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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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본어: 失われた10年, 平成不況[* 우시나와레타 쥬넨/헤이세이 불황. 우연의 일치겠지만 1989년 즉위한 아키히토 덴노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 연호를 따서.] 영어: Lost Decade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의 소멸 이후 1990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진 일본의 경제 불황을 일컫는 말. 유식하게 말하면 일본 경제의 3대 과잉 요소(설비, 고용, 부채)의 해소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여파는 크게는 2012년까지 이어져 왔다. 때문에 10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단어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불황이 시작되고 10여년쯤 뒤였기 때문에 20년으로 갱신될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10년'이란 표현이 워낙 유명하게 정착해서 주로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린다. 1992년부터는 일본의 주택 가격이 본격적으로 확 떨어지는 버블 붕괴라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비싼 돈을 주고 아파트를 구입한 단카이 세대나 전후 세대는 집값을 자신이 구매한 금액보다 내려서 팔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2010년 무렵에는 도시, 지방을 가리지 않고 아파트가 텅텅 비는 현상이 등장했다.[* 보통 부부가 살다가 남편이 먼저 죽거나, 부인이 먼저 죽고 나머지 노인이 혼자 살다가 죽어서 집이 비어버리는 현상이다. 도심 지역에는 저녁 6시 무렵이면 어두컴컴한 아파트들도 간혹 보인다고 한다.]

과정

버블

[youtube(hd8iJr80B7g)] 1950년대 이후 일본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거듭했다. 원래는 효율적인 경제 전략 및 투자일본인의 근면성과 높은 저축률 등에 의한 것이었고, 1970년대 오일 쇼크도 거뜬히 극복하면서 이런 통념이 들이맞는 듯 했지만, 1980년대 초반부터 일본 경제가 오일 쇼크의 후유증을 완전히 벗어난 뒤로는 부동산과 주식 투기 열풍이 불게 되었고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인해 엔화 가치가 올라가면서 경기가 갑작스레 침체되자[*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 상실로 생산성 향상을 통한 정상적인 경제성장이 제약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구조 개혁을 통한 신산업 발굴이 아닌 인위적인 돈 풀기로 버블을 만들었다.] 경기부양을 위해서 대출 규제를 완화하여 금리를 끌어내렸다. 이에 기업과 개인 투자자들이 대출 규제 완화를 기회 삼아 부동산과 주식을 대량으로 구매하며 부동산 가격과 주식 가격이 미칠 듯이 폭등하여 거품이 엄청난 수준에 까지 다다랐고, 자산 시장 거품으로 돈이 엄청나게 돌아다니다 보니 일반 직장인들도 보너스를 두둑하게 챙길 정도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직장인들에게 버블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간 건 아니었고, 더군다나 집을 미리 마련하지 못한 직장인들의 경우에는 도심 지역 집값이 상상 이상으로 폭등해있었기 때문에 집을 마련하려면 교외 지역으로 강제적으로 밀려나야 했기 때문에 버블 시기가 마냥 행복했던 건 아니었다. 물론 버블 시기 이전에 집을 마련한 사람들은 집값이 왕창 오르는 데다가 보너스도 넉넉하게 받았으니 꿀을 빨아댔지만.] 거품이 터지기 직전에는 '일본을 팔면 미국을 산다'는 말이 나오고 한 술 더 떠서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산다는 말[* 실제로 도쿄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본 전 국토를 팔면 미국을 4번 정도 살수 있었다. 물론 도쿄 땅값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도 나왔으며, 도쿄 긴자에서 제일 비싼 땅 값이 평방미터 당 10억원에 육박할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당시 일어난 일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 예를 들어 보면,

