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국가 일본인 인질 참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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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일본인인질 참수사건 정리 1: 유카와하루나 피랍

시사 2015/02/02 05:54

2015년 1월 20일, 개막장 이슬람 테러단체 IS(이슬람국가, ISIS, ISIL)가 2억 달러를 주지 않으면 일본인 인질 두 명을 참수하겠다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일본이 발칵 뒤집힌다.

인질로 잡힌 사람들은 민간군사회사를 경영하는 유카와 하루나(42세)와 프리랜서 언론인 고토 겐지(47세)였다. 일본인이 어쩌다가 내전 중인 시리아, 그것도 IS 점령지에 가게 된 걸까.

유카와 하루나는 언론에 민간군사기업(분쟁지역에서 경호 업무를 제공하는 회사) CEO로 보도됐고 자신을 경호 컨설턴트로 소개하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그가 과연 그럴 능력이 되는지 의문이다.

학창 시절 왕따를 당했던 유카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밀리터리 덕후들을 상대로 군용품을 파는 가게, 소위 말하는 밀덕샵을 연다. 가게가 잘 돼 2호점도 열고 단골 중 한 명과 결혼까지 하지만 몇 년 뒤 빚더미에 앉아 도산한다. 그는 야반도주 후 공원에서 한 달간 노숙자 생활을 했고 빚은 그의 아버지가 아파트를 팔아 갚아 줬다.

2008년 거세(...)로 자살 시도를 했지만 부인이 말려 목숨은 건졌고, 이 부인은 2년 뒤 폐암으로 사망한다. 이후 전생에 자신이 중일전쟁의 일본군 여자 스파이인 카와시마 요시코였다고 믿게 되고 원래 이름인 마사유키에서 주로 여자 들이 많이 쓰는 하루나로 개명한다.(...) IS의 협박 영상에 나온 고토 겐지(왼쪽)와 유카와 하루나

그는 한국의 수꼴에 해당하는 넷우익이었는데 자신의 블로그에 일본 수꼴 정치인과 인증샷을 찍어 올리고, 고노 담화 철폐와 중국 내 안중근 기념관 철거를 주장했다. 그는 블로그에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는 개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중년이 된 그는 분쟁지역 내 일본 기업에 경비 업무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대출을 받아 자본금 300만 엔(약 2800만 원)으로 민간군사회사인 PMC Japan를 설립했다. 직원도 없이 허름한 상가 건물의 작은 사무실을 임대했다니 구멍가게라고 보면 된다.

2014년,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내전 중인 시리아로 현장조사를 하기 위해 떠난다. 말이 현장조사지 그가 경호 업무를 제공할 자본도 없었고 배경 지식이라고는 과거 오덕질 할 때 익힌 것이 전부라 철 모르고 시리아로 떠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시리아에서 찍은 동영상들을 올리며 자신의 회사를 홍보한다. 유카와의 홍보 영상 중(출처: Haruna Yukawa)

같은 해 4월 자유 시리아군에게 일시 구금됐는데 심문받는 과정에서 아시아계 일원과 친해졌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 시리아로 의약품 등 물자를 수출하는 일을 시작한다.

그는 자유 시리아군에게 억류된 동안 내전 중인 시리아를 취재 중이던 같은 일본 출신인 고토 겐치 기자를 만나게 된다. 고토 기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인권과 평화를 주제로 중동과 아프리카 일대의 분쟁 지역을 취재하며 전쟁의 참상을 전한 종군기자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고토 기자는 소년병 이야기, 전쟁터로 내몰린 아이들의 삶 등을 저술과 강연을 통해 보도해 왔으며 일본유니세프협회와도 협력했다

유카와는 2014년 6월 일본에 있는 사무실을 비우고, 7월까지 고토 겐치 기자의 이라크, 시리아 여행에 동행하며 분쟁지역 내 활동 방법을 배운다. 임대비를 아껴 여행 경비로 쓰기 위해 사무실을 닫은 것으로 추정된다.

