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시 나카모토

From Hidden Wiki
Jump to navigation Jump to search
필독 사항 유닠스 계열 저작물, 성인물, 도박 웹 써버 보안 프로그래밍 그래핔 파싱
필독 사항 고스트BSD 표면 웹 싸이트 제작 리눅스 마스터 파이썬 트킨터 뷰티펄 숲
수학 아이투피 마약, 아청물, 해킹 웹 싸이트 보안 웹 프로그래밍 데이터 분석 게임 제작
통계학 뮤와이어 다크넽 싸이트 제작 정보 보안 기사 쟁고우 팬더즈 파이게임

> 우리는 전자 화폐를 디지털 서명의 체인으로 정의합니다. 코인 소유자는 거래 내역에 디지털 서명을 한 후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고, 이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공개 키를 코인 맨 뒤에 붙입니다. 돈을 받은 사람은 앞 사람이 유효한 소유자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

개요

암호화폐 빝코인을 만든 장본인.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만든 장본인은 맞지만, 그는 위치 추적이 어려운 토어 브라우저 등을 이용해 비트코인 활동을 했고 일본어를 쓰지 않았다. 한자 이름조차 밝히지 않아 일본인의 인명을 지니고 있어도 제작자가 일본인이란 보장은 없다. 아니 이자가 과연 단일 인물인지조차 확실치 않은 상황.[* 인터뷰를 했다는 사람들 증언이 누구는 킹스 스피치(미 동부와 영국식 발음)였다 누구는 슬럼가 계열 영어였다 누구는 독일식 영어였다 식으로 생각하면 된다. 일단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中本哲史로 부르고 있다.]~~그냥 평범한 포켓몬스터 덕후 아니냐는 설도 있다~~ 사토시가 이름인지 성인지마저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름을 일본식으로 '나카모토 사토시'라고 쓸 수 있는지 역시 알 수 없다. 여기서는 편의상 사토시 본인의 표기법을 존중하여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표기한다.


사토시 나카모토 (Satoshi Nakamoto)는 세계 최초 암호화폐비트코인(bitcoin)을 만든 사람이며 블록체인 기술의 창시자이다. 그는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가명으로 추정된다. 그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국적, 성별, 나이, 단일 인물 유무, 사망 유무도 알려지지 않아서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용하는 언어는 일본어가 아닌 매끄러운 영국식 영어였고 가끔씩 미국식 표현도 혼재되어 있었다는 점을 보아 일본인으로 단정지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P2P 재단 웹사이트에 등록해 놓은 정보인 1975년 4월 5일, 일본 거주가 전부이다. 지금까지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노력하여 추정되는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했지만 정확히 누구라고 밝혀진 바는 없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첫 채굴을 시작한 이후로 그의 지갑에서는 약 100만으로 추정되는 비트코인이 빠져나간 적이 단 한번도 없으며 2017년 11월 말 기준으로 그는 세계 100위정도의 부자에 해당한다.


