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세아린 03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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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earin 034-035


초룡전기 카르세아린 (Kalsearin) 




세를레네를 만난 아린일행은 결국 그녀의 인도로 제국의 남부 한 작은 마을 에 도착할 수는 있었었다. 단지, 직선거리로는 얼마 안되지만 세를레네 역시 워낙 길을 헷갈렸는지라 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때는 거의 보름이 지나서였다.

거기서 아린일행은 자그마한 농촌마을을 보았고 또 여관을 볼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여관이 얼마나 반갑겠는가? 오랜만에 보는 침대는 또 얼마나 반 갑겠는가? 그 여관이란게 일반 농촌 집에다가 그저 침상 몇개 더 갖다놓은것 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리고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남녀 안가리고 한방에서 자야할지라도, 침상이 면이불에 짚을 집어넣은 싸구려라 할지라도, 배의 침몰로 인해 모포하나 못건진 탓에 그동안 노숙에 애로가 많았던 아린일 행들에게는 정말 눈물나게 반가운 것이 아닐수 없었다. 특히 고생 전혀 안 하고 살아온 피트에게는...(아린은 사실 고생을 꽤 한 편이다 ^_^;;본인이 워낙 둔해서 모를 뿐이지) 그래서 세를레네와 아린이 서로 침대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피트는 그 아름다운 금발머리를 침상에 부대끼며 계속 안락하게 누워있는 중이 었다. 한편 세를레네는 아린이 물어봤던 세를레네, 그녀가 걸린 마법 절대봉쇄주문 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주고 있었다.

"원래 절대마법봉쇄 주문은 각 서클마다 존재해요. 예를 들어서 1서클 주문 
의 절대마법봉쇄라면 1서클에 해당되는 모든 마법을 전부 봉쇄할수 있지요 
해제하려면 봉쇄자의 마나를 상위하는 마나의 힘을 부여해서 주문을 깨뜨리 
거나 상위서클의 주문을 이용해야 하는거죠. 제가 걸린 주문은 7서클의 
절대마법봉쇄주문이니까 7서클 이하의 주문은 전혀 못쓰는 거죠..." 

세를레네의 설명에 아린이 고개를 재차 갸웃거리면서 끼어들었다.

"그럼 세를레네는 지금 마법을 전혀 못 쓰겠네? 8서클 주문 모르지?" 

아린의 질문에 세슬레네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인간들 중에는 8서클 주문을 익힌 자는 단 하나뿐이에요.바로.." 
"가스터 라트나일..대마도사 가스터란 이야기지? 하도 들어서 성까지 다 외 
워버렸다아.." 

아린이 툴툴대면서 대꾸했다. 대마도사 가스터. 아린도 귀가 따갑게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다. 뭐가 그리 잘났는지 인간들은 마법얘기만 나오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바로 가스터의 이름인 것이다. 아린은 한때 자신의 몸을 꿰뚫었었던, 붉은 빛을 쏘아대는 갈색머리의 중년사내를 머리속으로 연상하며 조용히 중얼거 렸다.

"그 아저씨가 대단한 사람이긴 했나보네..." 

작게 중얼거리던 아린이 재차 물었다.

"아..근데 그럼 세를레네가 다시 마법을 풀려면 어떻게 해야 돼?" 
"예. 지금 저에게 걸린 마법을 다시 해제하려면 저희 궁성마도사들에게 부탁하 
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그 전에는 아무것도 안돼요. 설마하니 그 가짜가 
제 마법을 풀어줄리도 없구요..." 
"흐으음.."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은 왕성으로 어떻게든 들어가야하는 건가? 그래야 아리아를 고치려면 그 것이 필요할테니...

"하지만 그 문서는..." 
"예. 제 마도여왕으로서의 증표인 타닌의 홀이 있어야하죠. 게다가 그 타닌 
의 홀은 저밖에 못 다룹니다. 마법이 아니라 마나를 다루는 요령의 문제이 
니까요." 

그때 마주보던 침상에서 뒹굴거리던 피트가 심심했는지 문뜩 이야기에 끼어 들었다.

"되도록이면 제국황제에게로 가는 쪽이 더 빠르지 않을까요? 이건 저희들이 
끼어들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어차피 상관도 없는..." 
"........." 

피트의 말은 도끼눈을 한채 그를 째려보는 세를레네의 태도로 인해 도중에 끊겼고 대신 아린이 어깨를 으쓱하여 말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끼리는 못 가잖아? 아리아는 무조건 여기 남아서 세를레네를 
돕겠다는데...." 

아린의 대꾸에 피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름전 세를레네를 만났던 그 밀림. 세를레네는 자신을 구해준 실력있어보이는 모험가들, 즉 아린일행에게 도움을 청했었고 그래서 아린일행은 고민끝에 그녀를 돕기로 결정을 내렸다. 사실 유나나 피트는 세를레네를 도와 그녀가 다시 자신의 지위를 찾게하자 는 의견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았다. 세틴 역시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정도는 있었지만 며칠 전의 일로 함부로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에 회의적으로 변해 있었다. 아린은 애당초 아무 생각이 없으니 아무도 그에게 의견을 묻질 않 았다..... (이 녀석 정말 주인공인가?^_^;;;)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들이 세를레네, 제국남령주 마도여왕인 그녀를 돕겠 다고 나서는 것은 오로지 아리아의 태도때문이었다.

"우웅 아리아 지금 뭐하지?" 
"빨래할껄요?" 

작은 농촌마을..제대로 된 여관이 있을리었다. 사실 여관이라고 간판만 달았지 종업원도 없는 1층짜리 농촌집이었고 그래서 주인들은 전부 밭일 하러 나가버렸기에 이곳엔 손님을 접대할만한 일손이 없었다. 셀프서비스였던 것이다. 게다가 아린일행이 돈이 많은 것 도 아니어서 딱 숙박비만 내었던 탓도 있었다. 덕분에 아리아는 3시간동안 열심히 빨래를 해야했다. 아린은 창틀에 몸을 걸친채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으로 널찌막한 앞마당이 보였 고 그 한켠에 색색가지 옷들이 주렁주렁 빨랫줄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옷자락들 사이로 가끔씩 앞치마를 두른 아리아의 모습이 아린의 눈에 들어왔다. 피트도 몸을 일으켜 아린옆에 서서 아리아를 쳐다보았고 피식 웃으 며 중얼거렸다.

"의외로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군요. 초거대장검을 휘두를때와는 달리,,, 
왠지 저쪽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하네요..뭐 표정만 빼고,,," 

아린은 몸을 일으켜 창틀밖으로 몸을 뺀뒤 무뚝뚝한 표정으로 빨래를 널고있는 아리아에게 고함을 질렀다.

"아리아~~ 옷 언제 말라아?" 

쌀쌀한 답변이 돌아온다.

"곧 다려줄께요." 

대답과 함께 아리아는 빨래줄 구석에 걸려있던 갈색 상의를 집어들고서 집안으 로 들어왔고 잠시후 여관방문을 열고서 그녀의 그 거대한 `전천후 다목적 장 검'을 집어들었다.

"엥~ 이옷 입기 싫어. 너무 거추장스럽단 말이야.." 

툴툴대는 아린을 뒤로 한채 아리아는 검을 쥔 손에 마나를 불어넣었고, 검은 곧 새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아 리아는 그걸 들고서 천천히 옷들을 다리기 시작했다. 무수한 몬스터들을 학살한 그 대검이 지금은 다리미대용으로 쓰이는 것이다. 실로 다목적 검이라 아니할수 없겠다. 신기한 듯 검주위를 얼쩡거리는 아린을 보며 아리아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데입니다." 

그러나 아리아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아린은 까불며 돌아다니다가 결국 손끝을 데었다고 한다...


그녀의 거대한 장검이 방안을 누비며 옷을 다리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침상 위로 올라간 채 (검 길이가 2미터가 넘다보니 다들 침대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조용히 옷이 다려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아린이 데인 손끝을 입안에 넣고 쪽쪽 빨며 재차 투덜댔다.

"이젠 이런 옷 입기 싫어..." 

아린의 말에 피트 역시 대꾸는 안 했지만 표정으로 동감을 표했다. 그동안의 긴 여정으로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진 옷들, 당연히 아린일행은 마을 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옷부터 제대로 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린일행의 식모이자 뒤치닥거리를 책임졌던 아리아가 현재 빨아서 널어 놓는 중이다. 즉 현재 그들이 입고 있었던 옷은 아리아가 몽땅 빨았다. 그럼 이들은 뭘 입고 있겠는가? 있는 옷이라곤 여관주인한테 얻은 옷들이 전부다. 그래서 아린은 헐렁해서 어깨가 늘어내리고 무릎까지 덮는 큰 상의에 바지는 아예 입지도 않아서 새하얀 허벅지를 그대로 드러낸체 거의 원피스 차림으로 침상에 앉아있었고 달의 여신 하르니안의 고위사제 피트군은 잼뱅이 바지에 헐렁한 셔츠를 입어 완벽한 농꾼의 모습을 하고있었다. 햇볕이 따가와서 밀 집모자도 썼다. 이러니 불만이 안나오겠는가? 그러나 의외로 농촌 아낙네가 되어버린 마도여왕 세를레네께서는 별 불만이 없는 듯 조용히 옷을 다리는 아리아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녀는 옷차림에 별 관심없는 듯 꾀재재한 앞치마를 그냥 두른 채 다림질에 열중이었다.

`정말이지 지독하게 무표정하네..." 

하지만 세를레네로써는 아리아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리아 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시간이 조금 흐르자 상의가 다 다려졌고 바지 역시 다 말랐다. 아리아가 건네주는 바지를 양다리에 끼워넣는 아린을 보며 피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휴우...할수 없지. 아리아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되니..." 


아무리 잘난 모험가라도 일단 먹고 싸고 입는 이 3가지는 하고 살아야 한다. 게다가 애당초 준비해온 도구를 몽땅 잊어버린 그들이니만큼 거의 야생에 가깝게 헤쳐나왔다. 짐승 잡아먹고 산나물 캐먹고 과일따먹고..뭐 이러면서. 게다가 옷도 몇벌 없으니 잘 빨아입고 다녀야 한다. 안그러면 병난다. (병걸려도 피트가 고쳐주기는 하겠지만..) 그렇다면... 이런 사소한, 하지만 필수적인 일들을 그동안 누가 책임졌겠 는가? 귀족인 세틴이? 고위급 신관인 피트가? 아니면 여왕으로 자란 세를레네가? 그것도 아니면 레드드래곤인 아린이? 이도저도 아니면 전직 도둑, 현직 마 도사인 16살짜리 어린 꼬맹이가 하랴? 결국 농촌 처녀로 자라난 예비 주부(?) 아리아양이 모든 것을 도맡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로써는 맨날 하던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녀는 파티의 최강전력이었다. 정말이지 그동안 몬스터 무수히 만난 아린일행이었지만 아리아의 장검덕분에 손 하나 까닥할 필요가 없었다. 그뿐이랴, 야외에서 노숙을 할때에는 몬스터들의 습격에 항시 대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리아의 감각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어서 거의 인간경보기였던 것 이다. 경보기뿐인가? 알아서 몬스터들을 도륙하고 돌아오니, 잠 푹 자고 다음 날 일어나면 주변에 몬스터들 시체가 즐비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런 아리아가 세를레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전 이 분을 돕겠습니다." 

라고 하니 나머지 사람들로써는 찬성안 할 도리가 없었다. 물론 피트는

"저희는 이런 일에 끼어들만큼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라고 역설했고 세틴은

"난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의 스승님을 찾아야합니다." 

라고 우겼지만, 여지껏 바늘가는데 실 가듯이 세틴을 졸졸 따라다니던 아린이 딱 배반때리고

"응..난 아리아 도와주고 싶어..난 아리아랑 갈래.. 

라고 하자, 그리고 그런 아린의 태도에 세를레네에게 영 못마땅한 태도를 보 이던 유나도 아린을 따라가겠다고 의사를 밝히자 결국 세틴 역시 아리아를 돕기로 태도를 바꿨다. 결국 피트 하나빼고는 전부 아리아의 의견에 찬성 표를 던졌고 그래서 피트는 좀 돌아서라도 제국의 남부지구 수도인 엘 파르드 까지 같이 동행하기로 결정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피트가 생각에 잠긴 사이 아리아는 나머지 옷들도 차례대로 다림질하기 시작했 고 아리아가 건네준 갈색상의로 머리를 들이미는 아린을 보며 피트는 아쉬움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음...수도까지 가서, 달의 신전을 찾은 뒤엔 이들과 헤어져야겠구나.." 

시대를 막론하고, 여행자나 상인들, 행상들이 자주 오고가는 교통 요충지상 의 고개에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꼼짝마라!" 

혹은

"가진 것 다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으하하하!!" 

라는 실로 간결하면서도 그 뜻을 명확히 전달할수 있어 언어학적으로 매우 훌 륭한, 허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해 진부하기 그지없는 그 대사를 부르짖으며 여행자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산적'이라는 것이었다. 제국 남령지 곡창지대를 지난지 사흘째에 접어든 아린 일행은 남령지 사우스 가이아네스의 중부지대로 넘어가는 이 마다인 산 고개에서 이곳의 터줏대감 들을 만나게 되었다.

"꼼짝마라!" 

여행경비가 빈약한 탓에 말들의 구입이 여의치 않아 그냥 체력이 약한 세를 레네와 피트를, 그리고 스스로 걸을수 없는 여타한 여행용 물품들을 미리 사놓은 말 3필에 얹어놓고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던 아린일행은 그들앞에 나 타난 20여명에 달하는 한 무리의 산적떼들의 모습에 걸음을 멈춘채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다. 그들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산적들은 눈치가 꽤 없었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기량에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는지 비실비실 웃 어대며 아린 일행을 둥글게 포위했고 그중 목청좋게 생긴 덥수룩이 사내 하나 가 모닝스타를 어깨에 짊어지며 생긴값을 하겠다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가진 것 다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으하하하!!!" 

어쩜 저리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을까... 얼굴에 `나는 틀림없는 정통산적을 지향하는 자다' 라는 것을 표방하기라고 하듯 하나같이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근데 사실 산적들이 수염이 덮수룩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뭐 남들에게 이쁘게 보이겠다고 매일 아침 수염을 깍는 수고를 해야하겠는가? 그게 얼마나 귀찮은데 ) 애써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보기에도 무시무시해보이는 온갖 기괴한 모양의-그러나 실전에서의 유용도는 보장할 수 없는- 번뜩이는 무기들을 철컹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만약 말을 안 들을 경우 매우 아프게 때려주겠다는 명백한 의사를 표시하고 있었다. 아린일행을 포위한 산적들 중 한 사람이 아린과 세를레네, 그리고 피트를 연달 아 쳐다보며 실실 웃어댔다.

"흐흐... 생긴것들이 다들 이쁘장한데요 두목?" 
"그렇군. 그냥 갖다팔아도 돈 꽤나 받겠는데 크하하." 

호탕하게 웃는 그들의 두목의 말에 옆에 있던 건장한 장정 하나가 아리아를 보 며 음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기 저 여자는 값어치가 좀 떨어지는 거 같으니 우리들이 깔개로 쓰지요. 
에헤헤." 

아~ 이 얼마나 정통산적다운 대화일손가? 과연 그들 `마다인 산적단'은 산어귀 에 있는 여관에서 여행자들이 마다인산에 대해 물을 때마다 꼬박꼬박 "저 산에 는 무서운 산적이 있으니까 산을 오르지 마세요"라고 조언을 해줄만큼 명성이 있는 산적단들인 것이다. 당연히 그들, 산적들은 눈앞의 이 어린 남녀 여행자들이 공포로 얼굴빛이 하얗 게 변하면서 잽싸게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째 이들의 태도가 이제까지의 경험과는 좀 다르다는 걸 그들이 느끼는데는 오 랜 시간이 걸리지않았다. 우선 강해보이는 인상을 한 검은 머리소년의 한마디가 그들의 비위를 거슬렸고

"저런..산적이군." 