* 채용 면접 때 기업에서 거마비[* 수레 거, 말 마. 쉽게 말해서 차비다. 한국에서도 공직계나 기업 등에서 뇌물성 떡값을 현장에서 현찰박치기로 줄 때, "거마비를 준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를 준다. 그것도 1인당 2~3만엔씩 쥐어줬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좀 큰 중견 기업에 면접 보러 가면 면접비를 주지만 이건 말 그대로 "차비"일 뿐이다.][* 여기서 감안해야 할 것은 지금의 2-30만원이 아니라 "80년대"의 2-3만엔 이라는 것이다. 가치는 현재 이상이다.] 이건 뭐 여기저기 면접만 보러 다녀도 금방 부자될 기세. 이런 식으로 기업에게 받은 돈이 수백만 엔을 넘는 사람이 많다.
* 흑자가 나는데도 일할 사람이 안 모여서 망했다. 3D 직종이라서가 아니라 알바만 근근히 해도 먹고 살 수 있어서.[*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로 집에 돈이 넘쳐 나서 취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고, 알바만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니 편한 일이 아니면 굳이 취직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중소기업에선 생산직 사원을 구하지 못해서 버블 시대가 지옥 같았다고 한다. 다만 그 이후에는 경제가 막장화되며 또 다른 지옥이..][* 다만 이 때 거품에서 재빨리 빠진 운 좋은 이들은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 예금 이자율이 1%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에 쓰기만 하는 시대가 열려서 문제지. 실제로 한국의 IMF 외환위기 때도 현금을 많이 축적한 사람들은 쏟아져 나오는 경매 매물들을 쓸어 담아 신흥 부유층으로 떠올랐다.]
* 입사 시험에서 일부러 다 틀리게 냈는데 취직. 오히려 회사에서 대학들을 돌아다니며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세워서 취직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고. 버블 경기가 절정에 이르던 1989년부터 91년도까지의 통계를 보면 유효 구인 배율이 1.4 정도를 기록했는데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1.4개에 달했다는 뜻이다.[* 물론 현재의 일본의 구인 배율은 1.7정도이다. 물론 일본이 다른 국가에 비해 취업이 잘되는 편에 속하는 것은 맞지만, 수치가 높다고 하여 버블 붕괴 이전 시대보다 호황이라는 것은 아니다. 젊은 층이 넘쳐날 때의 1.4와 젊은 층이 말라가는 초고령 사회에서의 1.7은 엄연히 그 의미가 다르다.] 그래서 통계 상으로 보면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일본 열도 대개조 계획으로 건설붐이 분 이후로 취직이 가장 잘되던 시절로 손꼽혔고,[* 사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7년까지는 일본이라고 해서 마냥 취직이 잘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단 취직하면 엄청난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에 정년은 보장되니까 그나마 데미지가 덜한 수준.] 그래서 1960년대 중후반 생들이 크게 혜택을 입었다.[* 다만 그 대신 부동산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평균적인 결혼 연령이 늦어져서 출산율은 떨어졌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출산율이 1.2~1.3명 대를 찍은 것에 비하면 양호하지만] 신규 구인 배율은 더더욱 환상적이라서 파트 타임직을 제외하고도 1.9를 찍었을 정도이며 비정규직까지 합지면 무려 4에 근접하는 수치를 기록했을 정도다.
* 20대 연봉 천만 . 80년대의 천만 엔은 현재 한국 돈 1억 정도는 가볍게 상회한다!
* 당시 도쿄 길거리엔 벤츠 190E, BMW E30 3시리즈가 코롤라마냥 돌아다녔고 페라리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국가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서브 컬쳐에서 버블의 정점 당시 팔렸던 페라리 F40이 많이 언급 된다. 이 모델이 전세계에서 1500여대만 생산되었는데 일본에만 200~300대(!) 있으니...
* 이 당시에 롤스로이스 판매량의 1/3은 일본에서 나왔다(!)[* 지금도 롤스로이스는 4~8억하는 최고급 명품차이지만 80년대엔 자동차 조차 사치품이었다는 것을 감안하자. 거기다 그 당시 롤스로이스는 돈 많아도 아무나 못사는 그런 차였다.]
* 정기 예금 금리가 8%.[* 사실 1980년대~1990년대 한국도 금리가 상당히 높았다. 이때는 저축은행이 아닌 그냥 은행에서도 1억 원 정도를 예금하면 1년에 1000만원은 거뜬히 이자 수입으로 받아 먹었다. 물론  그 대신에 기업이 아닌 개인이 대출 받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로는 시중 은행들의 예금 금리가 크게 낮아지면서 이 역할이 저축은행으로 넘어갔다가 저축은행들이 부실 경영으로 2011년에 쓰러지면서 다 옛말이 되어 버렸다.]
* 프리터는 낭만의 대명사였다. 왜냐면 취직할 수 있는데 안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면서 여유롭게 지내니까.[* 버블시대의 프리터는 어찌 보면 가장 비참한 계층이다. 버블 시대 때 취직 연령이었던 사람들 중에 이렇게 낭만 찾으며 프리터로 지내다가 버블이 터져서 막장이 되고 나서야 닥쳐서 부랴부랴 구직을 시작한 프리터들이 많았지만 대부분은 버블 시대 때보다 한참 못한 여건으로 블랙 기업 같은 데에서 굴려지는 일을 겪곤 했다.]
* 클럽 문화에서는 파라파라, 줄리아나 도쿄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 야간에 택시를 잡으려면 1만 엔을 흔들어서 잡았다고 한다.
* 지방에서도 건설 붐이 일어 굳이 필요 없는 곳에 보여주기 식 토목 공사를 진행하는 데가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100명 남짓 사는 섬마을에 다리를 2개 3개씩 놓는다든가.] 물론 거품이 꺼지고 나서는 유지비가 부담이 되어 철거되거나 건설사들이 파산하는 곳이 많았다.
* 소니헐리웃컬럼비아 영화사를 인수, 라이벌파나소닉유니버셜 영화사를 인수.[* 거품이 꺼지고 파나소닉은 다시 유니버셜을 팔아 버린다.]
* 일본의 부동산 재벌 요코이 히데키가 뉴욕의 상징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인수.[[1]][* 당시 미국 월가에선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최고치에 달했다고 한다. 로보캅 3에 당시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일본의 모습이 나온다.]
* 전세계 억만장자 중 70%가 일본인 이였으며, 세계 1등 갑부가 세이부 창업자 츠츠미 야스지로였다.