정체

비트코인 시스템을 발명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군지 그 정체를 밝히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P2P재단 웹 사이트에 등록해 놓은 정보를 보면 2016년 기준 40세이며, 일본에 거주한다고 되어있다. 정보에 의하면 일단 그가 프로그래밍에 능한 일본인일것이라는 추정만 있을뿐,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고 일본에 거주한다는 정보 외에 그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단서는 없다. 심지어 이름과 정보조차 2008년 이전의 기록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으니 그것이 사실이라고 보기에도 힘들듯 하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용하는 영어는 매끄러운 영국식 영어였고 가끔씩 미국식 표현도 혼재되어 있던점으로 보아 사토시 나카모토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명으로 구성된 집단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특히 그가 2년간 작업했다고 주장하는 비트코인 프로그래밍 작업은 한사람이 수행하기에는 힘든 작업이라는 점에 의해 사토시 나카모토가 개인이 아닌 집단일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사토시 나카모토가 일본식이름을 사용하며 영국식 영어를 쓰다가 미국식 영어를 가끔 섞어 쓰는것이 의도적으로 신분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라는 주장도 있다. 월간 수학동아 2013년 12월호에서는 일본 교토대 교수인 수학자 모치즈키 신이치로 추정했다. 그는 암호학을 비롯한 계산 수학과 컴퓨터과학에 조예가 깊은 점, 2012년 말 경 자신의 홈페이지에 비트코인의 기본 원리와 비슷한 세계적인 수학 난제 'ABC 추측'을 증명한 논문의 내용이 비트코인의 기본 원리와 비슷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모치즈키 교수가 학술지가 아닌 개인 홈페이지에 논문을 발표했다는 점과 ABC 추측을 증명하면서 '우주 간 기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다는 점이 비트코인 체계를 발표한 논문의 내용과 흡사하다고 한다. 그러나 모치즈키 본인은 한 신문을 통해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라고 밝혔다..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지는 듯 하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름의 유래가 사실은 'Sa'msung'Toshi'ba 'Naka'michi'Moto'rola로, 4개 기업 이름의 조합으로 상기한 네 기업이 비트코인을 개발했다는 설이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오히려 역으로 저 4개를 조합해 가명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 [뉴스위크에서 나카모토 사토시의 정체에 관한 기사를 올렸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이고 칼텍을 졸업한 컴퓨터 엔지니어(공학자)라고 한다. 기사에서 밝힌 진짜 이름은 도리안 프렌티스 사토시 나카모토(Dorian Prentice Satoshi Nakamoto). 하지만 뉴스위크의 보도 직후 AP통신은 인터뷰 당사자인 나카모토 사토시가 "자신은 실제 비트코인 창시자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는 기사를 올렸다. 그는 인터뷰에 게재된 자신의 가족, 이력 등에 대한 얘기는 맞지만 비트코인과는 무관하다고 밝혔고, "뉴스위크와의 인터뷰 3주 전에 아들로부터 처음으로 비트코인에 대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뉴스위크가 보도한 "더 이상 그것에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란 말은 뉴스위크에서 자기 말을 오역한 결과라고 밝혔다. 더불어, 2009년 P2P foundation에 비트코인을 설명하는 게시글을 올렸던 사토시 나카모토의 계정이 ["I am not Dorian Nakamoto."]라는 내용의 댓글을 같은 계정으로 작성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것으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는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진 상태.

IT 잡지 Wired와 Gizmodo에서 호주 국적의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Craig Steven Wright)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1]]/[[2]] [기사(BBC)] [인용 기사(ZDNet Korea)]

2015년 12월 9일, 와이어드 매거진에서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정되는 두 명의 신원이 공개되었다.[[3]]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정된 두 사람은 바로 호주 시드니에 거주 중인 암호학크레이그 라이트와 그의 친구인 미국 법의학자 故데이브 클라이만. 비트코인 화이트 페이퍼가 공개되기 3달 전, 크레이그 라이트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암호화 화폐문서를 출간하겠다"라는 내용이 담긴 포스팅을 하였다. (현재는 삭제되어 볼 수 없다.) 그리고 공개키로 메시지를 암호화하여 연락을 부탁하면서 이메일을 보냈는데 satoshin@vistomail.com 이 메일주소가 공개키에 연결되었다. 그리고 사토시 본인이 사용하는 메일주소는 satoshi@vistomail.com. ~~그런데 비트코인 논문에 적혀있는 이메일 주소는 satoshin@gmx.com이다...~~[논문] ~~어?~~ 그러나 사토시는 satoshi@vistomail.com 이 메일주소로 "나는 크레이그 라이트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사토시다."~~"we are anonymous"~~라면서 부정하였으나[[4]] 결국 이 문제와 관련해 2016년 4월 중에 크레이그는 중요한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해당 기사에 따르면 크레이그는 와이어드에의해 신원이 밝혀진 직후 호주연방경찰에의한 압수수색을 받았으나 앞서 자신의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기록 모두를 삭제하고 영국으로 피신한 상태라고. [[5]]

끝까지 창시자를 알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비트코인의 체계가 처음부터 오픈소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창시자가 누구든 아무도 모르는 방법으로 비트코인 시스템을 파괴할 수 없다고 한다.[* 비트코인이 어떻게 중앙서버 없이도 오픈소스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는 [] 참고.]


