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라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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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유대인의 주요 집단)] 영어: Mizrahim, Mizrahi Jews 히브리어: מזרחי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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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단 미즈라힘(미즈라흐 유대인)은 중동과 캅카스에 기원을 가지는 유대인 집단으로 분류된다. 미즈라흐(Mizrach)는 히브리어로 "동쪽"의 뜻이다. 현재 이스라엘 유대인 중 가장 많은 분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중동에 살았으니...

전세계에 350만명, 이스라엘에 320만명이 있다.

아슈케나즈 유대인들이 우대받는 이스라엘 특성상 ~~피부색이 비교적 하얀~~ 우즈베키스탄, 캅카스 일대에서 온 유대인들은 그냥 자신들의 출신 배경에 대해 입을 꼭 다물고 러시아계 유대인에 엮어 갈려는 성향이 크다.~~왜냐하면 세파르드 유대인들이랑 미즈라흐 유대인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자신들도 잘 아니까~~

현대 이스라엘의 미즈라흐 유대인들은 이집트, 예멘 등지에서 아랍어를 모국어로 쓰던 유대인들의 후손으로 정의하는게 더 편리할 것이다. 동유럽에 주로 거주하던 아쉬케나즈 유대인이 독일어의 영향을 받은 이디시어를 쓴 배경은 당시 동유럽에서 통상할 때 주로 독일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미즈라흐 유대인들이 아랍어를 쓰는 이유 역시 아랍어가 동지중해 일대에서 일상어이자 교역언어이기 때문이다.[* 세파르딤들이 쓰는 라디노어 역시 과거에 유대인 공동체가 로마 제국 시절부터 사용하던 라틴어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

미즈라힘의 조상은 세 갈래로 나뉜다. 1. 바빌론 유수 이후 이스라엘로 귀화하지 않고 메소포타미아에 남아있던 유대인[* 페르시아계 유대인 항목 참조] 2. 고대 로마 제국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던 유대인들 3. 유대인에 의해 개종한 고대 아랍인[*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유대교 역시 이방인 포교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는 종교이다. 다만 중세 이후로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탄압을 받으면서 포교를 체념하다시피해서 그렇지...]

역사

고대부터 유대인들은 시대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 종종 이웃 민족들에게 유대교를 포교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에돔인이 유대교로 개종한 것이 대표적] 헬레니즘 시대 및 로마 공화정 시대에는 안티오크알렉산드리아의 많은 그리스인들과 페니키아인들이 유대교의 체계적인 유일신 신앙의 매료되어 유대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렇게 로마 제국의 동방 영토에는 기독교가 출현하기 이전까지 유대인 개종자들이 꾸준히 증가하였다.[* 이들 유대교로 개종했던 그리스인들은 나중에 초기 기독교 사회의 중추를 구성했었다.] 특히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나라를 잃고 좌절했던 페니키아인들이 유대교로 대규모로 입교하였다.[* 포에니 전쟁 이후 지중해 서부의 해상 무역을 전부 그리스인들에게 빼앗겼던 페니키아인들이지만,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를 있는 이들의 해상무역망은 건재하였는데, 이 마지막 남은 해상 교역료에서도 그리스인들과 대립하는 와중에 페니키아인들은 일부러 그리스 문화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유대교를 믿음으로써 자신을 차별화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 인구는 개종자 수의 증가에 힘입어서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3~4세기 로마 제국 동방에서 기독교가 유행하게 되면서 안티오크와 팔레스티나의 유대교 공동체는 기독교 공동체에 밀려서 쇠퇴하게 되지만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는 계속 건재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기독교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홍해를 내왕하는 아랍인 교역상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포교 노력을 기울였으며, 덕분에 고대 말부터 이슬람 발흥 이전까지의 예멘[* 고대 예멘은 로마와 인도 간의 중계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아라비아 펠릭스(축복받은 아라비아)라고 불리던 지역이었다.]에서는 기독교와 유대교가 양대 종교로 자리잡으며 서로 경쟁하였다. 4세기 말에 힘야르 왕국이 유대교를 국교로 받아들였으나 기독교인의 수도 적지는 않았다.