그러나 이 흥청망청은 거품 덕분이었으므로 불과 몇 년도 가지 못한 건 물론이며, 이후 일본을 시련으로 몰아 넣게 된다. 물론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일본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 큰 고생을 했느냐 하면 이에도 의문이 있으나... 저런 호화 생활을 하다가 못하게 되면 시련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잃어버린 10년

[youtube(mwLDKou6Y9A)] 결국 1989년 말 주가가 최고점을 찍은 것을 신호로[* 1989년 12월 29일 닛케이 225(한국으로 치면 KOSPI200) 장중 최고가 38,957.44 기록. 물론 코스피 시가총액 방식이고 닛케이는 평균 가격 지수로 방식이 다르나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인식하면 된다. 평균 가격 지수인 다우는 당시 평균 지수는 2000선.], 1990년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대장성(現 재무성. 한국으로 치면 기획재정부)에서 주택 담보 대출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제도라는 강수를 둠으로서 주가와 부동산이 폭락하기 시작하면서 헬게이트가 열렸다. 이후 10년간 주가 지수(닛케이 지수)는 반토막 나고 부동산은 평균 1/3에서 최대 1/10까지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담보를 팔아도 대출금을 갚을 돈이 모자라 갚지 못하는 경우가 대량으로 발생하면서 다량의 부실 채권(상환 불가)이 발생하였고 이를 견디지 못해 은행이 도산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당시 대출의 약 1/10이 날아갔으니 그 타격은 알 만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정부에서 채권 회수에 잘못되는 바람에 결국 경기침체는 장기화 되었고, 결국 1992년을 기점으로 취업 빙하기가 찾아오고, 자산 가치 폭락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기업에서 위기극복을 위해 신규 채용을 덜하거나 가급적이면 비정규직으로 뽑는 비율이 크게 늘어났고, 기존 인원들도 감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면서[* 그래서 한국과 중국 전자업계가 그 덕을 많이 봤다는 말이 나온다. 일본 전자업계에서 생존을 해야 한다면서 상당수 직원들을 짤라냈는데 결과적으로 한국과 중국 전자업체들이 짤라낸 인원들을 대거 스카우트하면서 기술력과 노하우가 유출되는 결과를 낳았고 덕택에 일본 전자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 [* 그래도 실업률은 두 자리 수는 물론이고 5%조차 넘는 수준은 아니었으니 실업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기는 했다.]결과적으로 출산율이 크게 저하되었기 때문에 고령화에 가속 페달을 밞은 셈이 되었고 내수 시장도 동시에 침체되는 양상을 보여주게 되었다. 1999년IT버블로 인해 닛케이 평균 주가가 잠시 회복되는 듯 보였으나[* 오부치 게이조와 총리에서 물러난 후 재무장관으로 복귀한 미야자와 기이치 콤비 등의 공이었다.] 이것도 얼마 못 가 2000년에 꺼지면서 주가가 거기서 다시 반토막이 났다. 참고로 2018년 현재 주가 지수는 최고점의 거의 60% 수준.[* 2007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경기 불황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경기가 잠깐 살아나는듯 했지만 이것도 단기간 수준에 불과했고,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 이후로는 다시 침체에 빠지게 되었으며 2010년대 들어와서 중국에게 경제 규모에서 추월당하게 되었다.