붉은 머리의 갸냘파보이는 미소녀-로 보이는...- 가 맞장구를 쳤다.

"우와 저게 산적이란 거야? 오랑우탄 같네?" 

금발의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리까리한 이쁘장한 소년의 대답 역시 가관이었고.

"일단은 사람입니다만..." 

갈색머리의 약간 나이먹어보이는, 등에 거대한 널판지 비스무레한 걸 짊어 진 한 여인은... 그저 무표정할뿐.

"......" 

새하얀 보자기를 뒤집어쓴 왠 꼬맹이 소녀는 아예 한숨까지 쉰다.

"여관에서 들었던 대로군요." 

이와 대조해서 자신들을 보며 덜덜 떠는 표정의 금발 미소녀가 그나마 분위기 를 맞춰주긴 햇지만....

"모두들..조심하세요..." 

단지 금발의 절세미소녀, 갖다팔면 한 밑천 톡톡히 잡을 것같은 그 미소녀의 반응만이 제법 산적들의 기호에 걸맞았을 뿐 나머지 인간들의 반응은 그야말 로 무시, 그 자체였고 그래서 산적들은 일단 당황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황당 해했다.

"어쭈..이 놈들 봐라?" 

일반 시민, 혹은 좀 단련된 용병이라 할지라도 이런 산적들의 모습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서로에게 적절한 통과세를 바침으 로써 부드럽게 넘어가는 관례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눈 앞의 어린 것들, 하나 같이 10대의 소년 소녀에 약간 나이먹은 여인 하나로만 이루어진 비리비리한 일행이 공포에 떨긴 커녕 오히려 눈을 내리깔고는 불쌍하다는 표정을 자신들에게 지어보이는 것에 대해 이해를 할수가 없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덕분에...무식은 몰이해를, 몰이해는 분노를 불렀고 원래 무식한 놈이 목소리는 큰 법인지라 그들 중 두목급쯤 되어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참으로 쩌렁 쩌렁하게도 외치기 시작했다.

"말이 말같지 안 들리나? 어린 것들이 무서운 줄을 모르는구나!" 

외침과 함께 아린일행을 둥글게 포위하고 있던 산적들이 제각기 무기들을 철컹거리며 다분히 위협적인 동작들을 제각기 선보이기 시작했다.

"에휴..." 

물끄러미 눈앞에서 웅성대는 산적들을 바라보던 유나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 왔다. 도대체가 저놈들은 두 눈을 멋으로 달고 다니는 건가? 그저 약간 나이먹은 듯 한 그 여인의 등에 길이 2.4미터짜리 초대형 장검이 매달려있다는 건 보이지도 않는 건가? 예쁘장하기만 한 금발의 미소년만 눈에 들어오고 그가 입고 있는 고위사제의 복장은 알아보지도 못하는 건가? 하다못해 백마도사의 로브정도는 알아봐야 할것 아닌가?

"빨리 끝내죠." 

유나는 기운없이 아리아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고 그런 유나의 모습에 아리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은 일행들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펼쳐질 멋진 활극을 가장 편한 자세로 구경하기 위해 자세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물론 세를레네는 떨고 있었지만... (왜 꼭 하나씩 튀는 놈이 있는 걸까? 글쓰기 힘들게시리...) 산적의 외침이 도화선이 된 듯 그 순간 아리아의 신형이 솟구쳤다. 그리고 산적 들은 그제서야 그녀가 메고있는 회색빛의 네모난 널판지(?)의 정체를 알수 있었 다.


원래 제대로 된 상식을 가진 자라면 아리아의 등에 매어진 거대한 검을 보고 도 싸움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덕분에 이곳 마다인 산의 터줏대감들께서는 몰상식의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었다.

"으아악!" 

아리아의 대검이 바람의 저항을 받아 거세게 휘둘러졌고 그 흐름의 궤적 안에 산적 하나가 걸려들었다.

"꾸에에엑" 

그녀의 돌려차기가 산적 하나의 복부에 깊게 꽃혔다.

"크허어으아악Tul (talk)" 

이어서 터져나오는 온갖 체술과 검술의 화려한 콤비네이션! 쿵쿵~~쾅쾅~~퍼버버벅Tul (talk) 뻑적지근한 타격음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산적들은 하나하나 쓰러져갔고 아린일행은 이제까지처럼 옆에서 멍하니 구경하거나 혹은 아린처럼 검을 만지작거리며 낄까말까 고민하는, 아님 피트처럼 말 위에서 쓰러져가는 산적들을 내려다보며 그들을 위해 안식의 기도를 올린다던가 하는... 뭐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세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일로 오늘은 아리아씨가 아무도 죽이질 않으시는군요?" 

일단 바스타드를 뽑아들고 일행들 앞을 호위하고 있는, 그러나 휘두를 기회 는 갖지 못한 세틴이 조금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고 그 소리에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그리고 유나도 아리아의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에 의아해하는 중이었다.

"이상하네요 정말? 인간이라고 봐줄 아리아씨가 아닌데?" 
"그...그럴리가?" 

안식의 기도를 올리던 피트 역시 놀란 눈으로 아리아를 쳐다볼 뿐이었다. 대체로 이제껏 아리아가 펼친 활극의 그 장르가 컬트 호러물이었던 것에 비해 오늘은 코믹 액션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동안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이번엔 그저 넓직한 칼날의 옆면으로 휘적휘적 날려버리기만 하는 아리아였고 물론 산적들은 그때마다 실로 다채로운 비명을 지르며 자신들의 개성을 마음껏 과시했다. 상황이 종료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 

얼굴 반쪽이 퉁퉁부은 산적두목은 물끄러미 자신의 수하들을 완벽하게 패버린 저 괴물녀(?)를 바라보았다. 이미 대다수의 산적들이 쓰러져있는 지금 아리아 는 더 이상 전투를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그 널부러진 채 신음을 내뱉는 산적떼들 사이에서 말없이 서있을 뿐이었다. 산적두목은 어이가 없었다. 불과 10여분 지났을 뿐인데 20명 끌고와서 멀쩡한 놈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단지 비틀거리거나 휘청거리는 놈들이 몇몇 남았을 뿐. 결국 얼굴반쪽이 퉁퉁부은 산적, 몇분 전까지만 해도 호탕하게 웃어대던 산적 두목은 이를 갈며 소리를 칠수밖에 없었다.

"후..후퇴다...!!" 

산적들은 쓰러진 동료들을 하나둘씩 둘러메고 아리아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숲속으로 그렇게 사라져갔고 아린일행은 꽁지빠져라 도망가는 산적들을 바 라보며 무덤덤히 바라보다가 다분히, 다분히 예의상 아리아를 향해 안부를 물었다. 뭐 다친데 없을 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나...아리아에게 손짓을 하며 말을 걸은 세틴의 표정이 놀람으로 바뀌 었다.

"아리아씨, 괜찮?....어 피가?" 

아리아의 새하얀, 그녀의 초거대장검을 가볍게 쥔 그녀의 새하얀 손에는 붉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팔을 덮은 셔츠의 천이 붉게 물들 어있었다. 하지만, 천은 멀쩡했다. 유나가 다급히 물었다.

"이..이게 어떻게 된...?" 

산적들의 피가 튄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리아는 그저 그들을 두드려 쫓아보냈 으니까. 산적들은 전신이 타박상으로 붓기는 했을지 몰라도 피를 흘리지는 않 았다. 하지만 아리아가 입은 상처라면 천이 이렇게 멀쩡할 리는 없지... 주위의 의아해하는 시선들을 느끼며 아리아는 검을 바꿔지고서 검을 쥐었던 오른손을 살짝 들어 바라보았다. 새하얀 손과 그 위에 흐르는 붉디붉은 선혈....

"...실수했군. 거스르지 않았어야 했나..." 

아리아의 나직한 중얼거림에 일행들의 표정이 걱정에서 의아함으로 바뀐다.

"????" 

그러나 아리아는 일행들의 궁금증에도 불구하고 그냥 고개를 돌린채 셔츠를 갈아입을 뿐이었다. 일행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되었지만 셔츠자락을 벗어든 그녀의 팔에는 이미 상처가 없었다.

[나우] 카르세아린 184회 

산속에서는 날이 빨리 저문다. 멍청한 산적양반들이 꽁지빠져라 도망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주위는 금방 어둑어둑해졌고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만 가고 있던 아린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해저문다." 
"또 노숙인가..." 

피트의 혼잣말에 묻어나오는 진한 비애(?)에 일행들이 동감하며 걸어가는 도중 -두 명은 말을 타도 가던 중-그들의 눈에 한 희끄무레한 건물 하나가 들어왔다. 건물, 건물인 것이다. 지붕이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지붕이 있다는 건 차가운 밤이슬을 피할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자연히 일행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곧 그들은 허물어져가는 낡은 2층짜리 목조건물을 하나 발견할수 있었다.

"음? 이런 곳에 이런 건물이?" 

건물에 가까이 다가가며 세틴이 혼잣말을 내뱉었고 세를레네가 그런 세틴의 혼 잣말에 조용히 대꾸했다.

"사냥꾼들의 오두막 아닌가요?" 

이런 산중에는 사냥을 나서는 사냥꾼들이 비상용 오두막을 지어놓는다는 소리 를 어디선가 들었던 적이 있는 세를레네, 그러나 그녀의 말은 유나의 대꾸로 그 신빙성을 잃게 되었다.

"사냥꾼들이 뭣하러 오두막을 2층씩 올려서 짓겠어요?" 

유나의 말대로 눈앞의 건물은 평범한 집 이상의 크기는 아니었지만 오두막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비록 낡긴 했지만 2층 창문-이었을 걸로 보이는 뻥 뚫린 구멍-앞에는 테라스 의 형태를 지닌 나무판자들과 난간들도 비교적 그 형태를 잘 고수하고 있었고 겉보기보다는 제법 튼튼해보여서 최악의 상황, 즉 자는 도중에 지붕이 무너진 다거나 하는 날벼락은 면할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드는 건물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낡긴 했어도 하룻밤 묵어가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어보이는 건물이라는 이야기였고 그 사실은 노숙에 진절머리가 난 일행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맨바닥보단 그래도 여기가 낫겠지요?" 

세틴의 말에 모두들 동감을 표했다. 그동안 첫번째 마을을 들린 이래 꼬박꼬박 여관에서 잠을 자와서 노숙을 다시 한다는 것이 영 미덥지 않은 그들인데다가 산속의 밤은 춥고 비록 다 허물어져가는 낡은 폐가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기에 결국 아린일행은 오늘 밤은 그곳에서 묵기로 결정을 보았다. 앞장선 세틴이 대문을 살짝 밀어보았고 그것은 삐걱거리는 거슬리는 음향을 내며 스르르 열렸다. 먼지가 제법 피어올라 손을 휘저으며 실내를 살펴보던 세틴의 발 치에 문득 무엇인가가 툭하고 채였다.

"?" 

나무로 된 다 삭아들어가는 간판. 그리고 그곳에는 대륙공용어로 [라이라의 INN]이라고 적혀있었다.

"원래는, 여관이었던 것 같군요." 

세틴의 말에 일행들은 집안 내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상당히 지은지 오래되었는 지 군데군데 부서져있는데다가 자욱히 거미줄까지 끼어있어서 안그래도 어둑어둑 한 저녁녘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세틴이 주위를 둘러보며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실내에서 무엇인가가 날아올랐 다.

푸다다다다다다닥!!!! 

사방으로 울려퍼지는 날개짓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꺄아악!" 
"?! ???" 

비명성에 흠칫한 아린이 정신없이 고개를 둘러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난 또 뭐라고..." 

검은 무엇인가가 실내를 가득 덮고서 사방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사방으로 비산하며 각각의 구멍들로 빠져나가는 날짐승, 그것은 이런 곳에 흔히 서식하 는 흔한 박쥐들이었고 그래서 아린일행들은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세틴이야 그런 정도에 놀랄리 없고 유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린은 자신의 레어에 쌔고쌘게 박쥐니 반가우면 반가왔지 놀랄리가 만무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비명을 지른건가?

"걱정마세요 단순한 박쥐들입니다. 원래 이런 폐가에는 박쥐들이 잘 살지요." 

세틴은 자신의 팔에 매달려 벌벌 떠는 세를레네를 보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고 그제서야 그녀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쑥쓰러운 듯 세틴의 팔에서 손을 떼었 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세틴의 손은 꼭 붙잡고 있는 중이었다.

"하아..하아...노..놀래서 그만..." 
"아하하...괘..괜찮습니다만..." 
`.....' 

세틴에게 달라붙은 세를레네와 벌개진 세틴의 얼굴을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 보던 유나는 그저 눈쌀을 약간 찌푸린 뒤 다시 집안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홀임이 분명한 1층 공간에는 부서진 탁자와 의자들이 이리저리 나뒹그러져있 고 그위로 수북히 먼지가 쌓여있었다. 그 먼지를 손끝에 약간 묻힌뒤 입으로 휙 날려보던 피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왜 이런 곳에 여관이 있었을까요?" 
"그야...이곳은 산어귀에서도 들었던대로 교통의 요충지이니까..." 

시야의 확보를 위해 라이팅의 마법으로 불을 밝힌 유나가 피트의 말에 조용히 대꾸했고 시야가 밝아지자 홀 이곳 저곳을 걸어다니며 이것저것 만져보던 세틴 이 유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을 던졌다.

"그럼 왜 이렇게 폐가가 되었을까요?" 

여전히 오른손에 세를레네의 왼손을 꼭 쥐고 있는 세틴을 보며 유나가 퉁명스 럽게 대꾸했다.

".....그 산적들 때문이 아닐까요?" 
"그 형편없는 작자들때문에 말입니까?" 

세틴이 고개를 돌려 반문을 던졌다. 아예 세를레네는 세틴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기로 작정을 했는지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겁먹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 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나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아무 대꾸 없이 그냥 일 행들이 자리잡을만 한 곳을 물색하는 중이었고 머쓱해하는 세틴의 얼굴을 보 며 피트가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아마도 그들은 이곳에 자리잡은 산적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군 
요. 아마도 급수가 낮은 놈들이었겠고...그 정도의 기량으로 그렇게까지 유명 
해질리는 없으니 말이죠. 그렇다면 패거리들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데.." 

말을 하며 피트가 슬쩍 아리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아리아씨가 있으니 무슨 걱정이겠습까마는...." 

피트의 말에 세틴과 유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피트의 말에 연상된 의미를 깨 달은 탓이었다. 그녀의 힘은 지나치게 강했다. 다른 일행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덕분에 언제부터인지 모든 전투를 아리아에게 미루어버리게 된 아린일행이었고 피트도 문득 그 생각을 했는지 쑥쓰러운 표정으로 말꼬리를 붙였다.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요?" 

혼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는데 아무리 아리아가 무뚝뚝하긴 하지만 좋을 리가 있을까? 그래서 피트가 말꼬리를 슬쩍 흘리며 그녀의 눈치를 보았지만 , 그러나 아리아는 개의치않고 홀 한쪽 비교적 멀쩡한 마루부분을 발견하고 서-특히 박쥐똥이 없는 곳을 찾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그곳의 가구나 부서진 나무판자들을 치우는 중이었다. 전혀 신경쓰지 않는 태도. 그런 그녀에게 아린이 폴짝대며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아리아~ 나 배고파." 

그녀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금방 되요. 기다려요." 


이들이 함께 여행을 해온지도 꽤 오래되었고 그동안 거의 대부분의 잡일은 아리아가 맡아왔지만, 적어도 하나만큼은 유나가 줄곧 해왔다. 그것은 요리였다.

