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법/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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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 문서: 금주법, 흑역사/목록/정치와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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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禁酒法 / The Prohibition }}}

[목차]

개요

>Section 1. After one year from the ratification of this article the manufacture, sale, or transportation of intoxicating liquors within, the importation thereof into, or the exportation thereof from the United States and all territory subject to the jurisdiction thereof for beverage purposes is hereby prohibited. > >Section 2. The Congress and the several States shall have concurrent power to enforce this article by appropriate legislation. > >Section 3. This article shall be inoperative unless it shall have been ratified as an amendment to the Constitution by the legislatures of the several States, as provided in the Constitution, within seven years from the date of the submission hereof to the States by the Congress. >---- >제1절. 이 조항이 비준된 지 1년 후, 미국과 모든 사법권이 미치는 영토[* 필리핀쿠바 등 당시에 존재하던 미국식민지, 그리고 미국의 외국 대사관외교공관들이 이에 해당된다.]에서 음료용 주류의 제조, 판매, 또는 운송, 수입, 수출은 금지된다. > >제2절. 의회와 여러 주는 적절한 사법 조치를 취함으로써 이 조항을 동시에 강제할 수 있는 억제력을 행사한다. > >제3절. 이 조항은 여러 주의 입법 기관에 의해 헌법의 수정안으로써 상정된 지 7년 이내 비준받지 못한다면 무효화될 것이다. >---- >미국 수정헌법 18조

을 금지하던 수정헌법 18조를 뜻하는 표현이다. 줄여서 Prohibition이며, 이 수정헌법이 적용되던 1920~1933년은 Prohibition Era로 굳었다.

금주 운동

금주 운동의 시작은 사회적인 이유와 종교적인 이유에서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은 구미 제국에서 사회 개선 운동이나 도덕 재건 운동이 일어나는 시기라 마침 금주 운동도 최고 고조의 시기였다. 이미 유럽 각국에서는 금주 운동 단체가 출범했으며 영국에서는 1835년에 전국 절대 금주 교회가 출범하여 금주 집회가 열었다. 또한 술의 대안으로 홍차를 밀면서 금주 운동은 전세계로 퍼졌으며, 19세기 후반에 스위스,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에서도 금주 단체가 성립하게 되었다.

입법 계기와 그에 대한 논란

미국에서도 1890년대 들어서 금주동맹이 결성되면서 금주에 대한 연방법 제정이 본격화 되었다. 금주법 입법을 주도한 측은 농촌지역의 개신교 세력인 금주 십자군과 로비 단체인 안티살롱 동맹, 기독교 여성단체인 여성기독교금주연맹 등이었다. 특히 금주주의 페미니스트 운동가 캐리 네이션(Carrie Nation)은, "예수의 불독"을 자칭하며 술집을 폐쇄하기 위해 직접 도끼질을 하다가 30번이나 체포되기도 했다.

그 결과 1917년에는 이미 미국의 주 중 2/3 이상이 금주법을 시행하고 있었고, 수정헌법 18조로 금주를 헌법에 못박았으며 그에 근거한 금주법안인 볼스티드 법(Volstead Act)안이 1917년 8월 1일에 제출되어 1919년에 상원을 통과했다. 이에 민주당의 윌슨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당시 의회는 공화당이 다수인 상황이라 재상정을 거쳐 그대로 통과시킨 후 미국 법률[* 대통령이 법률에 거부권을 행사 했다고 하더라도 국회에서 재상정해서 통과되면 무조건 통과시켜야 한다.]에 따라 1920년부터 여성의 참정권 부여와 함께 전국에 걸친 금주법이 시행되었다.

당시에 만들어진 볼스티드 법(Volstead Act)이 알코올농도가 0.5% 이상이면 불법으로 규정지었다. 모든 술이 다 걸릴 수밖에 없는 기준이다. 결국은 헌법에서 술을 거래하는 것을 빼도 박도 못하게 위법으로 만들어 버린 셈. 1920년에 이 법은 미국 전역에서 시행되었다.

* 여담으로 0.5% 기준은 포도주와 포도쥬스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준이다. 포도쥬스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면 자연발효 때문에 약간의 알코올이 생겨난다. 따라서 포도 발효 액체의 알콜 함유량 한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건 금주법 제정 과정의 공청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었던 부분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영향이라는 설

미국도 초기 식민지 시대때 매사추세츠의 법원에서 럼,위스키, 와인, 브랜디 같은 주류를 불법으로 규정한 적이 있다. 그러다 184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금주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감리교가 이를 주도하였다. 특히 목사 마크 A. 매튜스는 정치적 부패와 성매매를 술과 연관시켜 금주운동을 전개해 나갔는데, 그 결과 메인 주에서 약간의 성공을 거두어 1851년에 법률로 통과된 적이 있다.

