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아이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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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다른 뜻1, other1=미국의 요리 학교 혹은 국제 내부 감사사, rd1=CIA)] [include(틀:미국의 정보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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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목차]

개요

Central Intelligence Agency, 미국 중앙정보부 미국정보기관 중 하나로 약칭인 CIA로 널리 알려져 있다.

씨아이에이, 중앙정보국, 미국 중앙정보국, 미국 중앙 정보국

본부는 미국 버지니아 주 랭리(Langley)에 있다. 이전 서술에서는 랭리가 행정구역이 아니므로 매클레인(McLean)[* 워싱턴에 인접한 버지니아의 CDP 구역.]이 맞다고 서술되어 있으나 이는 완전히 반대로 서술된 잘못된 내용으로 랭리는 행정상 CIA 소재지가 맞다. 오히려 CDP라는 편의상 인구통계를 위한 분류에만 매클레인으로 통합되어 있을 뿐이다[* 미국 TV 애니메이션 아메리칸 대드의 배경이기도 하다. 랭리와 CIA 둘 다. 같은 버지니아에 위치한 NASA 랭리와도 혼동되나, 이 이름은 20세기 초의 항공학자인 새뮤얼 랭리에게서 따온 것이며 소재지는 햄튼이다.]. 이게 다 특이한 미국의 행정구역제도 때문. 이 때문에 냉전 시절에 KGB가 '루뱐카'라고 불리는 것처럼 '랭리'라고도 불린다.

요한 복음서 8장 32절 구절인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And ye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를 CIA의 모토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매우 많으나 이 또한 살짝 잘못된 정보로 이는 비공식 모토이며 공식 모토는 "국가의 사업, 정보의 중심(The Work of a Nation. The Center of Intelligence)"이라는 평범한 표어다. 애당초 미국은 정교분리를 주요 이념으로 삼는 국가라서 정부기관의 모토에 특정 종교의 경전에 나오는 문구를 쓰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업무

([한국 홈페이지]에서 밝힌 내용이다.)

CIA의 최고책임자인 국장은 DNI의 지휘를 받으며 주요 임무는 다음과 같다.

* 인적 자원이나 그밖의 적절한 수단을 이용한 정보수집 활동을 합니다. 단 경찰통솔, 법정소환, 법집행 및 국내 치안유지 권한은 없습니다.
* 국가안보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종합평가하고 필요한 대상에게 정보를 배포합니다.
* 해외에서 정보활동을 하도록 권한이 부여된 미정부기관 및 관련정보기구들과의 협의하에, 가장 효과적이고 위험부담이 적은 인간정보 수집활동을 조정하고 종합지휘합니다.
* 대통령과 DNI의 지시에 따라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와 관련된 기타 역할과 임무를 수행합니다.
* 비확산, 테러, 방첩, 국제조직범죄, 마약유통, 환경, 군축 등 주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특수종합센터들을 신설하였습니다.
* 다양한 정보수집매체와 분야 그리고 종합분석업무 간의 연계강화를 추구하여왔습니다.
* 정보공동체의 정보분석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각종 국가안보 사안들에 대한 종합적 분석결과를 제공하였습니다.
* 정보공동체의 공동 관심분야인 영상정보분석과 공개첩보자료를 관리하고, 다른 정보기관과 연구개발 및 기술정보수집 분야에서 협력함으로써 정보공동체의 전반적인 효율성 제고에 이바지해 왔습니다.

고위공무원

(한국 정보기관 기준 수뇌부의 경우 원장, 1-3차장, 기조실장 정도가 소개된다. CIA도 비슷하며 국장과 부국장을 공개한다.)

* 국장(Directo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지나 하스펠(Gina Haspel)
* 부국장(Deputy Directo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데이비드 코언
* 기획실장(Executive Director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 정보본부장(Director of Intelligence)
* 공작본부장(Director of the National Clandestine Service)
* 과학기술본부장(Director for Science & Technology)
* 지원본부장(Director of Support)
* 정보연구센터장(Director of the Center for the Study of Intelligence)
* 공보실장(Director of Public Affairs)
* 법무실장(General Counsel)
* 감사실장(Inspector General)

조직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략사무국(OSS)에서 출발하였다.

비밀공작이나 스파이 정보기관으로 생각이 되지만 실제로는 정보수집, 통계, 분석 업무에 매우 능한 조직이고 그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60년대에는 자체 항공대를 운용하면서(물론 공식적으로는 이런저런 방위산업체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신분세탁시켰다.) 공산권 영토를 횡단비행하며 각종 사진과 지형 데이터를 갖고 오기도 했고 U-2SR-71 같은 정찰용 항공기를 개발하며 최초로 인공위성을 이용해 정보를 모은 단체이기도 하다. 이후 인공위성에 관련된 주 업무는 대부분 NASA와 미 공군으로 넘어갔지만 지금도 CIA는 인공위성, 군사용 무인항공기 사업 등에서 미군 못지 않은 주요 고객이다.

2012년에 만들어진 영화 《아르고》를 보면 이란 혁명 이후 현지 요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할리우드 영화 특수효과 팀을 불러들여 요원들을 영화배우로 변장시켜 무사히 도망시키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활약을 하기도 했다.

냉전

미국 정부는 나날이 생기는 공산정부를 억제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전면적인 침공을 통한 정권교체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상당히 무리가 가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비밀 작전을 통한 정권교체를 위해 CIA에게 많은 법적 권한을 부여한다.

CIA는 전세계에서 작전을 하고 있었다. 공산국가에서는 반체제인사를 지원하거나 피지배민족(일례로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다른곳에서는 공산정권의 창출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중 많은 성과를 올린 곳은 남아메리카와 중동이였다.

라틴아메리카

CIA는 세계 여러곳에서 다양한 공작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남미 지부는 그 중에서도 한층 '더러운' 공작을 벌인 것로 알려져 있고 아래에 언급되지는 않지만 [군부독재 정권을 지원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엄연히 민주적인 선거로 집권한 아옌데 정권을 박살내고 피노체트 독재정권이 들어서게 한 일이 알려져 있지만 그 이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볼리비아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과테말라의 독재정권을 반공을 내세운다면서 그 정권이 좀체 민주적인 면이 눈꼽만큼 없었음에도 대대적으로 지원해주었고 좌파단체뿐만 아니라 중도적인 민주파 인사를 깔아몽개는 짓을 해도 봐주었기 때문에 중남미에서는 미국이 민주주의의 수호를 해주는 세계의 경찰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제통화기금이 그 계보를 이어받으면서 빛이 바래기는 한다.