유카와는 고토 기자와 동행하면서 찍은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고토 기자의 모습도 보인다.ㅜㅜ 현지 언론과 인터뷰 중인 고토 겐지(출처: Haruna Yukawa)

고토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유카와가 CEO 치고는 매우 온화한 성격을 가졌다고 말했는데 고토 기자도 유카와에 낚여 유카와의 회사가 페이퍼컴퍼니인지 몰랐던 것 같다.(...)

고토 기자와 헤어진 유카와는 2014년 8월 14일, 시리아내 시리아군과 IS군의 대치 지역을 방문한다. 총격전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유카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차에서 내려 전장으로 들어갔다가 IS군의 탱크에 포위된다.

현장조사한다는 사람이 뜬금없이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은 이유는 고토 기자의 영향을 받아 자신을 종군 기자로 착각했거나(...) 긴박한 전투 상황을 화면에 담아 유튜브 채널에 올려 사업 홍보에 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카와는 IS군에 체포되고 두들겨 맞는데 생포 당시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사진사로 소개했다.(...) 물론 나중에 민간군사회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마침 미국이 이라크 북부에서 IS 공습을 시작한 직후인데다, 유카와는 체포 당시 자동차에 총이 있었고 신분도 용병과 다를 바 없는 민간군사기업 대표였기 때문에 빼도 박도 못 하고 간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일이 10월로 잡혔으나 유카와는 일본인으로 영어가 안습이었다. 따라서 일본어 통역이 필요했는데 IS는 일본의 IS통 쓰네오카 고스케에게 도움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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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osunggo.tistory.com/146

IS 일본인인질 살해사건 정리 2: 고토겐지 기자 납치

시사 2015/02/02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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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네오카 고스케 기자는 고토 겐지 기자와 같은 프리랜서 언론인이지만 IS(이슬람국가, ISIS, ISIL)와 친분이 깊다.(...) 그는 IS 점령지를 자유자재로 취재할 수 있는 skip to content 문화병론가 고성궈 IS 일본인인질 살해사건 정리 2: 고토겐지 기자 납치

시사 2015/02/02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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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네오카 고스케 기자는 고토 겐지 기자와 같은 프리랜서 언론인이지만 IS(이슬람국가, ISIS, ISIL)와 친분이 깊다.(...) 그는 IS 점령지를 자유자재로 취재할 수 있는 유일한 기자로 IS 오야붕인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를 최초로 인터뷰하기까지 했다.

쓰네오카 기자는 2000년 체첸 사태 때 종군 기자로 참가했는데 체첸이 이슬람 문화권이라 취재 도중 이슬람에 빠져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이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 이슬람권 국가에서 게릴라들을 취재해 이슬람 문화와 무장 단체들의 생리에 빠삭하다.

재판을 담당한 직원의 사령관이 마침 쓰네오카 기자의 친구라(...) 사령관이 쓰네오카 기자에게 연락해 통역을 부탁했고 이 때서야 유카와가 억류됐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진다.

쓰네오카 기자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통역 뿐만 아니라 유카와의 변호를 자청해 최대한 형량을 줄일 계획을 세운다.

그는 9월에 시리아에 도착하지만 현지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일본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10월에 다시 출발할 계획이었으나 출국 하루 전날, 일본 대 테러 부대가 자택을 급습해 모든 자료를 압수해 버려 발이 묶인다. 재미있는 건 이 사건으로 쓰네오카 기자를 비롯,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쓰네오카 기자의 출국이 무산되자 유카와와 친분이 있던 고토 겐지 기자가 대타로 중재에 나선다. 고토 기자는 늦둥이를 임신한 아내에게 친구를 구하러 간다는 말을 남긴 채 홀로 출국한다.

고토 기자는 10월 말 시리아에 도착해 여러 경로를 거쳐 11월 초 IS 거점지역에 들어갔지만 현지 가이드의 배신으로 몇 시간 만에 붙잡힌다.

그는 붙잡히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영상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시리아 사람을 원망하지 않으며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고 밝혔다.ㅠㅠㅠㅠ

고토 기자가 IS 기준으로는 적국의 용병인 유카와를 구출하러 왔고, IS가 극혐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적으로 간주했을 가능성이 크다. IS는 11월 초 고토 기자의 부인에게 몸값 10억 엔(98억 원) 요구했지만 프리랜서 기자 아내에게 그런 돈이 어디 있나.