몇몇 정치인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1910~20년대 들어서 미국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와 도시 이주민 유입, 대량의 범죄 발생 등을 구조적인 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음주, 흡연, 성적인 문란 등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했고, 또 이민자들에게 일자리 소개하는 술집을 정치 부패의 온상으로 간주하여 금주법을 주도해 나갔다.

독일계 이민자 견제의 일환이었다는 설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감정이 악화일로로 치달은 미국독일 양국 간의 외교 감정으로 말미암아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 이민자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1919년 1월에 수정헌법 18조를 제정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독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당시 손쉽게 뛰어들 수 있었던 양조업을 견제하고자 했던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이 시각에서는 볼스티드 법의 기준인 0.5%가 맥주를 노리고 정해졌음을 근거로 든다. 당시 시판 중이었던 맥주의 알코올농도가 2.5% 내지는 3% 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반박이 되어 있다. 양조업 자체가 미국의 전체 산업에서 그다지 크지 않은 업종인데 금주법의 결과로서 모두가 예측할 있었듯이 거의 모든 남성이 마시는 술을 금지한다는게 애초에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일단 미국은 독일계 이민자의 비중이 굉장히 큰 나라인데 이들의 미국적응을 돕고 추가적인 인력을 끌어오기 위해 미국정부는 사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등 주류 게르만계 미국인들에게 차별받는 민족들의 적응에도 사력을 다하던 시기였는데 미국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독일인들의 적응을 견제하기 위해 그런 법을 만들었다는 것은 모순이다.

더군다나 당시 미국의 주류산업의 중심은 위스키와 진이었고 그 다음이 포도주였다. 한국인들이 만주까지 가서 벼농사를 지었듯이 전통적으로 위스키는 영국, 포도주는 프랑스인 맥주는 독일인. 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실제로 이들이 이런쪽으로 종사한건 사실인데. 당시 미국은 위스키와 진이 압도적인 주류상품이었고 가정용/종교제례용으로 포도주 수요가 있는 것이 그 다음이었다. 당연히 잉글랜드와 프랑스계가 양조업을 주도하고 있었고 금액 기준 미국 주류 소비량의 80%가 포도주와 위스키 진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맥주는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전세계에서 비교적 맥주소비가 굉장히 적은 나라에 속했고 금주법 당시에 마피아들이 밀조/밀수했던 술도 90%가 위스키의 밀조주인 문샤인이었다. 스피크이지라고 불리던 밀주판매점에서도 대부분은 위스키와 그 칵테일만을 취급했다. 맥주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 매우 나아진 지금도 미국은 맥주는 집에서나 마시는거고 바에 가서는 위스키나 진을 마시는게 보편적이다.

시행 결과

> 역사상 이보다 더 기만적인 법도, 이보다 더 위선적인 법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술을 마셨다. >---- >- 빌 브라이슨

>내가 만든 술을 밀주라고 부르던 인간들이 그걸 은쟁반에 담아서 내놓으니까 '접대'라고 부르면서 기뻐한다. 내가 이 사업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정치인들처럼 비싼 옷을 입고 개소리를 지걸이는 한심한 인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 알 카포네

금주법은 마피아조직폭력배들에게만 힘을 실어주었다. 초창기에 금주법을 지지한 사람도 "어? 이게 아닌데?" 하는 식으로 부조리를 깨닫고 대대적으로 금주법 반대 운동을 일으켰다. 한때는 지지자였던 사람들도 등을 돌릴 만큼 엉터리였다는 소리다.

금주법이 시행된 직후부터 미국 정부는 100억 달러가 넘는 주세를[* 주세는 어느 지역에서나 중요한 예산 공급원이다. 미국 연방정부도 위스키에 세금을 물린 뒤부터(단 이때는 위스키 반란같은 일을 겪기도 했다.) 주세를 거두었다. 주세는 그만큼 중요한 수단이다.] 거두지 못했다. 또한 농부들은 금주법 때문에 날벼락을 맞았다. 술은 보리, 옥수수, 포도 같은 농산물로 제작되기 때문에, 농부들에게 양조업자는 중요한 손님이다. 손님들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니까, 농부들도 수익을 내지 못하였다. 날이 갈수록 재고가 늘어나는데도, 소비자는 비슷했기 때문이다. 재고를 방치하면 관리비가 더 들어가는 판국이며, 조금만 만들기에는 효율이 너무 나빴다. 농부들로서는 해결책이 없었다. 결국 양조업자들은 니어 비어(Near Beer. 도수 0.5% 맥주) 등을 생산했지만, 시장에서는 외면을 받았다.

