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계 유대인

From Hidden Wiki
Jump to navigation Jump to search

[include(틀:유대인의 주요 집단)] [목차]

개요

Persian Jews 또는 Iranian Jews

페르시아계 유대인 또는 이란계 유대인페르시아(현재 이란)에서 거주 하고 있었고, 현재도 거기 거주하거나 거기서 정체성을 찾는 유대인들을 일컫는다. 전세계에 30만에서 35만명이 있으며 이스라엘내 20만에서 25만명, 미국에 6만에서 8만명, 이란 내에 8,756명에서 25,000명 사이의 인구가 있다.

초기 역사

바빌론 유수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노예로 잡혀서 메소포타미아 일대로 끌려갔는데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키루스는 이들을 해방시키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때 귀환하지 않고 그대로 메소포타미아 일대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페르시아계 유대인들의 직계 조상이다. 이들은 페르시아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여타 유대인 공동체들 이를테면 부하라 유대인 및 조지아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의 소규모 유대인 공동체 구성원들의 직계 조상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카프카스의 고립된 유대인 공동체는 여타 아슈케나즈 및 세파르드 유대인 공동체와 유대교 교리에서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카프카스 산악지대에 고립된 소규모 유대인 공동체들은 여타 유대인 공동체들과 언어도 다르고 유대교 교리도 적지 않은 차이를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이들 대부분이 이스라엘로 이주한 후, 아슈케나즈 유대인들과 동화하고자 입을 닫고 살아서(...) 이들에 대한 연구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중세

사산조 페르시아, 이슬람 칼리프조, 사파히 왕조 등을 거치면서도 다른 중동 지역 유대인 공동체처럼 번성하였다.라는 간단한 한 줄 짜리 서술이 적혀 있었는데 페르시아의 유대인들은 아르메니아계 이란인들에게 밀려서 기세를 그렇게 펴지 못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의 경우 자신들의 권리를 확보하게 위해서 무슬림 혹은 조로아스터교도 권력자들에게 선물공세로 일관하여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권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상권을 장악하다시피 했지만, 유대인은 그런 거 없었다.

오스만 제국에서 유대인들이 통역으로 맹활약했던 것과 다르게 사파비 왕조,카자르 왕조의 유대인들은 별 힘이 없었다. 당시 이란의 유대인들이 주로 활약했던~~입에 풀칠하던~~ 분야는 의료 분야였는데 그 이유가 가관이다. "무슬림이 이슬람 율법을 공부하는 대신에 의학을 공부하는 것은 신앙심이 부족해서이다."~~보코하람~~라는 인식이 중세 후기부터 널리 퍼지면서, 무슬림들이 의학을 공부하는 것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정작 중세 의학 기술이 이븐 시나를 비롯한 무슬림들에 의해서 집성되고 발전되었음을 생각한다면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하지만 이븐 시나 역시 주류 무슬림은 아니고 쉬아파 중에서도 이단 취급 받는 이스마일파 신도였으며, 이븐 시나의 치료 요법에는 상사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난교(...)를 하면 된다라는 등의 비이슬람적인 내용도 적지는 않았다.]

이들이 오스만 제국의 유대인 동포들 못지 않게 활약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바로 몽골 제국이 이란 전역을 정복한 직후 일 칸국 시대로, 당시 인구의 절대다수였던 무슬림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 칸국에서는 유대인들을 관료로 중용하였다. 일 칸국의 적지 않은 유대인들은 중국의 원나라로도 이주하여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물론 일 칸국이 몰락하고 사파비 왕조가 등장한 이후로는 다시 쩌리로...

근, 현대

고대와 중세에 강성했던 페르시아가 근현대가 되면서 황폐하고 가난한 지역으로 전락하면서 페르시아계 유대인 공동체도 몰락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시골 지역의 유대인들은 가난하고 고립된 상황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경우가 계속 늘어났고, 도회지에 사는 유대인들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생활 기반을 잠식당하며 경제적인 곤경을 겪었다. 적지 않은 페르시아계 유대인들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없는 중앙아시아의 부하라 시를 중심으로 이주하였다. 부하라 시의 유대인 공동체들은 투르크계 지배자들의 눈치 때문에 이슬람을 믿는 척 하면서 집에서는 몰래 유대교를 신앙하는 자들이었다.