아라비아 내륙에서도 적지 않은 수의 유대인들이 고대 아랍 다신교를 믿던 부족들 및 기독교도 부족들과 이웃해 살았다. 주로 오아시스에서 대추야자 과수원을 운영하던 부족들 중에는 예멘의 마리브 댐 붕괴 이후 기근을 피해서 이주한 부족들도 있었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부족들도 많았다. 이슬람의 발흥과 확장 이후 아라비아 반도의 과수원을 운영하던 유대인 부족들은 대거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추방당했으나, 예멘에서의 유대인 공동체는 현대까지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예멘 이외에 지역에서의 중동 유대인들의 역사는 라쉬둔 왕조우마이야 왕조의 팽창과 확장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마이야 왕조를 거치는 동안 레반트 지역에서는 그리스어가 힘을 잃고 아랍어가 주 사용언어로 자리매김했는데, 이러한 시대 상황으로 원래는 그리스어와 아람어를 사용했던 지중해 유대인들 상당수가 아랍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페르시아계 유대인 상당수 역시 아랍 이슬람 세계에 편입되어 아랍어를 사용하며 미즈라흐 유대인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아랍인들은 이슬람 황금기 치하에서 2등시민 대우를 받긴 했지만, 비잔틴 제국에서 종종 유대교를 적극적으로 탄압했을 때 트라우마가 남았기 때문인지 칼리프들에게 협조적인 편이었다.

십자군 전쟁이 벌어지던 와중에 지중해 동부의 많은 유대인들이 십자군들에게 학살과 약탈을 당하고, 알렉산드리아가 중세 후반기부터 흑사병의 유행으로 인구가 점점 줄어들며 쇠퇴하기 시작하자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유대인들은 다시 각지로 흩어졌다.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면서 중동 지역의 유대인들의 사회적 입지가 한 층 개선되었다. 이슬람 세계가 수구화되고 반지성주의가 횡행하던 상황에서 유대인 상당수가 의사나 고리대금업, 무역업과 상공업으로 본격적으로 재산을 축적하기 시작했으며, 오스만 제국 도회지의 상권을 두고 아르메니아인 및 그리스인들과 경쟁하였다. 아나톨리아 해안가 및 루멜리아에 있던 유대인들 상당수는 통상과 교역에 필요한 여러 가지 언어를 동시에 구상할 수 있었으므로, 종종 오스만 제국의 통역 보조로도 활약하며 아랍 무슬림 유목민이나 농부들보다도 나은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아랍어 사용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은 주로 아랍어만을 사용했으며 이들의 입지나 처지는 특별히 농부나 유목민들보다 나을 바 없는 처지였다. 오스만 제국 내에서의 유대인 집단들의 이러한 차이는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고 영토가 하나둘씩 잘라나가며 이스라엘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더욱 벌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유럽 영토 및 해안가에 살던 부유한 유대인 상인들은 여러 가지 언어에도 능통했기에 미국 등으로 이민가기에 여러모로 유리한 상황이었으며, 오늘날 이스라엘의 세파르딤으로 편입되었다. 중부 유럽의 아슈케나즈 유대인들이나 오스만 제국 서부 영토의 유대인은 외모도 흡사했으며 생활 환경도 비슷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아시아 내륙 영토에 살던 유대인들은 개종한 아랍계 유대인들과 통혼한 역사로 외모도 다른 유럽계 유대인들과 확연히 차이날 뿐더러, 문화 차이도 심하고 결정적으로 모국어나 다름없는 아랍어 이외에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아랍어권 도시였던 예루살렘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20세기 초반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 인구는 3%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대부분은 극도로 가난한 빈민들로 비위생적이고 비좁은 유대인 쿼터에 밀집해서 살았다. 예루살렘 근교의 무슬림 농민들은 이웃 유대인들과 똑같은 아랍어 방언으로 소통하며 많은 관습을 공유했다. 이는 팔레스타인의 무슬림 농민 대부분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후손으로써 비잔틴 제국 시대에 반강제적으로 기독교로 개종당한 뒤, 이슬람 왕조에서는 지즈야를 강요받아 하나둘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척 했다가 나중에 유대교 율법을 잊어버려서 나중에 진짜로 무슬림이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 건조하고 척박한 팔레스타인 땅을 경작하는 유대인 농민이 지즈야를 납부하면서 생계까지 동시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미즈라힘들 중 아랍계 유대인은 이스라엘인 무슬림 혹은 팔레스타인인과 사실상 관습과 문화까지도 대부분 같이 공유하는 친척 관계나 다름없다.