이런데도 공화당과 금주법 지지자들은 희생을 감수하고 금주법으로 사회를 건전한 쪽으로 바꿀 야망에만 몰두했다. 문제는 금주법에서 비롯된 부작용이 속출해서, 사회가 더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오랫동안 술을 마시던 문화권에서 갑자기 술을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여담으로 이슬람권은 술을 담을때 쓸 물 자체가 귀했던지라 이슬람의 발호 이전부터 음주 자체를 별로 하지 않았던데다가, 마유주나 대추야자술 등 식수조차 부족한 지역에서 식수 대용으로 쓰이는 술은 허가했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 술 대신 커피를 마셔서 부작용이 없었다는 말도 있지만, 미국이라고 커피가 없었던건 아니니... 게다가 금주법을 만든 하딩은 폭탄주를 먹고 금주법을 지지한 후버 대통령은 꼼수를 써서 술마시는 지경이었다...

그나마 합법적인 루트인 성찬용, 종교용 포도주(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의 성체성사에서 쓰이는 포도주), 의료용 브랜디[*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 개츠비가 이걸로 떼돈을 벌었다. 자기는 약국 몇 개로 부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주변 인물은 하나같이 술로 떼돈 벌었다고 확신한다.] 소비량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또한 미국에서 술을 팔거나 만드는 길만 막혔을 뿐이지, 술을 마시는 거 자체는 그때도 불법이 아니었다. 실제로 유람선들은 이런 식으로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서 미국 영해 밖에서 술잔치를 벌였다.[* 세금이나 환경규제 때문에 내전으로 급전이 필요하고 규제가 불가능한 나라에, 유람선 같은 배가 많이 등록된다.] 그런데다가 알코올 중독을 고칠 시기마저 놓친 사람이 늘어났다. 술을 합법으로 사지 못하던 세상이라서, 알코올 중독자들이 의사에게 병을 숨겼기 때문이다.

단속도 많았다. 100년 역사를 자랑했던 유명한 음식점 델 모나코(Del Monaco)는 대낮에 개최한 비밀 무도회에서, 차보다 약간 더 자극적인 음료를 손님에게 제공했다가 박살이 났다. 비밀 수사관 몇몇이 손님으로 잠입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가게는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고 폐업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마셔서 문제가 커졌다. 이때는 알코올 소비량이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까지 간 광란의 시기였다. 그야말로 Speakeasy[* 무허가 주점.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무허가 주점을 저렇게 불렀다. 현대로 치자면 단골에게 소개받는 형식으로 들어가는 술집, 아는 사람만 아는 술집 정도다.]의 전성기다.

이때에는 밀주가 기승을 부렸다. 이웃나라인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술을 밀수하는 사례가 늘어났으며, 미국 현지에서도 생산된 밀주가 넘쳐났다. 당연히 기생충 같은 조직폭력배들이 돈 냄새를 맡아서 밀주 사업에 개입하고 때마침 20세기 초 이탈리아 이민자 가운데는, 대규모 경찰수사를 피해 도주한 시칠리아 마피아까지 섞였다. 동네 불량배로 지내던 마피아들은 밀주 사업으로 세력을 키우면서 전국구 폭력단으로 변모했다. 갱스터들은 이권을 차지하려고 집단 싸움과 살인 청부 같은 강력범죄, 엽기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평범한 시민들마저 범죄에 손을 뻗쳤다. 여기에서 끝나도 문제가 많은데, 대공황까지 일어나서 사회는 엉망이 되었다. 실제로 시카고 같은 곳에서는 조직원들이 검경이나 시장 같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뇌물을 먹였다. 엘리엇 네스도 알 카포네를 탈세 혐의로[* 미국은 범죄자들조차 탈세 혐의가 무서워 가짜 소득을 만들어내 세금을 내는 실정이다. 이는 미국 국세청이 가차없기 짝이 없기 떄문] 겨우 법정에 넘길 정도로 부정부패가 들끓었다.

더군다나 합법적인 제조 기준마저 없어졌기 때문에 불량품이 판을 쳤다. 썩은 놈을 팔아먹거나, 술에 독을 섞은 부류까지 나왔다. 술을 증류하면 에탄올과 메탄올이 같이 나오기 때문에 둘을 제대로 분리하는 과정(분별증류법)이 필요하다. 그런 기술이 부족하거나 생산비를 줄이려고 메탄올이 섞인 술을 만드는 사례까지 나오고 말았다. 나중에는 공업용 에탄올로 제작한 술까지 나왔다. 일부는 공업용 에탄올을 아끼려고 메탄올을 섞어서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다.[* 이거랑 비슷한 사례가, 영국이 산업혁명을 맞이했을 때 일어났다. 영국은 홍차 원가를 아끼려고 고양이 대변이나 스트라크닌(독극물) 등을 섞어서 팔아먹었다. 사람들이 자극적인 맛에 중독되는 바람에, 스트라크닌이 포함되지 않은 홍차는 덜 팔렸다.] 보다 못한 미국 정부는 공업용 에탄올에 메탄올을 섞어서 밀주 산업을 꺾으려 들었지만, 밀주 때문에 사망한 사람만 늘어났다. 그나마 여러 법의학자가 밀주는 목숨에 위험하다고 꾸준히 말해주지 않았다면 사망자는 더 늘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알코올 농도가 100%인 술도 있었다고 한다. 이걸 먹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서 죽은 사람도 속출했다. 게다가 알코올 농도가 100%인 놈은 살인무기로도 악용되었다.(혈중알콜농도가 1%이상이면 죽을 수 있다)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