과테말라

1951년 과테말라의 대통령이었던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은 대지주와 미국기업이 소유하였던 토지들을 국유화하여 빈민들에게 분배하고, 그 외에 바나나 산업같은 외국기업이 침탈하고 있었던 산업들을 국유화하였다.

처음에 미국 정부는 아르벤스가 과격한 사회주의자는 아니었기에 방관하였으나 미국 기업의 이권을 뺏기자 이는 결과적으로 과테말라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소련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생각했다.[* 쿠데타 후에 CIA가 조사한 결과 아르벤스는 공산주의나 소련과 아무 관련도 없음이 드러났다. 이처럼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는것을 매우 두려워하여 미국에게 반대하는 정권은 모두 공산정부라고 생각하고 죄다 뒤집어버렸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남미의 공산화를 초래하게 된다] 이에 아이젠하워 정부는 1953년 8월 과테말라 쿠데타 지원을 승인하게 된다.

CIA는 1954년 과테말라의 우익세력을 훈련시켜 아르벤즈 정부를 전복시킨 후, 육군 대령이었던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Carlos Castillo Armas)를 앉힌다.

쿠바

쿠바는 미국의 앞마당에 있었던 만큼 미국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쿠바의 공산정권을 전복시키려고 했다. 피그스만 침공 작전이 실패한 이후에도, 몽구스 작전이나 노스우드 작전을 통해 쿠바의 공산정권을 전복하려는 작전은 많이 있었다.

이 경향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심화되었다. 쿠바가 미국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임을 똑똑히 확인하였고,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내쫒기 위해 많은 계획을 짰지만, 피그스만 침공 이후 전면적인 작전은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침공을 했다간 제2의 미사일 위기를 불러올 수 있었고, 미국은 피그스만 침공이 자신들의 짓임이 만천하에 알려지자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반체제 인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방법책을 모색했다. 거기다, 당시 이들은 피그스만 침공 실패의 원인을 작전 자체의 허술함이 아닌 '내부의 적'으로만 보고 내부 스파이 색출에 골몰한 나머지 팀킬하던 중이기도 했다.[* 영화 《굿 셰퍼드》에서 이 당시 CIA의 혼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니카라과

1980년대 레이건 정부가 집권한 뒤에 CIA는 니카라과에 들어선 좌파정부인[* 혁명직후에는 다수의 중도파와 우파 정당도 참여한 대연정에 가까웠지만 1980년대 초반을 전후하여 우파인사들이 대거 연정에서 탈퇴하면서 산디니스타 단독집권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산디니스타 정권을 뒤집기 위해 다양한 공작활동을 펼친다. 항구에 기뢰를 뿌려 수송함을 격침시키고 우익 성향인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였다. 콘트라 반군은 온두라스에 기지를 두고 CIA로부터 훈련을 받고 무기를 지원받고 있었다. 콘트라 반군은 그 잔악함이 극에 달해 일부러 병원을 비롯한 민간시설을 테러하는 등 욕도 많이 들었고 그 와중에 이란-콘트라 사건 같은 병크가 발생하기도 해서 남미에서 미국은 나쁜 국가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CIA의 남미간섭은 이전에도 활발했지만 비교적 이와 관련하여 상세한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한것은 이때부터이다.] 더군다나 니카라과에서는 1984년에 상당수 야당의 불참을 중용해서 불참시켜났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웃 엘살바도르나 온두라스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선거가 치러졌고 당시 니카라과 최고지도자였던 다니엘 오르테가가 압승했다지만 야당도 의회 의석의 1/3로 개헌저지선을 획득하여 견제가 가능한 나름대로 납득할만한 선거결과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불공정한 선거 운운거렸으니 도대체 까이지 않을래야 까이지 않을수가 없기는 했다. 더군다나 당시의 니카라과는 공산주의의 전형과는 거의 반대의 국가였으니 할말이 없던 것이다.(소모사 일당을 박살내는 과정에서 소모사와 그 잔당들이 소유하던 토지와 기업들을 몰수한건 엄연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당대 니카라과 경제부문의 60%가 여전히 사기업이 차지하고 있었다.)사실 이 정책은 미국내에서도 엄청나게 까이기는 마찬가지라서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타임즈에서 까기도 했고, 미국 하원에서도 콘트라에 대해서 제동을 거는[* 이게 민주당 공화당 할거없이 찬성한 법안이다. 법안이 통과된 시점이 1982년 12월로 이때는 친미국가인 멕시코,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콜롬비아, 페루가 막 터진 금융위기로 휘청거렸는데 그런데 그 와중에 경제력도 변변치 않고 미국의 웬만한 주 하나급, 인구도 적은 조그마한 국가에 공산주의 확산된다고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당시 미국 국회의원들과 언론들도 어이가 없어했다.]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콘트라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산디니스타 정권의 실책이 없냐면 그건 아니었는데 경제재제로 날이 갈수록 경제가 추락하자 다급해진 산디니스타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야당지지자들을 잡아들이고 언론검열도 여러번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지만 결국 2500%의 인플레이션을 찍으면서 민심을 잃어버렸고 어쨌든 CIA는 그럼에도 산디니스타가 여전히 지지를 잃지않고 있다고 오판하면서 콘트라반군을 이용해 무력적으로 정권전복을 하려고 했으나 1990년 선거에서 산디니스타가 40%의 득표율을 얻는데 그치고 중도우파 정권이 집권하면서 계획은 중지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16년간 니카라과는 우파정당이 정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6년 대선에서 좌파열풍을 타고 1980년대 당시의 니카라과의 대통령인 다니엘 오르테가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복귀하였고 선거에서 압승하는 식으로 집권중이다. 뱀발이지만 1986년 니카라과가 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국제사법재판소는 미국이 니카라과에 대한 주권침해에 대한 보상으로 120억 달러를 지불해야한다고 판결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부정하고 소련이 산디니스타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군인들을 훈련시켰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칠레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 된다. 사회주의 성향인 아옌데는 구리 광산과 은행을 국유화하고 대규모 토지개혁을 밀어붙였다. 또한 이전 정부가 다국적 기업에 주던 여러가지 특혜를 더이상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마찰을 유발시켰다.