계속 가족과 주변인들이 언론인들에게 시달려 결국 2016년에 크레이그 라이트가 최초의 빝코인 블락체인을 이용하여 본인이 사토시 나카모토 본인임을 인증하였다.


  • 며느리도 모르는 비트코인 보안수칙 BEST 5

2014-11-03

2008년 10월에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익명의 프로그래머가 발표한 ‘Bitcoin: A Peer to 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논문에서 시작돼 암호통화라는 개념을 P2P(개인 대 개인 정보공유) 형태의 알고리즘으로 구현한 비트코인.

http://www.boannews.com/media/view.asp?idx=43842&kind=2


  • 비트코인 창시자는 호주 출신 기업가?

호주인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가 유력해

2015.12.10

보다 결정적인 정황증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비트코인에 대한 최초 논문이 암호학 학회지에 실리면서 공개됐던 2009년 1월 9일 이전인 2008년 3월 12일 라이트가 미국 컴퓨터 포렌식 전문가로 2013년에 사망한 데이브 클레이먼이라는 인물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내년쯤 논문을 수정하기 위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새로운 형태의 전자화폐를 구상하는 중이다. 비트캐시 혹은 비트코인이라고 불리는..."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51210072832


업적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비트코인(bitcoin)을 처음 만든 것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사람이다. 그는 2008년 11월 1일 〈비트코인 : 개인 대 개인의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9쪽짜리 논문을 작성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담은 논문을 내려 받을 수 있는 사이트주소를 수백 명의 암호학 전문가들에게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이 논문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기본 구조를 설명한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을 개발하고, C++ 언어로 작성한 소스 코드를 배포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P2P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디지털 화폐에 대한 이중 지불 문제를 처음으로 해결했다.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의 최초 블록인 제네시스 블록이 탄생한다. 두 번째 비트코인 사용자는 일주일 뒤인 1월10일에 나타났다. 두 번째 사용자는 할 피니라는 암호학 전문가이다. 두 사람만 비트코인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소프트웨어 코드상의 오류가 발견되고 수정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비트코인이 실제 구동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기였다. 이때부터 비트코인 사용자가 점점 늘었고, 사토시 나카모토는 자신이 논문을 올려둔 홈페이지(bitcoin.org)와 전자우편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전통 금융의 문제에 대한 생각을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기존 화폐는) 중앙은행이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법정 화폐의 역사에는 이 믿음을 저버리는 사례로 충만하다. 은행도 신뢰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맡긴 돈을 잘 보관하고 전달할 것이라는 신뢰. 그러나 은행들은 신용 버블이라는 흐름에서 함부로 대출했다.”[1]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대표적인 예이다. 신용 등급이 불량한,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 준 것이다. 당시 저금리라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도 이자가 적었고, 집에 대한 수요 증가로 집값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은행 입장에서는 집 값이 계속 오르고, 대출 받은 사람이 못 갚아도 담보로 잡은 집을 얻을 수 있으므로 이득이었다. 하지만 너무 높은 부동산 가격으로 수요는 감소했고, 금리인상으로 대출 이자가 증가하면서 서브프라임 계층부터 디폴트에 빠지면서 매물이 증가하자 집값이 폭락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기존 중앙금융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매우 거세게 일었고, 이 당시 사토시 나카모토는 은행 없이도 해킹없이 계속 작동하며 거래 가능한, 즉 비트코인 사용자들이 각자 중앙 금융시스템인 은행의 역할을 수행하자는 목적 아래 비트코인을 만들게 되었다. 블록체인이라는 개념도 비트코인에서 출발했다.

