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엄 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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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28년 출생 분류:펜실베이니아 주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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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1b>{{{+1 {{{#ffffff Noam Chomsky}}}}}}|| ||||<-3><#ffffff>width=100%|| ||||<:><#00001b>{{{#white 본명}}}||<#ffffff>에이브럼 노엄 촘스키 (Avram Noam Chomsky)[* 'Noam'의 철자에 이끌려 [노엄\]이나 [노암\]에 가깝게 읽고 쓰지만 실제 발음은 [놈ː~노움\]에 가깝다. ~~놈 촘스키~~ 전체 발음은 [æˈvrɑːm ˈnoʊm ˈtʃɒmski\]. 'Noam'의 어원은 히브리어로 '즐거움'을 의미하는 נועם.]|| ||||<:><#00001b>{{{#white 출생}}}||<#ffffff>1928년12월 7일, 미국펜실베니아필라델피아|| ||||<:><#00001b>{{{#white 국적}}}||<#ffffff>미국width=28|| ||||<:><#00001b>{{{#white 직업}}}||<#ffffff>언어학자, 철학자, 인지 과학자, 역사학자, 사회평론가, 정치운동가|| ||||<:><#00001b>{{{#white 학력}}}||<#ffffff>필라델피아 중앙 고등학교 졸업 (1941-1945)[br]펜실베이니아 대학교학사 (-1949)[br]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석사 (-1951)[br]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구조언어학 박사(-1955)|| ||||<:><#00001b>{{{#white 경력}}}||<#ffffff>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언어학종신교수 (1961-2017)[br]애리조나 대학교교수 (2017-)|| ||||<:><#00001b>{{{#white 배우자}}}||<#ffffff>캐럴 촘스키 (1949년결혼 ~ 2008년사망) [br] 발레리아 와서만 (2014년결혼)|| ||||<:><#00001b>{{{#white 종교}}}||<#ffffff>없음 (무신론)|| ||||<:><#00001b>{{{#white 서명}}}||<#ffffff>width=100|| [목차]

개요

>저는 항상 제가 한 말을 뒤바꿉니다. 지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늘 그렇게 할 겁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5년 전에 가르치던 그대로를 가르친다면, 그 학문이 생명력이 다했거나, 아니면 그가 사고하기를 멈췄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 >노엄 촘스키, 〈지적으로 살아있는 사람〉 中, 2013.06.05.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 the father of modern linguistics]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 미국의 진보 역사학자 하워드 진과도 친구사이다.]

필라델피아에서 동유럽 출신 유대인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미국의 언어학자, 철학자, 아나키스트, 정치 활동가이다.

1930년대 반유대주의를 경험하여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대교인은 아니며, 유대 혈통이지만 무신론자로 과학적 방법론을 중시한다.

1945년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철학과 언어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보편 문법이론을 발전시켜 언어학에 지금까지 높이 평가되는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1967년 베트남전 비판을 시작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고 있는 미국 좌파의 대표적 인물.

2018년 기준으로 90세가 되었음에도 본인은 '계속 병원에 간다'고 이야기하지만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어 보이고, 쉼 없이 강연을 다니고 언론 인터뷰를 하고 수많은 책들을 저술하고 있다.

언어학자로서의 업적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촘스키는, 가정환경상 영어, 이디시어, 러시아어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다언어사용자이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촘스키는 희대의 언어학자가 될 수 있었다. 촘스키는 인류의 뇌에는 언어 습득 장치(LAD: Language Acquisition Device)라는 고유한 기능을 하는 장치가 존재하며, 그 장치에는 보편문법(Universal Grammar)이란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 모든 인류 언어는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기제에 의해 작용하며 언어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보았다.[* 여담으로 이러한 촘스키의 주장을 인간 이외의 동물도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것을 보이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침팬지 님 침스키(...)였다. 실제로 촘스키를 비틀어서 붙인 이름이지만 촘스키의 주장을 반박하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러한 가설에 의거하여 촘스키는 50년대부터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 generative grammar)을 주창하였으며, 이러한 관점은 기존의 언어 연구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연구는 단순히 문법 방면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할레와의 공저인 SPE(The Sound Pattern of English)에서는 음운론 연구에 음소보다 더욱 작은 단위인 변별자질(distinctive feature)을 적극 활용하였다. 변별적 자질 개념은 유럽 구조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를 미국으로 전파한 사람들도 유럽 구조주의자들이었지만 촘스키는 이를 구조주의자들의 전통적인 맥락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받아들였고, 이게 현대 영미권의 음운론의 변별적 자질 개념의 기본이 된다. SPE는 변별적 자질 개념의 전면적인 도입 이외에도 영어의 강세 패턴에 대한 최초의 일반적인 이론화, 음운현상의 형식적 기술방식 등의 제시 등에서 대단히 중요한 저작이다. 이로써 촘스키는 그야말로 언어학의 전반을 석권한 대학자가 되었다고 과언이 아니다.