새로운 사회주의 정권 출현에 당황한 미국은 칠레와 소련이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는것을 두려워하여[* 아옌데가 정말로 소련과 가까운 관계를 가졌는지는 논란이 있다. KGB가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공작을 펼친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으나 쿠데타 이전 아옌데가 KGB와 친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1970년 'Project FUBELT'를 발동시키고 정부전복을 승인한다.

아옌데가 당시 무리한 개혁으로 인해 처한 경제위기를 더욱 악화시킴으로써 쿠데타가 발생할 배경을 조성하고, 온갖 사보타주 공작과 선동을 통해 아옌데 정부에 대한 반감을 끌어올렸다. 이후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위시로 한 군부가 칠레를 장악하고 아옌데는 자살한다. 이후 피노체트 군부는 약 17년동안 잔인한 독재 정치를 펼친다

중동

중동의 경우에는 남미와는 다른 점이 있다. 남아메리카의 경우에는 CIA가 쿠데타를 각본부터 실행까지 완전히 주도하였다면 중동과 아프리카의 경우는 쿠데타를 묵인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의 조연역할을 했다. 사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의 뒷공작은 KGB가 더 심각하여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소련이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는다.

이란

이란은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란은 그렇기에 소련과 미국의 암투의 장이 되어왔다.

1951년 민족주의 성향의 모하메드 모사데그(Mohammad Mosaddegh)가 총리로 당선된다. 이란의 석유산업은 영국이 1900년대 초에 개발하여 영국 기업인 앵글로-이란 석유회사(AIOC, Anglo-Iranian Oil Company,)가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었는데, 모사데그는 이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국영기업인 NIOC(National Iranian Oil Company)를 만들어 대항하였다. 영국은 석유산업에 이권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미국은 모사데그가 소련과 가까이 지낼 것을 두려워해(미국은 소련에 대해서 광적인 집착을 하였고 반자본주의적 경제정책만 펼쳐도 공산주의라 간주하고 몰아낸 경우가 적지 않다. 모사데그도 민족주의자였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쫒겨났다.) MI6와 합작하여 모사데그를 몰아냈고 팔레비 왕조는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전제군주정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 쿠데타 이후로 이란의 반서구감정은 극에 이르렀고 결국 1979년 이슬람 혁명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중요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CIA, 미 국무부, 국방부 할 것 없이 왕정 시절 이란 현지에 정보망이 없었다. 이 때문에 팔레비 정권 비밀경찰의 정보 보고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래서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직전까지도 '이란의 팔레비 정권 안정적. 체제 변화 가능성 전무' 라는 정보보고를 상부에 제출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도 상황은 비슷해서 팔레비 정권에 대한 이란인들의 반감, 현지 상황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팔레비만 옹호하다가 극단적인 반미 정권의 성립을 초래하였다. 막상 민중혁명이 발발하자 군대에서 갓 제대해서 CIA 에 들어온지 1년도 안되는 현지어도 못하는 요원에게 이란 내부의 사정파악과 가급적이면 이란을 친미세력으로 묶어두라는 임무를 줘서 파견했다가 그 요원이 붙잡혀서 이란인들을 극도로 분노케 했다. 이것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CIA 국장을 지냈던 스탠스필드 터너(조지 부시 후임)의 책임이 크다. 터너 국장은 인간정보(HUMINT)에서 신호정보(SIGINT)로 CIA의 포커스를 전환하면서 무려 800명이나 되는 작전관들을 짤라버렸다. 이 사건은 핼러윈 대학살이라고 불린다. 이 사건 때는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초짜에게 그런 큰 임무를 부여해서 보냈냐'며 이란인들이 길길이 날뛰었고 이 때문에 혁명이 조금 더 거칠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이 사건은 발생 직전 이란 주재 CIA 주요 요원들의 신분이 모조리 노출되고 덤으로 행정부가 바뀌면서 실시한 구세대 인원 교체계획 실행이 겹쳐 물갈이를 서두른 탓에 벌어진 사건이기도 하긴 했다. 그러나 삽질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이라크

이라크의 경우는 논란이 있다. CIA가 이라크에서 정권전복을 시도했다는 증거가 부족해서, CIA가 쿠데타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많다. 애초부터 나세르가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기도 하거니와, 범아랍주의는 미국의 아랍 내 영향력을 감소시켰기에 바트당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우선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아래와 같으니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길 바란다.

1958년 7월, 육군 장군이었던 압드 알카림 콰심(Abd al-Karim Qasim)이 쿠데타를 일으켜 이라크 군주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한 뒤 본인은 총리에 오른다. 초기엔 쿠르드족의 자치를 인정하고 교육을 진흥하고, 여성인권을 확대하는 등 개혁정책을 펼쳐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영국의 석유기업을 국유화하고 영미와의 관계를 멀리했으며, 소련과 친하게 지내 서방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콰심정권의 위기는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아랍끼리 뭉치자'는 이름 아래 만든 아랍연방공화국에 가입하길 거부한 데서 시작했고, 이는 범아랍민족주의자인 바트당(Ba'ath Party)의 분노를 일으켰다. 바트당과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공산당의 충돌은 심각해져 내전까지 터지게 되는데, 결국 콰심정권은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1963년 CIA의 협력 아래 이루어진 바트당의 쿠데타에 실각하게 된다.

1966년 이라크의 지도자였던 살람 아리프(Salam Arif)가 죽고, 그의 동생인 압둘 라흐만 아리프(Abdul Rahman Arif)가 정권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라흐만 아리프는 반(反)바트당 주의자였기 때문에 바트당은 실각하고, 다시 이라크는 소련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바트당은 석유와 황 개발권을 미국에게 넘겨주는 대신 쿠데타를 도와주고 묵인해줄 것을 CIA에 요청하였으며, CIA는 받아들인다.