"피트씨. 이것 좀 휘젓어주실래요?" 

스프냄비에 버터와 옥수수가루를 넣고서 잠시 휘저어 놓은 유나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피트를 불렀고 피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로 다가 갔다.

"아..예" 

피트가 유나의 말대로 마루 일부분을 뜯어 만든 화덕으로 다가가 그곳에 걸려 있는 둥근 냄비 속을 국자를 들고 하염없이 휘젖는 동안 아리아는 다른 쪽에서 조용히 감자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한편 그 옆에서 하나하나 저녁식사용 검은빵을 데우고 있던 유나가 문득 세틴 에게 고함을 질렀다.

"아참, 물 떨어졌겠다. 세틴! 물 떠와요." 

세틴은 군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나는 요리, 아리아는 잡일 혹은 감자껍질까기같은 고난이도의 숙련도을 요하 는 기술을 행하는 동안 손재주없는 기타 인물들은 허드렛일을 도맡아하고 있었다. 다른 모험가 파티들은 어찌하는지 모르겠다만 이쪽 동네는 워낙 할수 있는 일 이 딱딱 정해져서인지 돌아가며 요리를 한다거나 뭐 돌아가며 불침번을 본다거 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를 않는 것이다. 유나. 요리한다. 피트, 단순하면서도 힘 적게 쓰는 작업을 한다. 세틴, 단순노동, 즉 힘쓰는 작업이 그의 몫이다. 아리아? 남은건 전부 그녀의 몫이다. 그래서 유나는 지금 세틴을 마치 머슴 부리듯이 마음껏 불러대고 있었고 세틴도 별 반감따위는 가지고 있지않았다. 식사시간엔 유나가 왕이다..라는 법칙이 은연중 성립된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아린에게 뭘 시키는 것만큼 바보같은 짓은 없다는 걸 일행들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톡톡히 깨닫고 있는지라 아린은 옆에서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 거라는 옛속담 말대로 쫄랑 거리면서 다른 사람 일 방해는 하지 않게 되었으니 꽤 진보한 거라고 해야하나? 세틴이 짐꾸러미에서 수통을 찾아든 뒤 저만치서 스프냄비앞에 주저앉아 열심 히 국자를 휘젖는 피트에게 말을 걸었다.

"근처에 시냇가같은 거 없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피트가 눈을 감고 한손을 곶추세운 뒤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고위사제의 복장을 한 절세의 미소년이 한손으론 국자를 휘젖으며 한손으로는 주문을 영창하고 있다. 꽤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아닌가? 그래서 세를레네가 킥 하고 웃어댔다.

"키킥.."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별로 안 웃겼는지 별 반응이 없었고 머쓱해진 세를레네 가 고개를 숙이는 동안 피트가 눈을 번쩍 뜨더니 세틴에게 외쳤다.

"있네요. 물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200미터쯤 저 쪽으로... 아마도 시내가 
흐르는 모양이군요." 

말을 이으며 그의 손가락이 창문 한쪽을 가리켰고 그러자 세틴은 감사하다는 표시를 한뒤 수통을 들고 유나에게로 다가갔다.

"설겆이 할거 줘요. 쓸것만 빼고. 가는 김에 그것도 마저 해옵시다." 

그때 가만히 앉아있던 세를레네가 유나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저도 뭔가 돕고 싶어요." 

유나는 멀뚱히 그녀의 눈앞에 있는 금발의 아름다운 소녀를 바라보았다. 여왕으로 자라난 그녀가 할수있는 일이 도대체 뭐가 있을까? 유나의 입에서 시큰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요? 그럼 세틴 따라가서 이것 설겆이라도 해오실래요?" 
"설겆이..." 

유나가 건네주는 식기들을 받아든 세를레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무엇인가 를 결심한 듯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번도 안해봤지만...해볼께요. 잘 할수 있어요." 

그리고 세틴과 함께 설겆이거리들을 들고나서는 세를레네를 바라보던 피트가 유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금속식기라서 다행이네요..." 

유나가 생긋 웃으며 답했다.

"그래요. 깨트리진 않겠지요." 

어찌됐건 다들 바쁘다. 그리고 그와 대조적으로 한가하기 그지 없는 붉은머리 의 미소년이 있었으니... 다들 제각기 바쁘게 움직일때는 혼자 쉬는 인간이 더 심심한 법이다. 심심한 나머지 괜히 투정한번 부려보는 아린이었다.

"배고프다~~" 

그러나 그의 하소연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쯧쯧..) 한편 스프가 끓자 유나에게 국자를 빼앗긴 피트는 창틀에 기대어 세틴과 세를 레네가 간 쪽을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그 산적들이 패거리를 몰고 오기라도 하면..." 
"괜찮을 걸요. 먼 거리도 아니고,,," 

스프를 휘젖던 유나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세틴은 그정도로 약하지 않으니까요." 


피트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200미터쯤 걸어가니 과연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얕은 시냇가가 세틴의 눈에 띄였고 세틴과 세를레네는 물가로 다가갔다. 그리 고 세틴은 그 곳에서 양철로 된 그릇들을 들고서 멍하니 서서 뭘 어찌해야 할 지 자문을 구하는 눈초리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금발의 소녀에게 친절히 말을 걸어주었다.

"설겆이 해본 적 있습니까?" 

도리도리~~ 세를레네의 고개가 좌우로 휘저어졌고 세틴이 조금 한심스러워 하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하긴..직위가 직위니 만큼...손에 물 묻혀본적도 없겠지요." 

세를레네가 우물쭈물하면서도 야멸차게 대꾸했다.

"있어요! ...세수할 때..." 

세틴의 얼굴에 기막혀하는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런 뜻으로 물어본게 아 니잖는가?

`하아...이건 뭐 또 하나의 아린이구만...' 

세틴이 기운빠지는 음성으로 수통의 물을 채우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세수는 본인의 손으로 했나보군요. 다행이네요." 

그러자 세를레네가 얼굴을 붉히면서 조용히 대꾸했다.

"아뇨 궁에서 나온 다음에...래픽시스 경과 같이 있을 때.." 
"......궁에서는요?" 
"그야 당연히 시녀들이..." 
"..........." 

잠시 말문을 잃은 세틴이었다. 하지만 세틴은 자신 역시 유나에게 설겆이 하나 제대로 못한다고 구박받았던 시절을 기억해냈다. 하긴, 그녀는 여왕이 었다. 비록 실감은 잘 안나지만 그녀가 진실로 제국의 2인자라면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결국 세틴은 수통의 물을 다 채운 뒤 식기들을 들고서 우물쭈물하는 세를 레네를 물가로 이끌었다.

"음..내가 시키는대로 해요. 자, 이 밀기울뜨물가지고 여기를 박박 문질 
러요. 이건 수세미니까 여기를 이렇게,,,," 

말을 함과 동시에 팔을 걷어붙이고 그릇들을 닦는 세틴.

"음..으음.. 이렇게요?" 

세를레네는 열심히 세틴의 흉내를 내었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혹시라도 식기 가 두둥실 떠내려간다던가 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 우고 있던 세틴은 잠시 후 피식 웃으면서 세를레네에게 칭찬의 한 마디를 건 넸다.

"그래도 아린과는 다른 점이 있군요. 

쭈그려앉아 수세미로 그릇들을 문지르던 세를레네가 땀방울 어린 얼굴을 들고 세틴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에?" 
"걔는 가르쳐줘도 못하거든요." 
"꺄하하하..." 

얼마 안 가서 세를레네는 익숙하게 설겆이를 할수 있었다. 뭐 그렇게 칭찬받을 일은 아니지만....설겆이 못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는가?-아린은 드래곤이니 제외하도록 한다.- 한참을 그렇게 쭈그려 앉아있던 세를레네는 단순반복작업이 심심했는지 옆에서 같이 설겆이를 하고 있는 세틴을 보며 말을 걸었다.

"그러고보니..아까 왜 그리들 놀라셨지요?" 
"뭐가요?" 

세틴이 갸웃거리며 대꾸하자 세를레네가 다시 물었다.

"아리아씨가...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다들 이상하게 놀라시던데..." 

세틴은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그제서야 세를레네는 아리 아의 본모습을 본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 구출할때 아리아가 제국병사 들을 학살하는 장면, 그 장면은 기절하느라 보지 못한 그녀였다. 그 이후로도 밀 림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 빼고서 제국령으로 들어온 후에는 별다른 전투를 하지 않은 아린일행이었다.

'아..사실은..." 

세틴은 되도록 완곡한 표현을 써서 세를레네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설명해주었 다. 아리아를 처음 만났던 그때부터 그 이후까지의 일을. 혹시나 여린 마음에 아리아에게 겁먹을까봐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세를레네는 그런 것에는 의외로 별 신경을 안쓰는 것 같았다. 그녀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듯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흐음...그런데 갑자기...사람을 죽이지 않게 된거라..." 

그때 세틴은 볼수 있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세를레네의 표정을. 그것은 마도사의 표정, 냉혹하게 모든 것을 연구가치로만 판단하는 마도사들 특유의 표정....잠시 놀란 세틴이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서 설명을 맺었다.

"뭐 몬스터들을 상대할 땐, 전과 다름이 없다가 갑자기 오늘따라 이상하시길 
래..뭐 그래서 놀란 거죠." 

세틴의 설명은 끝났지만 세를레네에겐 의문이 남아있다.

"그럼 피는 왜 흘렸을까..." 

그때 세틴이 고개를 숙이며 나직한 목소리로 세를레네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떠들고 있을 때가 아니군요." 
"네에?" 

배가 고프니 잡소리 말고 빨리 설겆이나 끝내라는 뜻일까? 세를레네가 의아한 눈으로 세틴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입에서 고함이 터졌다.

"타앗!" 

그순간 풀숲 사이에서 화살 하나가 바람을 가르며 세를레네에게 날아들어왔 고 그와 동시에 세틴의 바스타드 소드가 화살을 튕겨냈다. 화살은 저만치 튕겨 져 나갔고 그제서야 세를레네는 사태를 파악했다.

"꺄아악" 

낮은 자세로 검을 쥐고서 주위를 훑어보는 세틴의 눈에 풀숲 한 곳이 흔들리며 건장한 장정 십여명이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젠장...아까 그놈들 패거리인가?" 

뻔하지 않은가? 보나마나 아까 쫓은 산적들의 한패거리일 것이다. 세틴은 아이디어 빈곤의 극치에 달한 나머지 이런 흔하디 흔한 상황을 연출해버린 이 빌어먹을 소설의 작가를 속으로 욕하며 한 손으로 세를레네를 그의 뒤에 세운채 그들을 노려보았다. 한편 그들중 덩치가 제일 큰 30대의 사내 한명이 세틴을 보더니 눈쌀을 찌푸리 며 호통을 질렀다.

"저런 어린 놈들에게 당했다는 거냐? 한심한 놈들..." 

옆을 보아하니 몇 시간전 아리아한테 두들겨맞고 쫓겨난 걸로 추청되는 덥석 부리 멍든 사내들 몇몇이 서있다. 세틴은 일단 인원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안심하며 그 덩치큰 사내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누가 한심한지는 아직 모르는 법이지." 

사내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제법 기개가 있는 놈이로군.." 
"실력도 있지." 

세틴은 느긋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그렇게 느긋하지만은 못 했다. 사실 세틴 혼자라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지금 그의 곁에는 짐이 딸려 있는 것이다.

`뭐..그렇다고 불리한 상황도 아니지. 난 몬스커들 떼거리와도 싸워봤는데.. 
고작 산적들 정도야...' 

세틴은 검을 굳게 움켜쥐고서 주위를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정신차려라 세틴. 힘없는 여인 하나 보호하지 못하고서야 무슨 기사란 말 
이냐!' 




계속-----------------------------------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 법이지 
그럼 약속을 도대체 누가 한단 말이오? 
그야...배신 당하고 싶은 녀석들이 
by 쿠베린 (쿠베린 그 이름을 찬양하라! 그는 인생을 아는 사나이였다.) 
^_^;;;웃자 웃어 허허허..난 스토리만 있으면 글이 펑펑 써질줄 알았지 뭐 
돌을 던지슈 돌을! 다 맞아줄께유 엉엉Tul (talk) 
(호언장담은 이틀만에 갖다버린 벗꽃의 발악. 아 애처럽도다~~) 
-다른 사람은 다 돌을 던져도 로오나님과 펜릴님만큼은 나한테 돌을 못 던 
질 껄Tul (talk)- 오오 아름다운 밀크팀이라니까... 

Template:초룡전기 카르세아린 -185- 스프는 보글보글~ 고기는 자글자글~ 빵은 따끈따끈~ 이 행복해보이는 저녁식사풍경에 쳐들어온 불청객들을 최초로 발견한 것은 구석에서 쪼그려앉아있던 아리아였다.

"적입니다." 

조용히 앉아있던 아리아의 입에서 갑자기 무뚝뚝한, 그리고 전혀 긴장감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스프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동안 이리저리 편 한대로 앉아있던 유나와 피트 그리고 아린의 귀에는 절대 긴장감없이 들리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은 흠칫 놀라 아리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무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 

그녀는 예의 그 초거대장검을 한손에 쥔채 조용히 눈을 감고 서있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유나가 피트에게 나직히 말을 걸었다.

"...아까 그 산적들일까요?" 

피트가 창문너머를 힐끔 쳐다보았다.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아리아의 감각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다.

"틀림없을 겁니다." 

아우말없이 서서 두 눈을 감고있던 아리아가 두눈을 그대로 감은 채로 유나 에게 말을 걸었다.

"포위되었습니다.. 숫자는 대강 50~60. 원형으로 이 곳을 포위하며 천천히 다 
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거리는 대강 30~40미터." 
"어쩌죠?" 

유나가 자신의 로브를 다시 걸치며 아리아에게 말을 걸었고 아리아 대신 아린이 자신의 허리춤에서 명룡도를 뽑아들고 기세좋게 입을 열었다.

"어쩌긴 뭘 어째? 악랄한 나쁜 산적들을 물리쳐야지." 

악랄한 나쁜 산적이라....아린은 아무 생각없이 한 소리였겠지만 전직 도적의 경력을 가진 유나에게는 꽤 거슬리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그들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에요." 

퉁명스럽게 아린을 쏘아붙이던 유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하긴..그래도 지금은 그런거까지 생각할 상황이 아니지.." 

아리아의 목에서 고저차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재차 흘러나왔다.

"적의 거리 10여 미터." 
"더이상 굳이 중계해줄 필요없어요 아리아씨." 

유나가 아리아의 말에 핀잔을 주면서 그녀의 로브 속에 갈무리된 3개의 단검 을 움켜쥐고 말을 이었다.

"저렇게 다 보이는데요 뭘.." 

그녀의 말에 아리아가 눈을 뜨고서 유나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여관의 삭아부스러진 창틀 건너편으로 한무리의 우락부락한 장정들이 손에 검이며 체인액스, 모닝스타-막대기에 별사탕 모양의 쇠뭉치 달린 거. 맞으면 매우 아프다- 등을 들고 그들 아린들이 있는 여관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대략 3~40명 정도, 아마도 시야밖에도 그만큼 더 있을 것이다. 하나같이들 기세가 흉흉한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기에 유나는 눈쌀을 찌 푸렸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아린이 명룡도를 움켜쥐고서 기세좋게 외쳤다,

"뭐해! 빨랑 나가서 싸우자!" 

유나는 그런 아린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피트는 오히려 웃음을 지 으며 아린의 말에 찬성을 표했다.

"하긴..기껏 찾은 바람막이가 날아가면 곤란하겠지요?" 