또한, 촘스키는 스스로가 제창한 이론에도 끊임없는 수정을 가하여 초기의 변형생성문법을 수정, 80년대에는 지배-결속이론(Government-Bind theory)를 제시하여 문법연구에 풍파를 일으키더니, 90년대에는 다시 그것을 수정한 최소주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촘스키의 자기발전 덕에, 일반 언어학계는 그저 촘스키의 옥음이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걸인의 상황으로 전락.~~촘스키 사마 저 논문좀 쓰게 논문 써주세요~~ 물론 이러한 끊임없는 변화가 순전히 촘스키의 학문적 역량 덕인지, 젊은 시절의 업적을 통해 획득한 학계에서의 상징권력 덕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다. 촘스키의 이론에 반론을 제기한 제자들(Lakoff, McCawley, Jakendoff 등)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으나 촘스키언 캠프 안에서 끊임없이 축출되어 왔다.

21세기 기준으론 언어학 관련으로는 전보다는 저술이나 강연이 많이 줄어든 편이지만, 90대를 바라보는 고령에도 MIT에서 종신 교수로 재직중이기 때문에, 언어학에서의 그의 위상은 쉽게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학파를 만든 사람이 학파를 비판한 사람들보다도 오래 살고 건강하게 생존중이니... ~~역시 살아 있는 게 장땡~~]

촘스키의 이론은 언어학 뿐 아니라 심리학과 인지과학, 컴퓨터공학, 생물학 등에까지 영향을 주었고, 80년대-90년대에는 모든 분야를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였다. 또 통산하여 역사상의 모든 저술가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10인 중의 한사람이다. 세익스피어, 마르크스와 동급의 인용도를 보인다고 하며, 생존해 있는 지식인들 중에는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촘스키의 반대자들인 '기능주의자'에게는 엄청난 원성을 듣고 있기는 하나, 정말 20세기가 낳은 희대의 먼치킨이자 무소불위의 언어학자라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촘스키 이후의 언어학은 언어에 대한 촘스키식의 접근방식(형식주의)을 따르는 학자들과 이에 저항하는 접근방식(기능주의)을 따르는 학자들로 나뉘며, 어느 입장을 따르든지 언어학에서의 촘스키의 공헌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두 접근방식이 너무나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형식주의자와 기능주의자들 사이의 이론적, 심리적 거리는 상당한 편.

언어학에서의 형식주의와 기능주의의 개념과 그 차이에 대해서는 언어학 문서에서 자세히 내용 추가바람

참고로 그의 언어학 연구는 펜타곤이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기계번역, 언어분석 분야 연구자금 중 상당히 많은 양이 펜타곤, DARPA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정보분석, 안보에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