수요 측면

다들 알다시피 미국 시민 대다수는 유럽 출신 이민자들 일족에서 파생되었다.[* 아닌 경우는 아시아,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른 대륙의 일족들, 네이티브 아메리칸 일족 정도다. ~~물론 이들이라고 술을 안 마실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당장에 독일의 경우 성인 시성을 하기 위해 악마의 대변인과의 논쟁에서 악마의 대변인이 시성 대상자가 여인에게 맥주를 준 것을 트집잡았는데 반대측에서 "독일인에게 맥주는 술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는데 이게 먹혀들어가 결국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유럽은 수질이 나빠서 물을 마시려면 가공 기술이 필요했다. 운이 좋게도 가장 간단하고, 돈이 적게 드는 방식이 술이었다.~~어린이는?~~[* 사실 '물 쓰듯 쓴다'는 말로 무언가 펑펑 쓰는 것을 물에 비유하는 한국이 특이 케이스인거지 전세계적으로 식수 확보는 항상 어려운 일이였다. 당장 이웃 일본만 해도 사면이 바다인 섬나라이지만 바닷물을 마실수는 없고, 중국도 황하 같은 거대 수원이 많지만 모래 섞인 황하물을 먹을수는 없어서(그리고 내륙 지방은 그마저도 없다)--양자강은-- 이 국가들 모두 물을 정화시킬 수 있는 차 문화가 많이 발달했다.] 또한 서유럽과 남유럽은 그렇다 쳐도, 북유럽과 동유럽은 날씨까지 춥다. 그래서 여기서는 열량을 쉽게 확보할 수단으로 술을 골랐다. 참고로 북유럽과 동유럽은 열량이 높은 음식도 즐긴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게 기후가 나빠 채소 재배가 어려운 탓도 있기 때문이다. 즉 채식은 수요도 없고 공급도 부족해서 육식이 선호된 것. 러시아 요리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채식은 거의 없다.] 상황이 이랬기 때문에 유럽에서 술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살아남으려고 술을 입에 대는 버릇이 대대로 계승되자, 유럽에서 음주는 기본 생활이자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술 먹고 행패를 부린 놈에게 관대할 줄 알면 오산이다. 오히려 더 엄격하다.] 술이 일상인 곳에서 건너온 일족이 결성한 국가가 미국이다. 20세기 초에는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폴란드 같은 곳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게다가 러시아에서 보드카는 각별한 뜻이 들어간 술이다. 실제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보드카 유통에 제동을 많이 걸다가 인기를 잃었다. 안 그래도 무리한 개방으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죄로 욕을 처먹던 상황에서 저랬으니 더욱 심각하다. 하지만 그 덕에 러시아는 그 시기엔 평균 수명이 늘었다(...) 하지만 옐친 집권 이후 도로아미타불]

교리를 분석해봐도 문제가 생긴다. 유럽인이 가장 많이 믿는 기독교에서는 술을 특별한 물건을 대접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기적.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다는 가나의 혼인잔치는 비기독교인이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얘기다. 멀쩡한 물을 술로 바꾼 까닭은, 놀랍게도 목이 마른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맹물은 도무지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으며, 자신이 고주망태가 될 의도는 더더욱 없었다. 더불어 역시 비기독교인에게도 유명한 빵은 자신의 몸이고 술은 자신의 피라고 부르며 제자들에게 먹인 최후의 만찬 이야기도, 술이 일상에서 중요한 먹거리였음을 반영한 셈이다. 즉 대다수의 유럽인이 술을 마시는 것은 조상 대대로 믿어온 교리상으로도 올바른 것이였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이런 상황에 의거하여 신의 말씀을 전파하고, 보존하는 수도원에서 술을 담가 마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다. 종교적으로 음주는 의무이며, 사람들이 부족한 식수를 보충하려는 의도까지 맞물렸다.