원래는 미즈라흐 유대인과 세파르드 유대인은 종교 의례나 종파 같은 부분에서는 같은 전례를 공유하는 같은 부류이지만, 상술한 여러 가지 차이점 때문에 오늘날 현대 이스라엘에서는 미즈라힘으로 분류된 유대인들과 세파르딤으로 분류된 유대인들 사이에서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현대 이스라엘은 아슈케나즈 유대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아슈케나즈 유대인과 흡사한 집단일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고 아슈케나즈 유대인과 차이점이 클 수록 사회적 지위가 낮기 때문이다.

세파르딤?

보통 세파르딤(세파르드 유대인)에 포함되는 개념으로서 생각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현대 이스라엘에서는 아랍어를 모국어로 썼으면 미즈라힘, 유럽 출신이라서 아랍어를 모르면 세파르딤으로 구분된다.[* 유럽계 세파르드 유대인이 쓰는 라디노어는 현재 사어화 되었다.] 예전 이스라엘에선 분파를 구분할 때는 의례를 기준으로 하였는데, 아슈케나짐이 아니면 다 세파르딤으로 싸잡아서 분류되었다. 그래서 "미즈라힘"은 아슈케나짐과 세파르딤으로만 구분을 하는 이분법 사회의 반발에서 비롯된 용어로서, 편의적 경향이 강하다.

인도계 유대인

인도 해안가 곳곳에 무역업을 하던 수천명 단위의 유대인 공동체가 여럿 분포되어 있으나, 인구도 공기 비중에다가 상권 경쟁에서도 자이나교 신자들이나 조로아스터교[* 7세기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할 때 인도로 피난간 페르시아인들의 후손으로 인도에 정착한 역사가 천년이 넘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화할 당시 인도인 중에서 영어를 제일 빨리 배운 덕택에 근현대 인도의 상권을 장악했다.] 신자들 및 여타 인도 현지인들에게 밀리면서 별로 존재감은 없다고 한다.(...) 현재는 가능한한 이스라엘로 이민가는 추세라고

현대에는 인도 동부의 티베트-버마계 소수민족 중에서 부족 전체가 유대교로 개종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들 부족들은 원래는 애니미즘을 믿던 부족들인데 처음에는 기독교를 믿었다가 1970년대 들어서 자신들이 고대 유대인의 잃어버린 지파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유대교로 개종했으나, 유전자 조사 결과 완전 사실무근(...)[* 수백명을 상대로 유전자를 조사했는데 중동계 유전자조차 전혀 섞이지 않은 걸로 판명되었다.]으로 판명되었다.~~인도판 환빠~~ 17,000여명의 이들 티베트-버마계 유대교 신자들은 인도와 미얀마 사이의 국경 인근, 마니푸르미조람 주를 중심으로 분포한다. 인구가 아쉬운 유대교 입장에서는 이런 환빠들도 가급적 받아주려는 추세인 듯.

출신 인물

* 자크 데리다
* 요시 베나윤
* 엘리 코헨
* 마이모니데스 : 안달루시아 코르도바 출신의 유대인 의사로 나중에 아이유브 왕조로 가서 살라딘의 주치의가 된다. 살라딘의 주치의로 인정받은 실력에다 철학 관련한 서적도 몇 권 남긴 먼치킨으로 세파르딤들과 미즈라힘들이 공통적으로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이다. ~~근데 왜 국내에는 이 사람 소개하는 서적이 거의 없다냐~~

분류:유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