인 인도 역시 크리켓, 하키의 인기가 엄청나고 실력 역시 서로 막상막하인지라, 국제 대회에서 이 두 팀이 격돌하면 한일전 뺨치는 격렬한 경기가 펼쳐지게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당연히 야구나 축구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편으로 2013년 4월 당시의 FIFA 랭킹은 168위였었다. 하지만 축구도 일단 인도와 경기가 벌어지면 그 열기가 아주 뜨겁다. 그러나 축구 실력은 인도에 꽤 밀리는 편이다.

크리켓 덕에 비슷한 야구에 어느정도 익숙한 편이고 아시안게임, 올림픽 예선에 단골로 참가하였다. ~~물론 동네북이어서 한국, 일본, 대만은 물론 중국에게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세 불안이 발생하여 오래전부터 정식대표팀은 불참하게 되었다. 대신 상대적으로 수준이 뒤떨어지는 민간인들을 구성하여 출전시켰다. 그 때문에 가뜩이나 수준이 낮은 편인데 국제대회에 나오면 승점제조기 신세가 되어 버린다. 자세한 내용은 파키스탄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확인하면 된다.

축구는 서남아시아에서도 인도와 약체급인데 인도보다 못한 세계 최약체급으로 2000년 AFC-19세 선수권 대회 당시 한국에게 0:7로 참패당했던 바 있다. 국가대표팀 성적에서는 의외로(?) 최다 실점차가 1993년 이라크에게 당한 0:8 패와 1969년 이란에게 당한 1:9 패이다. 반대로 최다 골득점 승리는 1963년에 벌어진 말레이시아와 경기로 7-0으로 이긴 바 있다. 지역 대회인 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4강에 3번 진출했지만 이웃 앙숙 인도가 6번 최다 우승을 거둔거랑 대조적이다. 참고로, 파키스탄의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해서는 파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엄청난 스쿼시 강국이기도 하다.

그 외

파키스탄의 국수(國獸)는 히말라야 산맥 특산 야생 염소인 마코르(Markhor)염소로, 구불구불 나선형으로 말린 수컷의 뿔이 아주 인상적인 염소다. 게임 좀 해보신 분들에게는 주 타이쿤이라는 게임에서 만족시키기 극도로 어려운 동물로 알려져 있을 듯하다.

대학교 분야에서는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NUST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s and Technology)를 최고로 친다. 의료 부분도 은근히 발달해 있어서 각종 전문 병원들이 있으며 마치 쿠바 처럼 해외에서 의료 관광을 오기도 한다. 단, 파키스탄 사람들 입장에서는 비싼 의료비 및 접근성의 문제가 있어 아직까지 의료 기반이 발달했다고 하기는 어려우며 향후 투자가 예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희한한 fun fact 들이 몇 가지 있다. 과다르(Gwadar) 항구는 세계에서 수심이 제일 깊은 항구이며,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건설된 고속도로이다. 길기트 발티스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ATM 머신과 폴로 경기장이 있다.

창작물에서의 파키스탄

듣보잡 국가로 생각되지만 의외로 여러 매체를 통해 출연하는데 주로 밀리터리와 관련해 동네북(...)이다. 최근에는 탈레반 말고도 이놈들의 뒤를 봐주며 온갖 구린 짓을 해서 서방으로부터 단단히 찍힌 ISI가 적으로도 등장하고 있는데, 미드로는 홈랜드 시즌 4에서 ISI가 등장하고, 게임으로는 메달 오브 아너: 워파이터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에서 ISI 요원들이 악당으로 나오거나, 자국민을 학살하는 역으로 나온다거나 하다가 주인공에게 패퇴하기 때문에 파키스탄에서 발매 금지가 되었다.

맥스 브룩스좀비 아포칼립스 소설 세계대전Z에서는 이란과 상호 전면 핵전쟁을 벌여 둘 다 멸망했다.

왓치맨에서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침공해 점령한 다음 이때다 싶어서 파키스탄에까지 남하해 3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간다.

지 아이 조 2에서는 파키스탄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혼란이 일어나 내부에서 여러 세력들이 핵무기를 차지하기 위한 알력다툼을 한다. 그리고 지 아이 조가 직접 레이드와서 반군들의 강냉이를 털어버리고 핵무기를 회수한다.

뿌요뿌요파키스타가 이곳 출신이라는 설정이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파라다이스에 수록된 단편 '내일 여자들은'에서는 탈레반이 온건하다며 탈레반을 탈퇴한 이슬람 근본주의자 대통령 아흐마드 핫산이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자 자신이 사망하면 전 세계에 핵미사일이 발사되는 장치를 개발하게 되고 결국 대통령이 사망하자 전세계에 핵미사일이 발사되어 세계는 멸망하며, 프랑스의 여성 과학자가 극비리에 연구한 난생 인류의 알들[* 모두 여성이며 마지막 장면에서 한 명이 알에서 깨어난다.]만 살아남게 된다.

관련 문서

* 압둘 카디르 칸
* 압둘 사타르 에디
* FC-1
* 진나 국제공항
* 방글라데시
* 파키스탄군
* 아프가니스탄
* 임란 칸
* 말랄라 유사프자이
* 파키스탄인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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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남아시아의 국가)] [include(틀:상하이 협력기구)] [include(틀:영연방)]

분류:남아시아 국가분류:이슬람 국가분류:파키스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