정치철학자, 시민 운동가로서의 업적

언어학자로서 보편문법을 연구한 촘스키는 인류가 모두 공통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성을 가진 개개인 사이, 나아가 사회와 국가 간의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전쟁과 폭력이 아닌 대화와 소통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의 지속을 위해서 인류를 탄압, 학살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정치권력과 자본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촘스키는 본인의 정치관은 아나코-신디컬리즘(Anarcho-syndicalism) 이라고 말한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특히 자본주의의 도래 이후, 거대한 사유 자본과 기업들은 끊임없이 정치권력을 통제하고 불평등을 시스템화하면서 부를 증폭시켜 나갔다. 정부가 거대한 자본에 대해 억압하는 것을 반대하며 "신자유주의"를 외쳤지만, 결국 신자유주의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는 정부의 억압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억압하고 조종해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것을 촘스키는 지배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노동자들 - 시민들이 모여 정치-자본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비록 아나키스트라고는 하지만 촘스키는 언제나 노동자들의 결속과 시민들의 필수적인 생활에 대한 지원과 보장 - 의료보험, 복지 등 - 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그의 정치사상을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Libertarian Socialism)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 촘스키 본인도 자유의지주의자라로 잘 알려진 론 폴과 자신을 어떻게 비교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은 리버테리안 사회주의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의 리버테리안을 지지하지 않는다.] 또한 촘스키는, 자본주의에 관해서도, 애덤 스미스국부론에서 서술한 그대로의 자본주의, 순수한, 공정한 자본주의의 경우 - 시장경제를 통해서 인류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는 자본주의 - 에 대해선 동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대 자본이 언제나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없다고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 비판

> 인류 평화에 대한 최대의 위협은 바로 미국이다.[* "Which country do you think is the gravest threat to world peace? The answer is unequivocal: the United States by a huge margin."[연설]]

> 오늘날 뉘른베르크 재판의 법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모든 미국 대통령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사회 운동과와 정치철학가로서의 촘스키의 60년 넘는 세월의 행보를 단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바로 "미국 비판"이 될 것이다. 촘스키는 마키아벨리적 정치관으로 끊임없이 전 세계 여러 국가들의 내정에 간섭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행보가, 국제정치적 긴장을 악화(escalate) 시키고, 결국엔 인류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위협한다고 비판하다.

Rogue State

미국이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식은 바로 "내가 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를 암살하고, 쿠데타를 유발하고, 사람은 납치, 고문하고, 재판 없이 살인하고, 전쟁을 일으켜 침공하고, 국제적으로 약속된 조약을 무단으로 파기해도, "미국의 이익"이기 때문에 정의로운 것이다.

조지 워커 부시 비판

> 다른 나라가 미국을 공격하는 것은 "테러리즘" 이지만, 미국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역-테러리즘(Counter-terrorism)"이다.

촘스키는 이라크 전쟁을 21세기에 발생한 최대의 전쟁범죄라고 주장한다.

버락 오바마 비판

> 오바마의 국제적 암살 프로그램(international assassination program)은 중동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촘스키는 버락 오바마 또한 현재 사실상 일당국가 (one-party state)[* 극단적 공화당과 온건 공화당]가 된 미국 정치권력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부품(machine)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

~~이 분은 언어학에 한정되지만 펜타곤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에 대한 입장

정치적 올바름의 수사법에 사람들이 지쳐있다며 그것을 반대하며, 정체성 정치도 넘어서야 한다며 반대한 샌더스와 달리 소수자 운동에서 비롯된 일련의 정치 행동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미국 민주당이 진보적 이슈에 있어서 정체성, 소수자 이슈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인 노동계급 이슈에 있어서 무관심했고 그 공백을 공화당과 어느 미치광이가 가져갔으며 이는 현재 진보진영이 절대적으로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노암 촘스키는 가장 중요한 다수 대중이 속해있는 노동계급 이슈를 최전면으로 내세워야만 소수자 이슈같은 다른 이슈도 대중들에게 먹힐것 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건 노암 촘스키가 리버테리언 소셜리스트, 아나키스트라서 이런 입장을 취할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신좌파는 아나키즘의 영향도 꽤 받았고 유사한 점도 많다. 반면에 샌더스는 전통적, 구좌파적 민주사회주의 성향에 가깝다. 다만 노암 촘스키는 구좌파/신좌파를 확연히 나누기는 어려운 성향이다.] 현 정치에서 좌파들이 백인 남성 노동자들을 버리다시피 하는 것도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인 무산계급이 언PC, 반소수자 성향의 대안우파조던 피터슨 계열로 빠지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좌파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우경화된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지나치게 소수자 이슈만을 내세워 방패막이로 쓰고 계급이슈를 가리는 주제에 좌파라고 주장해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민주당과 리버럴, 주류좌파가 아닌 차별의 피해자인 소수자운동 그 자체에 돌을 던지는건 잘못되었다가 그의 입장.