미국과의 관계도 악화일로를 걸었는데, 일본의 버블 붕괴와 냉전 종식 이후 출범한 미국의 빌 클린턴 정부는 유례 없는 수준의 강경한 대일 무역 정책을 투사하려 했다. 가령 미국산 자동차의 강제 수입을 강요하는 등 일본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조업 부문의 대폭 개방을 요구했다. 일본이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자세로 치고 받자 클린턴 행정부는 일본에게 전면 무역 전쟁을 벌이는 것까지 고려하였다.[* 빌 클린턴 정부들어 미국의 대일 무역 적자는 오히려 더더욱 증가했다.]

이로 인해 미일 관계는 안보 동맹까지도 삐걱거리는 지경에 몰림으로써 동아시아 정세는 격랑 속에 빠졌다. 그 영향은 곧바로 1994년의 영변위기와 바로 뒤이은 양안사태로 나타났다.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DN19980196-00_01414821.jpg [주식 가격 변화] 하시모토 류타로 임기[* 1996년~1998년]동안 일본경제는 주가 하락, 실업률 폭등, 아시아 금융위기 주범이라는 지탄을 받았고 미국 빌 클린턴 정부로부터 일본의 시장경제 개방에 대한 강한 압력도 지속되었다.[[2]] 이에 분노한 하시모토 내각은 미국과 철저하게 대립각을 세웠고 미국일본과의 관계는 2차 대전 이후로 최악으로 험악한 관계를 보였다.[* [닛케이 일일 변화 데이터]]

즉, 동아시아의 안보 거점이자 경제 대국으로 기능해오던 일본의 붕괴로 인해 90년대 중반부터 말기까지 동아시아는 안보, 경제적 혼란를 겪어야만 했다.

사회적으로도 버블 붕괴는 여러 변화를 낳았다. 소위 '간구로 세대'가 바로 이 시기로, 아무로 나미에갸루 문화로 대표되는 신세대 문화가 꽃피워졌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시기는 '원조교제'의 전성기였으며, '아저씨 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일탈 청소년이 몰려 다니며 직장인들에게 퍽치기를 하거나, 동급생을 감금하고 고문치사하는 등의 흉악한 사건이 신문지 상에 자주 오르내린 것도 이 무렵이다.

이때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는 일본의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전반 출생하여 어린 시절의 가치관이 버블기에 형성되었기에 배금주의, 자유주의, 개성파적 성향이 강한 반면, 뒤이은 버블 붕괴로 인해 가정 해체 등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었다. 이 세대의 영향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DQN 네임'이다.