그는 2010년 12월12일 홈페이지에 개설한 비트코인 포럼에 “분산공격(DOS)에 대해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우선 이럴 경우를 대비해 작업해둔 걸 손보는 중이고, 그 버전이 0.3.19이다. 이걸 우선 마친 뒤 제대로 시스템을 갖춰 작업해볼 생각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또, 사용자들이 위키리키스(WikiLeaks)에서 비트코인을 받기 위해 로비를 시작한 후, 얼리 어답터들이 비트코인의 인기를 높이려고 할 때 나카모토가 개입하기도 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팀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 비트코인 프로젝트가 점진적으로 성장해야 소프트웨어가 그 길을 따라 강화될 수 있다. 나는 위키리키스(WikiLeaks)에게 비트코인을 사용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비트코인은 초기 단계에 있는 작은 베타 커뮤니티이다. 당신은 주머니 교체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없으며, 이 단계에서 당신이 가져오는 열기(熱氣)는 우리를 파괴할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이 글이 사토시 나카모토의 마지막 메시지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더 이상 공개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 개발자들과 주고받은 전자우편은 2011년 4월이 마지막이었다. 다만 그는 잠적하기 전 개빈 앤드리슨을 비트코인 소프트웨어의 수석개발자로 지명해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앤드리슨도 나카모토의 정체를 모른다고 밝혔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8년 10월에 나타나 2011년 4월까지 인터넷 공간에 흔적을 남겼고, 그 뒤론 아예 사라져 버렸다.

신원 미상

그의 정체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나카모토가 누구인지 추정할 수 있는 정보는 단 한가지, 2009년 개인 간 거래(P2PㆍPeer to peer) 기술 관련 커뮤니티인 P2P재단 사이트에 비트코인을 소개할 때 쓴 그의 계정뿐이다. P2P재단 프로필에 따르면, 사토시 나카모토는 1975년 4월 5일에 태어나 일본에서 살고 있는 남자라고 적혀있다. 사토시 나카모토 역시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신원에 대한 조사는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비트코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초창기 시절에도 사토시는 자신에 대한 세부 사항을 거의 밝히지 않았다. [2]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성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그가 일본인이 아닌 미국과 여러 유럽 국가에 거주하는 암호학자 또는 컴퓨터 과학 전문가일 것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사토시 나카모토가 매끄러운 영국식 영어를 사용했고 가끔씩 미국식 표현도 혼재되어있던 점으로 보아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으로 구성된 집단이라 추정되기도 한다. 또 다른 추측으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름의 유래가 사실은 Samsung, Toshiba, Nakamichi, Motorola로, 4개 기업 이름의 조합으로 상기한 네 기업이 비트코인을 개발했다는 설이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3]

추정 인물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정되는 인물로는 모치즈키 신이치, 도리안 나카모토, 할 피니, 닉 재보,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데이비드 클라이먼, 필 짐머만, 데이비드 차움, 웨이 다이, 팀 메이 ,일론 머스크, 개빈 안데르센등이 있다.

모치즈키 신이치

2013년 테드 넬슨 옥스포드대 교수는 일본의 천재수학자 모치즈키 신이치 교토대 교수를 사토시 나카모토로 지목했다. 그는 수학과 컴퓨터과학은 물론 암호학에도 능통하고 2012년 말 자신의 홈페이지에 비트코인의 기본원리와 비슷한 세계적 수학난제 ‘ABC추측’을 증명했다. 모치즈키 신이치는 사토시 나카모토로 의심을 받은 후에 The Age 신문에서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라고했지만 부정하는 명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도리안 나카모토

2014년 3월에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비트코인의 얼굴’이라는 커버스토리를 통해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그의 출생명은 사토시 나카모토였고 명문 공대인 칼텍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또 금융정보 회사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했다. [4] 뉴스위크 기자는 두 달에 걸친 탐사와 인터뷰를 통해 사토시를 추적했고, 급기야 도리안 집을 경찰과 함께 찾아가 대면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도리안은 당황하며 “더 이상 비트코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맡고 있다”고 대답했다. 기자는 이를 두고 도리안이 사토시임을 자백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도리안은 뉴스위크 보도가 나간 직후 도리안 나카모토는 기자회견을 갖고 "나는 그냥 엔지니어일 뿐 비트코인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가 “도리안은 진짜가 아니다”라는 글을 올렸다.[5] 또 다시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에 관해서는 불명확해진 셈이다.