1968년 바트당 지지자인 아흐메드 하산 알바크르(Ahmed Hassan Al-Bakr)(알 바크르는 미국에 적대적이었고 CIA가 알바크르를 실각하게 하려고 했다는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1968년에 미국이 이라크의 쿠데타를 지원했다는것에는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고 이는 사담 후세인이 권력에 다가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시아

베트남

냉전기 베트남에 꽤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베트남 공화국의 정부를 어느정도 컨트롤 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미 정보국이 활동하는 모양새였지만, 그늘에서 분주하게 활동하며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베트남의 흑막으로 존재했다. 현재 미 정보국 건물은 베트남 전쟁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건물에 CIA도 일부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미군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것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굴욕.

대한민국

한국은 냉전 시기에 최전선이었다. CIA가 굉장히 활발히 활동하는 곳이라고 한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이들의 활동이 거의 밝혀지지 않았으나 1986년 월간조선 2월호에 조갑제 기자가 [미 CIA의 내막]이라는 기사를 써서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리서치 유닛(Research Unit)이라는 이름의 CIA 한국거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활동을 하며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분석했다. 문제는 당시 조갑제 기자가 CIA 사무실들의 전화번호까지 밝혀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조갑제 기자는 안기부에 끌려가게 된다.(당시 대공수사국 수사단장이 정형근이었는데 조갑제 기자도 정형근도 기본적으로는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에 이때 이후로 서로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1]] 미국 주도의 대북 공작과 한국, 미국 양국 정보 교환에 관여하는 곳으로 파악되고 있다. 애초에 미군이 있는 곳에 CIA가 없을리가 만무하다. 한동안 국경에서 직접 북한군 라디오 감청까지 했다는 카더라도 존재한다. (보통 정보수집을 미군이 하고 분석은 CIA가 하는듯 하다.) 분계선 라디오 도청으로 알아내는건 병력 이동을 파악하는 수준인데 지금은 위성과 레이더로 대부분 보이기 때문에 하지 않는듯 하다.

최근 중국 소재의 CIA 협조인들을 중국 정부가 처형함에 따라 대중/대북 공작을 위해 한국에 다시 집결했을 수도 있다. 최소한 대북 정보활동에 한해서는 동맹국의 협조를 구하기도 쉽다.

동유럽

소련

냉전 시기에 소련의 국방비를 가늠하기 위해 입수 가능한 모든 소련군 사진과 자료를 모은 뒤 보병의 총검과 전투화부터 전차, 전술기, 잠수함까지 하나 하나 세어가며 확인 가능한 모든 군사장비에 전부 예상 가격을 매기는 식으로 소련의 국방비를 추산하는 프로젝트를 몇 년에 걸쳐 진행한 적도 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끝나자 이번에는 WTO군 전체를 대상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미국과 소련 단독비교 시에는 소련이 미국보다 살짝 더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으나 NATO와 WTO를 전체 단위로 비교 할 경우 NATO가 WTO를 압도하는 국방비를 집행하고 있음을 결론 내기도 했다. 참고로 그로부터 2~3년 뒤에 소련이 붕괴하며 냉전이 끝났다.

1960년대 티타늄은 소련에서 생산이 가능했다. SR-71 제작 당시 300도까지 올라가는 고열을 견디기 위해서는 항공기에 티타늄 사용이 반드시 필요했다. CIA는 골프채 위장회사를 설립해 소련에서 티타늄을 수입한 뒤 군사용으로 이용했다.

[붕괴에도 이런저런 역할을 했다.] 소련의 수입원이 기름이라는 걸 알아내고 사우디아라비아와 협상해서 석유생산을 급증시켰고 소련은 경제난을 겪었다.

[6월에는] 시베리아 가스 파이프라인을 폭파시켰는데 이것이 우주에서도 관측 가능할 정도의 대폭발이었다고 한다. 특수공작원이 가서 폭탄을 설치하는 등의 상식적인 수법이 아니었다. 소련 요원은 외국 회사에서 가스 파이프라인 시스템에 대한 자동제어 소프트웨어를 훔쳤고 그 프로그램이 오작동했을 뿐이었다. 1982년 CIA는 소련이 자신들의 가스 파이프라인 시스템이 너무 낡았다고 보아 서방에서 신기술을 훔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정보를 얻어냈다. 처음에는 요원을 잡는 걸로 끝낼까 하다가, CIA에서는 훔쳐갈 소프트웨어가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정상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작동하면 펌프, 밸브, 터빈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해서 압력을 상승시키도록 짜놓은 부비트랩 프로그램으로 몰래 교체하였다. 천연가스 수출이 당시 소련 국가수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결과가 치명적이었고 배관 재설치에는 10년이 넘게 걸렸다.[* 막대한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소련의 붕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2]] 1982년 당시 CIA는 소련의 파이프라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CIA의 공작인지 단순 버그인지 소련에서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관련 기술을 자체 제작해야 했고 모자란 기술로 인해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의 진상은 [공개된 CIA 비밀문서]로 자신들의 소행임을 공개하였다.

[즈음]에는 미국에서 사 온 더치 와이프에 에어백처럼 공기를 집어넣는 기술을 추가한 다음 중절모를 씌운 정장 차림 남성의 형태로 변형시켜 모스크바에 반입하여 KGB의 미행자를 속이는 용도로 활용했다. 현재는 그런 낡은 수법은 먹히지 않는다.

폴란드

1980년대 폴란드 노동조합에 인쇄기, 컴퓨터, 팩시밀리, 해적방송용 송신기 등을 밀반입해주고 자금을 지원하였다.

9.11 테러 이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CIA가 직접 산악지방에 정보 수집기지를 차려두고 이 정보를 기반으로 프레데터, 리퍼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때려잡다가 탈레반의 자살공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화 《제로 다크 서티》에서 주인공의 선배가 죽는 사건이 바로 이 사건이다.] 참고로 이 때 사망한 요원들 중에는 용역을 받는 민간군사기업 직원도 있는데, 대부분 CIA 비밀공작 경험자, 특히 상당수 실제 CIA 출신자들이 CIA의 비밀공작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이들이 설립한 회사이다. CIA의 자체 특수공작 및 준군사작전 보조요원들은 이런 식으로 전직 정보요원을 다수 포함한 용역 직원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으로 미 연방정부는 계약 형식의 노동력이 필요하면 계속 회사에 용역을 주는 식으로 노동력을 충당해왔다. 타국 정보기관은 연방 공무원에 비해 보안기준이 좀더 느슨한 이 용역 노동력을 매수해 미 정부기관에 침투하곤 했다.[[3]]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비슷한 경우를 찾아보자면 홈랜드에서 주인공 '캐리'의 시다바리(...) 노릇을 하는 감시 셔틀 '버질'을 예로 들 수 있다.

