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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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고대 근동의 히브리인들로부터 기원한 민족. 연합 왕국이 분열된 이후 형성된 북이스라엘 왕국의 주민들의 후손이다. 21세기에도 독자적인 민족집단으로 존속하고 있다.

유대인과의 관계

옛 원수. 현재의 친구.

상기했듯,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되기 전까지 한 나라였던 동족들이다. 그러나 나라가 분열되자 북이스라엘 왕국아시리아에 점령되고, 남유다 왕국은 좀 더 뒤에 신 바빌로니아 왕국에게 점령당하며 유대인들은 바빌론에 끌려가는 바빌론 유수를 겪게 된다.

그리고 좀 더 세월이 흘러 유대인들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의해 해방되어서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며, 자기네들이 고대 이스라엘의 정통 후손이며 팔레스타인에 그대로 남아있던 북이스라엘인들은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며 이민족처럼 여기며 차별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하스모니안 왕조 시기에 유다 왕국을 재건한 뒤 사마리아를 침략하여 지배하게 된 뒤부터 사마리아인들을 매우 탄압했다.

다만 사마리아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취급되는 건 어이없다고 쳐도, 유대인들에게도 할 말이 꽤 많았던 건 사실이며 이는 유대인들의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처우와는 별개다. 북이스라엘이 망할 때 상당히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탈출에 성공해서 남유다 왕국으로 도망쳤던 건 사실이며 그 시기에 남유다가 극적인 경제적 성장을 이룬 것이 고고학적으로도 입증된다. 또한 남유다가 이후 북진해서 이스라엘의 영토 일부를 점령했을 때 그 지역의 이스라엘인들은 남유다에 동화되었다. 남유다는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해서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끌려갔었어도 의외로 혈통적, 문화적인 정체성은 나름대로의 상당한 노력을 통해 보존한 상태였다. 바빌론 유수 이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과정을 다룬 구약 성경에즈라서에도, 유대인들이 이방 민족과 혼인 혼혈을 많이 했으며 이교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적어도 근동의 다른 민족들에 비해선 정체성과 문화를 꽤 보존한 상태였고 이는 세계사적으로 이례적인 경우에 속한다.

물론 현대적, 역사적 상식으로 볼 때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차별하는 이유가 나름대로 근거는 꽤 있으나 합당했다곤 보기 어렵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또한 바빌로니아의 경우 아시리아와는 달리 유대 지역의 지방 세력들까지 모조리 철저하게 파괴하려 하진 않았고 주로 예루살렘 주변의 수도권에 관리 역량을 집중했으며, 때문에 유다의 제2수도권 격인 베냐민 지역 일대 지역 토호들은 나름대로의 세력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현대 한국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제3의 부류들인데, 적어도 알려진 자료로 판단하면 이들이 유수에서 돌아온 부류와 딱히 갈등이 있었다는 조짐은 없고, 또한 사마리아인에게 더욱 우호적이었다는 개연성도 보이지 않는다.

사마리아인에 대한 유대인의 비판은 혼혈 그 자체보다는 이방 종교와의 혼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문제를 간단하게 축약하기는 어렵지만, 대략적으로 말해서 헬레니즘 제국의 영향 때 사마리아 쪽은 헬레니즘을 적극 수용하여서, 유대 지역과는 다른 대우를 받기를 원했다. 또한 안티오코스 4세에게는 세금 면제를 탄원했으며, 성전의 이름을 '제우스 헬레니오스'로 바꾸었다.[* 유대고대사』 12.257-264, 358-361] 당연히 마카베오 전쟁 등으로 헬레니즘 제국에 강렬히 저항하던 유대인들 입장에선 피꺼솟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시 유대인들 역시도 그리스식 이름이 퍼지고 경전을 그리스어로 서술하는 등 헬레니즘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지만, 성전 이름에 제우스를 박아놓을 정도로 막나가지는 않았다.