결국 아주 오래전부터 술을 안 마시던 문화였거나, 음주를 금지하는 종교에 몸담은 사람[* 이슬람이 바로 이러한 사례다. 유럽처럼 먹고 살려고 술을 담글 필요가 없으며, 교리에서도 술을 금지했기 때문에 음주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슬람에서 술을 대신하려고 찾은 음료가 커피다. 커피는 이슬람에서 금지하지 않은 음료이며, 여기서도 아라크 주만은 술이 허용된다. 유럽은 수질이 나빠서 술을 찾은 사례이며, 이슬람교가 일어난 중동에서는 아예 물이 귀했다. 하지만 그 이슬람교 지역에서도 아라크 주만은 허용했을 정도라니 말 다했다.]이 아닌 이상, 금주법이 갑자기 나오면 대재앙이 생긴다. 조상 대대로 술을 마시다가 하루아침에 금지 처분을 받으니까, 사람들은 술을 마시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캐나다나 영국에서 3달러 정도에 구하는 술을, 웃돈까지 줘가면서 손에 넣는 사람이 나왔다.

상황이 이러니 원래 술에 관심도 없던 사람마저, 술이 새로운 돈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상황은 갈수록 태산이 되었다. 제일 골치 아픈 사실은, 이전에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사람도, 금주법이 시행된 뒤부터 술을 마셨다. 음주를 정부에서 차단하니까 그 반작용이 튀어나온 사례다. 안 하던 짓도 하지 말라고 하면 괜히 하는 일이 사회 단위로 벌어진 셈.

공급 측면

마약을 제조하려면 개인이 구하기 힘든 원료, 도구에 고급 화학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술을 만들 때 필요한 원료는 곡물이나 과실, 그리고 물과 곰팡이다. 원료와 물, 곰팡이를 잘 섞고, 멸균된 용기에 집어넣고 기다리면 술이 나온다. 막걸리를 만들 때는 쌀, 누룩(곰팡이), 물만 있으면 된다. 적당한 포도 한 송이만으로도 와인을 제작할 수가 있으며, 과즙이나 꿀물 따위를 입구가 넓은 병에 넣고 천으로 덮어 적당한 온도에 방치해도 알코올이 나온다. 여기에 증류기만 갖추면 증류주까지 나온다. 금주법이 시행된 뒤부터, 자택에 있는 욕조에다 보리와 맥아, 물을 혼합한 채로 기다라다가 단속반에게 걸린 사람도 엄청 많다. 어린이가 술이 담긴 욕조에 빠져 죽는 사고도 가끔씩 일어날 정도였다. 사람 수가 적어 드문드문 살다보니 감시가 힘든 미국 남부를 비롯한 시골에서는, 문샤인 같은 밀주를 만들어 먹거나 내다 파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로오리스(Lawless, 국내 개봉명은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가 이 금주법 시기에 문샤인 제조업을 했던 3형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실화 기반의 소설이 원작)

그리고 미국 북쪽과 남쪽에는 캐나다와 멕시코가 있기 때문에 술을 팔 방법도 많으며, 둘 다 술 산업이 컸다. 이쪽에도 유럽계 일족들이 자리잡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캐나다 주류는 미국 사이에는 오대호라는 완벽한 밀수무역로[* 오대호의 총 크기는 한반도 면적만 하며 내륙호수는 바람과 조류가 적어서 소형선박을 사용하기 쉬워고 단속이 더 어렵다, 또한 이 시기에는 레이더는 커녕, 도플러 효과의 사용법 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시절이다.]와 디트로이트, 시카고, 뉴욕이라는 최적의 소비지와 가까웠기 때문에, 럼 러닝(Rum-running) 이라 불리며 엄청나게 밀수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마피아 같은 갱스터들이 끼어들었다. 당시에도 유명한 범죄자 알 카포네는 캐나다산 위스키 중계업으로 돈 방석에 앉았다. 그가 벌인 성 밸런타인데이 대학살도 캐나다 위스키 사업 문제와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다.

여기에 마피아들은 이렇게 수입한 술을 이용하여 술을 뻥튀기[* 미드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말로는 5배까지 뻥튀기 할 수 있다고.]할 수 있는 불법 양조장을 건설, 관리하였고, 대중에게 이런 술을 팔아먹으면서 많은 돈을 거머쥐었다. 미국 정부는 이 뻥튀기 술을 막으려고 공업용 알코올에 메탄올을 첨가했다. 뻥튀기 술은 공업용 에탄올로 농도를 맞추니까, '유독성 물질인 메탄올을 섞으면 업자도 위험을 느끼니까, 공업용 알코올이 아닌 다른 물질로 술을 만들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업자들은 꿋꿋하게 밀주를 만들었다. 탈법으로 술을 만드는 놈들이, 남을 생각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드는 사람은 그거 안먹으니까.