사실 CIA가 저지른 일들이나 각종 권한들, 그리고 아직도 기밀로 부쳐진 각종 자료들을 생각해보면 좀 너무 무시당하는 감도 있다. 그러나 냉전소련KGB에게 첩보전에서 열세였던 점은 분명한 까임거리이며 생각 외로 CIA가 냉전 시기나 현재 해외 정보 입수에서 저지른 뻘짓들이 좀 많은 편이다.[* 전신인 OSS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작전]이란 뻘짓을 했다.] 하지만 CIA는 자유사회였던 미국의 영향도 받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다. KGB야 여론이 어떻든 무시할 수 있었지만 CIA는 일단 의회와 행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여론도 무시할 수 없었고.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미국에 있는 KGB 첩보원이 러시아의 CIA 첩보원보다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고 따라서 더 쉽게 정보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따라서 CIA와 KGB를 같은 잣대로 비교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것이다.

이런 CIA의 삽질은 당연히 냉전 이후 만천하에 까발려지게 되며[* 사실 CIA는 이미 1960년대(예: U-2기 격추사건, 피그만 침공, 쿠바 미사일 위기 등), 70년대(예: 워터게이트 사건, 전 국민에 대한 CIA의 불법 사찰 사실 폭로, 중남미 쿠데타의 미국 연루 문제 등), 80년대(예: 이란-콘트라 사건 외 다수) 등 10년 주기로 잘못된 공작이나 불법행위가 미국 국내에서 노출되어 여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CIA가 현재와 같은 위상추락을 겪은 것은 저런 CIA의 치부가 지속적으로 노출된 끝에 냉전 종식을 기점으로 해서 제대로 폭발한 결과다.], 이후 점점 위상이 줄어 들더니 급기야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보공동체(U.S. Intelligence Community)의 내부 정보 공유 부재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정보공동체의 좌장 역할을 CIA의 수장인 중앙정보장(DCI; 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이 맡다보니 다른 기관들이 CIA의 밥그릇 챙기기에 희생될 것을 우려해 협조를 꺼렸다는 것. 결국 중앙정보장은 그 명칭이 중앙정보장(DCIA; 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 Agency)으로 변경되고 정보공동체의 수장 역할 역시 신설된 DNI(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국가정보장)에 빼앗겨

(DHS,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즉 국토안보부이다. 9.11 테러 이후에 테러 방지 목적으로 새로 만들어진 강력한 권한의 행정부이다.)

이런 신세[* 근데 ODNI는 CIA를 비롯한 각종 정보기관을 통괄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CIA가 정보를 가져와도 다른 정보부서에서 이미 ODNI에게 정보를 주었을 경우가 많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얻어버린 CIA와 달리 국방정보국(DIA)이나 국가안보국(NSA)은 그런 악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운영 역시 여전히 순조로운 편이라, 분야에 따라서는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에서 DIA나 NSA가 CIA보다 나은 경우 역시 매우 많은 편이다.]… 라지만 사실 ODNI란 조직 자체가 그 위치가 애매하다. 뭐 여튼 DNI를 주도하는 것도 사실상 CIA니까[* 원래 CIA는 오래 전부터 ODNI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해 왔고, 실제 지금 역시도 ODNI에게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첩보를 수집하고 공작을 해 온 CIA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CIA의 수난사는 ODNI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CIA를 비판하고 감시해 온 의회 및 행정부에 의해 가속화된 것이므로,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DNI의 존재를 통해 CIA가 그간의 형편없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견실한 정보기관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여전히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걸 보면 아직은 요원한 것 같지만.

그런데 부시 시절에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CIA가 거두는 성공 하나하나가 바로 국방부의 실패요!" 라고 말할 정도로 쓸데없이 견제를 하기도 했었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넵튠 스피어 작전에서 CIA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듯한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CIA를 다시 밀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2011 이집트 혁명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가 2월 10일 하야 발표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그날 무바라크는 안 물러날 거라고 뻗대는 발표를 해 돈값 못한다고 까였다. 거기에 무바라크는 그 발표를 한 지 하루 만에 하야하면서 더욱 자존심을 구기게 되었다.

2011년 11월 21일 미국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중동에서 첩보활동을 하던 CIA 현지 요원들이 헤즈볼라의 치밀한 추격에 그만 발각되어 버렸다고 한다. 이들의 운명이 어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헤즈볼라의 성향상 즉결 처형했을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헤즈볼라는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서 CIA 요원들을 추적한 반면, CIA 요원들은 암호명을 'Pizza'로 하고 접선장소를 피자헛으로 몇 달째 고정하다가 잡혀버렸다고 한다.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관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2017년에 들어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 이란을 전담하는 임무센터를 창설했다고 한다.[[4]]

CIA 실패 잔혹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팀 와이너가 쓴 《잿더미의 유산(Legacy of Ashes)》을 읽어보자. 다만 저 책은 저널리스트,칼럼니스트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성향상 사건의 역사적 배경이나 상황, 맥락을 배제하고 팩트만 자세하게 늘어놓았기 때문에 CIA라는 조직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게 되기 쉽다. 하지만 그래도 CIA 조직의 배경과 역사,그리고 작가 본인의 치밀한 사료 조사,관련인물과의 인터뷰 내용,한국전쟁 당시 CIA의 비밀문서 일부분의 기록내용도 있어 국내판 기준으로도 999페이지라는 방대한 페이지를 자랑하니 CIA 역사를 알고 싶다면 추천하는 책이다. 참고로 팀 와이너는 펜타곤의 검은 예산에 대한 책과 CIA의 정보를 소련에 팔아넘기다가 체포된 내부 스파이였던 엘드리치 에임스에 대한 책도 저술했으니 이책도 영어가 된다면 참고해도 나쁘지 않다. 다만 이 두책은 미국에서도 발행된지 20년이 넘어가는 오래된 책이라 찾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이야기

고문

KGB와 함께 고문을 한것으로 거의 암묵적으로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관타나모 수용소와 [[5]] 화자되기도 했는데,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포로들을 잡아들이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인드 컨트롤을 실험했다. MK울트라 문서 참조.