취업 시장에서 소외된 취업 빙하기 세대가 사회에서 위로받지 못하고 사회 찬밥 신세로 전락하면서 히키코모리와 일본판 캥거루족인 패러사이트가 양산되었고, 힘든 생활을 탈피하려고 빠징코에 중독되어 재산 탕진과 강력 범죄가 발생하고, 위로받으려고 아이돌과 오타쿠 활동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등 사회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아키하바라[* 1980~90년대만 해도 아키하바라는 그냥 평범한 전자상가였다. 그러나 일본 전자회사를 대표하던 소니, 파나소닉이 몰락하면서 전자상가들이 줄도산하고, 빈점포에 메이드 카페와 동인샵이 들어온 후 2000년대 후반에 AKB48가 엄청난 대박을 치면서 현재 위키러가 아는 아키하바라가 된 것이다.]로 대표되는 오타쿠 문화가 엄청나게 성장했으며 아이돌 산업이 절정에 도달한 시기였다.[* 이들의 소외감을 이용해서 성공한 케이스가 모닝구무스메, AKB48이다.]

1980년대의 버블과 1990년 버블 붕괴는 단순히 일본의 경제만을 뒤흔든 것이 아니라 일본의 사회상까지 바꿔 놓았다.

잃어버린 20년

결과적으로 일본의 성장률은 그때 이후로 거의 0~2% 수준으로, 2012년까지 이런 현상이 계속되어 10년이 아니라 20년이 되었다. 때문에 가끔씩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사실 1995년~1996년 들어서는 확실히 경제 회복의 조짐이 보였으나,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망했다. 2000년에도 잠깐 회복세를 보였으나, 이번에는 닷 컴 버블로 망했다. 마지막으로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이제 장기 불황 탈출이다' 라는 이야기가 슬슬 나올 정도였으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뒤따르는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로 또 망했다.

간혹 1980년 기준으로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도 쓰기도 한다. 게다가 불황을 탈출하기 위해 말 그대로 돈을 퍼부어 일본의 국가 부채는 2011년 3월말 973조엔(=한화 1경 원), GDP 대비 220% 가량으로 선진국 중엔 가장 높고, 전 세계 모든 국가 중 짐바브웨 다음으로 2위가 되었다. 사실 이것도 옛날 이야기고 1999년 이탈리아를 추월한 이후 계속 1위이다. 2016년 현재는 그리스와 짐바브웨를 넉넉히 따돌린 246%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채 발행이 많기에 93%를 국내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고, 그 가운데서도 금융 기관이 70%나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아직도 GDP 대비 3%의 경상수지 흑자국이며, 국채 이자도 1.2%로 작다. 이는 일본 정부의 강력한 저금리 정책 덕분이었다. 세계 최대의 대외 채권국이란 점과 중국 다음 가는 외환 보유고도 강점. 무엇보다 대부분이 국내 투자자라 웬만하면 돈을 빼지 않는다. 고로 모라토리움 걱정은 상당히 낮고,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 하지만 국가 신용 등급은 2015년 글로벌 3대 신용평가 모두에게 강등당해 현재는 한국보다 신용 등급이 모두 낮은 상황이다. [일본 신용등급 한국보다 낮은 'A+'로 강등]] 이 상황을 타개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종말이 불가피하다.

일본의 국채의 경우 경제학에서 상당히 특이한 사례로 유명하기도 하다. 일본이 세계 최고의 대외 채권국이며 외환보유고 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점에서 분명 그 안정성이 보장된다고 볼 수 있으나, 이를 고려하더라도 일본 국채만큼 안전하면서 수익률이 더 나은 상품이 분명 존재함에도 일본의 기업개인들이 국채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대 수익률을 지향한다면 있을 수 없는 행위이기에 동아시아 특유의 국수주의와 연계되어 설명되는 경우가 잦다. 때문에 일본 정부의 부채는 대부분 자국의 기업과 국민에게 진 빚이다. 이에 더해 거품 붕괴 이후 일본의 강도 높은 금융 개혁의 성과물로 세븐아이홀딩스를 위시한 매우 견실한 일본의 은행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들의 주가는 올라가다 못해 천장을 뚫을 기세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외국인들은 1,000조 엔에 달하는 국가 부채에도 불구하고 엔화를 안전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세계 시장의 불확정성이 대두될 때마다 엔화 환율이 치솟는 이유는 이들이 엔화를 안전 자산으로 간주하고 쓸어담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이때 일본 국민들이 불안해 하자 일본 정부에서 마이너스 금리의 채권을 발행했는데, 이는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은행이 국채 금리를 마이너스로 다시금 설정하면서 재현되었다. 이는 일본 정부가 민간에 보낼 수 있는 아끼면 똥 된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이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돈을 쌓아두는 대신 여러 분야에 투자하고, 개인은 집에 돈을 쌓아두는 대신 소비 활동을 하면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게 한다는 정책. 양적 완화의 기본적 스탠스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30년?