당시만 해도 IS와 일본은 소 닭보듯 하는 사이였고 인질들이 한 명은 덕후에, 다른 한 명은 기자라 죽일 명분도 없어 그렇게 뭉개고 있었다. 하지만 2015년 1월 17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이집트 카이로 연설에서 IS와 싸우는 주변 국가들에게 2억 달러를 지원할 것을 약속한다.

IS는 이때다!하고 그로부터 3일 뒤, 인질들의 몸값을 아베 총리가 IS의 주변국들에게 약속한 2억 달러로 정하고 72시간 안에 몸값을 주지 않으면 인질들을 살해하겠다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이때서야 IS에 일본인 인질이 있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과거 아프가니스탄 샘물교회 사건처럼 일본의 반응은 냉랭했다. 유카와가 돈벌이를 하러 시리아에 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자업자득이라는 반응이었고 일본의 일베인 2ch의 넷우익들은 고토 기자 뿐 아니라 같은 넷우익인 유카와도 합성 사진을 올리며 조롱했다. 그런데 유카와는 혐한이란 것이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도 까였다.(...)

아베는 테러범들과 협상은 없다며 오바마 흉내를 냈고, IS는 그래?하면서 25일 유카와를 참수하고 종특인 인증 동영상을 올린다. IS는 고토 기자에게 유카와가 참수된 사진을 들고 IS의 요구 사항을 말하게 하는 천하의 개쌍놈 짓을 한다. 참수된 유카와 사진을 들고 있는 고토 겐지

정작 유카와가 살해되자 일본 내 여론은 돌변했고 일본 정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일본 뿐만 아니라 전세계 각지에서 '나는 겐지다'라는 문구를 든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고토 기자의 생환을 기원하자, 일본 정부도 태도를 바꿔 IS와 협상에 나선다.

일본 정부가 협상하는 척만 했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일본인 인질이 희생되면 자위대의 해외 파병에 대한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IS는 이번에는 몸값 대신 포로 교환을 요구했는데 대상이 요르단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켜 38명을 죽이고 사형 선고를 받아 10년 째 복역 중인 여성 테러리스트 알 리샤위였다. 남편과 함께 자살 폭탄 테러를 계획했으나 자신의 폭탄은 불발돼 목숨은 구했다. 이 여자가 한국으로 치면 칼기 폭파범 김현희와 비슷한 경우라 요르단은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IS가 27일 뜬금없이 24시간 내로 IS 김현희를 석방하지 않으면 포로로 잡혀 있는 요르단 전투기 조종사 알 카사스베 중위까지 참수하겠다고 협박하자 요르단도 똥줄이 타기 시작한다.

일본은 일본인 인질 살려달라고 하지, 요르단 국민들은 자국 조종사 구하라고 하지, 미국은 포로 교환하지 말라고 지랄이지, 요르단도 머리 터지려고 한다.

결국 24시간이 지나자 요르단은 고토 기자는 빼고(...) 요르단 조종사와 IS 김현희의 맞교환을 제시했지만 IS는 요르단 조종사는 절대 불가라며 거절한다. 복역 중인 IS 김현희, 알 리샤위

요르단은 자국 조종사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IS 김현희의 석방을 거부했고 IS는 결국 고토 기자를 참수하고 동영상을 올린다.

사실 IS는 요르단 조종사를 이미 화형에 처했기 때문에 포로 맞교환을 거부한 것이었다. IS는 일본인 인질 살해를 협박하기 약 3주 전인 1월 3일, 요르단 조종사를 철창에 가둔 상태에서 산 채로 불을 붙이고 타고 남은 잔해는 불도저로 밀어 버렸다. IS는 고토 기자를 살해하고 3일 뒤, 요르단 조종사의 화형 동영상을 공개했다.

그로부터 불과 몇 시간 후, 요르단은 보복 조치로 IS 김현희인 알 리샤위의 사형을 집행했다. 결국 이번 일본인 인질 사건은 관련된 모든 포로들이 생명을 잃는 것으로 끝났다.

http://gosunggo.tistory.com/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