[테러 용의자에겐 물고문, 성고문]도 일삼았다고 한다.

고문기술 개발 비용 913억원 지급 폭로 파문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고문기술자에게 8000만달러를 건넨 사실이 밝혀졌다. CIA는 이들과 함께 워터보딩(물고문), 수면박탈 등 20가지의 고문기술을 개발하였다. 미 상원 정보위원회가 9일(현지시간) 발표한 ‘CIA 심문보고서’에 따르면 CIA는 당초 ‘심문기술 강화’를 위해 한 업체와 1억8000만달러(약 2000억원)의 계약을 체결했으나 2009년 계약이 종료되며 8100만달러(약 900억원)만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NBC방송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6]]

미국 정보기관간 암투와 견제

정보기관이 이렇게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으면 임무 중복때문에 비효율적일 것 같지만, 막강한 정보력과 권력을 가진 이런 정보기관이 폭주하거나 아니면 비리를 저지르는 것들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보안사령부(현 기무사)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경쟁하였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10.26 사건을 일으켜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했고 그로 인하여 중앙정보부가 보안사령부 즉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수사와 감찰을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 균형이 깨졌다. 그 결과 벌어진게 12.12 군사반란이다. 사실상 중앙정보부가 보안사령부의 하위조직화 되어버리면서 장태완, 정병주를 위시한 군사반란 방어세력의 눈과 귀가 다 막혀버렸다. 실제의 사례가 있느니만큼 정보기관간의 균형과 견제는 국가의 안전을 위해선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정보기관은 아니지만) FBI가 유일한 정보-사찰 기관으로 있었을 당시, 존 에드거 후버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으나, 대항할 기관들은 없었거나 미약했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견제할 수 없었고, 그는 유명인사를 불법적으로 사찰하거나 민주국가인 미국에서 종신국장을 하는 등의 권력남용을 저질렀다.

이후에 FBI 국장의 권한은 매우 축소되었으며, CIA, DIA, NSA등의 다른 정보기관들도 자리를 잡고 성장하여 이제는 어떤 한 정보기관이 종횡을 할수도 없다. 이런 것들이 꼭 낭비라고 볼수도 없으니, 한국에서 국정원을 해외정보처와 국내방첩부로 나눠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비슷하게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연방이 되면서 KGB는 대외정보국(SVR)과 연방보안국(FSB)로 나뉘어졌다.

2012년 11월에 물러난 CIA국장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바로 이런 정보기관간 견제에서 바람피운 것이 감지되어 물러난 경우이다. FBI는 퍼트레이어스의 애인 폴라 브로드웰이 어떤 여인(다른 애인)[* 그런데 이 여인 질 켈리는 ISAF 사령관을 지낸 퍼트레이어스의 후임인 ISAF 사령관 존 앨런 해병대장과도 이중으로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대한민국 명예 영사 자리를 얻어내는 등 여러 기업들의 로비스트 노릇을 했다는 사실이 수사 결과 발각되었다. 즉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었다.]을 협박한다는 사실을 신고받고 수사에 착수했고, 결국 이러한 사실중에 퍼트레이어스와 브로드웰간의 이메일을 수사해서 이들이 내연관계임을 확인했다. 그것뿐이면 사실 사생활이니 그다지 문제가 안되는데 퍼트레이어스가 군사기밀을 작가인 브로드웰에게 누출했다는 혐의를 찾아냈고[* 브로드웰은 퍼트레이어스와 마찬가지로 미국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소령으로 제대한 인물이라 군사기밀을 누설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느끼지 못했다는 게 그의 주장인데, 전역한 군인은 일반 민간인이라는 점에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FBI가 CIA국장을 직접 조사하자 이에 부담을 느낀 퍼트레이어스는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이 FBI는 CIA의 불법활동을 감시하며, CIA가 감지하지 못했던 CIA요원으로 가장한 이중간첩들을 잡아낸 적이 있으므로, CIA가 국내에서 불법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발각되게 마련이며, 만약 미국도 CIA가 한국처럼 유일한 정보기관으로 있었다면 이렇게 CIA국장의 정보유출 혐의를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군 정보기관이나 경찰 정보기관이 따로 있긴 하지만 활동 영역 자체가 아예 다르다.] 그런 면에서 볼때 정보기관간의 암투나 견제가 꼭 중복되거나 낭비적인 것만은 아니다.

삽질의 역사

과거 공산권과의 냉전 당시 동구와 남아메리카에만 역량을 집중하느라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능 그 자체였다.[* 동구 집중 역시 그다지 성과는 없었다. 특히 아래에 소개된 제임스 앵글턴 문제, 그리고 행정부가 품은 소련의 역량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으로 CIA는 거의 10여 년 이상 대소 첩보전에서 믿을 수 있는 정보 원천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사실 미국의 현지 적응력이 원체 병맛이기도 하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에서 감옥에 있는 마피아들을 죄다 풀어준적도 있다. 유럽에서도 일을 이따위로 하는데 제3세계에서 어떻게 하는지는 뻔하다(...)] 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를 비롯한 제3세계 여러 군데에서 보여준 모습은 세금 도둑이란 말도 아까울 정도... 일례로 소련에 실질적으로 위협이 된 게릴라들에게는 지원 안하고 영어가 되는 게릴라 지도자들에게만 지원을 해주는 병크를 저지르기도... 그 중 하나가 오사마 빈 라덴.

반 공산주의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조금이라도 비자본주의적인 정책을 실시하면(특히 국유화) 경기를 일으켰다. 이러한 이유로 진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실리를 위해 소련과 친하게 지내거나 아니면[* 미국이 조금만 더 다가갔다면 충분히 우방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호치민이 그 대표적인 예고, 파키스탄의 줄피카르 알리 부토도 그랬다.] 아옌데처럼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인 인물이라도[* 특히 중남미에서는 더욱 그러했고 미국의 국가이미지가 어찌되었든 미국기업의 이권이 뺏기기만 하더라도 말 그대로 뒤엎어버릴려고 작정을 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공산주의자라 가정하고 그냥 뒤집어버렸다. ~~애초에 미국에 사민주의 정당이 의석을 차지하기만 했었어도 없었을 폐헤~~[* 사실 1908년부터 1950년 선거 이전까지는 미국에서도 사민주의 정당이 하원 의석을 차지한적이 있기는 했다. 그 이후로는 일부지역에서만 주의회나 기초단체장을 차지하는 수준이지만] 이러한 이유로 반미주의가 횡행하게 되어 결국 해당 피해국(?)이 레알 공산화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이는 미국에 역풍을 가져와 오히려 영향력이 감소하게 되었다.