할 피니 (Hal Finney)

할 피니(1956~2014)는 비트코인 이전에도 암호학의 선구자였으며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버그 보고서를 작성 및 개선한 최초의 사람이다. 포브스 기자 앤디 그린버그에 따르면, 할 피니는 도리안 나카모토 가족의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았다고 한다. 그린버그는 작문 분석 컨설턴트인 Juola & Associates에 할 피니의 글 견본과 사토시 나카모토의 글과 비교해 보라고 요청했고 그가 여러 후보자들 중에 가장 닮은 서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린버그는 할 피니가 사토시 나카모토를 대신하여 유령작가였을 수도 있고 또는 자신의 개인정보가 단순히 온라인 악용으로 사용될 수 있기때문에 이웃인 도리안 나카모토의 정체성을 사용하였다고 이론화했다. 할 피니는 비트코인처럼 작업증명(Proof-of-Work) 방식으로 구동하는 전자화폐를 개발한 적이 있으며, 발신자를 밝히지 않는 전자우편 서비스를 개발했던 암호학의 대가이다. 그는 사토시 나카모토와 함께 비트코인을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그가 사토시 나카모토이며 1인 2역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 외 그는 사토시가 테스트용으로 보낸 10코인을 받아 최초로 가상화폐 이체를 받은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주장에 대해선 계속 부인했다. 그린버그 또한 할 피니를 직접 만난 후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 앞서 언급한 Juola & Associates에서도 사토시 나카모토가 할 핀니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만 할 피니의 서체와 더 닮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2014년도에 루게릭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6]

닉 재보 (Nick Szabo)

컴퓨터 과학자 닉 재보는 1998년 이미 ‘비트골드(Bit gold)’ 라는 분산된 전자화폐를 고안한 인물이다. 비트골드는 실제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비트코인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재보는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 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제3자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하고 이와 유사한 최소한의 신뢰로 안전하게 저장, 전송하는 비트골드의 개념 때문에 그는 사토시 나카모토로 의심받고 있다. 그는 1990년대에 가명을 사용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1년 5월 기사에서 닉 재보는 "나 자신, 웨이 다이, 할 피니만이 사토시 나카모토 정도로 그 아이디어를 충분히 추구하고 좋아했던 유일한 사람들이었다."라고 언급했다. 금융 저자인 도미니크 프리스 비의 리서치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닉 재보라는 증거는 없다고 하였다. RT의 The Keiser Report에서 닉 재보는 전 세계에 단 하나의 사람 만이 있지만 지식의 특이성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주장에 대해선 부인했다.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Craig Steven Wright)와 데이브 클라이먼(Dave Kleiman)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는 1970년 생으로 호주의 프로그래머이자 사업가이다. 2015년 12월 9일, 와이어드 매거진에서 크레이그 라이트와 이미 사망한 상태인 미국의 법의학자 데이브 클라이먼을 사토시 나가모토로 추정을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청했다. 그 이유는 비트코인 개발자를 추적하던 해커가 라이트의 이메일을 해킹했는데 거기에 개발 증거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의혹제기에 답을 하지 않았던 라이트는 약 반년후에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며 이를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비트코인의 최초 거래시 사토시가 사용한 암호블록인 제네시스 블록에 전자서명을 해 기술적으로 증명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며칠 뒤 라이트는 다시 공식 블로그를 통해 기술적 증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 증명을 해낼 수 있지만 그동안 지켜온 익명성이 증명을 통해 깨어지면 그 뒤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이 결정이 다른 동료 개발자들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을 우려하며 “이 결정이 비트코인의 신뢰도에 먹칠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라이트는 이후 비트코인 기술에 대한 증거를 입증하는데 실패하면서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크레이그 라이트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가 50억달러에 달하는 소송에 휘말리면서 그가 사토시라는 주장이 힘을 받게되었다. 소송을 제기한 인물은 이라 클라이먼으로 위에서 언급된 데이브 클라이먼의 형이다. 이라 클라이먼은 동생인 데이브 클라이먼이 2013년 숨지기 전 생전에 크레이그 라이트와 수 많은 메일을 교환했고 동생이 숨지자, 크레이그 라이트가 동생의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관련 특허를 훔쳤다고 주장한다. 크레이그의 가족들은 플로리다주 연방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클레이먼이 채굴한 100만개 이상의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또한 두 사람이 비트코인 개발 이전부터 함께 일했으며, 채굴 활동을 통해 110만개의 비트코인을 공동 관리해 왔다고 주장했다. 만약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가 데이브의 형인 이만 클라이먼에게 일정부분 이상 배상하라는 것으로 판결이 난다면, 간접적으로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7]