이렇게 탄생한 술들은 주점이나 음식점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불법 주점을 "Speakeasy" 라고 불렀다.[* 다른 은어로는 Blind Pig 혹은 Blind Tiger. 여기서 유래된 용어가 암거래 시세를 의미하는 "speak-easy prices"다.] 당시 이러한 주류점(酒類店)으로 시작하던 뉴욕의 "21 Club"은, 지금까지도 레스토랑으로 업종을 바꿔서 살아남았다. 이런 곳에서 서민은 밀조주나 뻥튀기 술을, 상류층은 밀수입한 외국산 술을 소비했다. 당연히 손님이 낸 돈은 모조리 갱스터들에게 넘어갔다.[* 이게 얼마나 돈이 됬냐면, 캐나다에서 중상급의 위스키를 제조하는 브랜드 Canadian Club 의 기본 보틀 한병값이 그 당시 가격으로 16달러 였다. 참고로 당시는 브레튼우즈 체제로 35달러 = 금 1온스가 통용되던 시절이며 금값 기준으로 이것의 현 시세를 계산하면 60만원 이다. 참고로 거의 1세기가 지난 현재도 Canadian Club 위스키는 대충 16달러에 팔린다(...)]

또한 이것을 배경으로 성장한 마피아는 FBI 가 집중적으로 단속하여 몰락하기 시작한 70년대까지 미국의 골칫거리로 작용하게 된다.

관리 측면

단속에 나설 공무원은 무한대가 아니라서[* 연방 정부에 소속된 금주단속요원만 수천 명이었는데, 미국의 땅 넓이와 국경의 길이, 해안의 면적을 감안하면 늘 태부족이었다.], 연방정부가 불법을 단속할 능력도 점차 한계에 이르렀다.[* 각 주, 시, 카운티 정부도 연방정부의 금주법을 집행할 책임이 있었지만, 늘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단속을 하라면 예산이 필요한데, 술을 법으로 금지하는 바람에 주세가 소멸하고 말았다. 결국 정부에게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었고, 합법으로 술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농업도 도태되었다. 이러니 세금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완벽한 단속은 불가능하다는 게 명확해지고, 밀주 산업도 횡행하고 만다.

결국은 이 시절을 다룬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에 나오는 것 마냥 주류단속원의 절반 가까이가 뇌물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참고로 뇌물을 1번만 받아도 상대방에게 뒷덜미를 잡히기 때문에, 뇌물을 절대 끊지 못한다. 실제로 갑자기 뇌물을 거부하면, 주는 놈이 '내가 너를 사법기관에 고발하고 둘 다 감옥으로 가자.'는 식으로 협박한다. 이게 포획 현상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정부패까지 횡행하던 때다. 실제로 알 카포네는 금주법을 역이용해서 벌어들인 돈을 시카고 공무원에게 골고루 뿌렸다. 그래서 사법 당국이 알 카포네를 처리하려고 들어도, 알 카포네가 '너희가 나에게 술과 돈을 받아먹었잖아? 나를 감옥에 보내면 너희도 무사할 줄 아냐?'고 협박하는 지경이었다.

금주법 폐지 과정

금주법에서 파생된 범죄가 급증하자 미국 전역에서는 금주법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그 중심에는 AAPA(Association Against the Prohibition Amendment, 한국어식으로 해석하자면 '(주류)금지(Prohibition) 수정헌법(Amendment) 반대(Against) 연합(Association))가 있었고, GE, 듀폰처럼 1차대전으로 성장한 거대기업이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듀퐁 소속인 피에르 듀퐁은 댈러웨어 주 지역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상임위원회를 압박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이들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에서 술을 금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극렬히 침탈하는 행위이며, 이는 수정헌법이 잘못된 것이다." 하는 논리를 내세워서, 금주법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법이라 주장했다

AAPA는 금주법의 악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꾸준히 미국 정부에 제출하였다. 이때 나온 보고서에서는, 1920년과 1921년 사이에 범죄 증가율이 총 24%에 이른다고 보고했을 정도였고, 술이 금지된 탓에 약물에 중독된 것이 보고된 사례만 40%가 넘었다고 미 정부에 경고할 지경이었다. 이 보고서에는 깊은 뜻이 들어간 상태다. 마피아에 의한 '암시장의 폭력'을 암시하였으므로 미국 사회에 던진 충격은 엄청났다.

여기에 여성정치인 폴린 세이빈은, 금주법 초기에는 "내 아들들이 살아갈 때 술 없는 세상은 매우 좋을 것"이라며 금주법 초기에 금주법을 열렬히 찬성했지만, 금주법이 얼마나 잘못된 법인지 깨달은 뒤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실제로 1926년에는 "법으로 술을 막으면 만사 OK일 줄 알았는데, 막으니까 오히려 건전한 시민들이 술에 빠져서 타락하였으며, 이는 여성과 청소년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실상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어 버렸다."면서 비판했고, 결국 1929년에는 AAPA와 성격이 비슷한 WONPR(Women's Organization for National Prohibition Reform, 한국식으로 해석하자면 국가(National) (주류)금지법(Prohibition) 개헌(Reform) 여성(Women's) 모임(Organization))까지 결성하였다. 이 때문에 '그래도 여성들은 금주법을 찬성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조각조각 부서졌고, 금주법은 공공의 적(public enemy)이 되었다.