러시아 때문에 부다페스트 협약이 깨질 것이 우려되어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보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막 퍼주는 건 좋은데 거기에 네오 나치들은 물론 심지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 결과 러시아에 비해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유하고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공산권에 대해 엄청난 정보력을 기울였으면서도 막 개발된 소련의 신형전차였던 T-72의 성능도 끝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진짜 황당한게 프랑스 대사관 주재무관이 신형전차를 보여달라 하자 소련군부는 그대로 T-72를 보여줬다.] 결국은 SIS에게 정보요청을 했으며[* 영국은 신형전차 매뉴얼을 보내주며 복사비를 청구했다. 비웃은 거다.]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에 나온 보고서에 소련 체제에 아무런 이상 없음이라는 말 그대로 병신인증을 벌였다.[* 소련 붕괴를 멀쩡히 예상한 분석가들이 서방엔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서 이 부분을 봐야 한다. CIA가 이 문제에서 욕을 먹어야 하는 건 '체제 이상 없음'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분석가들과 차원이 다른 정보수집수단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SIS의 케임브리지 5인조 사건에 충격을 먹고 내부 첩자들을 단속하라는 명령을 내린 국장조차도 알고보니 KGB 첩자였다는 주장이 CIA 내부에서 나올 정도.[* 그래도 첩자가 나온 집단이라는 것은 중간에 삽질이 좀 많긴 해도 어떻게든 잡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나도 없는 국정원을 오히려 의심하는 이들도 있으니... 라지만, 실제로 미국 정보/공안기관 내부에 침투한 첩자는 모두 6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사이에 소련에 줄을 댔다. 그리고 단속 명령을 내린 장본인이 KGB라는 소리는 그 주장을 꺼낸 당사자인 제임스 앵글턴의 오랜 친구가 하필이면 그 유명한 케임브리지 5인조 중 하나인 킴 필비라는 것에서 나온 일종의 루머다. 오히려 앵글턴은 이 사건으로 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편집적으로 CIA 내부 방첩을 다졌고, 사실상 침투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자기 상관들 모두가 실은 KGB의 이중간첩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힐 정도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지나치게 두더지(이중첩자) 사냥에 편집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조직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이 때문에 그 자신이 되려 KGB의 이중첩자가 아니었냐는 의혹을 산 것이었다.] 그 외에도 동구권의 정보전문가가 목숨을 걸고 망명해왔는데 안가에 몇 년간 처박아두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석방해버렸다.(그 사람은 미국의 대우에 삐져서 석방되자마자 소련 대사관으로 들어가버렸다.)

냉전 시기에 생체실험MK울트라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다.

([링크])

외국어 능력의 부재

CIA 뿐만 아니라 미국 국가기관 전체가 이런 약점을 안고 있다.

1950년 시점에 한국어와 중국어를 제대로 구사 가능한 미국 국적 CIA 요원이 거의 없었던 것을 시작으로 해서 1990년대 후반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될 무렵에는 CIA 내에서 흥분한 아랍인들이 아랍어 방언으로 고래고래 떠드는 소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통역관이 전체를 통틀어 단 3명 뿐이기도 했다.

이렇게 외국어 능력이 없기 때문에 CIA는 현지에서 고용한 요원들이나 동맹국 정보기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고 자연스레 이중간첩에게 놀아나거나 아니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독재정권의 후견인으로 자리잡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지금도 한국 등 상대적으로 통용되는 정도가 덜한 언어는 해당국 정보기관이나 협력자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거나, 아니면 일본 같이 옆에 있는 국가에 의존하다가 그 국가에서 심어준 편견을 갖기도 한다.

추모의 벽

세계 각국에서 비밀스러운 작전을 수행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순직하는 요원들도 상당하다.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곳이 바로 [벽이다.] 요원 한 명이 순직할 때마다 검은 별을 하나씩 새기며, CIA 본부 메인 홀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2018년 현재 125개 별이 있다.[* 국가정보원에도 이러한 추모비가 있으며 국가정보원 안보견학관 방문시 볼 수 있다.]

대중매체

거의 십중팔구는 흑막 또는 악의 축으로 나온다.[* 이게 최근까지도 CIA를 부정적으로 보는 매체가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이 때문에 CIA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주는데 대중매체도 한몫하고 있다.]

그나마 리얼한 CIA가 나오는 작품을 보고 싶다면, 제이슨 본 영화 시리즈를 추천한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CIA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보여준다. 그 외에는 영화 《굿 셰퍼드》나 알 파치노 주연의 《리크루트》가 괜찮다. 벤 애플렉의 영화 《아르고》가 CIA가 성공시킨 실제 구출작전을 잘 다루고 있으며 《제로 다크 서티》는 911테러 이후 넵튠 스피어 작전으로 빈 라덴을 사살하기까지 10년 가까이 뒤쫓던 내용으로 CIA가 얼마나 집요하게 추적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등장 조직 IMF가 CIA의 하부조직이라는 설정이다.

드라마 쪽에서는 《컴퍼니》가 CIA의 성공과 실패 등 팩트를 기반으로 가상의 인물들을 넣어 잘 표현하고 있다. 《앨리어스》는 여주인공이 먼치킨으로 나오지만, 기본적인 정보기관의 운영방식을 잘 묘사하고 있다.

데스노트 최강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먼치킨 스테판 제반니가 바로 여기 출신이었다. 뭐 하는 집단이냐!~~이 항목은 제반니가 하룻밤사이에 바꿔치기 했습니다~~

명탐정 코난 작중 등장하는 미즈나시 레나가 CIA에서 검은 조직으로 위장잠입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오랜만의 선역--

시드 마이어가 만든 코버트 액션에서 플레이어가 소속된 집단이며 남미와 유럽 등을 돌며 활동하게 되는데 실제 CIA에 관한 묘사는 거의 없기에 크게 의미는 없다.