여론조작(Manufacture Consent)

Manufacture Consent는 그가 서술한 동명의 저서의 제목이기도 한 개념으로, 정치권력과 자본이 자신의 지속과 확대를 위해서 언론(Media)과 정보를 조작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youtube(W-RO8FjaGrI)] 이 짧은 애니메이션에서 책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정경유착 비판

미국 비판, 여론조작,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종합적인 비판으로,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함께 국가-거대자본-언론의 거대한 연합체가 정치권력과 세계를 장악해 나가면서, 언론을 통해 대중의 consent를 manufacture하면서 인류를 계속해서 분열시키고 소외시키는 현상을 비판해 왔다.

철학 일반에 대해서

언어학자로서 분석철학 뿐만 아니라 유아의 언어 학습이라는 관점에서 인지철학에도 장 피아제와 논쟁할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구조주의 철학자로, 자크 데리다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을 소위 '입진보'라고 비판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는 아니지만 자크 라캉을 '사기꾼(Charlatan)'이라고 비판했고, 슬라보예 지젝한테도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심리철학에도 관심이 많은 듯한데, 물리주의나 결정론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비판과 반박

제노사이드에 대한 동조?

베트남베트콩캄보디아크메르 루주, 레바논헤즈볼라민간인 학살과 고문을 정당화하고 왜곡시켰다고 비판받았었다. 캄보디아 학살에 관한 비판은, 허먼과의 공저 <인권의 정치 경제학> 제 2권(79년) 때문이었다. '캄보디아:왜 언론은 인도네시아와 동 티모르보다 캄보디아의 보도 가치가 더 크다고 보는가.' 인도네시아의 만행이 폴 포트의 학살 못지 않은데도 언론의 태도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석한 이 보고서는, 반대파로부터 '멋모르는 촘스키가 학살자 폴 포트에게 면죄부를 주려 한다'는 비난을 불러들였다.

또한 촘스키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의 보스니아인 학살에 대한 통계 자료들의 신빙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과연 세르비아인 학살이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지를 비판한 에드워드 허만의 저서 <제노사이드의 정치학(The Politics of Genocide)>의 책을 추천한 것으로 "밀로세비치를 옹호"하고 "제노사이드를 동조"한다고 비판받았다.

결국 이런 비판들은 촘스키의 윤리적 관점을 소위 말하는 그 어떤 것도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는 사고관인 "whataboutism" 이라고 해석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보도연맹 학살도 잔인한데 왜 북한의 학살만 까나요?" "우리나라도 위안부 피해를 당했는데 왜 중국과 남경대학살만 신경쓰나요?" 라는 주장들이 사실 이런 관점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고, 따라서 촘스키가 모든 악행과 잔혹 행위들을 옹호한다고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런 모든 의견들은 촘스키의 윤리적 관점과 핵심적인 의견들을 무시하거나 선택적으로 취사 선택한 중상(smear)에 가깝다.

[youtube(qnGyImubRp0)]

촘스키가 말하는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책임은 매우 간단하다. "한 개인은 자신의 국가가 취하는 정책과 선택에 대해 영향을 줄 수 있고, 따라서 자신의 국가의 악행에 가장 큰 책임을 가진다"는 것이다. 위의 영상에서 나온 부시 행정부에서 대변인으로 "악의 축"이라는 용어를 창조해 미국을 이라크 전쟁으로 이끈 대표적인 인물로 네오콘인 데이빗 프룸의 질문에 답변한 것처럼, (미국 혹은 서방의 관점에서) 소련이나 동구권에서 행해지는 악행을 비판하는 것은 18세기, 혹은 고대에 일어난 악행을 비판하는 것 만큼이나 현실 문제 해결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고, 따라서 그 안에서 도덕적 가치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국가, 혹은 자신의 국가의 동맹국들이 행하는 악행에 대해 한 개인은 책임을 가지고 있고, 그 악행들을 멈추거나 정책에 영향을 줄 능력이 있기에, 따라서 자신의 국가가 행하는 악행에 대해서 개인은 가장 큰 책임을 가지고, 그 악행들에 대해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언론이 이중잣대로 그들의 적에게는 집중적으로 극악한 관심을 주는 반면에, 그들 자신 혹은 그들의 동맹이 저지른 비슷하거나 더한 악행은 얼렁뚱땅 넘어가 사실상 은폐한다면 그 보도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다. 특히 촘스키와 공저자인 허만은 지속적으로 주류 언론의 이런 행태를 분석하고 비판해온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촘스키와 허만이 말하는 것처럼, 미국의 매스 미디어는 미국의 외교 정책과 국가 권력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우리"가 벌인 범죄와 악행에 대해 침묵하지만 "그들"이 벌인 범죄와 악행에 대해선 끊임없이 보도하고 비판하는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우리"의 악행은 축소하고 "그들"의 악행을 최대한 확대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미디어는 "그들"의 악행에 대한 통계는 최대한 확대해 해석하고 사망자의 수를 늘이지만, "우리"의 악행으로 벌어진 희생자의 수는 최대한 축소한다. 따라서 주류 미디어와 학계에서 제공되고 유통되는 "그들"의 악행에 대한 보고서, 기사, 자료들의 신빙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민주 국가의 시민, 특히 지식인과 언론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고, 그 자료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결코 악행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악행을 저지른 단체들을 지지하는 것 또한 아니다.