파일:D64EC8D5-0FF1-4475-979A-85F34DD7C4CB.png ||※ 일본의 30인 이상 기업의 실질임금 추이.

후생노동성의 매월 근로 통계 조사에 따르면, 30인 이상 기업의 엔화기준 실질임금은 1995년에 정점을 찍고 우하향중이며 2015년 실질임금은 무려 1978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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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에 이어 2011년에는 사상 초유의 천재지변까지 겪으면서 가뜩이나 모자란 재정, 지출될 일만 더 많아졌다.

그런데 그놈의 사상 초유의 천재지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2011년도 3/4분기 최초로 건설 경기 붐이 일어 일본이 오랜만에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1980년 이후 31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으며, 이미 중국에게 추월당한 GDP는 되찾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 사실상 미국도 GDP만 따지면 곧 추월당할 것으로 여겨질 만큼 성장세가 빠른 나라가 중국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다소 속도가 완화되었다.] 2012년 12월 16일 치른 중의원 선거에서 의회 제1당이 된 자민당아베 신조 총재가 공공 지출을 높이는 것 뿐만 아니라 무제한 양적완화를 공언하며 "일본 중앙은행과 협의를 통해 물가 상승률 목표 수치를 2% 상승시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일명 아베노믹스. 즉 물가가 3% 오를 때까지 화폐를 찍어 내겠다고... 이 공약이 정말 실행될 경우 내려가고 있는 엔화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굳이 따지자면 외환 시장에서 화폐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물가가 그만큼 오르면 타국 화폐(원화 등)로 환산한 물가는 비슷할 수밖에 없다. 빅맥지수 참고. ] 하지만 중앙은행은 선거 전 양적 완화를 탐탁치 않아 했으며 장기적 대책과 구조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장기적 대책과 구조적 개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니까 생산성 향상으로 경제성장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일 때 시장에 돈을 풀면 과잉 생산,버블 경제 등 과거의 일본처럼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 주장을 한 중앙은행 총재는 아베 총리 당선 직후 짤렸다.

2012년 말, 8,000엔 수준에 머물던 닛케이 지수가 2013년 5월 15942.60엔의 고점을 찍고야 만다. 무려 6개월 만에 주가가 2배가 된 것이다. 주가가 2배로 오르고, 일본 최대 기업인 토요타를 포함한 거의 모든 기업의 주식의 가치가 2배, 5배, 10배 등 미친 듯이 폭등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 게임이었던 라그나로크 온라인을 인수한 것과, 스마트폰 게임 퍼즐 앤 드래곤으로 유명한 겅호온라인엔터테인먼트 사의 주가는 2012년 기준 4만 엔 수준[* 원래는 40만 엔이나 중간에 1:10 주식 분할을 실시.]에서 2013년 5월 무려 최고점 159만 엔으로 6개월 사이에 40배 가까이 상승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버블.

기사회생

다만 2016년 들어 임금이 계속 상승하고 있고 3분기 경제성장률이 연율 기준 2.2%를 찍는 등 나름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 한편 닛케이 주식은 트럼프 당선 이후 또 한번 폭주해 18,000대에 진입하였다. 여하튼 인구 구조 개편을 위한 이민[*단 [기술 노동자가 대상이지 아무나 다 받아준다는 것은 아니다.]] 등 사회 전반적 개혁이 정답이라는 의견이 인기를 얻게 되고 아베 총리 역시 신속히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개혁을 추진 중이다.