단, 훗날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과의 갈등으로 재탄생한다는 건 대표적인 역사적 오해다. 이른바 팔레스타인인들 대부분은 오히려 옛 유대인들의 직계 후손이며, 차이가 있다면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는지, 받아들이지 않았는지의 여부이다. 오히려 이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몹시 싫어했던 옛 고대 유대인들의 후예다.

요새는 정 반대로 유대인들 쪽에서 아직까지 소수 민족으로서 전통적으로 교리를 따르는 사마리아인들을 오히려 흠모하는 모습도 많다.

문화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유대교의 많은 교리들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아서 성립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유대인들보다 사마리아인이 고대 이스라엘종교문화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사마리아인들이 믿었던 종교는 고대 바알 신앙 등 가나안 지방의 토속 신앙과 가까웠고 흔히 생각히는 유대교의 야훼 신앙과는 거리가 있었다.[* 유대교 경전인 타나크에서도 바알과 같은 가나안 신들이 나오는 등 다신교적 흔적이 다소 발견된다.] 하지만 B.C 400년 이후에 이 신앙은 사라지고 이후 사마리아인은 사마리아 토라를 중심으로 한 다른 유대교와는 약간 다른 야훼 신앙을 믿었다.

사마리아인들은 게리짐 산성소를 세웠다. 신학적으로도 그들은 사마리아 토라만을 믿었으므로, 당연히 유대교의 성지인 예루살렘 성소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이 성소 분리는 이스라엘-유대 왕국의 분열에서 이미 기원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 B.C 108년에 마카베오 반란으로 세워진 하스모니안 왕조는 게리짐 산 성소를 파괴하는 등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계속해서 탄압했다.[* 유대인들은 툭하면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들의 피가 섞인 잡종이라 부르며 자신들의 순혈주의를 강조하곤 했다.]

그리스도교 시대가 되자 로마 제국은 사마리아인을 박해하기 시작하여, 교회를 짓기 위해 그들의 성소가 있던 게리짐 산을 점령하고 사마리아인을 학살했다.

기독교에서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예수는 그들을 박해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의 대화(요한복음 4장 1절)[*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개역개정판)]를 보면 유대인들에 대한 당시 사마리아인들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이를 통해 유대인들이 당시 사마리아인을 취급하던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는 선한 사람의 예시로 들기도 하였다.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교개종한 사마리아인도 많이 나온다. 이 기독교로 개종한 사마리아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처럼 결국 민족 정체성을 잃고 평범한 일반 로마인이 되는 길을 걷게 된다.

현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Sofi_Tzadka.jpg 사마리아인 출신의 이스라엘 배우 소피 차다카

현대에는 겨우 800명 남짓한 소집단이지만 여전히 사마리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성서시대 이래 그들의 성지였던 게리짐 산에 있는 키르야트 루자라는 마을에 인구의 약 절반이 모여 산다. 이 지역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 지역인 나블루스 시[* 나블루스와 근방 무슬림 인구 대다수는 이슬람 통치기, 특히 오스만 제국 시절에 강제로 개종당한 사마리아인으로 알려져 있다.]와 가까우며,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 노력하는 등 잘 지내는 편이다.[* 이스라엘 전 대통령이자 역사학자였던 이츠하크 벤츠비에 따르면 사마리아인이 이슬람 통치자에게 툭하면 학살당할 뻔 한걸 이슬람으로 개종한 친족들이 종종 막아주었다고 한다.] 그 밖에 텔아비브 시 외곽에 인접한 홀론 시에도 모여 산다. 학살과 강제 개종으로 인한 지속적인 인구 유출로 현재 민족집단으로서 존속이 어려운 800명이라는 소수만 남아있고, 종교적인 이유에서 외부인의 진입이 쉽지 않아 유전병이 염려되는 수준이다. 소수의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결혼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사마리아인들은 종교경전의 언어로서 유대인들이 쓰는 것과 다른 사마리아어(또는 사마리아 히브리어)를 유지하고 있지만(문자부터가 다르다) 현재 사용언어는 히브리어 또는 아랍어이다.

분류:서아시아의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