예를 들어, Srebrenica 학살 사건에서 서구 미디어는 세르비아가 수 백에서 수 천 여명의 보스니아인을 처형한 것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이 사건이 "제노사이드"라고 지금까지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1) 수 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나치 독일에 의해 희생당했던 홀로코스트나 수 천만에서 일억 명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희생당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메리카 개척기의 학살 등 진정한 의미에서의 제노사이드 사건들과 Srebrenica 사건을 동일하게 평가하는 것 자체가 이러한 참혹한 사건들의 중대성을 축소시키는 것이며 2)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의 영역이었던 Srebrenica 라는 마을에 침공하기 직전에 보스니아 측이 2-3000여명의 세르비아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것으로 세르비아의 침공을 유도했다는 사실과 (세르비아의 침공 직전 보스니아 군대는 Srebrenica 에서 후퇴해 방어 병력을 남겨두지 않은 상태였다) 3) 클린턴 행정부와 NATO가 이 사건을 빌미로 유고슬라비아 침공을 정당화했고(보스니아의 이슬람 무장 세력은 이전부터 미국의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었고, 따라서 보스니아가 서방의 침공을 기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폭격 작전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것을 미디어가 보도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미국과 서방이 "자유"와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적들 -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 - 의 악행들을 비판하는 것은 그들이 진짜로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추구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가치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적들을 비난하고 자신들의 행위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따라서 서방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동맹국들 - 사우디아라비아, 필리핀, 이집트 -의 인권 문제들에 대해선 침묵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 문장은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며, 2017년 Politico를 통해 유출된 미국 국무부의 내부 문건에 명시된 미국 외교 정책의 방향성이다. [[1]]

즉, 이 문제에서 촘스키와 허만이 말하고자 하는 건 언론과 정부가 보이는 정치적 편향성과, 거기에 따른 여론조작에 대한 비판이다.《여론조작(Manufacturing Consent)》에서도 이 문제가 분석되고 있으며, 특히 개정판 서문과 6장에서 촘스키와 허만은 이렇게 말한다.