1922년 Literary Digest에서 미국인 72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여론조사에서, 60%가 금주법에 회의적이라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결국 법률전문가들도 '금주법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공격하는 법'으로 인식하고야 말았다. 1928년 콜럼비아 대학의 니콜라스 버틀러 총장은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사설에서, "미국의 자유주의에 철저히 반(反)하는, 미국의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 법"이라고 맹비난했다. 이후 1932년에는 연설에서 더욱 공격 수위를 높였다.

그러다가 192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맥주를 포함시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주장이 의회에서 있었지만, AAPA는 맥주를 허용해봤자 금주법이 유지될 줄 안다면 오산이라고 말했고, 금주법을 완전히 없애라고 미 행정부를 압박했다.

1929년에는 금주법에서 비롯되는 범죄를 줄이려고, 미 준법집행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Law Observance and Enforcement: 법의 준수와 집행에 관한 국가적 차원의 위원회) 혹은 '위커샴 위원회'로 유명한 기구까지 결성되었다. 하나 이놈의 위원회는 밥값을 못했고, 내부에서는 하버드 학장 프라우드와 같은 하버드 교수 프랭크 퍼터가 파벌 싸움을 일으켰다. 시민들에게 분노를 산 위원회는 소멸되었으며, 프라우드 학장은 하버드에서 된통 까였다.

1929년 10월에 대공황이 미국을 덮치면서 금주법은 동력을 잃었다. 대공황 때문에 소비가 줄어들어서, 정부가 징수할 세금이 없었다. 이거를 극복하려면 세금을 늘릴 운명인데, 무턱대고 직접세를 높이면 반발이 일어날 뿐이었다. 반발이 두려웠던 미국은 술에 다시 세금을 매겼다. 그리고 음지로 빠져든 양조업계를 다시 양지로 끌어올려 고용을 늘리면, 경제에 활력이 들어간다는 관념이 정계, 재계,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금주법은 수정헌법 18조로 규정된 조항이었고,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은 자기들이 의기양양하게 만든 법이라서 수정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침 민주당 소속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나를 밀어주면 금주법은 폐지하겠다면서 금주법 폐지를 제1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때문에 AAPA에서도 이 공약에 넘어가 "솔직히 우리는 댁이랑 상극인데[* 당시 루즈벨트는 뉴딜 정책을 앞세운 계획경제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에, 자본가들이 중심이었던 AAPA에게 단단히 찍힌 상태였다.] 금주법만 없애주면 댁에게 힘을 빌려준다."고 선언했다. 금주법 폐지는 뉴욕타임즈 1932년 8월 10일자 사설에서 언급되었듯이 그 무엇보다도 뜨거운 이슈였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공약의 차이는 여기에서 갈렸다. AAPA 지도층은 듀퐁을 비롯한 대기업 고위층으로 구성된 상태였다. 성향이 상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AAPA가 술 문제 때문에 의기투합하는 지경이 되었다. 결국 1932년에 민주당 소속인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당선되었다. 같은 해 2월에 수정헌법 21조가 의회의 동의를 받아 수정헌법 18조는 폐지되었고, 같은 해 12월에 알래스카가 마지막으로 금주법 폐지에 가담하면서, 금주법은 13년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하나 법의 권위는 실추된 지 오래였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효과와 역효과가 발생할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수백, 수천 년을 이어온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정책을 안이하게 법으로 만들었다가 사회를 개판으로 만든 후에야 폐지했기 때문이다. 의도는 좋은데 구상이 너무 허술한 사례다. 중독은 단순한 금지나 규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증명하였다. 그리고 거대 갱인 마피아는 이미 미국에 깊이 자리를 잡고 말았다. 전국구 폭력단으로 변모한 마피아는 사업 분야를 마약 밀매를 바꾸었다. 게다가 모하비 사막 한복판에 거대한 도시를 세우고, 쿠바에 대규모 투자까지 하는 조직이 되었다. 마피아는 금주법이 시행된 뒤부터 수십 년 간 미국에서 무서운 권력을 자랑했다. FBI가 본격적으로 토벌히기 전까지 말이다.