이런 낡은 여관에서 격투를 벌이다간 몽땅 무너져버릴게 틀림이 없다. 특히 아리아가 검을 휘둘러댄다면 그 확률은 더더욱 높아지는 것, 아린일행은 이 소중한 하룻밤의 잠자리와 그 속에서 끓고 있는 스프냄비를 포기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군요. 뭐 저 정도 인원이면...." 

아리아씨가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라고 하려던 유나가 슬쩍 그녀의 눈치를 보았고 그러자 아리아가 검을 움켜쥐고 먼저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도 재빨리 아리아의 뒤를 따랐다.


"무슨 일이신가요?"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나간 유나는 주위를 둘러싼 험상궂은 사내들을 힐끔거 리며 부드럽게 말을 걸었고 넓지막한 앞마당을 가득 메우는 험상궂은 장정 들, 그 사이를 태연하게 걸어나와 태연하게 말을 거는 그녀의 태도에 산적들 은 일순 당황했다. 그리고 그중 한 갈색머리의 2미터가 넘어보이는 거한 하나가 자신의 몸만큼이 나 거대한 배틀 액스를 한손으로 들고서 유나의 말에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배짱이 제법 좋군 그래..." 

입가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꼬맹이 소녀를 바라보던 거한의 말에 유나 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어머, 그 칭찬 해줄려고 온 건가요?" 
"아 물론 그건 아니지..." 

거한은 말꼬리를 흐리면서 2미터가 넘는 그 거대한 도끼를 한바뀌 휭 하고 돌린 뒤 땅에 내리꽃았다. 단순한 시위, 아마도 그로써는 이런 어린 애들과 실랑이하고 싶은 생각이 그다지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거대한 도끼, 필시 무게도 상당할 것이 분명한 그 배틀액스를 저렇게 가볍게 휘두른다는 건 보통 힘이 아니다.

"...우리 애들이 꽤 신세를 졌다고 들어서 말이야." 

거한은 인상을 쓰며 유나에게 누가 산적 아니랠까봐 흔하디 흔한 대사로 대꾸했고 그러자 유나가 꽤 무섭다는 눈치로 거한을 보며 입을 열었다.

"와~ 대단히 거대한 도끼네요?" 
"흐..이제서야 겁이 난거냐? 그럼 얌전히 말이나 들어라..계집애 주제에 
건방지기는..." 

거한의 말투에 어린 경멸조의 어투에 유나가 얼굴을 조금 찡그리고서 한 쪽을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이 쪽이 더 큰거 같은데요?" 
"응?" 

그 거한은 유나의 말에 문득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고 그래서 그 는 흠칫했다. 그곳에는 갈색머리의 170이 약간 안되어보이는 자그마한-물 론 여자로써는 작은 키가 아니지만 거한 입장에선^_^- 여인이 서있었고 그 녀의 손에는 자신의 도끼의 몇배나 되어보이는 무거운 대검이, 그것도 한 손에 쥐어져있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휘두르는 것이 불가능해보이는 거대한 대검. 그러나 자 봐라 무섭지? 그러니까 알아서 기어~라는 의미로 말했던 유나와 는 달리 거한은 코웃음을 쳤다.

"흥..보아하니 경량화의 마법이 걸린 모양인데, 원래 검이란 그 속도와 
기세, 무게에 그 위용이 있는 것. 크기만 크고 속은 텅빈듯한 그따위 
검이 소용이 있을 것 같나? 멍청한 기사들이나 검에 경량화의 마법을 
거는 법이지. 실전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는데 말이야." 

이럴땐 유식한 게 죄인거 같다. 차라리 무식했으면 그냥 쫄아서 도망이나 갈텐 데 말이지... 유나는 이 눈치없는 거한을 보며 말을 이었다.

"경량화의 마법이 아니라면요?" 

유나의 대꾸에 거한은 아무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저건 인간이 아니게?' 

거한은 눈앞의 이 당돌한 꼬맹이소녀를 내려보다가 아리아쪽으로 시선을 돌렸 다. 남자체면이 있지, 이런 꼬맹이랑 어떻게 다툰단 말인가? 차라리 저기 있는 여검사를 가볍게 제압함으로써 겁을 주는 편이 차라리 더 낫다.

" 저 여자를 믿는 모양인데...검과 함께 날려보내주지." 

말을 끝맺음과 함께 그 거한이 배틀액스를 휘두르며 아리아에게로 덤벼들었고 그와 함께 조용히 서있던 아리아의 오른발이 땅을 박찼다.

"타아아앗!" 

그리고 거한의 도끼가 크게 회전하며 아리아의 대검과 맞부딛혔고

"으헉!" 

아리아의 검에 부딛힌 순간 엄청난 중량과 힘을 함께 느낀 그 거한의 안색 이 삽시간에 새하얗게 바뀌었다. 그런 그를 보며 유나가 피식 웃었다.

"크기만 큰게 아니랍니다." 

거한의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맞부딛히는 순간 뼈가 부수어지지 않았을까 하 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엄청난 힘이 느껴졌었다. 거한은 눈앞의 무표정한 여인 의 모습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뭐냐 이 년은?' 

그때 웅성대던 산적들 중 한 명이 고함을 질렀다.

"두목!!! 이 자식들이...모두 해지워 버려!!!!!!" 

그의 외침과 함께 아린일행들 포위하고 있던 산적들이 일제히 그들에게 덤벼 들었다. 정말 끝까지 전형적인 대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녀석들이었다.


"이거...보통 놈이 아니잖아?" 

세틴의 바스타드 소드에 무기를 떨군 산적하나가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외쳤고 그것이 그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세틴의 허리가 깊게 숙여지면서 낮은 자세로 산적의 허리 아래로 쏘아들어가 그대로 반전하면서 검을 위로 베어올렸다. 가슴 부위가 섬뜩해지는 것을 느 끼며 재빨리 몸을 뒤로 져친 갈색머리의 사내, 거의 본능적으로 세틴의 일검 을 피해낸 그 산적의 눈에 베어올린 자세 그대로 허공에서 몸을 180도 회전 시키며 그대로 자신의 눈앞으로 닥쳐들어오는 세틴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 잡혀있는 바스타드 소드도. 그의 눈앞에 푸르른 검광이 번뜩였다.

"으아아악!" 

세틴은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느껴진다. 느껴진다. 느껴진다. 공기의 흐름. 주변의 사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존재들. 굳이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생생히 피부로 느껴지고 그 위치가 느껴진다. 그에게로 쏘아져오는 빠른 속도의 날카로운 물체가 느껴진다.

`단검 3자루...' 

막 산적의 목 하나를 허공으로 날린 세틴은 착지와 동시에 재빨리 몸을 회 전시켜 검을 횡으로 크게 3번 내리 그었고 그와 함께 그에게로 날아온 단검 3자루는 날카로운 금속성을 내며 허공으로 튕겨졌다. 세틴은 단검이 투척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헝크러진 흑발의 험상궂은 사내가 세틴의 검술에 당황한 듯 다시 단검을 꺼내들고 있었다. 세틴의 입에서 기합성이 터져나왔다.

"하아앗!" 

세틴의 두 다리가 대지를 박찬다. 그의 몸이 산적들의 허리 아래로 낮게 미끄러져 들어가며 길게 검광을 뿌린다. 검붉은 피가 대지에 뿌려진다. 그리고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퍼진다. 또 하나의 생명이 지금 그 빛을 잃었다.

"크아악!" 

낮은 자세, 세틴은 그의 아버지에게 배운대로 자세를 상당히 낮게 잡고서 마치 뱀이 대지를 기어가듯이 미끄러지며, 그러나 산적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리고 있었다.

"이 조그만 녀석이..." 
"당신보단 커." 

한 산적 하나가 모닝스타를 휘두르며 세틴에게로 돌진했고 세틴은 그런 그에 게 짧게 한 마디를 내뱉은 뒤 휘둘어진 모닝스타의 궤적 반대편으로 몸을 날 렸다. 그때 세틴의 감각에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는 모닝스타의 풍압과 그 뒤 로 찔러들어오는 또 하나의 검의 감각이 동시에 걸렸다.

"타앗!" 

세틴의 검이 길게 내려찍는 모닝스타의 사슬부분을 찔러들어갔고 그의 검이 모닝스타의 사슬부분을 스쳐지나가며 모닝스타의 힘을 흘림과 동시에 곧바로 아래로 꺽여 돌아 상대방의 허리를 베어들어갔다. 세틴의 검이 피를 뿌리는 순간 거의 동시에 그의 검에 의해 비껴나간 모닝스타의 금속추가 뒤애서 덥 쳐들어오던 산적의 머리통을 박살내버렸다.

"크아아악" 
"크어억" 

두 가지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


Template:초룡전기 카르세아린 -186-

세틴이 산적들을 상대하는 동안 세를레네는 그저 시냇가 한 구석에 서서 닦다 만 식기들을 들고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하지만 세틴이 점점 유리해지자 그녀의 표정도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화아아..." 

세를레네의 두눈에 찬탄의 빛이 어렸다. 세틴의 놀라운 검술에 감탄한 것이 었다. 그녀가 알기로 저 정도 나이에 저정도의 검술을 지녔던 검사는 없었다. 물론 그녀가 검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그것이 세틴의 실력을 깍아 내리는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세틴의 뒤에서 산적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있던 단검 하나를 세틴에게 내던지는 것이 들어왔다.

"세틴씨! 위험..." 

그러나 세틴은 그녀가 미쳐 외치기도 전에 몸을 크게 숙인뒤 상체를 크게 돌려 원을 그리며 날아온 단검을 피해냈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단검을 투척한 그 사내에게로 쏘아들어 갔다. 산적이 당황하며 검을 휘둘었지만 세틴은 재빨리 그것을 옆으로 이동하여 피하면서 한껏 고개를 숙여 산적의 허리 아래로 숙여들어갔다.

"타앗!" 

또 한차례의 기합성, 세틴의 바스타드 소드, 피에 물든 붉디붉은 그 검이 숙여진 기세를 타고 탄력을 받으며 다시 위로 솟구쳤다. 검을 채 휘두르기 도 전에 눈앞에서 달려오던 세틴이 사라지자 사내는 당황했고 그런 그의 눈에 시리도록 붉은 검광이 일순 번득이는 것이 보였다.

"크아아악" 

비명. 사내는 가슴앞이 길게 갈라져 새하얀 갈비뼈를 드러낸체 붉은 피를 흩뿌리 며 쓰러졌고 그 순간 세틴의 검이 횡으로 베어져 사내의 목을 날렸다. 인간의 머리가 그 있어야 할 위치를 잃고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를레네의 바로 발치에 떨어졌다.

"꺄아아악." 

곱게 자란 세를레게에게 이런 참혹한 광경은 전혀 익숙치 못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그만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버렸다. 귓가에 울려퍼진 비명성 에 당황한 세틴의 눈에 주저앉은 세를레네에게로 다가가는 산적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세틴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젠장..도망을 가야할꺼 아냐. 왜 주저앉는 거야?` 

세틴과 세를레네의 거리 약 15미터. 여기서 그녀를 향해 뛰어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리고 그 산적사내는 주저앉은 그녀를 인질로 삼으려는 듯 그녀에게 손을 뻗고 있다. 세틴은 결심했고 또 실행했다. 그의 입에서 기합성이 터져나왔다.

"타앗!" 

세틴은 상반신을 180도로 틀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 반탄력으로 그의 바스타드 소드를 일직선으로 날렸다.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음향 이 허공에 울려퍼졌다. 사라세나인가 가전검술 -비검 천살섬-. 그것이 펼쳐진 순간 산적은 목덜미에 검이 꽃힌채 나무그루터기로 쳐박혔고 세틴은 맨손이 되었다.

"스켄! 자네가.." 

갈색머리의 산적 하나가 나무에 꽃혀 절명한 산적사내를 바라보며 비통한 외침을 터트렸고 그와 함께 또다른 한 사람이 악을 쓰며 세틴에게 검을 휘 둘렀다.

"죽어라 이 빌어먹을 놈아!!!" 

이를 갈며 덤벼드는 3명의 산적 사내. 이미 그들은 몇명 남지도 않았다. 왠만하면 도망갔을 그들이지만 이미 상당수의 동료들이 세틴에게 죽어버린 지금 그들은 악에 박혀있었고 그런 그들의 악받힌 모습에 순간 당황한 세틴, 그의 왼손에 또 한자루의 바스타드 소드가 잡혀왔다. 세틴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검 블레어스 타이나..." 

아린이 준 전설의 마검, 불꽃의 검 블레어스 타이나. 마나를 소모하는 마력검. 그 주인된 자가 검기에 눈을 뜬 자가 아니고서는 생명을 소모한다는 마력검. 그리고 세틴은 아직 검기에 눈을 뜨지 못했다.

`써도 되는 걸까...' 

순간 그의 아버지 사라세나인경의 이야기가 머리로 스쳐지나가는 세틴, 그러 나 검술만을 주로 익힌 그는 악에 받혀달려드는 저 산적들을 맨손으로 해치울 만한 기량은 없었다. 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은 빨랐다.

`어쩔수 없군.' 

세틴은 자신에게로 돌진해오는 그들을 바라보며 검자루를 힘껏 움켜쥐었다. 쥐는 순간 알수없는 기운이 그에게서부터 빠져나가며 힘으로 화하는 것을 세틴은 느낄수 있었다.

`괜찮은건가..' 

산적들은 그에게로 덤벼들고 있었고 그에게 고민할 시간따위는 주어지지 않 았다. 생각은 길었지만 지나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세틴은 검을 뽑았다. 순간 그의 눈앞이 붉게 물들며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폭염이 그 붉은 옷자락을 허공에 가득 메웠다. 그리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갔다. 머리가 잘리고 내장이 튀어나오며 붉은 선혈을 사방으로 뿌리며 죽어갔다. 그녀의 바로 눈 앞에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세를레네는 울고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울지않았다.

"저..저건?" 

세를레네는 울 것같은 기분속에서도 세틴의 장검이 뽑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그의 검이 뽑힘과 동시에 강대한 불꽃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산적들을 태워버리는 것 역시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은 숯이 되어버린 산적 들의 시신과 자신이 쥔 검을 번갈아 바라보며 경악하는 세틴, 그가 쥐고 있는 붉게 타오르는 그 바스타드소드의 검신 한가운데에 아로새겨진 고대어문자를 놓치지 않았다.

"브..블레어스 타이나? 그 전설의 마검?" 


"용사의 검을 받아라! 사라만더 카사!!!" 

이봐 이봐..검이 아니잖아 그건... 아마도 사내의 목숨이 붙어있었다면 그는 이런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이미 불꽃에 휩쌓여있었고 그의 입은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 다 른 행위를 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으아아아악!!!" 

아린의 손끝에서 한 줄기의 불꽃기둥이 쏟아져 산적하나를 불태웠고 그 순간 아린의 명룡도가 그의 목을 날렸다. 홀랑 태워버리고도 또 목까지 날리다니 잔인한 일이다. 불붙은 사내의 목이 땅바닥을 뒹굴었지만 아린은 전혀 개의 치않고 다른 상대를 찾아나서서 다시 불꽃의 정령들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카사! 카사카사카사!!!" 

산적들은 불꽃에 휩싸여 재가 되었고 그들의 목은 명룡도에 의해 그 거점으로 부터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붉은 머리의 미소년, 아린은 그것을 즐거워하며 웃음까지 터트리고 있었다.

"꺄하하하하! 이것이 용사의 힘이다아!!" 
`미치겠군. 나중에 잔소리 좀 해야겠어..' 

그래서 유나는 눈쌀을 찌푸렸지만 지금 일일히 아린에게 흰소리 할만큼 상황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세레니엄]!" 