>7장에서도 설명했지만 베트남이 1978년 12월에 폴 포트를 축출하자, "민족학살"을 자행한 "제2의 히틀러"라며 비난을 퍼부었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재빨리 폴 포트의 후견인이 되어 캄보디아가 유엔 의석을 차지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타이로 피신한 그를 돕고 보호했다. 베트남은 폴 포트의 폭정을 중단시켰다는 이유로 가혹한 벌을 받았다! 베트남은 극심한 제재를 받았고 미국은 베트남에 한 수 가르치기 위해 중국의 침략을 지원했다. (중략) 미국의 정책을 지배하고 폴 포트를 지원하도록 이끈 것은 "내 적의 적은 친구"라는 고전적 원칙이었다. (중략) 폴 포트를 지원하게 된 것은 이전에 그의 정책을 비난한 사실을 감안하면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주류 언론은 이를 태연하게 보도했으며, 미국의 대중들은 미국이 폴 포트의 동맹이자 지원자가 된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러나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떠나고 미국 관리들의 반베트남 열정도 식어버린 1990년대 후반 폴 포트는 베트남 정책에서 유용한 도구의 자격을 잃었다. 결국 미국의 관리와 전문가들은 폴 포트와 크메르루주의 잔혹성, 그리고 전범재판에 회부할 수 있는 근거를 재발견했다. 언론은 폴 포트에 대한 이전의 "편향성"을 얼버무렸고, 아예 1979년에서 1995년까지의 상황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미국이 "실익정책" 차원에서 그를 지원했다는 애매한 말로 둘러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제2의 히틀러"의 도덕성을 고찰하거나 그에 대한 지원의 성격과 규모를 자세하게 설명하기를 피했다.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잔학행위에 관한 기록은 상당히 많고 종종 무시무시했으며", 그것이 "공포의 수치"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실이 그렇다면 극렬한 비난은 실제로 옳았음이 판명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우리가 여기서 제기한 중심적인 문제, 즉 입수한 사실들이 일반인에게 제공될 특정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선별되고, 변경되고, 때로는 조작되는가의 문제에서 도달한 결론을 변경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분명해보이며, 그것은 미래에 캄보디아에 관해 어떤 사실이 발견되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가 되풀이해서 강조하듯, 미국의 정책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두 권짜리 연구서(《인권의 정치경제학(Politicla Economy of Human Rights)》)의 이 장에서 우리의 관심은 인도차이나가 아닌 미국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의 목적은 관련 증거를 바탕으로 "전후 인도차이나와 관련된 사실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증거를 바탕으로 사실들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살피고, 이 증거가 "서구 이데올로기의 프리즘을 통해" 굴절된 과정을 분석하는 "매우 다른 작업"이었다. 거기서 도출된 결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문단의 모든 인용문 출처는 《인권의 정치경제학》이다.]

한국에서 취급과 인용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정치활동 및 저술에서 촘스키를 자주 인용한다. 물론 보수진영도 필요하면 곧잘 인용하지만 아무래도 진보측이 많이 이용하는것이 사실. 문제는 이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앞뒤 다 잘라먹고 자신들한테 필요한 부분만 취사 선택해서 인용한다. 결과적으로 촘스키의 저술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세계에서 저명한 사회과학자가 이러이러한 주장을 했다는 권위를 빌리기 위한 도구로 자주 사용된다.

이렇다보니 촘스키의 책을 인용해서 논문을 쓰지 말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말해도 다 쓴다.~~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데 '촘스키의 전문영역언어학에서 인용하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문제는 전문 영역이 아닌 부분에서 인용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므로 주의를 요하며 이런 문건은 논문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2008년 이후 개정된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에 이 분의 저서가 무려 두 권이나 있다. 사유는 북한찬양, 반정부, 반미 ...

연락을 취하는 방법

모든 교수들과 대학 구성원들에게 당연하게 해당되는 것이지만, 촘스키도 MIT 이메일이 있다.

chomsky@mit.edu

놀라운 점은, 끊임없는 출장과 강연, 인터뷰 등으로 누구보다도 바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촘스키 교수는 자신에게 오는 모든 이메일에 성실하게 답변을 해 준다는 것이다. [[2]] 언어학에서부터 정치, 외교, 철학 등 심오한 분야에서부터 기타 개인적 진로나 고민사항(...) 같은 사소한 것까지, 어떠한 질문이 오더라도, 언제나 길게 답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꼼꼼히 읽고 답변을 보낸다.

본인은 자신이 이러한 위치에 있는 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이메일에 답변해 준다고 한다. 다만 제대로 된 질문만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언제는 한 고등학생이 "학교 숙제로 프랑스 혁명에 관해서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뭐에 대해서 써야 할까요?" 라고 하면서 이메일로 질문을 보냈다고 한다... 물론 어떻게 하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런 이메일을 통해 대중적인 이슈에 대한 촘스키의 의견을 알 수도 있다. 예를들어, 촘스키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조던 피터슨샘 해리스에 대해 [관심을 줄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입을 막을 정당성도 없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쁜 사람이기 때문에, 질문이 너무 길면 답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연락을 취하고자 한다면 최대한 간결하게 요약해서 질문을 작성하도록 하자.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