2017년의 기준에서 살펴보면 아베노믹스의 핵심 정책인 양적완화브렉시트 등 여러가지 위기에 위협을 받았으나 1개월 이상 장기적으로 엔-달러가 110엔 초중반의 입지를 흔든 악재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성공하였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단카이 세대의 대량 은퇴가 아베노믹스에 더해 청년층 취업 시장에 엄청난 호재가 되고 있는데, 이공계 일자리 수가 176%[* 즉 뽑고 싶은 만큼 다 뽑지도 못한다는 의미다.], 전체 일자리 수도 100%를 상회하며 대졸 취업률이 90%에 육박하는 등 그야말로 취업난을 해결하다 못해 일할 사람이 없는 기업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결국 인력에 여유가 있는 대기업이 아닌 나머지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심각해지면서 평균 임금 상승률이 크게 오르고 있으며 고급 인력은 한국이나 대만에서, 3D 직종은 동남아 등에서 수혈받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인력 부족은 심각해 편의점들이나 프렌차이즈 식당들도 심야 영업을 속속 폐지하는 사례가 속출할 정도. 물론 아직은 상대적으로 봉급 수준이나 근무 조건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많아 구직자에게 체감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듯하나, 그래도 10년 전의 상황이나 블랙 기업으로 손꼽히는 기업들도 일손 구하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갑질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빈번해지기는 하다 보니 상전벽해나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심지어 "오와하라"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는데 이는 합격을 확정해주는 대가로 타 기업에 대한 취업 활동을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정도면 상황이 파악이 될 듯하다.

또한 2017년 일본 경제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의 2배에 달하는 1.5%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확실시되고 있는데 즉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이후 최초로 디플레이션의 마수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가 된다. 2017년이 거의 끝난 시점이기 때문에 웬만한 변수가 없으면 달성할 수 있는 수치이다. 다만 아베노믹스가 추구했던 핵심은 물가 상승률의 회복인데,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1%가 되지 않는다. 허나 이것도 디플레이션 고질병을 겪던 일본 입장에선 단비같은 수치이다. 지난 3년여간 1~1.5%의 성장세를 지속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고이즈미 정권기에도 달성했던 수치이다. 물론, 서브 프라임에 이르는 세계적 거품이 커지던 시기의 성과이기에, 불황기에 달성한 현재의 성과가 더 유의미한 것은 확실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더 이상 잃어버린 XX년 류의 악순환이 끊길 가능성이 유력해졌지만 인구 구조의 내파가 본격화되는 문제라거나, 여전히 불확실한 물가 상승 흐름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2018년 9월 28일 현재 닛케이 225는 24,120.04를 기록하며 잃어버린 20년의 1년차였던 1991년 이후 무려 27년 만에 24000포인트 선을 회복하였으나, 미국발 금리 인상등의 여러 악재의 여파로 12월 24일 19155.74까지 떨어졌다.

2019년 1월 그동안의 통계에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3]] 이로 인해서 2018년 6월 임금 상승률은 3.3%에서 2.8%로 하향 조정됐으나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이외에도 여러 자료가 문제가 있다고 하니 수정된 통계가 나와봐야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을듯.

일본 외 국가들

이 잃어버린 10년 덕분에 1990년대 후반이 되자 미국은 일본을 더이상 경계하지 않게 되었다. 그로인해 일본을 경계하던 미국여론이 일본을 중요한 미국의 우방이자 파트너로 여기는 여론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60%, `일본 신뢰'<日 외무성 여론조사>]] 일본이 미국을 금방이라도 따라잡을 것이라 우려하면서 일본 경제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하던 것도 1990년대 전반의 일이다.

파일:external/img.imnews.imbc.com/DN19980196-00_01414821.jpg [주식 가격 변화]

일본은 하시모토 류타로 임기[* 1996년~1998년]동안 일본경제는 주가 하락, 실업률 폭등, 아시아 금융위기 주범이라는 지탄을 받았고 그로 인해 미국 빌 클린턴 정부로부터 일본의 시장경제 개방에 대한 강한 압력을 받았다.[[4]] 이에 분노한 하시모토 내각은 미국과 철저하게 대립각을 세웠고 미국일본과의 관계는 2차 대전 이후로 최악으로 험악한 관계를 보였다.[* [닛케이 일일 변화 데이터]]

197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 전 스탠포드 대학교 MBA(경영대학원) 재직 교수인 톰 피터슨 등등 당대의 석학들이 일본을 경계하며 견제하는 사설을 우수수 쏟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1995년경 일본은 미국의 GDP의 72%까지 근접했었다. 당시 일본 국내 경제 전문가들 역시 일본의 경제력이 미국과 맞먹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까지 했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과의 협상에서 동등한 입장으로 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 예가 소니의 창업주였던 모리타 아키오가 썼던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이었다.