여담

* 당시 술 관련 문제로 벌어진 재판에서, 피고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물로 원고가 제시한 술을 어느 배심원이 '술이 맞는지 확인해보겠다'는 핑계로 마셔버리고는, 증거 불충분(그야 방금 증거인 술을 마셔서 없애버렸으니…)으로 피고를 무죄로 풀어주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무슨 마약… 아니, 술을 드셨기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자피 법이 금지하는 건 술의 제조 및 매매만이지 마시는 거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 이 배심원은 꿀릴 게 없었던 것이다.
* 술 밀수로 떼돈을 번 알 카포네의 형은 금주법 단속반 소속이었다고 한다. 아이러니의 극치.
* 금주법을 만든 공화당[* 위에서 언급했듯이 입법 당시 민주당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금주법에 반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했었다.]의 워런 G. 하딩 대통령은 취미가 백악관에서 술 처먹고 포커 하는 거였다. 당시 증언에 따르면 파티 때 영부인이 직접 폭탄주를 말아줬다고 한다.
* 그 다다음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는 금주법을 신성한 의무라 평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엔 미국 법이 적용되지 않는 벨기에 대사관에 자주 찾아가 술을 퍼마셨다고 한다. 법적으로 미국 사법권이 미치는 영토 및 영해 등에서만 단속할 수 있게 되어 있었으므로 외국 영토로 간주되는 대사관에서 술 마시는 게 불법은 아니었지만, 야당이나 시민들이 욕하기엔 좋은 꺼리였다. 후버의 정적들은 이를 두고, 후버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신성했던 짐이라고 깠다.
* 금주법과 마피아 덕분에 재즈, 그 중에서도 특히 빅밴드 편성의 스윙 재즈가 유행했다고 한다. 비밀 술집이 성황을 이루면서 더 많은 고객을 유도하기 위해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제공해야 했던 것이다. '비밀' 술집이라는데 이렇게 대놓고 홍보를 했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그 원인은 그런 술집들은 대개 높으신 분들이 단골이었기 때문에 단속원들이 잘 안 건드렸다.
* 《심슨》에서도 이 금주법을 깐 에피소드가 있다. 시즌 8 18번째 에피소드로 이름은 "Homer vs. the Eighteenth Amendment"(호머 대 수정 헌법 18조(금주법을 규정한 헌법조항)). 밀주 제작, 마피아의 개입, 암암리에서 벌어지는 주류 유통 등 금주령이 내렸을 때 생기는 일을 한 에피소드로 잘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스프링필드에서 성 패트릭의 날 기념 축제 때, 바트가 호스로 발사하는 맥주를 마시고 취한 것이 문제가 되어 과거 발령된 금주법이 다시 발령되자, 수많은 맥주가 땅 속으로 매장되고 더프 맥주 회사가 '더프 제로'라는 루트비어 팔다가 망하는 등[* 더프 맥주 사장은 사람들이 맥주를 맛 때문에 산다고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알코올 때문에 산 거였다… 이 뭐…] 진전이 보이는 둥 하더니 하루도 못가서 경찰서장 위검이 술 먹고 취한 모습을 보여줘 빡친 여성들이 시청에 가서 항의를 한다. 결국 위검은 무기한 정직을 당하고, 렉스 배너가 새로운 경찰서장으로 부임해 술 밀수를 철저히 막아버리고, 길거리에서 술과 범죄를 찾을 수 없게 된다. 허나 스프링필드 시민들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는데, 이때 더프 맥주 측에서 맥주 전부를 매립하는 걸 TV에서 본 호머는 바트와 함께 맥주 매장지를 찾아가 맥주들을 꺼내 물장사를 시작해[* 볼링공에 숨겨 모 시즐랙에게 공급하는 식이었다.] 맥주 남작이라 불리게 되고[* 이때 이걸 리사와 마지에게 들키는데, 이때 스프링필 드상황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그 마지가 그걸 보고도 넘어간다!], 꺼낸 맥주가 다 떨어지자 밀주까지 만들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호머는 위검에게 알아서 붙잡히지만 형벌은 다름 아닌 투석기에 실려 날아가는 것. 허나 렉스 베너의 뻘짓으로 그가 투석기로 사출당하고, 과거 발령되었던 금주법은 1년 후 사라진지라 스프링필드에 다시 맥주가 돌아온다.
*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마피아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서 자동차 경주를 열기도 했는데, 이는 오늘날 나스카의 기원이 되었다. 또, 이 때 자동차의 껍데기, 뼈대만 놔두고 엔진을 바꾸는 등의 개조를 통해 성능을 올리는 방식의 자동차 튜닝이 발전해서, 오늘날 스톡카 레이스의 기원이 되기도 했다.-- 금주법이 만든 그나마 몇 안 되는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봐야 하나?--
* 이 금주법을 지지하여 1869년 창당한 금주당(Prohibition Party)은 2016년 현재도 미국에서 3번째로 오래된 정당으로 남아 있다. 다만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당세가 완전히 쇠락해서 2012년 대선에서는 미 전역에서 불과 518표(...)를 획득하는 데 그치기도 했다.

관련 문서

* 91Days
* 건즈 고어 카놀리
* 보드워크 엠파이어
* 마약과의 전쟁
* 마피아
* 문샤인
* 알 카포네
* 언터처블#s-2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는 작중에서 밀주업으로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거 말고도 범법(犯法)을 많이 했지만.
* 힙 플라스크
* 가을의 전설

분류:해외의 법률분류:미국(20세기)분류:1920년대분류:전간기분류:법[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금주법, version=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