유나의 손에서 넘실거리는 빛의 파동이 재차 쏘아졌고 산적 두어명이 쓰러졌다 있는대로 불꽃의 정령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아린과는 달리 유나는 타격계 마법으로 적을 쓰러트리며 간간히 단검을 적의 허벅지로 날려 움직임을 봉할 뿐이었다. 도적도 사람이고 생명은 귀중하다? 뭐 그런 이유로 이러는 것은 아니 었다. 단지 불필요한 살인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유나였다. 원래 어릴적 경험으 로 미루어보아 원한 살 짓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인생에 이롭다는 걸 잘 아는 유나다. 물론 주변의 인물들 덕분에 그녀의 시도는 대부분 수포로 돌아가겠 지만...

`보나마나 아리아씨가 다 도륙을 하겠지...' 

점점 가빠오는 숨을 가다듬으며 유나는 몸을 재빨리 놀려 멀리서 단검이나 마법들을 난사했고 그 와중에 아리아를 힐끗 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아리아는 어쩐 일인지 대검은 대지에 그냥 박아넣고서 맨손으로 도적들을 상대 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손은 그냥 손이 아니라 흘륭한 흉기였지만, 그런 아리아의 손에 걸린 산적들 중 죽은 자는 없었다. 맨손으로 검날을 잡아 그 검을 쥔 사람까지 함께 공중으로 내던져 버린다. 낙하의 충격으로 던져진 사내가 신음을 터트릴때 그 옆에서 그의 동료가 그녀 의 가벼워보이는 손짓으로 10여 미터 가까이 날아가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왼발이 크게 회전을 넣으며 또 하나의 사내의 턱을 강타 한다. 아리아의 몸이 스쳐지나갈때마다 그들은 쓰러졌다. 그러나 그녀, 아리아는 산적들을 죽이지 않았다. 관절이 꺽이고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고 사방으로 나뒹그러져 신음성을 내뱉긴 했어도... 아직 죽은 자는 없었다. 그녀를 상대한 사람들 중에는. 그러나 쓰러진 상황만큼은 처참하지 않다곤 말할수 없었고 그런 동료들의 모습 에 비교적 멀쩡한 산적 하나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이런 놈들이 다 있지..." 

강하다. 지나치게 강하다. 그저 체면을 살리려 했다가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되었다. 산적들의 얼굴에 공포의 빛이 연신 지나갔다. 그들은 도망가고 싶었다. 모든 걸 놓아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저 붉은 머리의 잔혹한 미소년은 등을 돌리는 산적들을 그의 과녁으로 삼 은 듯 족족 단숨에 재로 만들고 있다. 그들에겐 도망갈 기회조차 주어지질 않았고 그래서 필사적이어야만 했다.

"젠장! 저 꼬마를 노려라!" 

산적 하나가 싸움에 끼지 않고 뒤로 물러나 여관벽에 기대어 구경만 하고 있던 피트를 손가락질했고 그의 외침에 산적 서너명이 피트에게로 달려들었다 유나가 피트에게 다급한 외침을 터트렸다.

"피트씨! 위험해요!" 

그러나 피트는 당황하지 않았고 그저 쓴웃음을 조금 지을 뿐이었다.

"이런..내가 그렇게 만만해보였나.." 

자신의 아름다운 금발머리를 조금 긁적이고서 피트는 주문의 영창을 시작했다.

"달빛에 어리어진 광기의 미학이여, 그 자락을 드리워라 [루너리스버서커]!" 

그와 함께 피트의 손에서 은은한 황금빛의 파동이 그에게 덤벼들던 산적들을 덮쳐버렸다. 산적 3명의 몸에서 황금빛이 어리며 그들의 입에서 기괴한 목소 리가 흘러나왔다.

"으어어어어..." 

그들의 동공이 풀렸다. 어깨가 축 늘어지면서 그들의 입에서 괴성과 함께 가쁜 숨이 몰아쳐졌다. 그들의 두 눈이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변화를 보면서, 그리고 감탄어린 표정을 보내오는 유나를 보면서 피트가 쓰게 웃었다.

"이래뵈도 하르니안의 고위 사제인데..." 

산적들은 광전사가 되었다.

"자..나의 수하들아, 나의 명에 따라 적을 쳐라. 적은..어.." 

피트는 광전사로 변한 그들에게 손짓을 하며 명령을 내리려하다가 움찔거렸다. 광전사들은 적아의 구분이 없고 이성이 마비되어있기때문에 구체적이면서도 간 단한 명령이 필요했다. 잠깐 고민하던 피트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간단하면서도 아주 확실한 적아의 구별법이 떠오른 것이다.

"수염난 자들을 공격해라!" 

이 얼마나 확실한 구별법인가. 아마도 오늘 살아남은 산적들에겐 매일 면도하 는 버릇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아마 대륙에서 가장 말쑥한 산적단으 로 유명해지겠지.... 그들은 명령에 따라 동료들에게로 덤벼들었고 이미 전의를 잃은 산적들은 속수 무책으로 당할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유나는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모두들 손을 멈춰요!" 

그녀의 외침에 장내가 잠시 그 행동을 멈추었다. 불꽃을 뿜어대던 붉은 머리의 미소년도, 광전사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던 금발의 미소년도, 피에 물든 채 산적들을 날려대던 갈색머리의 여인도. 그리고 산적들은 그제서야 움찔거리며 그들의 손길로부터 벗어날수 있었다. 유나는 산적들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사라지세요. 살고싶다면..." 

더 이상 싸울 이유도 필요도 여력도 없는 그들, 산적들은 눈치를 봐가며 쓰러진 몽료들을 안고서 일제히 꽁무니를 내뺐고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나가 그녀에게서부터 10여미터쯤 떨어져서 숨을 고르는 아리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유나는 흠칫 놀랐다. 그녀는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리아씨?" 

그녀의 옷은 피로 물들어있다. 검도 사용치 않고 체술만으로 산적들을 상대 한 그녀가. 그렇다면 이것은 그녀의 상처일까? 그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저들에게 그녀가 저 정도의 피를 흘릴만한 상처를 입었다는 건가? 의아해하며 유나는 아리아에게로 다가가려다 옆에서 뚱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 보고있는 아린의 시선을 깨닫고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왜 그러죠 아린?" 

아린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쁜 놈들을 왜 그냥 보내주는거야?"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볼이 부은 아린을 보며 유나는 인상을 조금 쓴뒤 그에게 되물었다.

"누가 그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했나요?" 
"세틴이..산적은 나쁜 놈들이라고 그랬는데?" 

유나는 이 마당에 아린을 붙잡고 도덕교육을 시키고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는 그냥 한 마디만을 내뱉고는 아린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세틴이 잘못 가르쳐줬나보군요. 쓸데없는 싸움을 굳이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거야? 헷갈리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린의 곁으로 피트가 지나쳐갔다. 그는 이미 광전사가 되 어 자신의 동료들을 공격해야만 했던 그들의 광기를 거두었고 도망가는 3명 의 산적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승리자는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바로 옆에서 새까맣게 재가 된 산적들의 시체가 굴러다님에도 불구하고 피트는 기분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소짓던 피트는 문득 아리아가 피에 물들어 있다는 걸 발견했고 그래서 가만히 마당 한가운데에 서있는 아리아에게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제가 치유술을 펼쳐드리죠." 

그때 한 외마디 목소리가 그의 들뜬 분위기를 일순간에 가라앉혔다.


"손대지마!!!" 

터져나오는 외침과 함께 그녀의 손이 바람을 갈랐고 그녀에게 치유술을 펼치 려던 피트의 옷 앞섶이 단숨에 찢어발겨졌다.

"헉!" 

피트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고 그와 함께 아리아의 입에서 숨이 막힐듯한 딱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몸에 손대지마..." 

피트가 사색이 된채로 움찔하면서 물러났다. 자신의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붉은 선혈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한발자국만 더 가까이 갔었다면 ...그땐 찢어발겨지는 것은 옷자락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피트는 그제서야 이제껏 아리아를 상대했던 자들의 공포를 그 자신도 느낄수 있었다. 삽시간에 여관의 앞마당은 정적과 공포로 휩쌓였다. 그것도 그들의 동료에 의해서. 유나와 피트는 동시에 아리아를 보며 겁에 질린 채 그냥 서있을수밖에 없었다. 아리아의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두 눈이 붉게 빛나고 있었고 그녀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연신 울려퍼지고 있다. 두 손이 벌벌 떨리며 그녀 의 혈관 곧곧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또다시 숨가쁜 목소리가 울려 유나와 피트의 귓가를 때렸다.

"내 곁으로 오지마..." 


"아..아리아씨가 왜 저러는 겁니까?" 
"나..나도 몰라요.."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하는 유나의 말에 피트가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키메라..라고? 영혼의 그릇? 역시..뭔가 불안정한 건가?" 

어느 누구라도 느낄수 있을만큼 지독한 살기를 풍기면서 마치 상처입은 야 수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리아를 보며 유나와 피트가 우물쭈물하는 사 이 아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리아에게로 다가갔다.

"왜 그래 아리아?" 

아린은 말을 걸면서 아무 생각없이 아리아에게로 다가갔고 그런 아린의 모습에 유나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아린..위험.." 
"응?" 

유나는 차마 말을 못 잇고 피트와 함께 질린 눈으로 아린을 바라보았다. 역시 무식하면 용감한 법인가.. 아린에게는 저 살기넘치는 아리아의 모습이 그냥 멍하게 서있는 걸로만 보인 모양인지 용감하게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뿐만 아니라 살기를 풀풀 풍기는 아리아의 뺨을 두손으로 보듬어 안고 이리저리 흔들어보기까 지 했다. 아린이 멍하게 서있을 때 세틴이 자기한테 자주 하던 짓이기에 아린은 아무 생각없이 한 것이지만...보고있는 유나와 피트의 얼굴에는 핏기가 가신다. 당장이라도 아리아의 새하얀 손이 아린의 심장을 꿰뚫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피트와 유나의 머리속에 동시에 스쳐지나갔다. 아린이 재차 질문을 던졌다.

"괜찮은거야? 아리아?" 

그러나 식은 땀을 줄줄 흘리던 아리아는 오히려 평온해지는, 정확하게 말하면 다시 무표정해지고 있었고 그런 그녀를 보며 아린이 걱정스러운 듯 되물었다.

"괜찮아?" 

무표정한 아리아의 얼굴에 또다시 감정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은 아까와같 은 살의어린 것이 아닌 좀더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뺨을 보듬어 안고서 자신의 눈을 바라보는 이 소년에게 아리아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덕분에..." 
"엥???" 

뜬금없는 아리아의 대꾸에 아린은 그냥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리아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자 주변을 가득 메웠던 살기도 사라졌다. 유나와 피트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유나는 아무래도 세를레네가 돌아오면 상의를 좀 해봐야 겠다고 생각했고 피트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며 서로를 돌아다 보았다. 그리고 그 둘은 그제서야 세틴의 상황이 생각에 미쳤다.

"그러고보니 세틴은..." 

그들의 얼굴에 걱정하는 빛이 어렸다. 이 곳에 산적들이 쳐들어왔다면..그쪽에도 안 갔으리란 보장이 없질 않은가? 그때 풀숲 한 곳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고 그곳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 려왔다.

"휘유..여기도 한 바탕 했군요." 


"아..세틴..어라 세를레네씨가?" 

무사해보이는 세틴의 모습에 유나가 반가운 표정을 짓다가 그의 품에 안겨있 는 금발머리의 소녀를 보고 순간 움찔거렸다.

"어찌된 거예요?" 

세틴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안아들고있는 소녀의 얼굴을 잠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기절했어요." 
"기절?"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하는 유나를 지나치며 세를레네를 안고 걸어가던 세 틴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뭐 눈앞에서 시체들이 널려있는데 기절 안하면 그거도 이상한거죠 뭐.." 

그러자 아린이 이상하다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고

"흐으음. 뭘 그런 걸 가지고 기절까지...거참..." 

피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들 세티의 품에 고히 잠들어있는, 정확히 말하면 기절해있는 세를레네를 보 며 쓴웃음을 지었고 그러던 도중 그들은 지금 상당히 배가 고프며 저녁식사시 간이 상당히 지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하반신이 울부짖는 꼬르륵 소리에 세틴이 유나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배고파요. 밥이나 먹읍시다." 

어쨋거나 상황 종료이고 그들에게는 또다시 평온한 저녁식사 시간이 돌아오 게 된 것이다. 세틴의 말에 전적인 동감을 표한 일행들은 다시 여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 와중에도 유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툴툴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스프 다 눌어붙었겠다..에잉..." 

웃기는 놈들, 귀찮게시리 와가지고는...찝적대기는..하여튼 저 세를레네라는 여자도 웃기는 군. 뭘 그런 걸 가지고 픽픽 기절이나 해대고, 귀하게 자랐다는 거 시위라도 하는건가... 세를레네를 안고 걸어가는 세틴의 뒷모습을 보며 투덜거리건 유나, 문득 유 나의 머리에 망치로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순간 유나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아린이 태워먹은 목없는 산적들의 시체가 아직도 마당을 굴러다니면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고 그 사이를 그녀의 동 료들은 아무 생각없이 웃으며 지나가고 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사람 죽이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무관심해졌지.." 

Template:초룡전기 카르세아린 -187- 달이 밝다. 환한 달빛이 어슴프레한 어둠을 스며들어와 사물을 분간하게 해주고 그 환한 어둠 속에서 한 소녀가 자리를 일어났다. 덮고있던 모포를 걷고 살짝 몸을 일으킨 유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리아와 아린의 모습이 눈에 띄인다. 한손에 그 거대한 장검을 움켜쥐고 다른 한손에 자신의 무릎을 베고 곤히 잠들어있는 아린의 붉은 머리결에 얹고 있는 아리아를 잠시 바라보던 유나는 곧 시선을 돌렸다. 모닥불 가까이서 모포를 두르 고 잠에 빠져있는 금발머리소년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잠들어있는 금발머리소녀, 차례로 시선을 돌리던 유나는 곧 검은 머리소년과 눈을 마주쳤다.

"잠이 안 옵니까?" 

유나는 눈이 마주친 상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세틴이나 저나 정말 밤잠이 없는 모양이군요." 

세틴은 유나의 말에 미소를 살짝 짓고서 그녀에게로 입을 열었다.

"뭐 아까부터 유나양이 계속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엎치락 뒷치락 하길래.." 

말을 하다말고 잠시 우물쭈물하던 세틴이 결국 용기를 냈는지 말을 이었다.

"....잠시 산책하실래요?" 
"나쁠 거 없죠. 잠도 안 오고..." 


여관문을 나서니 사방에 새까만 시체들이 어슴프레한 달빛을 받아 기괴스러운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유나와 세틴의 눈에 들어왔고 유나가 그런 시체들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린이 태워죽인 시체들이로군요." 
"음..정령술이 많이 늘었군 아린녀석." 

감탄의 빛을 곁들이는 세틴의 대꾸에 유나가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속삭이 듯이 입을 열었다.

"아린은... 이 산적들을 이렇게 죽인 것에 대해 아무 생각도 안 하겠죠? 
그럼 세틴은 어떤가요?" 

이 뜬금없는 질문에 세틴은 잠시 당황했다.

"그..글쎄요? 아마도 이들이 이런 꼴을 당했으니까 더 이상 이곳에 그터를 잡 
을수는 없을 겁니다. 아마도 이젠 이곳도 교통의 요충지이니만큼 다시 사람들 
의 발길이 오고가겠지요. 그러면..." 

순간 유나가 세틴의 말을 끊었다.

"그런 것 말고요...참혹하지 않아요?" 
"음 참혹하네요." 

시큰둥하게 바로 대답하는 세틴의 태도에 유나가 조금 눈길을 찌푸리면서 반문 했다.