메탈기어 솔리드 3네이키드 스네이크, 제로 소령, 시긴트, 패러메딕이 CIA 산하의 FOX부대 소속. 이후 CIA는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의 주요 악역으로 등장한다.

배틀필드 시리즈에서 이곳 소속인 라즐로 W. 코빅이 등장한다. 배틀필드 3에서는 상관살해로 체포된 블랙번병장을 심문하고, 배틀필드 4에서는 미해군 강습상륙함 발키리호에 탑승해 작전을 지휘하다 중국군 헬기에게 공격받아 사망한다(...)[* 배틀필드4에 출연한 배틀필드3 등장인물들은 전원 사망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는 블랙 옵스블랙 옵스 2에서 주인공 일행 소속/관련 세력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블랙 옵스 3에서는 정말 터무니없는 대삽질 중의 대삽질을 저질러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모던 워페어 2에서 조세프 앨런블라디미르 마카로프의 테러조직으로 잠입시키는걸로 아주 잠깐 등장한다.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 2편에선 샘 윗위키를 발견했다는 걸로 간접등장 이때까진 오토봇과 나란히 싸우지만 4편에선 시카고 전투 이후 오토봇 제거에 나선다. 여기선 악의 조직으로 묘사된다.

시드노벨벤더&스파이의 등장인물인 스카이 프라그란스라는 소녀가, CIA요원이다. 문제는 스카이의 나이가 17살이라는 것이다.(한국 나이로 치면 18살) 진짜로 정보기관에서 미성년자를 요원으로 둘지는...

홈랜드역시 CIA가 나오는 유명한 미드중에 하나이다.

NCIS에도 CIA 출신의 조연이나 범인이 종종 등장하는데, 시즌 13 피날레에서는 그동안 악당같은 행동만 골라서 하던 트렌트 코트가 시리즈 팬들에게 초대형 빅엿을 하나 안겨다 주게 된다(...).

70(웹툰)에서는 국내 방첩망을 가지고 노는 수준(...)으로 나온다. 대통령직속 특수부대인 JSOC[* 4군통합특수작전사령부. 육군 특수전사령부와는 별개의 조직이다] 1팀 팀장인 한석규는 CIA가 파견한 대통령감시요원이다. 2차 한국전쟁을 목적으로 중국과 연계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국무위원들을 포섭, 전쟁을 일으킨다.[* 국회의원들중 대다수와 국방장관이 포섭되었지만 이들은 국회에서 공안측 연계조직인 황정민에 의해 전원 살해당한다. 이 행동이 사전에 협의된 행동인지슨 불명][* 사실 CIA는 센트럴이라는, 2차 한국전쟁을 통해 방위라인 밖으로 밀려난-이 만화의 설정에서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철수했다- 한국을 북한과 함께 날려버리고 한반도에 매장된 희토류 채굴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 장악한 상황이고, 현 미합중국 대통령과 일부조직은 이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게이트 - 자위대. 그의 땅에서, 이처럼 싸우며에서는 여기 소속 특수활동부라는 놈들이 일본의 VIP를 생포한다는 주제에 경호팀의 존재를 처음부터 상정 안하고 돌입(공통)하는 건 약과요 코믹스판에선 심지어 자위대가 권총 정도만 갖고 있을 줄 알았다는 한심한 과소평가는 둘째 치고 아예 일본 자위대가 특수부대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로 등장하는 등 아무리 우익 성향이라지만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완전 세금 도둑놈들로 그려 놓았다(...). 하지만 유명한 CIA니까 그나마 저 정도로 나온 거지, 중국 정보국이란 놈들은 한 술 더 떠서 공작원들을 비무장 NGO 폭력시위대로 위장시켜 자위대가 총 들고 경비중인 게이트로 반자이 어택(!) 시키는 더한 병신들(...)로 나왔다. --애초에 이 작품은 그냥 고증을 기대하면 안 된다--

마피아 3에서 주인공 링컨 클레이의 협력자이자 베트남 전쟁 당시 전우인 존 도노반이 CIA 요원으로, 본편에서는 살 마르카노의 이탈리아계 마피아 --와 뉴 보르도를-- 를 콩가루로 만드는 것을 도와 주고, 2번째 DLC에서는 반대로 도노반의 예전 CIA 동료 요원이자 변절해 버린 미치광이 매국노 코너 알드리지와의 결판을 내는 것을 역으로 링컨이 도와주게 된다. 그 과정에서 뉴 보르도의 CIA 안전가옥이 알드리지가 고용한 (콩고 내전 쪽에서 활약한 것으로 추정되는) 흑백 혼성 용병부대에 의해 무참하게 털리는 수모를 당했다(...). DLC 미션 마지막에 등장하여 알드리지가 북베트남에 팔아 먹으려 했던 소련 핵탄두를 회수한 헬기 조종사가 도노반과 같은 CIA 소속으로 추정.

웹툰인 첩보의 별에도 나온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CIA 임에 불구하고 한국에있다...--애초에 이 웹툰에서 정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스펙 옵스: 더 라인에서는 그레이 폭스라는 가상의 CIA 휘하 준군사조직 분대가 나온다.임무 내용은 두바이에서 일어난 모든 전쟁 범죄 증거(생존자 포함) 인멸. 그러니까 또라이들로 변해 버린 제33차량화보병대대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지옥에 떨어질 개자식들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에버렛 로스는 CIA 부국장으로서 히어로들을 돕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또 같은 MCU의 드라마 시리즈인퍼니셔(드라마)의 주요 빌런중 하나가 CIA 요원이다. CIA 비밀공작을 핑계로 각 분야 스페셜리스트 특수부대를 징집해와 중동지역에서 시체안에 내장을 파낸 뒤 마약을 넣어 밀매하는 공작을 저지른다.

한국 게임 아이언사이트에서 사라 브라우닝이 CIA출신이다. 중동 무기 밀매상이랑 위장 결혼까지 한다.

관련 문서

* 정보기관
* 방첩기관
* MK울트라
* 크립토스
* TrueCrypt
* 동물농장(소설)[* 정확히는 원작 소설 자체는 아니고, 1955년 개봉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 관여했단 의혹이 존재한다.(이전엔 FBI와 존 에드거 후버가 관여한 것으로 잘못 기재되어 있었다.)]

분류:미국의 국가행정조직분류:정보기관