카프카스 지역에 고립된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 당시 끌려온 고대 유대인들의 후손인 특성상 전례 뿐만이 아니라 교리 전반에서 미즈라흐 및 세파르드 유대인들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리스의 일부 유대인 공동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일부 그리스 유대인들은 사두개파의 교리를 아직도 믿고 있다 한다.] 19세기부터 카프카스 지역이 조금씩 러시아 제국에 점령되기 시작하면서 이 일대의 유대인들은 러시아인들과 조우하며 서구화되었다. 특히 교역 요충지 중 하나였던 중세부터 트빌리시는 카프카스 유대인들의 주요 터전 중의 하나였다. 이들 카프카스 무슬림들은 예루살렘 기준으로 동방에 있다는 이유로 미즈라힘으로 분류되기도 하나, 미즈라힘들과 전례는 물론 교리조차도 크게 차이가 나이게 페르시아계 유대인 혹은 소수 유대교 종파로 인정되는 추세이다.

페르시아계 유대인에게는 러시아의 카프카스 점령 이외에도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더 있었다. 바로 이스라엘의 건국과 이란 이슬람 혁명이다. 시오니즘에 동조하는 세력은 이스라엘로 넘어가기도 하였지만, 급속히 붕괴한 아랍권 유대인 공동체와는 달리 존속하였다.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한 때 '이스라엘의 개'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친유대 국가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동안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빼았겼던 경제적 이권을 되찼고 신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중동전쟁의 포화에서 이란은 없었으니까...

기쁨도 잠시 이란에서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180도 변해버렸다. 호메이니와 그의 친구들은 ~~국제사회의 눈치 때문에~~ 유대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 행위는 자제하였지만, 팔레비 왕조 당시 페르시아계 유대인들이 누렸던 특권을 대폭 제한하고 아르메니아인들은 패자부활전(...)에 성공하면서 페르시아계 유대인들은 다시금 몰락한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부하라에서 몰래 유대교를 믿던 인구 상당수는 이스라엘로 귀화했다. 그러나 유대교를 믿던 이들의 특성상 소련에서 무신론을 권장하고 종교를 탄압하는 와중에 많은 가정에서 유대교 교리를 아예 통째로 까먹은 관계로(...) 그냥 러시아계~~응? 너네가 언제 러시아인이었니?~~ 우즈벡인으로 귀화해서 조용히 입 닦고 사는 사람도 있는 듯 하다. 이스라엘로 이주한 부하라계 유대인들도 ~~유대교 교리를 다 잊어버린게 창피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입 싹 닫고 그냥 러시아계 유대인에 묻혀갈려고 하는 경향이 크다.

현재

현재까지도 이들은 이란, 이스라엘 등지에 분포한다. 이란에서는 최대 5만명 가까이 있으며, 이는 작아 보이지만 현존하는 유대인 공동체 중 큰 편에 속한다. 이들은 이란 국민과 같은 의무를 진다. 심지어 군대에도 같이 징집된다! 이란- 이라크 전쟁에서도 참전했으며, 사상자 또한 나왔다. 이슬람 혁명 이후 반유대 감정이 올라갔지만, 이들에게는 이란 국회 의석중 한자리가 여전히 보장되고 있다. 이스라엘 방문도 가능하다. 다만 이스라엘과 국교가 없고, 본국에서 허락을 받아야 하고, 제 3국 (주로 터키)을 거치고, 이스라엘 비자도 받아야 하니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과 미국 등지에도 페르시아계 유태인으로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은 수십만명에 달한다.

현재에도 맥을 잇는 몇 안되는 고대 유대인 공동체이지만, 많은 이가 정체성이 서로 못잡아 먹어 난리인 이란및 이스라엘에 걸쳐있어 본국에서의 세가 약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사실상의 조국인 이란에게 끌리는 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정착촌 확장을 위해 시오니스트는 여기서도 인구를 빼갈려고 꼬드긴다. 하지만 유대인이 이들처럼 2중 정체성을 애착을 가지고 유지하는 경우는 많지않다. 본국인 이란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각별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란내의 인식은 전직 대통령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답이 잘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아마디네자드는 자신의 딸이 만약 유대인과 결혼한다면 무작정 반대가 아니라 그 사람 그 자체를 보겠다고 답했다. 이는 곧 유대인은 페르시아 역사에 수많은 획을 놓은 소중한 유산이며, "이스라엘국=유대인"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말.

분류:유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