"정말 참혹하다고 느끼는거예요?" 
"글쎄요.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머쓱해하는 세틴을 뒤로 하고 유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어둠이 짙게 깔 린 앞마당을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사방에 널린 시체들을 바라보며.

"시체를 보고 욕지기를 느끼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죽음이 그 이유일까 
요. 아니면 그 참혹한 모습과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때문일까요." 
"...." 

세틴은 대꾸가 없었고 유나는 나직히 말을 이었다.

"너무 많이 봐온 탓일까요? 별 감흥이 안 드는군요."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르던 세틴이 한숨섞인 유나의 말에 미소띄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야 그동안 만났던 몬스터들 내장 뒤집힌게 한둘입니까.뭐 이정도 광경이야... 
저도 처음에는 구역질을 했지만 지금은 뭐..." 

세틴은 발끝으로 굴러다니던 새까맣게 늘어붙은 산적의 시체 하나를 툭 하고 건드리면서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산적들의 죽음에 이상하게 민감하게 반응하시는거 같습니다. 이들은 
어차피 죽일 놈들이었는데요. 뭐..." 
"죽일 놈들이라....과연 그걸 누가 결정할수 있을까요." 

오늘따라 이상하게 침울한 유나를 보며 세틴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유나를 향 해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들은 먼저 우리에게 덤볐고 우리는 그들을 죽였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시 
는 겁니까? 그들을 해치움으로써 이제 인근 주민들은 밤잠을 편히 잘수 있 
게 될겁니다. 우리가 옳았어요." 

유나는 여전히 침울한 표정으로 아무 대꾸를 하질 않았고 그러자 세틴의 어 조에 역성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했어야 옳다는 거지요? 그들의 죽음이 억울하다는 겁니 
까? 그들은 이 일대에 유명한 산적들이었고 그들의 악행은 이 산위를 오르기 
전 여관주인에게 이미 잘 들었었습니다. 그들은 응당한 댓가를 받은 것뿐이라 
고 생각합니다만..." 

세틴의 표정에는 한점 죄책감도 어려있지 않았다. 저것이 당연한 태도일지도 모 른다. 그래서 유나는 어깨를 조금 으쓱거리면서 나직히 중얼거렸다.

"...아녜요. 우리가 옳았어요. 우리가 옳았지요." 

유나는 말없이 고개를 들어 달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달을 보았고 그녀는 조용히 읊조렸다.

`죄책감을 느끼는 건 내가 한때 도적출신이었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시체들이 쌓여있는 곳은 아무리 달빛이 은은하게 비춰준다 해도 음산한 분위기 이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익숙해진 건 익숙해진 거고 기분 나쁜 것은 기분나쁜 것. 그래서 세틴과 유나는 숲속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그때 뒤쪽에서 삐걱거리는 문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갸냘픈 소녀의 목소리도.

"두 분...안 주무세요?" 

허리까지 내려오는 찬란한 금발이 달빛을 반사시키며 그 빛을 어둠속에 뿌려 대고 있고 새하얀 피부가 어둠속에서 창백해보이기까지 하는 아름다운 미소녀 가 세틴의 눈에 들어왔다. 세틴은 머쓱해하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어? 세를레네양 안 주무셨나요?" 

그녀, 세를레네가 세틴의 물음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아..예" 

세를레네는 발걸음을 옮겨 세틴에게로 다가왔고 도중에 널려있는 불타버린 시체들을 보며 끔찍하다는 듯 눈쌀을 찌푸리며 세틴에게 입을 열었다.

"너무...끔찍해요." 

어깨를 움츠리는 세를레네를 보며 세틴이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들은 죄의 댓가를 치룬 것뿐입니다." 

유나와는 달리 세를레네는 얌전히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그냥 고개만을 끄덕일 뿐이었다.

"예.." 

바람이 분다. 차가운 밤바람이 3사람을 가볍게 휘몰아 다시 어디론가 불어간 다.

"그리고..세틴씨..낮에 일..정말 감사했어요." 

생긋 웃으며 머리를 조아리는 세를레네의 모습을 보며 세틴이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내저었다.

"아..아닙니다.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일인걸요." 
"하지만...정말 전 세틴씨정도로 강한 검사는 처음 봤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 나이에 견습기사로 수련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세틴의 얼굴이 붉어졌다.

"저는 아직 견습기사입니다. 실력 역시 대단치 않습니다." 
"아녜요. 저희 왕궁에서도 세틴씨정도로 강했던 검사는 기사단장 급들을 제외 
하고는 거의 없었어요." 
"그거야..산적들을 상대로 했으니까요." 

오고가는 겸양의 말과 함께 세를레네의 시선이 세틴의 허리춤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검 역시..." 

순간 세틴의 표정이 급변했다.

"쉬잇." 
"아..죄..죄송해요."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 세를레네의 모습과 그런 그 녀를 향햐 눈짓을 하는 세틴을 보며 유나는 그저 고개만 갸웃거릴 수밖에.

"???" 

유나의 눈에 아니꼬운 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저게 뭐하는 짓거리인가? 삐죽 삐죽 서서 말을 잇고 있는 세틴과 세를레네사이로 유나가 끼어들어 질문을 던졌다.

"뭐..마침 잘되었군요." 
"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세를레네를 바라보며 유나가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리아씨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세틴과 세를레네는 모르는 일. 하지만 유나에게는 오후에 있었던 아리아의 살 기넘치는 태도를 정확히 감상했고 그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영혼의 그릇. 그리고 아리아씨가 오늘 보였던 이상한 태도에 대해서도..." 

세를레네의 표정이 바뀌었다. 청순한 소녀의 표정은 냉혹한 마도사의 표정으로 바뀌었고 거친 세상사에 내던져져 두려움으로 떨던 갸냘픈 눈빛은 탐구하는 자 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뀌었다.

"상황을 설명해 주실래요?" 
[나우] 카르세아린 188회 
"마나의 역류로 육신이 붕괴하는 걸까요?" 

유나에게서 상황을 전해듣고서 걱정어린 안색으로 아리아가 잠들어있는 낡아빠진 여관안으로 시선을 돌리던 세틴과는 달리 세를레네는 상당히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전해들었고 그 후 대뜸 알아듣기 힘든 `언어' 를 내뱉었다. 당연히 칼잽이 세틴은 이해를 못해서 고개만을 갸웃거렸고 그것은 비록 마도사라고는 하나 견습마도사라 실력이 변변찮은 유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세틴의 정중한 요청은 세를레네에게 받아들여졌다.

"예... 우선 마나라는 힘의 본질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겠지요?" 

세틴은 고개를 좌우로 거칠게 흔듬으로써 자신의 무지를 피력했다.


"모든 것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힘 마나. 그것은 존재를 승인하는 힘... 
쉽게 말해서 시간과 공간에 `있음' 을 고정하고 또 지탱하는 원천적인 
힘이예요." 

세를레네 딴에는 쉽게 말한다고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듣는 세틴과 유나 에게는 완전히 귀신씨나락까먹는 소리로밖에 안 들렸고 그래서 세를레네는 부연설명을 해야만 했다.

"모든 존재는 정해진 마나를 부여받아요. 존재한다는 것은 곧 마나가 
있다는 뜻이지요. 예를 쉽게 들어서...아..비유하자면.. 
이 세계, 그러니까 우리가 현존하는 이 시공간을 새하얀 도화지라고 
비유해봐요. 그리고 그곳에 위치하는 존재, 즉 우리나 기타 모든 자연, 
우리가 세계 라고 부르는 이것, 이것은 새하얀 시공간인 도화지위에 
위치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를레네는 친절하게 나뭇가지를 주워들어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을 해주고 있었고 그래서 유나와 세틴은 쪼그리고 앉아 흐응~호오~ 라는 음성을 내가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계. 이 돌멩이를 `세계'라고 친다면 이 돌멩이가 도화지에 붙기 
위해서, 즉 도화지라는 시공간에 존재하기 위해선 접착제나 풀을 이용 
해서 붙여야하지요. 이 접착제 역활을 하는 것이 마나예요. 물론 조악 
한 비유이고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일단 시공간이라는 측면만으로 
봤을때는 이렇다는거지요." 

도대체 무슨 소린란 말인가? 세틴의 표정에 지겨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세를레네씨. 그러니까 그것이 아리아씨의 상황과 무슨 상관..." 

세를레네가 서두르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 세틴의 질문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광범위한 의미의 마나라는 건 그런 거라고요. 그리고 이번엔 
그걸 인간의 측면으로 그 범위를 국한시켜보도록 하지요. 
음 그러니까 존재를 이루는 마나와 마도사나 소드마스터들이 다루는 
마나의 종류는 같으면서도 같은 게 아니어요." 

슬슬 세틴의 눈에 진한 지겨움이 맴돌기 시작했다. (독자분들 눈에도 설마??)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예를 들어 세틴씨가 길을 가다가 나뭇가지를 꺽어 몽둥이나 지팡이로 
사용한다고 쳐요. 세틴씨는 그것을 세틴씨 마음대로 사용할수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세틴씨 자신의 일부는 아닙니다. 세틴씨가 자신의 팔을 
휘두른다면 그것은 세틴씨 자신의 일부이지만 말이죠." 
"저희 마도사들이나 검기를 다루는 소드마스터들이 사용하는 마나의 힘, 
그것은 이 세계를 구성하는 마나를 자신의 몸속에 축척해서 사용하는 
것이지요. 아.. 여기서 몸이라는 의미는 육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예요. 
자신의 존재를 이루는 마나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어쨋든 그들 소드마스터들이나 우리 마도사들이 사용하는 마나는 비유하 
자면 나뭇가지를 꺽어 도구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녀의 설명은 길어지자 그와 비례해서 세틴의 하품빈도횟수 역시 잦아진다. 비록 세를레네가 하품을 하는 세틴을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긴 했지만... 누가 그를 탓할수 있으랴? 그러나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자신의 이야 기를 세이경청하는 유나가 있었기에 세를레네는 서운해하면서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마나는 순환해요. 그리고 소멸되고 생성하지요. 존재 그 자체를 이루는 
본질, 그것이 마나지요." 

마나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매일 들어왔던 전혀 낮설지 않은 명칭, 그러나 유나는 지금 그 낮설지 않은 명칭의 낮설은 설명에 당황해하면서도 열심 히 마도사적 호기심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세틴은 좀 달랐다.

"그럼...마나라는 것에 대해서는 대강 알겠는데... 아리아씨는 왜 그랬었 
더랬습니까?" 

지겨웠었는지 세틴의 말꼬리가 이상하게 올라갔고 세를레네는 피식 웃었다.

"아마도 감정의 변화를 존재가 감당할수 없고, 그 존재가 흔들림에 따라 
육신이 적절하게 세심한 콘트롤을 할수없는, 그런 상태가 아닌가 싶은데 
요." 

세틴은 이제 어지러운 머리속을 콘트롤할수 없는 상태란 것을 안면으로 표시하고 있었고 유나는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세슬레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혀를 내두르는 세틴을 보며 세를레네가 미안한 듯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제가 너무 어렵게 이야기 했나요?" 
"아뇨. 계속하슈." 
"어려웠군요..." 

세틴은 투덜대는 것도 사실 당연하다. 마나가 뭔지 몰라도 칼잽이 세틴이 살아가는데 하등 지장이 없다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계속된다. 눈을 빛내며 수첩을 꺼내는 유나가 있는 한.

"그러니까..마나는 순환합니다. 마나는 존재속을 순환하고 존재는 육신을 
즉 물질을 구성하지요. 물론 생명체가 아닌 존재에는 원칙적으로 마나가 
순환하지 않아요. 언데드류의 몬스터들은 일단 예외로 하지요. 원칙적 
으론 순환하는 마나, 그것이 생명이지요." 

그녀의 입은 계속 움직였다.

"어쨋든 순환하는 마나, 그 흐름은 언제나 일정치는 않습니다. 
때로는 역류하고 때로는 소용돌이치며 때로는 거칠어지지요. 
그때 일어나는 마나의 흐름과 흐름의 충돌은 인간에게 있어서 감정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성적이고 차분한 사람은 마나의 흐름이 원만하고 
고요한 것이죠. 흐름이 불규칙적이고 거칠수록 감정적이 되고요. 
화가 나면 심장이 뛰지요? 심장은 생명의 이미지적 원천이지요. 마나가 
흐르면 육체가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은 가장 먼저 전신을 도는 피에 가게 
됩니다." 

세틴은 이해의 유무를 떠나 세를레네가 그냥 한마디 한마디 할때마다 반사적으로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다. 이것 이외에 그가 할수 있었던 것이 없는 것이다. 어렵기도 하구나..라고 세틴이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강을 비유로 들어볼께요. 강 역시 그 흐름이 심할수록 침식의 정도가 
심해지지요? 이런 것처럼 `마나'라는 물은 그것이 흐르는 `존재'라는 
강에 흐르고 그 존재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즉 감정의 표출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존재를 깍아먹는 것이지요. 물론 보통 인간의 경우 마나 
의 흐름이 존재를 침식하기도 전에 육신의 생명이 끝나게 되니 별 문제가 
없긴 하지만 존재를 뛰어넘는 지나치게 거대한 마나를 보유하게 되었을 
때에는 문제가 크지요. 아리아씨가 이런 경우이지요." 
"이해가 잘 안 되나요? 에 그럼...예를 들어보면...마나의 흐름이 정도 
이상으로 부딛히게 되면 무형의 기운이 발생하게 되지요. 살기나 드 
래곤 피어, 간혹 몬스터들이 지닌 `현혹'의 기운같은 것이지요. 
존재감이라는 말 있지요? 대체로 정확한 말이예요." 

끊임없이 이어지던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가 굵직한 소년의 목소리에 의해 가로막혔다.

"언제쯤이나 아리아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제 나와요." 

세를레네는 투덜대는 세틴에게 방긋 웃어보인 후 말을 이었다.

"아리아씨 같은 경우, 그러니까 {영혼의 그릇}같은 경우는 강한 육체와 
방대한 마나를 지니고 있는데 그 존재가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여요. 즉 그녀의 상태는 넘치기 일보직전의 범람하는 강을 둑으로 
간신히 막아놓은 상태라고 할수 있어요." 

말을 잇던 세를레네가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미 터졌어야 정상인데..도대체 `둑'의 역활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어쨋든 감정이 움직이면 마나가 거칠게 흐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존재를 침식해들어가지요. 물론 존재가 사그러지면 육신도 사그러지게 
되는거죠. 당연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 반대는 아니예요." 

세틴이 하품을 했다. 그래도 그녀의 강의는 계속된다.

"드래곤은 인간의 육체로 폴리모프하지만 그 강대한 마나로 인해 육체를 
손상받지 않습니다. 인간의 육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예요. 존재 그 자 
체가 마나를 포용하니까요. 존재가 다치면 육신은 붕괴합니다. 육신이 
다치면 존재는 타격을 입지요. 
하지만 존재가 부서지지는 않습니다. 뭐 이런 거죠." 

세틴의 눈이 졸려죽겠다는 듯이 껌뻑여졌다. 하지만 이미 세를레네는 강의에 열중해서 세틴의 반응 따위는 안중에도 들어오 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리아씨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고...그녀의 감정이 격해질수록 
그녀의 존재는 부스러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도 그녀의 육체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아마도 제 추측이 거의 맞을 거예요." 
"존재와 육신의 관계는 마도사들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이런거지요. 존재는 육신에 묶이고 육신은 존재에 귀의합니다. 존재가 
흐트러지면 육신은 더 이상 그 존개가치를 잃게 되지요. 육신이 다친다면 
치료마법으로 치유가 가능하지만, 존재가 흐트러지면 자연적 치유력외에는 
어떠한 것으로도 치유가 불가능하지요." 