재발견?

파일:external/img.asiatoday.co.kr/510176(0)-384507_14002.jpg`

역으로 세계금융위기 이후 생각해 보니 그나마 일본은 연착륙에 성공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게 선진국들의 현실이다. 최소한 일본은 실업자 양산을 막으면서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로 여겨졌던 평생 직장은 되레 이런 시기에 일본의 중산층들을 20년 동안이라도 버티게 해줬던 놀라운 비결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소득 불평등은 몰라도, 일본의 자산 불평등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한참 덜하다. 오히려 경기가 회복되었다는 아베노믹스 하에서 불평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애초부터 몇몇 석학들이 말해오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0년대에 들어서도 그나마 미국, 영국 정도가 제대로 된 경제성장률을 회복한 거 보면 기존 유럽 국가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성장률은 일본과 비교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참고로 일본이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인구가 몇 년째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매년 천억 달러가 넘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실업률이 낮다는 독일조차 1%대 중후반의 경제 성장률을 답보하고 있다. 한때 2000년대 전반 저성장,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일본의 양적완화, 건설 촉진을 비웃던 서구 국가들이 이제는 그 정책들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파일:519115-13135479608007-Scott-Krisiloff.png 또한 일본이 과연 장기 불황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1990년대에는 거품 붕괴의 여파로 다른 선진국들보다 경제성장률이 낮았지만, 2000년대에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서구 국가들에 비해 1인당 국민 소득 증가율[* 미국이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인구가 2000년대에 이미 정체 수준이었다.]이 결코 낮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이 90년대 이후에 겪은 실업률 상승과 일자리의 질 악화, 성장률 둔화는 다른 선진국들도 겪은 것인데, 왜 일본만 장기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환자로 묘사하냐는 의견도 있다.

2010년대 이후로 청년 실업률이 매우 낮아졌다. 일본은 청년층의 인구 감소로 인해 청년 실업 문제는 여타 선진국보다 나은 수준이며 이로 인해 일개 아르바이트 직종마저도 인격적인 대우와 안정성을 내세우며 고용하겠다고 나설 정도이다. 다만 2010년대 현재 젊은 세대들의 취업률과는 별개로 잃어버린 10년 초기의 소비 시장 위축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고용의 대다수를 창출하며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다수 기업들이었다. 미국이 그동안 비교적 적절한 경제성장률을 보였던 것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민 증가로 인한 생산성 증가, 시장 확대와 이에 따른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 수준 높은 고등 교육 등을 선정할 수 있다. 북미유럽은 단순히 인도적이고 이념적인 이유로 이민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대책은 초고령화를 막는 것 뿐. 즉 이민이나 출산율 증가 정책 뿐이다. 다행히 출산율 쪽에서는 작년 기준으로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회복 추세다. 일본은 내부의 순혈주의 여론 때문에 가급적 후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워낙 사회 구조가 이상하게 꼬여 있어서 적어도 한 세대는 기다려야 할 전망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위기, 남유럽경제위기등을 한창 겪던 시기를 넘기고 2010년대 중반들어 미국은 역대최장기 경기 확장 기록을 세우는 한편 유럽경제도 살아나면서 이런 재평가는 2018년 시점에서 다소 줄어들었다. 아베노믹스가 제한적인 성과를 거뒀다고는 하지만, 일본이 지난 10년간 거의 제자리인데 비해 거의 40%가 증가한 미국은 물론 독일이나 영국도 20%이상 증가했다는 점에서 볼 때 일본 경제의 정체는 여전히 주요 경제대국사이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관련 문서

* 1997년 외환 위기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 그리스 경제위기
* 잃어버린 10년/한국
* 잃어버린 세대 

분류:금융위기분류:헤이세이 시대분류:일본의 경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