필 짐머만 (Phil Zimmermann)

1991년 PGP라는 암호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PGP는 암호학 일대 혁명을 가져온 프로그램으로, 정부나 군대 그리고 정보기관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일반 사람들까지 암호화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PGP는 사용자가 암호화를 하기위한 퍼블릭 키와 암호해독을 하기 위한 프라이빗키와 같은 한 쌍의 키를 생성 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암호화폐가 블록체인으로 알려진 기술의 학샘이기도하며 사용자가 전통적인 트랜잭션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은행과같은 중계업자를 대신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비트코인이 등장한 이후 암호가 개인의 정보 권리, 언론의 자유, 정치의 자유, 불합리한 수색과 압류로부터의 자유, 남겨둘 자유라고 밝혔다[8]

데이비드 차움 (David Chaum)

데이비드 차움은 암호화된 금융거래 기술회사를 창업했던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이고, 암호화폐 초기 모델인 디지캐시를 1983년 개발한 바 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암호화폐 관련된 여러 논문을 썼다. 1990년에는 '디지캐시'라는 회사를 차리고 E캐시라는 암호화폐를 만들었지만 시장을 만드는데는 실패했다. [9] 디지캐시의 경우, 두 사람 간의 거래에서는 시간 차를 이용해 거래 내용을 바꾸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여러 명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상황에서는 여전히 거래의 신뢰도를 수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송신인과 수신인을 암호화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은행이라는 중앙 기관이 없이 운용되지는 못했다. 그 이후 출시된 것이 비트코인으로, 데이비드 차움이 비트코인을 만들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알려져있지 않다.

웨이 다이 (Wei Dai)

비머니와 비트골드의 개발자이다. 1998년에 웨이 다이는 b-money 라는 암호통화 개념을 사이버펑크들의 메일링 리스트에 공개했다. [10] 웨이 다이가 발표한 비-머니 논문은 단 두 페이지로, 실제 화폐로 만들어 운용하기에는 구체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를 통해 그는 블록체인의 개념과 '작업증명'과 '지분증명' 등을 제안하여 암호화폐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개념들을 제시했다.[11]

팀 메이 (Tim May)

1990년대 초 익명성을 유지하되 열린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암호 기술을 개발했다.

일론 머스크 (Elon Reeve Musk)

전기차 테슬라의 창업자. 경제와 암호학에 능통하다.

개빈 안데르센 (Gavin Andresen)

2010년 이후 비트코인 개발을 공식적으로 책임을 졌다.

Template:각주

참고자료

(사토시 나카모토 씀, 임민철 번역, 〈비트코인: 개인-대-개인간 전자 화폐 시스템〉, 2008년 10월 31일)

같이 보기

  1. 김흥록 기자, 〈[비트코인개론<1>사이퍼펑크와 사토시 나카모토 찾기]〉, 《디센터》, 2018-04-13
  2. Travis Patron,〈who is Satoshi Nakamoto?〉, 《DIGINIMICS》, 2013-01
  3. 사토시 나카모토〉,《나무위키》
  4. 편집국,〈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밝히다〉, 《비트웹》, 2018-03-03
  5. 강상규 소장,〈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사망?…16조 상속재산 행방은〉, 《머니투데이》, 2018-01-21
  6. 사토시 나카모토〉,《위키피디아》
  7. prosong77, 〈크레이그 라이트(Craig Wright)"가장 유력한 사토시 나카모토"〉,《steemKR》
  8. 필 짐머만〉,《IG》
  9. 데이비드 차움, 《네이버 카페 코트매》
  10. 인터넷의 등장 그리고 비트코인 역사의 시작〉, 《개인 블로그》
  11. 블록체인 혁명의 선구자와 계승자들 7인〉,《개인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