아예 노골적으로 나 졸려죽겠소~라는 표정을 짓고있는 세틴과는 달리 두 눈 을 번뜩이며 설명을 듣던 유나가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존재가 흐트러지는 경우?" 
"아리아씨같은 경우라거나..아니면 인간의 몸으로 8서클 이상의 마법을 
사용한다거나..뭐 그런 경우겠죠." 

초룡전기 카르세아린 -189- 세를레네의 설명, 세틴이라고 해서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설명은 마나의 본질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고위마도사들에 게나 필요로 하는 이야기였기에 세틴은 물론이고 유나 역시 이해 반 아리송 반으로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저 죄가 있다면 이해력이 떨어지는 그의 두뇌에 그 죄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관심을 가지고 들으려 해도 이해가 안되는데 어쩌라는건가? 그저 나오느니 하품일수밖에.. 떨어지는 이해력을 보유한 자신의 범죄적 두뇌를 부둥켜안고 세틴이 괴 로워 할 무렵, 제국 남령주 마다인 산맥으로부터 수백KM 떨어진 이곳, 알크리드 산맥과 카르셀 국경지대의 중간 부분에 위치하는 한 야전천막 안에서 세틴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으며 똑같이 머리를 혹사하고 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그러니까 마법의 구성원리는 의외로 간단한 거라네. 아까도 얘기했다시 
피 마법을 발동시키는 데에는 마나를 흘리는 구상공간의 여유가 있어야 
하고 그 구상공간은 마도사의 재량과 능력에 따라 그 범위가 결정되는 게 
지. 마법끼리 부딛힌다는 의미는 구상공간안에서 위치상으로 그것이 겹쳐 
진다는 의미이고, 그럴때는 먼저 깔려진 마법에 우선권이 있는게야." 

갈색머리의 마도사, 인간계 최고의 마도사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이 중년인 은 지금 이 검은 머리를 한 청년, 하나도 이해못하겠다는 눈빛으로 그저 고 개만 끄덕이고 있는 최악의 제자에게 이해가 될만한 설명을 하느라 고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로서 8서클 중반 이상의 주문은 사용할 수 없다네. 
육체라는 말은 그럴듯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육체라기보단 존재..라는 
의미에 더 가깝겠지. 육신이 부서진다면 재생하면 그만이지만 존재가 흐트 
러지면 그건 재생이고 뭐고 안 되지. 인간의 엉덩이에 재생마법을 건들 꼬 
리가 돋아나는 것을 보았는가? 마찬가지야. 존재가 부수어진다. 즉 나같이 
이렇게..." 

고심하는 갈색머리의 마도사, 가스터가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걸친 로브를 들어보였다. 한때 인간의 팔이 달려있었던 그 부분은 휑하니 허전한 공간만을 남기고 있어 그 어깨부분만 조금 드러나있을 뿐이었다. 그는 외팔이였다.

"8서클 마법의 반발력으로 내 팔은 완전히 흔적도 없이 날아갔지. 뭐 그나 
마 육체 전체가 산산히 찢기지 않은게 다행이지 조금만 내 정신력이 흐트 
러졌었으면 팔로 안끝났을테니... 아마도 자연적인 치유 외에는 내 존재를 
다시 회복할수 있는 방법은 없을 거라고 보네... 
이런 경우는 사실 역사상 내가 최초라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멈추고 잠시 허전한 자신의 왼쪽 어깨를 매만지던 가스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인간의 육신, 아니 존재를 구성하는 마나는 8서클이상은 받아드릴수 
가 없지. 그나마 8서클 중반까지 내가 사용할수 있었던 것도 나라는 존재 
가 인간 이상의 마나를 지니게 된 덕분이고...내가 {영혼의 그릇}에 그렇 
게 열중했던 이유도 이거지..." 

검은 머리의 청년 플루토는 눈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중년마도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허전한 왼쪽 어깨 아랫부분도.

"가스터. 그럼 그 팔은 재생이 전혀 불가능한 겁니까?" 
"글쎄...일단 지금으로썬 그럴게야. 그래서 완성된 {영혼의 그릇}이 필요 
했던 것인데..그걸 완성시킨다면 육신이 아닌 존재 역시 드래곤과 맞먹는 
존재로 변할것인데...사실 그라테우스의 레어에서 가져온 {영혼의 그릇} 
에 대한 지식 역시 육신과 마나에 대해서는 나와있는데 존재 가치를 높이 
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안되어있단 말이야...어쩌면 그것 자체로 
써 드래곤들의 {영혼의 그릇}은 완성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존재의 
마나적 가치를 높일 필요가 없을테니...그 자체로써도 충분하니까 말이야 
단지 그들에게 걸맞는 강인한 육체만을 만들면 될 거고,,음..." 

이제 가스터는 설명인지 독백인지 모를 정도로 혼잣말에 가깝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물론 듣는 플루토로써는 아까나 지금이나 어차피 이해 안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를 않았지만....

"그 없어진 왼팔...사는데야 지장이 많을테고...마법 쓰는데도 지장이 있 
습니까?" 

플루토의 질문에 가스터가 눈썹을 지켜세우며 반문했다.

"아..이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플루토를 보며 가스터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마법을 구사함에 있어서 마나의 흘림외에도 손동작 역시 중요한 역 
활을 수행한다네. 물론 내 경우는 낮은 서클의 주문을 사용할때는 거의 필 
요가 없지만..에 뭐라고 해야하나. 주문과 손동작은 이런 것으로 비유하면 
이해하기 편할걸세. 자네 어릴떼 산술(수학)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지?" 
"뭐..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맨날 졸았으니..어쨋든 있다고 치죠. 
그래서요?" 
"마법의 주문은 산술의 공식과도 같은 역활을 하고 손동작은 자를 대고 똑 
바로 그리는 것과도 같은 역활을 하지. 수준이 높아지면 쉬운 문제는 공식 
을 따로 종이위에 써가면서 계산할 필요가 없지? 바로 암산이 되니까... 
이런 식으로 마법 역시 수준이 높아지면 주문이나 손동작이 점점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지..." 
"아..네..근데..마법 쓰는데 지장 있습니까?" 

했던 질문 또하는 플루토를 보며 한숨쉬는 가스터.

"쩝..하나도 이해를 못 했구먼..." 

결국 간략하게 추려서 결론만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가스터였다.

"4서클 이하의 주문을 쓰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5서클 이상의 
주문을 쓸때는 지장이 생길지도 모르겠어. 한손만으로 그 구상공간에 
흘리는 마나를 제어해야 하니..시간이 좀 걸리겠지. 그리고..." 

잠시 말꼬리를 흘린 가스터가 씁쓸한 어조로 단정지으며 말을 맺었다.

"7서클 중반 이상은 절대 사용불가야..." 
"...제길...알겠습니다. 그런 것이군요." 

말을 마치며 자리를 일어나는 플루토의 귀에 이어지는 가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말이야 원래... 마나라는 것의 본질 자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또 다시 가스터의 강의가 시작되고야 말았고 플루토는 눈쌀을 찌푸리면서 -물론 가스터에겐 안 들키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밤은 깊어만가고 가스터의 목소리는 낭랑하게 야전천막 안을 울려퍼진다. 이 어찌 졸리지 않을손가? 플루토의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의에 열중한 가스터는 완전히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어가고 있 었던 탓인지 플루토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자..이렇게 된게야.." 

설명을 마친 가스터가 미심쩍은 눈으로 플루토를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라고 설명을 하긴 했는데..듣고있긴 한건가 자네? 어이? 자냐?" 

야전 천막안에서 가죽의자에 앉아 마주 앉은 가스터를, 그리고 그가 잃은 한쪽 팔부분을 번갈아 쳐다보던 검은머리의 청년이 두눈을 비비더니 어깨 를 으쓱하며 가스터의 말에 반문을 던졌다.

"어..끝났습니까?" 
"미안하군...끝났다. 그래 끝났어!" 

한숨을 쉬며 대꾸하는 가스터를 보며 플루토가 껄껄 웃어댔다.

"아 뭐 중요한 건 다 이해했으니까 걱정마요." 

의자에서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서는 플루토를 보며 가스터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중요한 거라니?" 

플루토가 천막의 휘장을 걷으며 가스터를 돌아다보았다.

"우리 측 마도사의 전력이 절반이하로 떨어졌다는 소리 아닙니까.." 


수백개의 야전천막들이 즐비한 이 넓지막한 분지, 그곳 중 중심부에 위치한 지휘자급의 야전천막에서 안 검은 머리 청년이 실로 지겨웠다 는 표정을 하며 밖으로 나왔고 밖으로 나온 플루토는 그냥 아무나 지 나가는 경비병을 덥썩 붙잡고 대뜸 질문을 던졌다.

"어이. 다리오스 어딨어?" 

아무래도 카르셀의 최고층에 위치한 위대한 블랙나이트의 입에서 나왔 다고 보기엔 너무 위엄없는 말, 경비병도 일견 황당한 얼굴을 했지만 차분하게 대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이 청년, 그들의 지휘자가 어떤 성격인지 아는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 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비록 군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선배들의 말로 미루어보아서 충분히 그들의 지도자이자 카르셀의 위대한 드래곤 슬 레이어의 성격을 파악할 역량이 그에게는 있었고 그래서 그는 이 황당한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다리오스 경께서는 생각하실 것이 있다고 하시면서 저쪽 구릉 너머로 
가셨습니다만..." 

플루토는 경비병이 가리킨 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은 낮은 구릉에 나무 몇그루가 서있고 잡초들이 잔뜩 덮혀있는 낮은 언덕, 플루토는 언덕과 그 위에 휘엉청 떠오른 밝은 달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혀를 차며 중 얼거렸다.

"궁상떨기 딱 좋은 곳이군. 또 혼자 끙끙대고 있는건가. 바보같은 자식." 


나지막한 언덕 한 곳에 잡초들 사이로 셔츠자락의 은발사내가 홀로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평범한 셔츠자락으로 그 섬세하고도 날렵한 근육 질의 팔뚝을 그대로 드러낸 체 다리를 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은발의 사내, 드래곤 슬레이어, 실버나이트 다리오스 폰 골드브러프. 그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야를 가끔식 가리는, 바람에 휘날리는 자신의 은빛 머리결을 손으로 매만지며, 그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음...?" 

문득 하늘을 보며 조용히 사색에 잠겨있는 다리오스의 귀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너무나도 익숙한 발자국 소리, 다리오스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로 다가온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벌렸다.

"플루토..." 

다리오스, 그 자신의 오랜 친우, 블랙나이트 플루토 폰 크로워드, 검은 머 리의 날렵해 보이는 청년이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그는 손을 들어 다리오스에게 잠깐 흔들어보이더니 바로 독설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여어 은빛의 궁상나이트. 이번엔 여기서 궁상의 자락을 펼치시나?" 

저벅저벅 걸어오면서 마치 땅투기꾼이라도 되는 마냥 휘휘 둘러보던 검은 머리의 청년, 플루토가 다리오스의 곁으로 걸어오며 피식 웃었다,

"바람 은은히 불고 스쳐지나가는 풀잎소리 운치있고 달빛은 휘엉청 밝게 
떠올랐군. 궁상 떨기에는 최고의 장소구나. 너 어떻게 이런 장소는 
독사같이 찾아다니는 거냐?" 

플루토의 비꼬는 듯한 어조에 다리오스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고 아무 대꾸가 없자 플루토는 다리오스 곁에 덜썩 앉아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잠시 정적이 그들 사이에 흘렀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소리를 제외하고는 그 저 고요만이 깔려있었다. 이 고요를 먼저 깬 것은 플루토였다.

"나같으면 한번 부딛혀 보겠다. 언제까지 이럴꺼냐? 남 신경 안쓰는 내가 
안쓰럽게 볼 정도면 심각한 거라고 보는데...??" 

시선을 하늘에서 대지로 늘어트린 은발의 청년이 기운없는 목소리로 나직히 대꾸한다.

"..난 자격이 없어..." 

다리오스의 힘없는 대꾸에 대한 반격은 바로 틔어나왔다.

"자격? 카르셀 제 1기사이자..제국 최강의 검사 무왕 라르고를 가지고 노신 
절세의 소드마스터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인간계 최강의 검사이실텐데 
그런 위대한 실버나이트께서 자격이 없으면 도대체 맨날 어긋난 길만 걷는 
멍청한 깜둥기사는 어찌되는거야?" 
"...너 뭔가 꽤 쌓인게 있는거 같다?" 
"시끄러..."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다리오스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플루토는 쓴웃음 을 지은채 고개를 돌렸고 그런 그를 보며 잠시 미소를 지은 다리오스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공주님이 누굴 좋아하는지 너도 잘 알잖아." 
"물론. 그녀석 날 좋아했지. 눈치 보니까 지금도 좋아하는 거 같고. 
녀석, 남자보는 눈은 있다니까..." 

태연스레 대꾸하는 플루토를 질린 눈으로 쳐다보던 다리오스가 약간 버벅거리 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쩜 넌 그렇게 태연하게 그런 걸 말할수가 있는거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걸." 

누굴 약올리자는 것인가? 자신이 그렇게도 원하는 걸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 멩이만도 못하게 취급하다니? 다리오스의 미간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다리오스의 입에서 조금 신경질적인 음성이 틔어나왔다.

"그래, 너한테는 그녀의 관심이 조금도 신경쓸 일이 아니겠지..." 
"당연하지. 난 베라 챙기기도 바빠. 하루종일 베라 생각만 해도 모자랄 판에 
딴 여자 생각할 틈이 어딨냐?" 

태연한 듯 대꾸하는 플루토를 보며 결국 다리오스는 한숨을 쉴수밖에 없었다.

"...후우 너답다...단순하지만 확실하구나..." 
"욕이야 칭찬이야?" 

플루토의 치켜뜬 눈을 동반한 의구심어린 질문은 대답을 받질 못했다. 말대꾸 를 해주어야 할 다리오스, 그가 다시 하늘로 시선을 옮겼기에. 잠깐의 침묵 후 플루토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상자속에 보물이 들었는지 몬스터가 들었는지는 열어 
봐야 아는 법이야... 내가 아는 넌 결과가 두려워서 시도도 안해보는 그런 
남자가 아니었어.. 지금도 그렇고."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야..." 
"그럼...?" 

다리오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머리속이 8년전으로 거슬러갔다. 그가 최초로 그녀를 보았을 그때로.. 그는 떠올렸다. 지금의 이오네공주를 안고있던 그 아름다운 카르셀의 왕비를, 지금의 이오네 공주와 똑같은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 세르니안을.. 자신의 감정에 최초로 파문을 일으킨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난...그녀를 사랑할 자격이 없어. 진심인지 아닌지조차 확신이 없는걸.."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나직한 다리오스의 혼잣말에 플루토는 눈을 찌푸렸다.

"...무슨 소린지 원..왜 내 주위에는 이렇게 이해못하는 소리만 해대는 인간 
들이 줄을 선걸까?" 

투덜대는 플루토를 보며 다리오스는 피식 웃은 뒤 그의 허리춤에 차여있는 한 자루 장검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새 검은 손에 잘 익었나?" 

교묘히 화제를 바꾸려는 다리오스의 의도는 그대로 먹혀들어갔다.

"아아..새 팔만큼이나.." 

플루토는 다리오스의 말에 검을 꺼내들었다. 달빛이 검날에 반사되어 은은 하게 빛나는 바스타드 소드가 그들 앞에 놓여졌고 다리오스는 우선 감탄의 빛을 보였다. 검이 아닌 그 검을 들고 있는 건장한 팔뚝을 향해.

"과연 베라의 능력은 놀랍군." 

한번 잘린 팔이 저만큼이나 위화감없이 다시 생길수 있다니. 역시 최고위 무녀의 지위는 범상한 것이 아니다. 회복 마법의 수준을 넘어선 재생의 마법 은 고위급 신관이라도 함부로 시도할 수 없는 최고위의 신성주문인 것이다.

"당연하지 베라가 그정도 능력이 없었다면 아마 이오네한테 암살당했을 걸?" 

자랑스러운 듯 새로운 팔을 휘둘러 보는 플루토를 보며 다리오스가 눈쌀을 찌 푸렸다.

"암살이라니? 농담을 해도 좀 가려가면서 해라.." 
"왜? 기분 나쁘냐? 이그..넌 걔가 얼마나 무서운 앤지 넌 몰라서 그래..." 

약올리는 듯한 플루토의 말투에 다리오스가 발끈하기 시작했다.

"난 항상 옆에서 봐왔어. 모르는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에스렐(애욕의 정령)이 씌인 사람한테 뭔 소릴 하겠어? 마음대로 생각하라 
구~~" 
"그러는 넌 에스렐에 씌이지 않았나? 베라에게 완전히 달라붙어있는 주제에." 
"저런, 위대한 실버나이트께서 그런 저열한 시비를 걸다니, 놀라운데?" 
"위대한 실버나이트라...역시 너 뭔가 쌓인게 있구나?" 
"...관두자 관둬.." 

주거니받거니 대화를 나누던 다리오스와 플루토들이 다시 잠잠해졌고 잠시 후 걱정어린 말투로 다리오스가 플루토에게 입을 열었다.

"팔은 이상없나?" 

플루토는 친우의 걱정에 안심하라는 듯 밝게 웃어주었다.

"잘렸던 팔이란 느낌은 안드는데..굳은 살이 다 사라져서 이게 좀 
불편하군. 쩝..뭐 그런건 금방 다시 생기니까 상관없다만..." 

말과 함께 플루토는 들고있던 바스타드 소드를 달빛에 비춰보았다.

"어쨋든 이런 짭짤한 수확이 있었으니까..." 

검날을 따라 새겨진 검은 묵빛 줄무늬, 그 검신 한가운데에 아로새겨진 고대어가 달빛에 반사되어 다리오스의 눈으로 들어왔다.

"스톰브링거..아름답군. 폭풍의 검...과연 드래곤 본이야..전설의 마검, 
용의 권능..." 

다리오스가 감탄에 찬 어조로 중얼거리자 플루토는 검을 몇 번 까닥거려보인 뒤 다시 허리춤에 채워넣으며 투덜댔다.

"왜? 탐나냐? 그런 뭔가 있어보이는 의미없는 단어들을 다 나열하게? 
어차피 지금은 전혀 쓸모없는 그냥 단단한 검일 뿐이야." 
"흐음. 멋지다고는 했지만 탐나진 않아. 내겐 문 알슈타드가 있으니까." 

다리오스의 말미가 점점 작아진다.

`그녀에게 하사받은 검이...' 

뒷부분은 플루토에게 들리지 않는 나직한 목소리였고 그래서 플루토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별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 뭐... 이런거 가지고 있어봤자 검술에는 도움도 안되지. 이게 사실 
검이냐? 마법지팡이지..이런 거 가지고 있으면 실력후퇴하기 딱 좋겠다." 

허리에 찬 검을 툭툭 건드려보는 플루토를 향해 다리오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가스터나 주지 그래?" 
"그러려고 했는데..가스터가 워낙 단단히 봉인을 해봐서 궁정 마도사 전원이 
와서 덤벼들어도 봉인이 안 풀려...젠장 좀 살살 걸든가 하지..멀쩡한 전설 
의 마검을 폐품으로 만들다니... 능력이 너무 뛰어나도 문제라니까?" 
"하지만 그때 그렇게 안했으면 우린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지도 못했을 
거야." 
"그래...그땐 정말 아슬아슬했으니까..." 


┌───────────────────────────────────┐ │ ▶ 번 호 : 8951/9132 ▶ 등록자 : MAY1ST │ │ ▶ 등록일 : 98년 11월 07일 13:19 │ │ ▶ 제 목 : Template:초룡전기 카르세아린 #190 [퍼온글,출처:나우누리] │ └───────────────────────────────────┘ 『게시판-SF & FANTASY (go SF)』 12339번 제 목:Template:초룡전기 카르세아린 -190- 올린이:벗꽃aoi (임경배 ) 98/11/04 18:52 읽음:1376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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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룡전기 카르세아린 (Kalsearin) 



비명소리가 울려퍼진다. 짙은 혈향이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 혈향을 동반한 사방을 찢어발기는 파괴의 바람, 카르셀의 군세로 가득 메운 계곡의 양 절벽 사이를 할퀴고 빨아올리며 지나가는 3줄기의 용권풍, 귀를 찢을듯이 불어닥치는 그 날카로운 폭풍의 교향곡을 뚫고 한 사내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졌다. "[절대마법봉쇄]!" 마나를 실은, 공간을 뒤흔드는 목소리. 한 줄기 검붉은 섬광이 허공에 몸을 고정시킨 가스터에게서부터 뿜어져나가 대지를 디디고 선, 검을 움켜쥔 무왕 라르고에게로 쏟아져갔고 라르고는 소드마스터답게 스톰브링거를 휘둘러 그것을 막아내었다. 섬광은 허공으로 비산되는 찬란한 반탄광과 함께 라르고의 재빠른 반격에 막혀버렸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하지만 실은 그것이 가스터가 노리던 것. "후훗,,," 불시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막아낸 자신의 검술에 만족한 표정을 지 으며 라르고는 습격을 시도한 가스터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만족스러웠고 그래서 웃으려했다. 그러나 그는 웃을 수 없었다. 막 가스터를 올려다보려던 자신의 시선에 그의 스톰브링거가 기이하게 빛나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그에게로 쏘아진, 그리고 훌륭히 막았다고 자부한 그 검붉은 섬광이 마치 뱀처럼 라르고, 그의 스톰브링거의 검신을 타고 올라가 삽시간에 검신 전체를 휘감아버렸다. "어엇?" 라르고는 스톰브링거로 주입되던 자신의 마나가 일순 멈추어지는 걸 느끼며 당황스런 신음을 내뱉었고 그와 함께 휘몰아치던 용권풍이 그 형태를 잃어 가기 시작했다.

공간의 떨림이 멎는다. 휘몰아치던 용권풍이 서서히 그 기세를 잃고 사라져가며 그동안 무수히 빨아올리고 찢어발기며 삼켜올린 자연의 피조물들을 천천히 내뱉는다. 귓가에 불어닥치던 파괴의 괴성이 그 목소리를 죽이고 사라져간다. 쫓기던 카르셀의 군병들, 그리고 허공에서 스톰브링거의 힘을 잠재워보고자 노력했던, 그와 함께 자신의 무력함을 실감하며 이를 갈던 카르셀의 마도사 들은 놀라움이 담긴 시선으로 가스터와, 그가 일으킨 마법의 위력을 번갈아 펴다보기 시작했다. 양 계곡사이에서 불어닥치던, 수백명의 카르셀군의 생명을 단숨에 앗아간 바람의 칼날이 삽시간에 그 위세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도사에게 감탄을 보냈고 그것은 지상에서 허전한 한쪽 팔을 부둥켜쥐고 신음을 내뱉던 플루토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와...굉장하다." 플루토가 마법에 대해서 뭘 아는 건 없지만, 적어도 1. 가스터의 제자들 열댓명이 달려들었지만 용권풍은 미동도 안 했다. 2. 가스터가 짠 하고 나타나서 뭐라뭐라 외치니까 단숨에 조용해진다. 3. 고로 가스터는 매우 잘난 마도사임이 틀림없다. 정도의 유추는 할수 있었고 그래서 플루토는 경탄의 눈빛으로 허공에 몸을 실 은 가스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놀랐다. "가스터?" 사그라졌으나 아직도 그 여세가 남아있는 대기의 흐름은 검은 로브의 마도사 가스터의 로브자락을 연신 펄럭이게 하고 있었고, 펄럭이는 그의 로브자락은 검붉은 피로 물들어 그 틈새 사이로 붉은 육편을 조각조각 떨어트리고 있었다.

한편, 라르고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스톰브링거를 든채 당황스러운 태도를 보이 고 있었다. "이..이게 어찌 된거지? 폭풍! 폭풍이여!" 스톰브링거는 반응하지 않았다. 평범한 철검 이상의 반응 외에는. 당황한 라르고의 눈빛이 감탄으로 바뀌었고 그와 함께 그는 놀라움과 경탄이 담긴 눈빛을 허공의 가스터에게 보내었다. 라르고의 입에서 허탈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가스터 저자는... 드래곤의 권능조차 능가한단 말인가?" 전설의 마검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 사실은 라르고로 하여금 잠시 자신의 상황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는 지금 대륙을 울리는 살아있는 전설, 드래곤 슬레이어 다리오스와 대치하고 있었다는 그 상황을. 그리고 그 허점을 다리오스는 놓치지 않았다.

다리오스 역시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지금 그가 가장 최 우선적으로 해야 할일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결투는 끝나지 않았다. 상대방인 라르고가 헛점을 보이는 지금 그것은 더없는 공격의 기회, 자칫 스톰브링거의 힘이 돌아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타앗!" 다리오스는 가벼운 기합성과 함께 몸을 날렸고 잠시 멍해있던 라르고는 그제서야 아차 하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에게로 쇄도해오는 다리오스에게 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날아오는듯이 빠르게 돌진하는 다리오스, 그리고 그의 손에 쥐어진 은빛의 기류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단숨에 그와 다리오스와의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으윽!" 한 줄기 은빛섬광이 라르고의 눈앞을 가렸고 그는 이를 악물며 몸을 뒤로 날렸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다리오스의 은빛 검기가 번뜩였고 스톰브링거가, 그리고 그 검자루를 꼭 쥐고있는 소드마스터 라르고의 오른손이 피를 흩뿌리며 공중으로 날아올 랐다. "크으.." 라르고의 비명을 채 이어지지 못했다. 허공에 검광의 궤적을 남긴 다리오스의 은빛검기가 베어간 기세 그대로 궤도를 바꾸어 라르고의 목으로 단숨에 베어 들어간 것이다. 섬뜩한 느낌과 함께, 라르고는 이성의 끈을 놓쳐버렸다. 비등한 실력을 가졌을때는 잠시의 헛점이 큰 결과를 초래한다. 하물며 기량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한눈을 팔았으니... 둥근 무엇인가가 하늘로 솟구치면서, 베어들어가는 그 기세를 이기지못해 그대로 라르고를 스쳐지나간 다리오스의 전신에 피가 쏟아진다. 그의 은빛머리결이, 은빛갑옷이, 새하얀 피부가 붉게 물든다. 자신의 몸에 묻은 타인의 피를 손으로 대강 훔쳐내며 다리오스는 뒤를 돌아보 았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일어낳던 일이기 때문이었을까? 무왕 라르고, 제국최강의 검사의 목없는 육체는 아직 대지를 디디고 서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신의 어깨위로 뿜어오르던 선혈이 점점 사그러지기 시작하자 흘러내리는 붉은 핏물이 한때 라르고였던 그 시신을 서서히 덮어가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그것은 대지 위로 누웠다. "...." 다리오스는 잠시 그것을 지켜보았다. 아무말없이. 그에게 있어서 타인의 죽음을 보는 것은 그다지 기분좋은 일이 되지 못했다. 특히 그것이 자신을 투영시킬만한 거울일때는. 그러나 지금은 감상에 빠질 시기가 아닌 것, 다리오스는 곧 정신을 차렸다. 한꺼번에 전력을 폭팔시킨 탓에 전신의 기운이 빠져버렸지만, 그래도 그는 해야할 일을 잊지 않았다. 그는 대지위를 구르는 라르고의 목을 주워들고서 높이 쳐든 채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들어라 제국의 병사들이어!" 그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계곡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것이 침략자의 최후! 그대들의 지도자는 쓰러졌다!"

카르셀의 1만군세가 제국의 10만명의 군사들을 압도하는 기이한 현상이 지금 알크리드산맥의 한 이름없는 계곡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통솔자를 잃은 제국의 병사들은 이미 사기를 잃을대로 잃었고 게다가 절대적 존재였던 무왕 라르고의 죽음은 제국군으로 하여금 일관된 명령 체계를 갖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수뇌부가 몽땅 사라져버린 것은 카르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카르셀 측은 잘만 싸우고 있었다. 기세등등하게. "야아..냅둬두 잘 싸우는구만." 카르셀의 1만군세의 총사령관 플루토 경께서는 지금 근처 바위에 주저앉 아 자신의 수하들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흐뭇했다. 플루토는 정말 흐뭇했다. 플루토, 자신은 지금 팔이 잘려나간데다가 힘이 다 빠져버려 아무것도 못 하 는 처지, 가스터는 지금 허공에서 똑~하고 떨어져 플루토와 동병상련의 아픔 을 겪으며,즉 팔병신이 되어 그의 옆에 누워 피칠갑을 한채 아이고~데이고~ 하고 있고 베라는 어디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통 감감무소식이다. 다리오스는 라르고와의 전투에서 힘을 다 뺐는지 저만치서 어기적 어기적 플 루토에게로 걸어오고 있다.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왠 사람머리 하나를 든 채. 이렇듯 수뇌부 전원이 비리비리한데도 불구하고 그의 부하들은 정말 잘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어찌 흐뭇하지 않을 수 있으랴. 플루토의 암흑군은 그 유치찬란한 작명센스 외에도 큰 단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관된 명령체계를 내릴만한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장은 돌인데 부하들은 똑똑하다보니 애당초 전술이나 용병술을 상의할 때 플루토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이다. 비록 플루토의 머리가 둔한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그는 머리를 굴리 는데 있어서 사전지식을 요하는 행위를 극도로 싫어하는 관계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 외에는 그다지 외워두지를 않았고 게다가 살아가는 데 큰 불 편이 없으므로 더더욱 머리 쓰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검사라면 본능에 의지하여 검을 휘둘러야 한다...라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 침하기 위해서라고 플루토는 되뇌이고 있지만... 허나 플루토, 본인은 살아가는 데 불편이 없겠지만 그런 경우 대체로 주변 인물이 꽤 불편한 법이다. 그래서 한때 플루토도 병법을 한번 제대로 공부해보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플루토는 돌은 깍아도 돌이고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라는 가스터의 격언을 되새기며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은 특수한 경우, 즉 수뇌부가 전부 비리비리하게 되어 버린 경우에는 오히려 장점으로 바뀐다. 수뇌부가 전혀 통솔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통제가 되는 것이다. 비록 머리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플루토였지만 그런 그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는 장수들은 없었다. 병사들의 생명을 아끼기 위해 혼자 적진에 뛰어드는 플루토에게 그 누가 충성을 바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쩝...계획은 어긋났지만..." 자욱한 먼지구름 사이로 죽어가는 양측의 군세들, 그리고 죽은 자의 대부분은 제국의 병사, 그 모습을 바라보던 플루토가 기운빠진 모습으로 주변 바위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하아...이긴 것 같군 뭐...어찌되었건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지..." 플루토의 입에서 피곤이 깃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계속------------------------------------------ 음...수많은 질책이 있었으나..(사실은 수많지도 않았음. 흑~~) 벗꽃은 할말이 없사옵니다. 네에...할말없습니다. 우짜겠습니까? 글을 안 쓴 걸.,으흐흐 열심히 쓰려고 노력중입니다...라고밖에는 할말이 없군요 에헤헹~~ 고메고메고메네Tul (talk) ^_^;;(웃음으로 때우자...) P.S 아 스톰브링거의 버그...네 드디어 발견하셨군요

그거 버그입니다. 원래 전설의 마검이라 할지라도 8서클까지밖에 사용을 
못합니다. 제 소설에서 9서클의 마법은 신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거 
든요. (정신나간 몇몇 드래곤은 실랑이할때 쓰기도 합니다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